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1수권 해양과 빙하..PAGE:2목차1. 물의 순환과 분포2. 해양3. 눈과 빙하4. 지하수5. 강과 호수..PAGE:31. 물의 순환과 분포바닷물(=해수) 97%빙하와 얼음 2%지하수 0.6%호수나 하천, 대기 0.4%해수를 포함한 염수가 97.4% 대부분이고 담수는 2.6%담수 중에서도 실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강과 호수 등 지표수의 양은0.0072%정도에 불과.출처- 네이버카페/류희남의 과학공부방* 물의 순환..PAGE:4출처 www.Encyber.com물의 순환은 근본적으로 태양복사에너지에 의해 발생.해양과 육상 대기(구름) 비나 눈육지에 지하수, 호수, 강, 빙하 & 바다이와 같은 순환 과정을 통해 물은 해양, 대륙, 대기에 분배.수권은 태양열을 저장하고 분산시키는 역할.각종 기상현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됨...PAGE:52. 해양(1) 해양의 순환* 해양은 해류로 열을 분산, 기후에 영향을 끼침.* 해양은 크게 표층, 심층으로 나뉨* 표층 표면의 비교적 따뜻하고, 가벼운층* 심층 깊은곳의 차고 무거운층..PAGE:6표층해류 해수면 위에서 부는 바람과 지구자전의 영향을 받음.출처 네이버캐스트/오늘의과학난류와 한류가 추운지방과 열대지방의 기온이더 이상 높거나 낮아지지 않게 함..PAGE:7심층해류 바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해류.수온과 염분의 변화에 따른 밀도차로 생김.출처 네이버캐스트/오늘의과학* 대양의 컨베이어벨트 순환심층수는 대서양의 적도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흐르게 되고, 순환류를 통하여대서양뿐 아니라 인도양과 태평양으로 마치 컨베이어 벨트처럼 연결되어지구의 열을 균형있게 배분해 줌...PAGE:8(2) 해저지형출처 네이버블로그/바다야사랑해해양..PAGE:9* 대륙붕 - 수심 200m 이하의 얕은 바다.석유나 천연 가스 등의 천연 자원이 풍부, 육지의 연장부* 대륙사면 - 대륙붕의 바깥에서 비교적 경사가 급한 해저 지형.수심 1000~2000m의 바다밑까지 연장* 대륙대 - 대륙사면에 이어지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지역.대륙붕과 대륙사면으로부터 운반된 퇴적물이 쌓여서 만들어진 지형* 해구 - 대륙의 주변부에 발달한 수심 6,000m 이상의 좁고 깊은 골짜기* 대양저(심해저평원) - 수심 3000m 이상의 평탄한 해저 지형.전 해양의 약 75%를 차지. 해산, 화산섬, 기요 등이 발달* 해령 - 대양저에 높이 솟은 산맥으로 정상부에 V자형이 열곡이 발달해 있다.* 해산 - 해저면 위로 솟아오른 화산* 기요(평정해산) - 해산의 정상부가 파도나 해류에 의해 침식 작용을 받아평탄해진 후 침강한 해산...PAGE:10해양* 염도 바닷물이 얼마나 짠지를 재는 척도.* 바닷물 1L당 평균 35g의 염분* 단위 ‰(permil=ppt)* 해수의 염분을 결정하는 요소증가원인- 해수면의 증발량- 빙하의 결빙감소원인- 강수량- 담수 유입량- 빙하의 해빙* 적도지방 증발량 ↑/ 염도높음* 극지방 증발량 ↓, 빙하의 해빙으로 담수량 ↑/ 염도 낮음* 염분약층(halocline) 수심에 따라 염도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구간(200~1000M)(3) 염도..PAGE:11이온함량(‰)염소(Cl-)55.07나트륨(Na+)30.62황산(SO42-)7.72마그네슘(Mg2+)3.68칼슘 (Ca2+)1.17칼륨(K+)1.10탄산(CO32-)0.40브롬(Br-)0.19기타0.05* 바닷물 속에 들어 있는 주요 이온* 염도에 따른 물의 종류담수(0.5 ‰이하) 강, 호수반함수(0.5~30 ‰) 강어귀, 해안 가까운곳보통해양환경(30~40 ‰)함수(40 ‰초과) 홍해, 사해..PAGE:12(4)해양의 온도분포* 물이 열과 관련해 가지는 특징- 비열이 크다- 4ºC에서 가장 무겁다* 해수의 수온을 결정하는 결정적 요인 - 태양복사에너지* 해수의 깊이에 따른 온도분포혼합층 -해양의 표층에서 흡수된 태양복사에너지가바람에 의한 혼합작용으로 깊이에 따른 수온이 일정한 층.