몽골어 인칭종결어미의의미기능과 용법목차1. 서론2. 본론2-1. 1인칭 종결어미2-1-1. -я³2-1-2. -сугай²2-2. 2인칭 종결어미2-1-1. 영형태 (‘ø’)2-1-2. -аач⁴2-1-3. -аарай⁴2-1-4. -гтун²2-1-5. -уузай²2-3. 3인칭 종결어미3-1-1. -г3-1-2. -тугай²3-1-3. -аасай⁴3. 결론4. 참고문헌1. 서론몽골어는 교착어에 속하여 조사와 어미가 풍부하게 발달되어 있으며, 풍부한 종결어미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몽골어의 종결어미에는 시제 종결어미, 인칭 종결어미가 있다.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는 화자의 태도, 청자와의 관계, 사회적 맥락 등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에는 1, 2, 3인칭 종결어미를 가진다. 1인칭 종결어미에는 ‘-я³’와 ‘-сугай²’가 있고, 2인칭 종결어미에는 ‘ø’, ‘-аач⁴’, ‘-аарай⁴’, ‘-гтун²’, ‘-уузай²’가 있고, 마지막으로 3인칭 종결어미에는 ‘-г’, ‘-тугай², ‘-аасай⁴’가 있다.본 보고서는 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의 의미기능과 실제 용법을 분석하여 몽골어의 문법 및 화용적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다.2. 본론1인칭 종결어미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 중 1인칭 종결어미는 ‘-я³’와 ‘-сугай²’가 있다. 고대 몽골어에서 이 두 어미는 1인칭 단수와 복수를 구분하고 지시하는 의미로 구별되어 쓰였지만, 현대 몽골어에서는 양태 또는 다양한 문체의 장르에 따라 사용하게 되었다.① -я³‘-я³’는 직접 희망, 결의, 결의 희망, 의도, 의향 또는 결의 이행 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모음조화 규칙에 따라서 -я, -е, -ё를 연결한다.연결어미쓰임-я / -е / -ё모음과 연음부호로 끝난 단어 뒤에 연결결한다.-я / -ё자음으로 끝난 남성어 뒤에 경음부호 -ъ를 삽입한 후 연결한다-е자음으로 끝난 여성어 뒤에 연음부호 -ь를 삽입한 후 연결한다예문1. 저는 지금부터 열심히 할 게요.→Би о4는 화자가 장차 할 행위를 청자에게 공동행위를 위한 협조를 요청하는 제안이나 청유를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고대 몽골어에서 주된 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я, -е, -ё’는 한국어의 청유의 의미를 나타내는 ‘~자’, ‘~게’, 제안의 의미를 나타내는 ‘~ㄹ겠’, ‘~ㅂ시다’에 대응된다.② -сугай²‘-сугай²’는 어간의 모음조화에 따라서 남성 모음일 경우 ‘-сугай’가 연결되고, 여성 모음일 경우 ‘-сүгэй’가 연결된다.과거 고전 몽골어의 문어, 구어에서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나 현대 몽골어에서는 판결, 법령, 결의안 등 공식적인 문어체 표현으로 사용되어 그 범위가 축소되었다.예문1. 바트에게 몽골인민공화국의 영웅 칭호를 수여함.→Батад БНМАУ-ын баатар цол олгосугай.예문2. 바트를 주한몽골대사로 임명함.→Бхаттыг БНСУ-д Монгол улсын Элчин сайдаар томилосугай.위의 예문을 보면 알 수 있듯, 현대 몽골어에서는 판결, 정부, 국회, 대통령 등의 공공기관의 공식적 결정에 대한 문어체 표현으로 이용한다. 한국어의 설명법 종결형인 ‘-ㅁ’와 연결되어 사용된다. ‘-ㅁ’은 명사형 전성 어미이지만, 화자가 청자에게 객관적인 내용을 전달하는 경우에 사용되기도 한다.2인칭 종결어미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 중 2인칭 종결어미는 ‘ø’, ‘-аач⁴’, ‘-аарай⁴’, ‘-гтун²’, ‘-уузай²’로 5가지 형태의 어미가 존재한다.2인칭 종결어미는 일반적으로 청자에게 직접적인 명령이나 지시 등을 하는 일반 명령문 또는 지시문 등으로 사용한다.예문1. 너 먹어.→ Чи ид.예문2. 당신 이 책을 저에게 (빌려)주십시오.→ Чи энэ номоо надад өгөөч.예문3. 너 앉으세요.→ Чи суугаарай.예문4. 당신 앉으십시오!→ Та суугтун!예문5. 아버지가 오늘 오셨으면 좋겠다. / 오시면 좋을 텐데→ Аав өнөөдөр ирээсэй.영형태 (‘ø’)예해석이 가능할 것이다.‘ø’형 명령문은 특이하게, 한국어 명령문 상대 높임 체계의 비존대체(비존대형), 아주낮춤(해라체), 예사낮춤(하게체), 또는 이들을 두루 넘나드는 두루낮춤(해체, 반말체) 등급에 대응시켜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몽골어의 화계는 상대적으로 한국어처럼 세밀하게 분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аач⁴예문2에서 나타나는 '-аач⁴는 2인칭 명령, 희망 동사 어미이며, 연결하여 상대방에게 희망, 바램 또는 가벼운 명령을 나타낸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2인칭 요구/ 요청/명령형 명령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형태 명령형 보다는 부드럽고, 청자가 동장을 수행하지 않을 때 재촉하여 하게 하려는 요구의 의미가 나타난다.‘-аач⁴’는 “~하시오.”, “~해주시오.”로 해석될 수 있는데, ‘-аарай⁴’보다는 공손함을 덜 풍기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당신(Та)’이라는 대명사가 있는 문장에서, 주로 존경하며 요구하는 (희망하는)의미를 나타낸다. 즉, “~하십시오.”, “~해주십시오.”로 해석되어 ‘–аарай⁴’와 같은 공손함이 그대로 나타난다.화자의 담화 억양이나 2인칭에 대하는 태도 등에 따라 문장 끝에 감탄사나 첨사 ‘даа’, ‘л даа’가 함께 사용되면 ‘권유/권고/명령’, ‘요구/요청/ 명령’ 등의 부가적 의미가 나타난다.-аарай⁴예문3에서 나타나는 2인칭 연결어미인 ‘-аарай⁴’는 통사/의미론적 개념과 가장 대표적이고 핵심적 표현을 가지고 있는 2인칭 권고/권유 명령형 명령문이다. ‘-аарай4’형 명령문은 일반적으로 존대와 두루높임의 의미를 가진다.이 명령문은 일반적으로 화자의 의향, 억양, 감정 등에 따라 권유/권고/, 허락/허가/, 요청/요구/, 청탁, 기원 등의 다양한 의미를 나타낸다.-гтун²2인칭 존대명령형 명령문이라고 할 수 있는 3인칭 종결어미 ‘-гтун²’,은 화자가 청자를 극히 높여 존대하는 맥락에서 주로 쓰던 명령문이었다.