수온약층-수온이 높은 혼합층과 수온이 낮은 심해층 사이에수온이 급격히 낮아지는 층심해층-수온약층의 아래에 깊이에 따른 수온의 변화가 거의없는 층. 심해층의 수온은 4℃ 이하이고, 연중 수온의변화가 거의 없다.출처-네이버백과사전해양..PAGE:13(5)파도* 파도의 크기 결정요소- 바람이 얼마나 세게, 멀리, 오랫동안 부느냐에 따라 달라짐.* 바람에너지에 의해 생성* 원운동* 파고 파도의 높이(원의 지름)* 파장 파도의 길이(파도의 골짜기 사이의 길이)* 파도의 바닥 원운동이 사라진 파장의 ½ 깊이)* 수심이 얕아지면 원운동 X, 거품 일으키며 부서짐(=surf)해양출처 네이버블로그/지구여행..PAGE:14해양(6)밀물과 썰물* 밀물 간조에서 만조로 수위가 높아지면서 밀려드는 해수의 이동* 썰물 만조에서 간조로 수위가 낮아지면서 빠져나가는 해수의 이동* 조간대 밀물과 썰물이 들고나는 지역* 원인 달과 태양 및 기타 여러 천체의 인력과 지구의 원심력에의해 일어나는 현상으로 달과 지구가 일직선상에 놓이면 끌어당기는 힘이 커져 달 쪽을 향한 바닷물이 부풀어올라 밀물이, 반대로 지구와 달이 직각을 이룰 때 바닷물이 줄어들어 썰물이 되는 것www.exposea.com/yub5.htm..PAGE:15사리- 달이 음력 한달 주기로 지구주위 돌면서 보름, 그믐에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상이때 태양의 인력이 합쳐져 밀물,썰물의 차이가 가장 큼조금- 태양, 지구, 달의 직각배열. 인력이 상쇄되면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거의 없다.http://blog.daum.net/yelin-family/8685259..PAGE:16(7)해수면의 상승과 하강* 해수면의 변동이 일어나는 원인- 바닷물의 양이 늘어남- 바다의 크기가 달라짐100~200년 정도 기간에 일어나는 상승과 하강의 폭은 크지 않아 변화를 알아채기 어려우나 수만, 수억년의 기간에서 본 해수면의 변화는 크다.해양..PAGE:17* 빙하(glacier) :육상에서 수백 수천 년 동안 쌓인 눈이 자체의무게로 압력을 받아 단단한 얼음으로 바뀐 것* 얼음이지만 강처럼 흐르나 그 흐름이 무척 느리기 때문에강이라는 생각을 하기 어려울 뿐으로 빠른 빙하는 1년에 약 4km를 흐르는 반면, 느린 것은 1년에 2m밖에 움직이지 않는다.* 한국은 빙하를 접할 수 없는 지역으로 연구를 위해 남극에는세종기지가 존재한다.*설립년도 : 1988년장소 : 남극대륙 북쪽, 사우스쉐틀랜드제도의 킹조지섬 바턴반도3. 눈과 빙하..PAGE:18..PAGE:19눈과 빙하(1)빙하의 구분* 곡빙하(valley glacier)-깊은 골짜기를 채우고 있는 것고산지대에 분포* 빙상(ice sheer)-넓은 지역을 덮으면서 50,000km²를 넘는 것남극대륙과 그린란드에만 분포* 빙모(ice cap)-빙상의 50,000km² 보다 좁은 것북극해 주변에 분포출처 : 네이버 블로그 (산에나가자)폭스빙하(곡빙하)그린란드(빙상)북극해(빙모)..PAGE:20눈과 빙하(2)빙하의 형성 과정퇴적물이 쌓여 퇴적암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비슷눈이 내려 두껍게 쌓이면 자신의 무게에 의하여 다져지고 그 속에 있던 공기가 빠져나가, 밀도 0.5g/cm³ 정도에 이르면 만년설(firn), 오랜 기간이 지나 만년설이 더욱 다져져 밀도가 0.8g/cm³를 넘게 되면 빙하얼음(glacier ice)이 된다.