중세 몽골어에서는 널리 사용되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문 종결어미 ‘-уузай²’는 2(또는3)인칭인 상대방에게 충고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게 하려는(즉, 경계하게 하려는)의미의 ‘주의 환기형(경계형)’ 문장을 만든다.한국어의 “~하지 말아라.”, “~하면 안된다.”, “~할라!(~하지 않도록)”에 대응이 된다, 그러나, 부정 명령의 의미가 출현하는 경우를 제하고, 한국어 명령문 상대 높임 체계에 대응하는 높임표현의 체계등급을 설정할 수 없다.3인칭 종결어미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 중 3인칭 종결어미는 ‘-г’, ‘-тугай²’, ‘-аасай⁴’ 3가지가 있다.화자가 동사로 표현하는 행위를 제3자가 수행하는 것 즉, 기원, 축원, 허용 등의 다양한 양태 의미를 나타낸다.예문1. 그가 이것에 대해 친구에게 말하도록 합시다. / 말하게(끔) 합시다.→Тэр энэ юмын тухай найздаа яриг.예문2. 당신네 가축이 많아지기를! /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 기원합니다.→Танай мал олон болтугай!예문3. (나의) 딸이 빨리 크게 되었으면! / 크게 되면(크면) 좋겠다. / 크기를 희망합니다 (바랍니다).→ Охин минь хурдан том болоосой.-г예문1에서, 3인칭 종결어미 ‘-г’가 서술 동사에 연결되어 문장을 끝맺고 있으며, 청유문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이는 화자가 청자에게 특정 행위를 제3자가 수행하는 것을 허락/허용하는 양태(적)의미를 나타내고 있다.‘-г’형 청유문은 한국어의 “(3인칭으로 하여금) ~하게 합시다.” “~하게 금 / 하도록 합시다.”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② -тугай²예문2에서, 3인칭 종결어미 ‘-тугай²’가 사용되었다.이는 ‘-тугай/түгэй’를 서술 동사에 연결해 문장을 끝낸다. 몽골어 전통문법에서는 명령문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이 레포트에서는 원망의 의미에 초점을 두고 청유문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겠다. 화자가 서술 동사로 표현되는 어떤 특정 행위에 제3자에 의해서 수행되기를 축원/기원하는 양태 의미를 핵심적으로 나타낸다.‘-만드는 경우에 사용한다.이 형식은 현 상황, 상태에 반대되는 바람이나 희망을 표현하는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аасай, ээсэй, оосой, өөсэй’형 청유문은 “~한다면 (좋겠다)…”, “~한다면 좋을 텐데…” 등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3. 결론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는 단순한 문법적 요소를 넘어 화자의 태도, 청자와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 맥락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인칭 종결어미는 화자의 의지와 희망, 또는 공동 행위를 제안하는 것, 즉, 청유형으로 사용되며, 2인칭 종결어미는 명령, 요청, 권유, 경고 등 청자에게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담는다. 3인칭 종결어미는 제3자에 대한 허용, 축원, 희망 등을 표현하며, 문장의 분위기와 화자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드러낸다.이와 같은 인칭 종결어미는 고대 몽골어에서는 문어와 구어 모두에서 폭넓게 사용되었으나, 현대 몽골어에서는 양태나 사용 맥락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졌다.몽골어와 한국어를 비교했을 때, 두 언어 모두 인칭과 종결어미를 통해 화자의 의도와 태도를 세밀하게 표현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세부적인 표현 방식과 맥락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을 이해함으로써 몽골어 문법의 독특한 특징을 더 깊이 파악할 수 있었다.이렇게 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를 한국어 종결어미와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몽골어가 한국어로 완벽하게 대응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해석 및 이해가 가능하다. 몽골어의 인칭 종결어미는 언어적 특성을 넘어 문화적, 사회적 맥락을 담아내는 중요한 도구이며, 이를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문법 지식을 넘어서 몽골 언어와 문화를 더 깊이 알 수 있는 길이다.4. 참고문헌 및 사이트김기성, 『현대몽골어 교본』, 한림대학교출판부, 1994.김기선 외 4인, 『현대 몽골어와 한국어의 문법 비교 연구』, 한국 문화사, 2009.김기성, 「현대몽골어와 한국어 양 언어 학습자를 위한 청유문 대조 연구」, 『한국언어문화학』, 국제한국언어문화학회, 제1AT 2
한국과 몽골의 전통 의복한복과 델의 특성과 공통점, 차이점 비교목차 TOC o "1-3" h z u Hyperlink l "_Toc168067496" 1.서론 PAGEREF _Toc168067496 h 4 Hyperlink l "_Toc168067497" 2.한국 전통의상의 특징 PAGEREF _Toc168067497 h 4 Hyperlink l "_Toc168067498" 2.1생김새와 종류 PAGEREF _Toc168067498 h 4 Hyperlink l "_Toc168067499" 2.1.1.혼례복 PAGEREF _Toc168067499 h 5 Hyperlink l "_Toc168067500" 2.1.2.구군복 PAGEREF _Toc168067500 h 5 Hyperlink l "_Toc168067501" 2.1.3.곤룡포 PAGEREF _Toc168067501 h 5 Hyperlink l "_Toc168067502" 2.1.4.관복 PAGEREF _Toc168067502 h 5 Hyperlink l "_Toc168067503" 2.1.5.상례복 PAGEREF _Toc168067503 h 5 Hyperlink l "_Toc168067504" 2.1.6.제례복 PAGEREF _Toc168067504 h 5 Hyperlink l "_Toc168067505" 2.2한복의 구성요소 PAGEREF _Toc168067505 h 6 Hyperlink l "_Toc168067506" 2.3옷감과 배색 PAGEREF _Toc168067506 h 6 Hyperlink l "_Toc168067507" 3.