빙하가 바로 바다와 만나는 곳에서는 빙상의 일부가 떨어져 나와 바다 위에 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빙산(iceberg)이라고 한다.출처http://oceanus.kmaritime.ac.kr/ice/iceberg.htm..PAGE:21빙 산탁상형 빙산출처 네이버블로그/Snow Story..PAGE:22* 빙하의 형성과정..PAGE:23눈과 빙하(2)빙하작용* 빙하작용이란-빙하는 이동하면서 바닥을 깎기도 하고(빙식작용),떨어져 나온 돌 부스러기들을 빙하 속에 싣기도 하며(운반작용), 빙하의 끝자락에서 빙하가 녹으면 싣고왔던 퇴적물들을 쌓기도 한다.(퇴적작용)※이러한 과정을 모두 합하여 빙하작용이라 한다...PAGE:24* 빙식작용(glacial erosion)-빙하에 의해 기반암석이 침식되는 작용을 말한다. 빙하 주변 이나 바닥에서는 동결에 의한 파쇄작용이 있고, 빙하의 이동에 의한 연마작용이 있다. 매우 강력하게 육지의 기복을 깎아 평탄한 지형을 만드나, 하식작용에 비해 한정된 지역에 존재하며 이 곳은 U자곡과 카르의 지형이 만들어진다. (크레바스, 빙하찰흔, 양배암 등)* 빙하운반작용(glacial transportation)- 뜯어 올린 돌 부스러기나 양쪽 기슭에 떨어져 있던 돌이나 흙을 운반하는 것으로, 이 퇴적물에는 모가 난 알갱이들이 많으며, 알갱이의 크기도 굵은 자갈부터 점토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PAGE:25* 빙하퇴적작용(glacial depostion)-운반된 돌 부스러기들이 빙하가 녹는 지점에서 제멋대로 쌓여층기나 전혀 없는 퇴적물로 바뀌는 것으로, 이를 빙력토(till)라하고 빙하의 어느 쪽에 쌓였느냐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빙력토(till) 종류· 측퇴석(lateral moraine)-빙하가 흐른 계곡의 양쪽 기슭에 쌓인 빙력토· 중퇴석(medial moraine)-두 줄기의 빙하가 모여 큰 빙하를 이루면서 빙하의 한가운데 모인 빙력토· 종퇴석(end moraine)-빙하의 끝자락에서 빙하가 녹으면서 쌓은 빙력토· 저퇴석(ground moraine)-빙하가 빠르게 물러나면서 얇고 넓게 쌓은 빙력토..PAGE:26출처 - 네이버블로그/snow Story..PAGE:27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contents_id=3739..PAGE:28* 권곡 :빙하의 침식작용에 의하여 깊고 가파른 벽이 반달 모양으로
Public design 공공 디자인1 PART 2 PART 3 PART 1.1 공공디자인 개념 1.2 공공디자인 범위 2.1 공공디자인 필요성 2.2 공공디자인 역사 3.1 여문 문화의 거리 3.2 그 외 사례들1 PART 1.1 공공 디자인 개념 공공 디자인 = 공공 (Public) + 디자인 (Design) 공공 디자인 = 공공 (Public) + 디자인 (Design) : 공공에 대한 혹은 공공을 위한 디자인 즉 , 디자인 대상 중심적 접근 : 공공에 대한 디자인 : 디자인 주제 중심적 접근 : 공공의 목적에 맞게 소유하거나 설치한 물품 , 공간 등을 모두가 이용하기 쉽게 계획되고 의도된 디자인1 PART 1.2 공공 디자인 범위 공공 공간 디자인 (Public Space Design) - 도시경관 : 일정한 공간단위의 통일적인 외관 - 공공건물 : 관공서와 고공 문화시설 등 - 도로 : 인도와 차도 등 교통 공간 - 개방 공간 : 공원 , 광장 , 녹지 등 - 역사 공간 : 궁묘능원 등 문화유산과 전통거리 - 특별지역 : 문화 , 관광 등 특별 지정 지역 - 도시 색채 계획 - 야간 조명 계획 공공 시설 디자인 (Public Equipment Design) - 가로시설물 : 가로에 설치되는 각종 장치들 - 기타 공공시설물 : 공공시설 및 개방공간에 설치되는 각종 장치들1 PART 1.2 공공 디자인 범위 공공 정보 사인디자인 (Public Information