몽골 전통의상의 특징 PAGEREF _Toc168067507 h 6 Hyperlink l "_Toc168067508" 3.1생김새와 특징 PAGEREF _Toc168067508 h 6 Hyperlink l "_Toc168067509" 3.2델의 구성요소 PAGEREF _Toc168067509 h 7 Hyperlink2.소재와 장식 PAGEREF _Toc168067523 h 9 Hyperlink l "_Toc168067524" 4.2.3.사회적 의미와 상징성 PAGEREF _Toc168067524 h 9 Hyperlink l "_Toc168067525" 4.2.4.문화적 배경 PAGEREF _Toc168067525 h 9 Hyperlink l "_Toc168067526" 4.3한복과 델의 비교를 통한 나의 생각 PAGEREF _Toc168067526 h 10 Hyperlink l "_Toc168067527" 5.참고문헌 PAGEREF _Toc168067527 h 10서론한국과 몽골은 유구한 역사와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로, 전통 의복인 한복과 델은 두 나라의 문화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한복과 델은 의복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각 나라의 생활방식, 역사, 사회, 기후 등을 반영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델은 몽골의 초원과 혹독한 기후 속 유목민의 생활방식을 반영한 것이 특징이다. 델의 재질과 구조는 몽골 유목 생활과 기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이동과 보온에 탁월한 기능을 가진다. 반면, 한복은 한국의 정주사회와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예와 아름다움을 중요시하는 디자인을 가진다. 한국의 색상과 곡선미는 한국의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이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전통 의복 한복과 몽골의 전통 의복 델의 특징을 살펴보고, 비교하여 두 나라의 전통 의복이 문화를 어떻게 반영하며, 그 속에 담긴 풍부한 의미와 가치를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합니다.한국 전통의상의 특징생김새와 종류한복은 예부터 전해지는 한국의 고유한 의복이다. 직선과 곡선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여성의 옷은 짧은 저고리와 넉넉한 치마가 어울려 옷차림이 단정하고 풍성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한복은 오랫동안 입었던 옷이지만, 모양이나 종류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였다. 삼국 시대에는 긴 저고리와 통이 좁은 바지, 주름치마 등을 입었고 이런 전통은 조선 중기까지 이어졌 참여하는 사람들은 제례 복식을 갖추어 입었는데, 입는 사람의 신분이나 제사의 내용에 따라 복식이 다르다. 제례 복식의 제도는 조선시대까지는 잘 지켜졌으나 신분 제도가 붕괴되면서 많은 변화를 보였다. 제사를 지낼 때 입는 복식으로 집안 형편이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타난다.한복의 구성요소한복은 여성의 경우에 저고리와 치마, 남성의 경우에는 바지를 비롯한 속옷이나 그 외의 장식품, 저고리 위에 입는 조끼와 두루마기, 마고자 등으로 구성된다.저고리는 동전, , 소매, 고름, 길, 깃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성의 경우에는 소매 끝에 끝동을 붙여 멋을 부렸다. 저고리의 형태, 봉재 방식, 소재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하며, 저고리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에 다른 색상의 옷감을 사용하는 것으로도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다.치마는 곡선미가 뛰어난 옷으로, 허리 부분에 주름으로 볼륨감을 내어 넉넉함을 갖는 특징이 있어 한복 특유의 매력을 연출한다. 저고리의 앞을 바로잡아 고정하기 위해 옷고름을 달았다. 옷고름은 한복의 아름다움과 품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체이다.모든 한복에는 호주머니가 없기 때문에 별도로 "주머니"를 만들었고, 그것을 지갑 대신으로 사용했다. 각각 윗부분을 끈으로 묶어 사용하거나 이 부분에 매듭과 술을 장식하기도 했다.옷감과 배색옛날에는 예복에 비단류를 사용하였고, 평상복에 면직류, 견직류, 모직류 등을 썼으며, 상복에는 마직류(삼베)와 면직류를 사용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합성섬유 등 각종 섬유가 나와 다양한 옷감을 사용하고 있다.신분 관념과 배색이 엄격한 옛날에는 나라에서 정한 색이 있었기 때문에 색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여자의 경우 저고리는 연두색·노란색 또는 옥색이 주를 이루었다. 치마는 남색이나 홍색 치마가 주를 이루었는데, 홍색은 침착하고 가라앉은 색이며, 남색은 화려하고 청아한 색이다. 자색을 이용할 때, 젊은 사람은 꽃자주색을 중년이 되면 짙은 자주색, 노년에는 검정자주색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취미·선호·유행·개성에 따라 다양하은 가죽으로 만든 목이 긴 신발이다. 명절이나 잔칫날 등 특별한 날에 델, 말가이, 부스와 함께 일종의 정장으로 착용한다. 뾰족한 앞 코가 특징인데, 이로 인해 말을 탈 때에 등자에서 잘 빠지지 않아 말을 탈 때 유용하다.의복에서 필수 요소인 가축몽골 사람들은 의복재료를 주로 가축을 통해 얻는다. 양털로 만든 펠트를 비롯하여 오축의 가축에서 얻는 가죽과 털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유목민들은 가축으로 의복 재료를 얻고, 가축을 통해 농경민과 예로부터 교역하였습니다. 가축으로부터 직접 털을 얻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교역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가축 덕분이었다.한국과 몽골의 전통의상 비교공통점계절과 기후에 맞춘 디자인한복은 계절에 따라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를 사용하는데, 겨울에는 모직이나 두꺼운 솜을 사용하고, 여름에는 얇고 시원한 소재(마 종류의 면직물)를 사용하여 더위를 피한다. 몽골도 비슷하게 계절에 맞춘 디자인을 가지는데, 겨울에는 따뜻한 양털이나 모피를 사용하고, 여름에는 가벼운 면이나 비단을 사용한다. 계절에 따라 홋겹인 단델 이중겹의 테르델, 두툼한 겨울용 니흐델이 있다.넉넉한 품과 활동성한복은 넉넉하고 여유 있는 핏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착용자의 움직임에 제약이 없다. 특히 하의 즉, 여성의 치마와 남성의 바지는 넉넉하게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델 역시 넉넉한 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몽골 유목 생활에서 필요한 활동성을 보장한다. 델은 허리부분을 여유 있게 묶어 활동을 편하게 할 수 있다.벨트 및 허리 장식한복에서는 허리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노리개나 다양한 장신구를 사용하며, 저고리와 치마를 연결해주는 옷고름이나 허리띠가 있다. 이와 비슷하게 델도 허리띠를 사용하여 옷을 여미고 고정한다. 허리띠는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장식적인 역할도 하는데, 천으로 된 끈부터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가죽띠까지 종류가 다양하다.전통 의복의 현대화 및 활용현대에는 일상생활에서 전통 의복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전통 의복을패턴이 이용된다.사회적 의미와 상징성한복은 사회적 계층, 성별, 연령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과 색상을 가진다. 예를 들어, 혼례복, 상례복, 관례복 등 특정한 의례에 맞춘 다양한 한복이 존재한다. 델은 몽골의 유목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실용성이 강조된다. 델의 디자인과 장식은 사용자의 지위와 부를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몽골에는 여러 부족이 살고, 부족마다 입는 옷이 다르기 때문에 (옷으로 신분이나 부족을 표시) 부족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과는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델은 색상이나 바느질, 몇몇 치장을 제외하면 전체적인 모양은 비슷한 편이다.문화적 배경한복은 고조선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유교적 가치와 전통이 반영되어 있는 옷이다. 델은 몽골의 유목 생활과 자연 환경에서 기원했으며, 실용성과 기능성이 강조된다. 몽골 제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독특한 생활방식을 반영하고 있다.한복과 델의 비교를 통한 나의 생각한복과 델은 각각 한국과 몽골의 전통 의복으로, 두 의상 모두 각 나라의 문화, 역사, 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복과 델이 단순한 의복을 넘어, 각 나라의 정체성과 가치를 담고 있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다.한복과 델은 각각의 나라에서 오랜 시간 동안 발전해 온 의상으로, 그 역사적 배경이 매우 중요하다. 한복은 삼국 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변화를 거쳐 현재의 형태에 이르렀으며, 유교적 가치와 예절이 반영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반면 델은 몽골의 유목 생활과 혹독한 기후에 적응하면서 발전한 의상으로, 실용성과 기능성이 강조된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우리는 한복과 델이 각 나라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다.또한, 한복과 델 모두 착용자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나타내는 의상이다. 한복은 혼례복, 구군복, 곤룡포, 관복, 상례복 등 다양한 종류가 있으며, 각 의상이 특정한 사회적 의미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델 역시 지위나 신분에 따라 약간씩 AT 2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그리스·로마 신화의 변용과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목 차Ⅰ. 서론1. 그리스·로마 신화와 현대사회의 관계2. 작품선정 이유Ⅱ. 본론1. 『퍼시잭슨과 번개도둑』 줄거리2.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 관하여3. 작품 분석(1) 판타지 요소(2) 데미갓(Demigod) (반인반신의 모습)과 신과 인간의 결합(3) 스틱스강의 맹세(4) 영웅신화의 구조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1. 그리스·로마 신화와 현대사회의 관계우리 주변을 보면,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유래되었거나 이를 바탕으로 창작된 문화콘텐츠 등을 많이 볼 수 있다. 캐릭터, 브랜드, 광고 등에 다양한 신화의 상징성을 접목함으로써 대중에게 호소하거나, 영화, 게임, 만화, 책 등에서 신화 속 내용과 다양한 소재들로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생활 속에서도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 또한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파생되어 나온 경우가 있다. 화산을 뜻하는 ‘volcano’는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토스로부터 탄생하였으며, 태풍을 뜻하는 ‘typoon’도 신화 티폰족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외에도 아킬레스건, 미다스의 손, 뮤직, 등 신화 속 이야기와 연결되어 탄생한 단어들이 많이 존재한다.