Sign Design) - 국가기구 상질물 : 각종 국가 문장과 정부 기관의 표지 - 국가 행사 상징물 : 국가 의례 , 국제 행사 등의 상징물 - 국가 인증물 : 화폐 , 우표 , 주민등록증 , 자동차 표지판 , 기념품 등 - 국가 정보 시스템 : 정보 홈페이지 등 온라인과 오프라인 정보시스템 - 정부 간행물과 포스터 : 각종 홍보물과 캠페인 포스터 - 지자체 상징물 : 지자체 CI 와 지역 축제 관련 상징물 등 - 교통안내 시스템 : 도로 표지판 , 신호 체계 등 - 관광 정보 시스템 : 각종 관광 정보 시스템과 관광지 안내판 등 - 옥외 광고물 : 간판 , 전광판 등 각종 옥외 설치 광고물 공공 용품 디자인 (Public Supplies Design) - 공공기관 용품 : 각종 공공기관의 내구재 및 소모용품 - 공공서식류 : 각종 행정 서식류 - 국가 조직 통합물 : 군경제복 및 각종 국가조직의 통합 식별품목 - 공공 관리용품 : 재난대비 및 민방위 용품2 PART 2.1 공공디자인의 필요성 1. 사회적 필요성 2. 제도적 필요성 3. 지역적 필요성 공공디자인 활성화되면 민간 , 지자체 , 개인 또는 국민이 향유하는 서비스로 발전 관심과 요구↑ 창조도시의 필요 도시환경 조성 개념의 혼재 자율적 제도 도시 마케팅2 PART 2.2 공공 디자인 역사 재건 단계 (1945 년 ~1960 년 ) 광복 후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고 생산과 수송을 위한 산업도로 등의 기간사업이 대두됨 산업화 단계 (1960 년 ~1980 년 ) 60~70 년대 급속한 산업화 물결 속에 공공시설물이나 공간 디자인을 규정하는 구체적인 법규나 지침이 부족 도시화 속 소외된 도시문화 (1980 년 ~ 현재 ) 대량생산화는 소비문화 조장 , 자동차 문화는 도시를 복잡하게 만들었으며 불평등한 정주체계를 양산 인간다운 삶을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 대두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여서동 여문문화거리 전라남도 여수시 여서동 212 번지 일대 길이 758M 폭 15M 총 사업비 131 억원 1 차 공사 09 년 ~ 10 년 8 월에 마무리 2 차공사 10 년 9 월 3 차공사 11 년 3 월 마무리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조형물 ) 디자인 적인 요소를 통한 심미적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다 .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조형물 ) 조형물에서 장난 치는 아이들의 모습 조형물에 올라가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조형물 ) 큐브 안에 들어가서 노는 아이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벤치 ) 물결 벤치 조형적인 벤치 파고라 형태 이전의 벤치들은 휴게의 의미가 강했지만 .. 요즘은 벤치도 디자인에 중점을 두어 가로의 경관을 꾸미는 하나의 조형적인 장치가 되어 실용성 + 디자인을 통해 머물고 싶은 하나의 요소가 되었음 .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벤치 ) 아르바이트를 하는 도중 벤치에 앉아 흡연하는 남성 벤치에 앉아 데이트를 하는 커플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길 ) 물결 모양의 데크 수로 형태의 길 물결 모양을 형상화한 데크는 디자인 적인 요소와 재미를 더하여 .. 이 거리의 랜드마크적인 요소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이 되고 있다 . 