이처럼 그리스·로마 신화는 정치, 경제, 종교, 문학, 사회, 철학, 자연과학 등 우리 사회 전반에 있어서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왔으며, 현재에도 그 영향 아래에 있고, 앞으로의 미래도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서구 사회에서 출발하여 토대가 된 그리스·로마 신화는 우리에게도 오랜 역사를 간직하며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까지 그리스 로마·신화의 영향력과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이다.2, 작품선정 이유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책의 뒤쪽에 있는 설명 때문이었다. ‘신들에 대적하는 새로운 영웅이 온다.!’ 21세기와 고대 그리스 신화의 만남이라는 것이 흥미로운 조합이자, 쉽지 않은 조합이라고 생각이 들어서 관심이 더욱 갔던 것 같다. 평소에 그리스·로마 신 12살 소년이다. 그가 다니는 학교마다 이상한 사건들이 발생하게 되고, 퍼시잭슨은 문제아로 찍혀 다니는 학교마다 적응하지 못하고 정학을 받으며 매년 학교를 옮겨 다니는 아이이다. 어느 날, 얀시 아카데미에서 그는 라틴어 선생님인 브루너 선생님과 함께 반 학생들과 같이 박물관으로 현장 체험 학습을 하러 가게 된다. 그곳에서 수학 선생님이 괴물로 변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이후에도 이상한 일이 계속 퍼시잭슨에게 일어나게 된다.퍼시잭슨은 ‘여름 캠프’(데미갓 아이들이 모이는 특수학교)로 가게 되었고, 퍼시잭슨은 자신이 반은 인간이고 반은 신인 데미갓(반인반신)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퍼시잭슨의 아버지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알게 된 퍼시잭슨은 곧 제우스의 번개를 훔친 혐의로 기소되었고, 퍼시잭슨은 신들의 전쟁을 막기 위해 위험한 탐색(모험)을 시작해야만 했다. 퍼시잭슨은 아테나의 딸인 아나베스와 그로버의 도움을 받아 번개를 찾아 제우스에게 돌려주기 위해 나서게 된다. 캠프에 저승의 왕이자 제우스, 포세이돈의 형제인 하데스의 분신이 나타나 퍼시잭슨의 어머니인 샐리는 죽은 것이 아니라 지하세계로 납치된 것이며, 어머니를 찾고 싶다면 훔친 번개를 가지고 지하세계로 오라고 선언하게 된다. 키론(부르너 선생)은 캠프를 나가면 안 된다고 했지만, 퍼시잭슨은 키론의 말을 무시하고 그로버와 아나베스를 데리고 지하세계로 떠나게 된다. 지하세계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는 페르세포네의 녹색 진주를 인원만큼 챙겨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고, 지하세계로 모험을 떠나 다시 돌아오는 과정에서, 그들은 괴물에서 신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성공하는 것을 막으려는 온갖 종류의 장애물들과 마주친다. 퍼시잭슨과 친구들은 지하세계를 여행하고 강한 적들과 맞서 싸우게 되면서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된다. 퍼시잭슨은 바다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아나베스는 지능을 이용해 퍼즐을 풀고, 그로버는 마법의 힘을 이용하여 황야를 항해한을 구한 영웅으로 환영받는다. 퍼시잭슨은 동료 신들로부터 포세이돈의 아들로 인정받게 되고, 반신 세계로의 환영을 받는다. 퍼시잭슨은 자신의 모험을 되돌아보며 자신이 마침내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되고, 미래가 가져올 어떤 도전에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깨닫는다.2. 『퍼시잭슨과 번개도둑』에 관하여『퍼시잭슨과 번개도둑』이란 작품은 그리스·로마 신화와 현대문화(21세기)를 결합하여 그리스·로마 신화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작품이다. 현대도시와 올림포스가 공존하여 인간과 신이 한 시대에 존재하고 있는 포맷으로 만들어졌으며, 전형적인 영웅의 모험과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것이 특징인 작품이다. 또 다른 특징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하나의 사건이나 이야기를 각색한 것이 아니라 신화 속 인물들을 기초로 하되, 현대 시대와 결합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헤라클레스, 헥토르. 아킬레스 등의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들을 등장시킨 것이 아닌 새로운 영웅을 현대와 맞게 창조하여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신들과 인간에서 태어난 데미갓(반인반신)들 중 포세이돈의 자식인 ‘퍼시잭슨’과 아테나 자식 ‘아나베스’ 그리고 주인공의 수호신 ‘그로버’가 신들의 전쟁을 막기 위해 모험을 펼치는 다소 유치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오늘날 우리의 도시 모습과 신들의 세계를 연결해 마치 지금 내 주변 어딘가에 올림포스의 세계가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해주면서, 신화 속 캐릭터인 제우스나 포세이돈, 메두사 등을 현실감 있게 표현 흥미를 느낄 수 있게 도와준다.3. 작품 분석3-1. 판타지 요소이 작품은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작품이다. 비록 그리스·로마 신화의 내용과 인물들의 이름을 빌렸지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사건을 소재로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① 퍼시잭슨은 평범한 청소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왜냐하면, 퍼시잭슨의 아버지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기 때문이다. 과연, 21세기에도 신과 인간의 결합이 있을 수 있을까? 라)의 인물들이 존재한다. 이곳은 인간은 들어갈 수 없게 설정되어있다. 큰 소나무를 경계로 인간은 그 이상으로 넘어갈 수 없고, 인간의 눈으로 보았을 때 소나무 너머의 풍경은 그저 딸기밭 풍경이다.신화를 소재로 한 판타지 재현의 방향은 주로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것들이 갖는 제약에 대한 의도적인 일탈을 보여주며, 판타지와 미메시스(현실 재현)의 관계에 집중하며, 결핍과 충족에 대한 갈망과 현실 모순, 문제의식이 결합하여 나타난다.3-2. 데미갓(Demigod) (반인반신의 모습)과 신과 인간의 결합이 작품에서 데미갓(Demi-god 또는 반인반신(半神半人))의 인물들이 다수 등장하게 된다. 데미갓은 부모의 한쪽이 신이고 다른 한쪽은 인간인 신화적인 인물들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다. 반신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수메르의 왕인 길가메시, 그리스·로마 신화의 영웅인 헤라클레스가 있다.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특별한 존재인 데미갓은 넓은 스펙트럼이 있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신도, 인간도 아닌 경계에 놓인 존재로서 정체성의 혼란이나 신이 될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한계에 대한 원망과 증오, 신에 대해 동경과 갈망 등 인간에 대한 은유로 활용되며 판타지 영화에 탄탄한 개연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여름 캠프(반쪽 피 캠프)에는 데미갓인 등장인물들이 많다. 등장인물뿐만 아니라 그들이 묵는 숙소도 올림포스의 12신과 관련되어 숙소가 정해져 있는데, 예를 들면, 주인공의 친구 아나베스는 6번 숙소에 배정되었는데, 의미는 아테나, 지혜와 전투의 여신이라는 뜻을 가진 숙소이다. 숙소는 해당하는 자녀가 사용하게 되며, 아직 정해지지 않은 아이들은 11번 숙소에 거주하게 된다.생김새 또한 신과 닮은 것으로 묘사된다. 헤파이토스의 아이들은 예쁘지 않았고, 그 수가 적었지만, 온종일 대장간에서 일하기 때문에 덩치가 크고 억셌으며, 데메테르 아이들은 자연을 다루는 기술과 야외 활동에서 우세하였으며, 아프로디테의 아들딸들은 대개 활동을 해도 앉아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의 전개는 그저 10대들의 잔잔한 모험담 풀어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익숙한 신들의 이름이나 수호천사, 요정 등 그리스 신화에서 따온 모티프들은 작품에 녹아 새로운 이야기나 조합으로 탄생하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인 삽입에 그치고 만다는 점이 아쉬운 부분이다. 신들의 전쟁이 인간 세상에 미친 영향이나 그들의 능력에 대한 상세한 묘사, 인간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데미갓 등 의미를 다루지 않고 있다.신과 인간의 결합은 왜 일어나는 것인가? 그리스 신화에서는 그리스인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결혼관이 드러나게 되고, 제우스의 결혼을 통해 여신들의 능과 역할을 자신에게 통합하려고 종속하는 방식을 취한다는 특성이 있다.3-3. 스틱스강의 맹세‘제7장 신께 올리는 번제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되는 부분이 있다.“60여 년 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빅3은 더 이상 영웅을 낳지 말자고 합의했어. 그들의 자식은 너무 강하거든. 인간들의 역사에 너무 많은 영향을 미치고, 너무 많은 대규모 학살을 유발해. 알겠지만 2차 세계대전도 근본적으로는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자식들이 한 편, 하데스의 자식들이 한 편이 되어 싸운 거였거든. 승리한 제우스와 포세이돈은 하데스에게 자기들과 같이 맹세하게 했지. 더 이상 인간 여성과 관계를 맺지 않기로. 셋 사 스틱스강에 대고 맹세했어.”여기에서 나오는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는, 그리스 신들은 맹세할 때 스틱스강에 대고 하는데, 제우스라 하더라도 이 맹세를 거역해서는 안 된다. 이는 과거 스틱스가 티탄 신족과의 전투에서 이기게 해준 공로를 인정받아 그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게 해준 것에서 시작되었다.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절대 어기면 안 되는 약속에 대해서 ‘스틱스강에 맹세해.’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작품 속에서도 인간과의 결합을 금지하기 위해 스틱스강에 대한 맹세로 강력한 맹세를 하는 장면에서, 신화가 소설 속에 변용된 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알게 모르게 많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
몽골인의 일상생활오늘날의 세계화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발전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여러 국가는 경제, 재무, 정치, 언어, 문화, 기술, 기계공학 분야에서 단일화되고 밀집된 공정이 빠르게 진보하고 있습니다.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고 사람들은 다른 대륙에 있는 친구들과 소통하고, 여행 정보 등을 한순간에 습득할 기회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향으로 전통 양식과 풍습이 변화되어, 새로운 생활방식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문화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연합해 가는 과정은 이러한 우리의 일상과 사회 전체를 아우르게 되는 ‘문화의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문화의 세계화’가 몽골에서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데, 문화의 다양성과 존립에 장애 요소가 되고 있다고 보는 관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현대 사회에서 다양한 이념과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에 모든 측면에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습니다.‘문화의 세계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세계화 이전 평준화가 될 수 없었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인내하고 도전해 왔으며 문화의 참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의 가능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따라서 문화의 다양성과 특성을 보존하고 세계화를 온전히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문화의 취약한 측면들을 상호 보완해 나가는 것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합니다.