실제 거리의 70~80% 정도는 데크를 이용하고 있으며 , 여문 문화의 거리에 대해서 물어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길이기도 하다 . 여기에서 공공디자인이 우리 주변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다 .3 PART 3.1 여문 문화의 거리 ( 길 이용 영상 )3 PART 3.2 그 외 사례들 1. 원촌마을 간판 개선 사업 2. 동서시장 재래시장 개선 1. 2.3 PART 3.2 그 외 사례들 3. 공원 조형물 3.3 PART 3.2 그 외 사례들 4. 5. 4. 서울 청계천 5. 일본 요쿠하마 색채도시3 PART 3.2 그 외 사례들 6. 6. 런던 시내의 가로 조형물3 PART 3.2 그 외 사례들 7. 8. 7. 공사장 방음벽 및 가림막 8. 외국의 간판 디자인PRESENTATION T hank Y ou{nameOfApplication=Show}
해남 윤탁가옥 중요민속문화재 제 153 호목차 개요 .. 3p 배치 .. 4p 안채 .. 7p 별당채 ................ 11p 사랑채 ................ 15p 대 . 중문간채 ....... 19p 출처 .. 22p해남 윤탁가옥 건축적 특성 [ 개요 ] 3 건 물 명 : 해남 윤탁가옥 ( 海南 尹鐸家屋 ) 분 류 : 중요민속문화재 제 153 호 / 유적건조물 / 주거건축 / 가옥 지 정 일 : 1984 년 01 월 14 일 소 재 지 : 전라남도 해남군 현산면 초호길 43( 초호리 )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윤탁 관 리 자 : 윤영도건축적 특성 [ 배치 ] 해남 윤탁가옥 [ 행랑마당에서 바라본 사랑채 ] 4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배치 ] 해남 윤탁가옥은 다른 가옥들보다 경사가 급한 지형에 위치하여 집 전체를 대문간체 , 사랑채 와 별채 , 안채와 별당채를 한 공간에 두어 3 단으로 구획하였으며 각각 행랑마당 , 사랑마당 , 안마당 , 뒷마당을 조성한 독특한 배치기법을 보인다 . 이 가옥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안채의 영역은 ㄱ자형의 안채와 별당채가 안마당을 에워싸는 형식으로 배치되었고 , 안채의 측면을 이용하여 개방적인 행랑마당과는 성격이 다른 후정성격의 부엌마당을 배치하였다 . ① ② ④ ⑤ ③ ⑥ ① 안채 ② 별당채 ③ 중문간채 ④ 사랑채 ⑤ 별채 ⑥ 대문간채 ⓐ 행랑마당 ⓑ 사랑마당 ⓒ 안마당 ⓓ 뒷마당 ⓔ 부엌마당 ⓐ ⓑ ⓒ ⓓ ⓔ 5뒷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안마당 사랑마당 행랑마당 뒷마당 경사를 활용한 석축단의 높이차 및 사랑채 , 중문간채가 시계를 막고 있어 안채 영역은 외부로부터의 시각적으로 완전히 차단되었으며 , 안마당의 안채와 별당채는 프라이빗한 공간을 이루고 있다 . 사적 공간 시야차단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배치 ] 6건축적 특성 [ 안채 ] 해남 윤탁가옥 [ 안마당을 감싸고 있는 안채 ] 7안채는 ㄱ자형의 평면을 가지며 , 남동향을 하고있다 . 또한 정면으로만 퇴를 둔 전퇴 집이며 배면쪽은 처마 끝선까지 확장하여 폭이 두 칸 이상의 규모를 갖는 전후퇴집의 평면구성을 이룬다 . 정면 3 칸을 안대청으로 삼고 , 1 칸만 건넌방으로 구성하였으며 , 돌출부는 2 칸 안방에 2 칸을 부엌으로 사용하고있다 . 꺾임부는 마루를 깔아 고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 이는 해남 녹우당 ( 사적 제 167 호 ) 의 안채에서 사용한 방식과 동일하다 . 특히 길이 3 칸에 폭 1 칸의 좁고 길고 높은 공간으로 만든 대청은 해남윤씨 녹우당의 건축영향을 받은것으로 여겨진다 . 