몽골인은 4계절 중 특히 여름을 이용하여 시골 초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여름을 지냅니다. 몽골은 겨울에는 극심한 추위로, 봄에는 황사가 심하여 여행하거나 산책하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여름을 이용하는 것은 기후와 특별한 관계가 있고, 사람들은 쾌적한 여름을 기다려 휴식을 취합니다. 한국과 비교해볼 때 몽골인은 상대적으로 긴 여가를 즐깁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여름에 휴가를 보내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특별히 사업차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업무를 조율하는데 다소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몽골인들은 여름이 되면 가족 단위로 자동차로 며칠간 시골에 가서 휴식을 취합니다. 겨울철에 유제품 획득이 쉽지 않음으로 인해 주로 육류를 즐겨 먹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몽골인은 시골에 가서 아이락과 유제품을 먹으며 즐기는 것을 삶의 소중한 가치로 여깁니다.일반적으로 20대 학생들과 청년들의 습관과 관심을 보면 두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활력이 넘치는 청년들은 젊은 나이에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운동을 섭렵한다든지 또는 여행 등을 통해 여가를 보람 있게 보내는 유형이 있습니다.
1921년 인민혁명(Ардын хувьсгал)목 차Ⅰ. 서론- 들어가는 말- 인민혁명 전 몽골의 상황Ⅱ. 본론1. 1921년 인민혁명의 배경2. 혁명의 기반(1) 조직의 탄생 - (2) 러시아와의 교류3. 혁명의 확산과 독립 선언(1) 러시아 백군의 침입과 폭정 ? 운게른 남작(2) 임시정부의 수립4. 혁명의 성공(1) 캬흐타 해방(2) 니스렐 후레의 해방Ⅲ. 결론Ⅳ. 참고문헌Ⅰ. 서론20세기 초까지 몽골은 청의 지배 아래에서 가장 낙후된 변방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독립을 위해 적극적 투쟁과 방법을 모색하였다. 그 결과 힘을 하나로 모을 수 있었으며 대내외 상황을 살펴 민족 해방투쟁을 전개하여 청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몽골인들은 나라를 안정시키고 청에 의하여 나누어진 민족을 하나로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 국가를 세우려고 하였지만, 당시 세계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던 열강에 의한 식민지 점령 경쟁은 몽골의 독립에 위협을 초래하였다. 중화민국과 제정러시아는 몽골에 부당한 조약을 강요하였으며, 중화민국의 종주권 아래에 외몽골을 자치국으로, 내몽골을 중국의 한 성으로 편입시키려는 정책을 펴나갔다. 게다가 중화민국은 1919년, 몽골의 자치권을 박탈해버리고 무력으로 직접통치를 시행하였다.이에 대하여 몽골인들은 중화민국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방법을 구하는 과정에서 몽골 역사상 최초의 정당이 생기고 외세와 그 억압으로부터 저항하는 민주, 민족혁명이 일어났다. 이는 1921년 7월에 다시 독립을 선언으로 몽골을 이끌었다.이러한 1921년 인민혁명은 몽골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이다. 현재 몽골의 부흥과 발전의 단단한 기초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는지 살펴볼 것이다.인민혁명 전 몽골의 상황13세기,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던 몽골은 원나라의 붕괴(1368년)가 시작되고 마지막 유목제국이었던 오이라트 몽골(1755년)이 중국 청나라에 복속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다. 몽골제국을 차례로 복속한 명나라와 청나라는 몽골을 철저히 없켜 황제와 총리를 위협하였고, 중화민국의 대총통 위안스카이는 11월 22일에 공식적으로 몽골의 독립을 폐지한다는 명령을 내림으로 민족해방혁명을 통해 완성한 몽골의 독립 끝을 맞이하게 된다.그 이후 몽골은 두 번째 정치적 변혁이 발생하는데, 바로 1921년의 인민혁명이다.Ⅱ. 본론1921년 인민혁명의 배경1919년~1920년 사이의 몽골 사회는 대내적, 대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청의 지배 아래 있었던 몽골의 평민들(Ард)은 자유인이 아니었다. 귀족, 고위 승려, 왕공들은 막강한 권력을 누렸고, 일반 백성들은 정치적 권한조차 가지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몽골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던 해체와 분열로 관료 계층과 노동자 계층이 생겨났으며, 진보 사상을 가진 민주인사들이 등장하여 ‘ 헌법 제정’, ‘ 선거를 통한 정부 구성’, ‘낡고 무지한 정부의 교체’, 등의 견해를 밝혔다.당시 몽골의 경제 사정 또한 어려웠다. 1918년도 자료에 따르면 그 무렵 몽골인이 한족 상인에게 갚아야 할 채무 규모가 3000만 냥에 이르렀으며, 1919년 말에는 루블화의 가치가 1/70로 하락하였다.이러한 상황에서 몽골이 자치국 지위를 박탈당함으로써 몽골인은 다시 주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몽골 정부가 발의하여 시행해 온 긍정적인 정책도 모두 폐기 처분되었다. 게다가 중국군 지휘관들의 폭압과 착취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예컨대 당시 상황을 기록한 한 문건은“…… 공대(共戴) 9년 여름 중국의 쉬수정이라는 자가 무력으로 위협하고 협박하여 몽골의 자치를 박탈할 것을 요청하는…… 원안(原案)을 자신이 직접 작성하고 인장을 찍게 하여 정부를 와해시키고 몽골인을 마음대로 지배하고 억누르고, …… 십여 명의 몽골인을 차례로 체포하여…… 고문하는 등 몹시 괴롭히고 …… 복드 황제를 체포하고, 백성들의 재산과 가축을 강제로 빼앗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이유 없이 때리고 상해를 입히고 총으로 쏴 죽인 고통과 신고(辛苦)를 하나하나 셀 수 없을 정도에 이르렀다.”-내무부 문건, 공대 11년였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비밀 그룹 구성원들 간의 의견이 달랐지만 대체로 러시아, 미국, 일본 등과 관계 맺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토론 과정에서 러시아(소비에트 정부)와 관계를 맺고 그들로부터 지원을 받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다. 이 무렵 소비에트 정부와 코민테른에서도 몽골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정치적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측은 어느 정도 공동보조를 가질 수 있었다.1919년 가을, 쉬수정이 후레에 도착해 강경한 수단으로 자치를 철폐하여 몽골인민들의 공분을 샀는데, 이는 또한 ?비밀소조?가 합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식 합병 후 두 ?비밀소조?가 합병하여 발전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비밀집단?이다. ?비밀집단?은 소련 정부에 민족독립을 위해 분투하는 몽골 인민들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였다.1920년 2월, 수흐바타르(Sukhbaatar)와 단잔(Danzan)은 ?비밀집단?의 위탁을 받아들였다. 이들은 캬흐타에 가서 러시아의 상황을 이해하고, 소련(정부)의 대표와 원조에 대한 문제를 상의했지만, 성공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서신은 부리아트(Buryat) 몽골인에 의해서 이르쿠츠크에 있는 소비에트 원동서기국에 전해졌다. 특히 이르쿠츠크에 설립된 ‘코민테른 원동서기국’은 몽골인민당을 조직하고, ‘몽골 인민 임시정부’를 건립하는 등의 역할을 통해 전체 공산당 혁명공작을 이끌었다.1920년 5월에, 코민테른 원동서기국 몽골·티베트 방면의 전권대표인 보리소프(S.S. Borisov)가 후레를 방문해 몽골의?비밀집단?과 코민테른의 긴밀한 연락체계를 건축하였다.1920년 6월 25일에 ?비밀집단?은 연석회의를 소집하고 대표를 파견하여 소비에트에 지원을 요청할 것을 결의했고, 초이발산(Choibalsan)과 단잔(Danzan)을 대표로 선발하였다. 이외에, 향후 당의 핵심과 기초가 될 수 있도록 엄격한 규율과 강화된 역량을 지닌 조직을 건립할 것을 의결하였다. 회동을 가지고 그 후 혁명 과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몇 가지 역사적 결의를 고 인민유격대를 조직하기로 하였다.당시 이르쿠츠크에서 몽골어로 인민 정부를 건설할 것을 요구하는 선전 벽보와 선언문·전단 등을 인쇄하고, 「몽골진리보」를 발행해 몽골인민당 대표라는 명의로 선언서를 발표하는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3. 혁명 전개- 러시아 백군의 침입과 폭정 ? 운게른 남작몽골이 소비에트 정부로부터 원조를 받는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어가던 1920년 10월 2일, 운게른 남작(Baron Ungern)이 이끄는 ‘아시아기병대’가 800명의 군사가 몽골의 오논(Onon)강 유역의 길베르(Gilver) 초소 지역을 통해 몽골에 침입했다.운게른은 ‘복드 게겐을 황제로 추대하고 자치 정부를 다시 세우겠다.’,‘ 몽골인들을 중화 민국의 지배에서 해방시키겠다.’,‘ 대몽골국을 건설하겠다.’ 등등 달콤한 말로 몽골인을 포섭하려고 하였다. 많은 사람이 운게른을 따랐으며, 당시 몽골인들은 그의 군대를 이용해서라도 중화민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기를 원하였다.운게른 남작은 1920년 10월 26일부터 니슬렐 후레를 점령하기 위하여 중화민국군을 수차례 공격한 끝에 1921년 2월 4일 그곳을 수중에 넣었다. 이 전투에 1,000여 명의 몽골인이 참가하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이때 운게른 군대는 중국군으로부터 각종 화기 4,000여 점, 다량의 식량과 의복, 거의 900만 달러에 이르는 중국군 금고를 노획하였다.니슬렐 후레를 점령하고, 운게른 남작은 5부를 설치하고 복드 게겐을 황제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내각 총리 겸 내무부 장관에 잘한즈 호탁트 담딘바자르, 외무부 장관에 샨조드바 다시자브(Shanzudba Dashjav), 국방부 장관에 비시렐트 왕 도르지체렌(Bishrelt van Dorjtseren), 몽골군 총사령관에 하탄바타르 막사르자브(Khatanbaatar Magsarjav), 재무부 장관에 롭산체벤, 법무부 장관에 베이스 치메드도르지(Beis Chimeddorj)를 각각 임명하였다.복드 황제는 운게른에게 작위와 칭호를를 주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운게른의에트러시아와 협력하여 몽골 내 봉건세력과 백군 잔당 운게른에게 끝까지 투쟁할 것을 다짐하였다.이외에도, 유격대를 연합하여 지도기구인 ?인민혁명사령부?를 설립하고, 초이발산이 정치위원을, 수흐바타르가 인민군 총사령관직을 맡을 것을 결의하였다.몽골인민당 제1차 대표대회는 자체로 굉장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다. 대표회의를 통해 진정한 혁명 정당이 설립되었고, 몽골의 독립을 위하여 제국주의 압박을 반대하는 해방투쟁을 전개하였고, 인민당을 조직적인 무장봉기로 이끌었다.가장 중요한 점은 몽골이 공산국가로 발전하는데 첫 걸음을 내딛은 것이었다.혁명의 성공1. 캬흐타 해방1920년부터 1921년 사이에 인민의용군을 조직하기 위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즉, 수흐바타르는 1921년 2월 인민의용군의 첫 전투 부대를 창설하고 부대장으로 폰착을 임명하였다.이 인민의용군은 알탄(Altan), 에렌(Ereen), 호지르 노가(Khujir nuga) 등지에 배치되었으며, 3월 초 인민의용군 병사 수가 400여 명에 이르자 그들을 셀렝게(Selenge) 강서쪽에 있는 샤르 하드(Shar khad), 바얀올(Bayan uul), 하닌훈디(Khanin Kh?ndii), 놈트(Nomt) 등지로 이동시켜 몇 개의 부대로 편성하였다. 병사들에게 전투 훈련을 시켰으며, 식량·운송수단·무기 등을 제공하고, 선전 활동을 전개하고 규율을 엄격히 제정하는 등의 활동을 진행하였다.인민의용군 앞에 놓인 가장 중요한 과제는 캬흐타를 중화민국으로부터 해방하는 일이었다. 1921년 3월 6일에서 7일 사이에 이 문제를 논의하고 캬흐타 해방에 관한 문제를 결정하였다. 당시 캬흐타에는 중화민국군 병력 총 2,000명이 대포 7문과 기관총 12정으로 무장하해 집결했다. 이에 수흐바타르 장군의 지휘 아래에 캬흐타 해방 작전을 수립하였고, 3월 14일에 준비를 마쳤다. 921년 3월 17일 수흐바타르 장군은 소비에트 외무 인민 위원 막스테네크(O. M. Makstenek)를 중재자로 중화민국군 지휘부에 최후통첩을 선포했다. 중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