건넌방 대청 고방 부엌 안방 욕실 부엌방 방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안채 ] 8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안채 ] 정면도 배면도 좌측면도 우측면도 9[ 길이 3 칸 폭 1 칸의 대청을 가지는 해남 윤씨 녹우당 ] [ 안채의 부엌과 연결된 부엌마당 ] [ 2 칸 안방 , 2 칸 부엌의 배치를 가지는 돌출부 ] [ 1 칸 건넌방 , 3 칸 대청 , 1 칸 고방의 배치를 가지는 정면부 ]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안채 ] 10건축적 특성 [ 별당채 ] 해남 윤탁가옥 [ 장초석 주초를 사용하는 별당채 ] 11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별당채 ] 별당채는 안채와 1 칸 정도의 간격을 두고 배치되었다 . 평면구성은 정면 4 칸의 전퇴집으로 큰방 , 대청이 각 2 칸 그리고 건넌방 1 칸으로 구성하였으며 , 좌측 큰방을 배면으로 1 칸 더 돌출하여 ㄱ자형의 평면형태를 가진다 . 또한 변두리기둥 쪽 주초에 부분적으로 장초석을 사용한걸 볼 수 있는데 , 이는 처마깊이로 비바람을 피하기 어려워 부분적으로 하부에 돌기둥을 둔 것으로 보인다 . 건넌방 대청 큰방 장초석 12정면도 배면도 좌 . 우측면도 팔각 장초석 단면도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별당채 ] 13[ 길이 4 칸의 전퇴집의 배치를 가지는 정면부 ] [ 변두리기둥 장초석 주초 ] [ 정면 기단에 설치된 돌절구와 디딜방아 ] [ 길이 2 칸의 전퇴집의 배치를 가지는 큰방부분 ]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별당채 ] 14건축적 특성 [ 사랑채 ] 해남 윤탁가옥 [ 행랑마당과 안마당의 경계 사랑채 ] 15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사랑채 ] 사랑채는 정면 7 칸의 ‘ ㅡ ’ 자집인데 , 이 형태는 건물이 길고 큰 경우로 이런 평면형식을 취하는 경우는 드물다 . 평면 구성은 길이 방향으로 2 칸씩 3 등분 하여 , 각 각 안방 , 마루 , 건넌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 향 좌측의 약방을 제외한 나머지칸의 전퇴는 모두 툇마루를 두었다 . 또한 배면 칸은 마루방 및 골방으로 사용되는 겹집의 공간배열을 가진다 . 대문간채를 지나 행랑마당에 들어서면 보이는 건물로 안채와의 관계를 경계짓는 역할을 하며 , 지붕 역시 일반적인 팔작이 아닌 우진각 지붕 형태를 취하고 있다 . [ 참고자료 – 지붕의 형태 ] 사랑안방 약방 골방 사랑대청 사랑건넌방 골방 16정면도 배면도 좌 . 우측면도 단면도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사랑채 ] 17[ 길이 7 칸의 ‘ ㅡ ’ 형태를 가지는 정면부 ] [ 경사 및 담 , 중문간채를 통해 구분되어지는 안채와의 관계 ] [ 사랑채 향 좌측에 위치하는 별채 ( 목욕탕용도 ) ] [ 우진각 지붕의 형태를 하는 사랑채 ]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사랑채 ] 18건축적 특성 [ 대 . 중문간채 ] 해남 윤탁가옥 [ 마당과 마당을 이어주는 열린공간 대 . 중문간채 ] 19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대 . 중문간채 ] 대문간채는 긴 변의 중앙에 솟을대문을 두고 , 좌측으로 3 칸의 부엌과 2 칸의 곳간을 배치하였다 . 그리고 곳간 좌측에 내외 화장실을 설치하였는데 , 한 단 낮게 처리된 지붕의 모습으로 보아 나중에 증축한 것으로 여겨진다 . 중문간채는 가로 2 칸 세로 1 칸의 내부가 터진 대문 형식을 가지며 , 사랑채 배면 통로부분에서 안마당으로 이어진다 . 뒤로 돌출된 안채의 부엌부분과 인접하므로 공간과 시간의 여지를 확보하려는 계획의도로 보여진다 . [ 대문간채 평면도 ] [ 중문간채 평면도 및 정면도 ] 행랑부엌 행랑방 곳간 곳간 문간 화장실 문간 20[ 사랑마당에서 바라본 대문간채 ] [ 후세에 증축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화장실 ] [ 사랑채 배면통로와 연결된 중문간채 초입 ] [ 터진 대문의 형태를 취하는 중문간채 ] 해남 윤탁가옥 – 건축적 특성 [ 대 . 중문간채 ] 21출처 도서 한국의 전통가옥 44 /2014 인터넷 Cha.go.kr / 문화재청 Heritage.go.kr / 국가문화유산포털 22감사합니다 .{nameOfApplication=Show}
중세 불교건축목차1. 불교사찰의 번성과 가람구성의 복합성 (10~12C) 2. 풍수지리설1) 불교사찰의 번성 1) 풍수지리설의 시작2) 가람구성의 복합성 2) 풍수지리설의 유행3) 사례 3) 풍수지리설 개념- 흥왕사의 가람구성 4) 비보사탑설과 도참사상- 불일사의 가람구성- 혜음원의 가람구성- 법천사의 가람구성- 금산사의 가람구성◆ 불교사찰의 번성고려시대는 불교가 왕실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계층을 초월해서 열성적으로 신봉되던 때였다. 특히 왕실과 귀족 지배계층의 불교에 대한 심취는 다른 어느 시대에 볼 수 없는 정도였다. 중앙 집권적인 왕권이 안정되고 있던 11세기는 그 절정이었다. 역대 왕들은 왕실의 기복을 위한 원찰을 계속 건립했다. 개경 시내와 교외에는 이러한 왕실 원찰들로 가득하였다.개경 주변의 왕실 원찰은 이미 10세기 중반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태조의 원당인 대봉은사를 비롯해서 불일사, 귀법사 등이 도성 외곽에 지어졌다. 11세기에 들어오면서 기존 사찰들의 대대적인 증축이 이어지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원찰들이 속속 건립되었다. 현화사, 불일사, 안화사, 국청사 등이 대표적인 사찰들이다.많은 사찰들이 왕실이나 개인의 기복을 비는 원찰로 화함에 따라 이러한 기복을 비는 불교행사는 수십가지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 종류는 팔관회나 연등회 외에도 무차대회, 인왕도량, 나한재 등 80여 종에 달하였다. 이런 대규모 불교 법회나 행사는 간혹 궁궐에서 치르기도 하였지만 대개는 사찰 내에서 수많은 신도들이 모인 가운데 이루어졌다. 따라서 사찰에는 이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넓은 내.외부 공간이 필요하였다.◆ 가람구성의 복합성이런점에서 보면 고려의 불교사원은 종교적인 공간인 동시에 정치적인 기능을 갖고 있었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연등회나 팔관회는 단순한 종교의례에 그치지 않고 국왕과 백성을 하나로 잇는 국가의례의 기능을 지녔다. 지상의 맨 꼭대기 수미산 봉우리를 다스리는 신을 기리는 제석도량 역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행사이다. 불교사원은 이러한 정치적 의례의 공간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또 절은 주민들의 일상과 밀접하게 존재했다고 생각된다. 지방에서 큰 사찰들은 지역의 문화적, 경제적 구심체였다. 지방의 도시들이 단지 행정적인 역할에 머물고 있을 때 사찰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지배했고 이들의 의식세계를 이끌어갔고 11, 12세기경 지방 도시에서 사찰은 관청을 대신해서 주민들의 삶을 관장하고 문화를 창출하는 중심지 구실을 하였다.이 시기 사찰은 단순히 불상과 탑을 한 가운데 모시고 회랑으로 둘러싸던 고대 사찰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사찰은 본 절 외에 독립된 생활공간을 가진 여러 개의 원으로 구성된다. 각 공간에는 중심 되는 불전이 있고 각기 독립된 승려들의 생활공간이 있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건물도 있었고,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짐작된다. 또 자급자족적 경제체제를 위해 작업용 건물도 있었을 것이다. 결국 사찰은 고도의 정신적 수행 도량인 동시에 하나의 거대한 생활공간이었던 셈이다. 지방 각지의 사찰들은 각 지역의 문화 및 경제 활동의 구심점이 되었다. 사찰은 하나의 작은 도시였다고 말할 수 있다.◆ 흥왕사의 가람구성흥왕사의 경우 가람의 중심부는 세 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중 중심구역은 다른 곳보다 한 단 높게 대지가 조성되고 이곳에 전형적인 쌍탑식 가람배치 형식의 건물지가 있다. 남쪽에 중문, 그 위로 중심축 상에 석등지가 있고 좌우에는 팔각형 목탑, 석등 뒤에 금당이 있고 그 뒤로 북쪽에는 거대한 규모의 강당이 있으며 중문과 강당을 회랑이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흥왕사의 가람배치는 회랑으로 둘러싸인 세 개의 구역을 기본으로 하면서 주변에 지형조건에 따른 건물 군을 두어 여러 개의 예불공간을 갖추고 있고 단위 구역에서는 비교적 대칭성을 살린 질서 있는 가람구성을 하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불일사의 가람구성불일사는 크게 중심 가람과 서가람, 동가람의 세 부분으로 구획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심가람은 중문과 석탑, 금당, 그리고 강당이 축선 상에 놓이고 주변에 회랑이 조성되었다. 서가람지는 중앙가람지보다 한 단 낮은 대지 상에 조성되었는데 문지와 사면 회랑, 그리고 중앙에 정면3칸, 측면3칸의 정방형 건물지가 있고 그 북쪽에 장방형 건물지가 회랑과 연결되어 있다. 이 서가람지 남쪽에는 장방형 담장으로 둘러싸인 안에 사리단이 있다. 동가람지는 담장으로 공간이 구획된 모습만이 확인되고 있다. 결국 불일사의 중심부는 세 개의 독립된 예배공간과 사리단이 있는 별도의 공간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안화사의 가람구성안화사의 배치를 보면 정문을 지나고도 다시 두 개의 문을 더 지나야 본전이 있는 곳에 다다른다. 세 번째 문 좌우에 각각 당이 있고 본전인 무량수전 좌우에도 각이 있다. 그 뒤로 다시 세 개의 문이 있고 각 문 안에 능인전, 인수전, 선법당이 있다. 건물들 사이에도 관음상과 약사상을 봉안한 건물과 조사상, 지장살을 봉안한 건물이 별도로 있다. 이밖에 승려들이 거처하는 건물들이 있는데 그 왼편으로는 재궁 일곽이 있다. 왕이 이곳에 들러 재를 올리는데 이곳도 별도의 문이 있고 그 안에 인수전과 재운각이 있다.혜음원지 발굴 배치도흥왕사와 같은 대규모 사찰이나 그 보다 작은 사찰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예불 공간이 몇 개의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점이다. 또 안화사에서 보듯이 사찰이 산 속에 지어질 경우 여러 개의 문을 거쳐서 비로소 불전에 도달하도록 하여 전체 가람이 매우 깊이 있는 구성을 하였다.◆ 혜음원의 가람구성혜음원은 개경과 남경 사이를 왕래하는 행인을 보호하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서 1122년(예종17년)에 지어진 절이며, 절에는 국왕의 행차에 대비하여 별원도 축조되었다고 하는 곳이다. 발굴조사를 통해서 절의 중심부분 건물들이 드러났는데 여섯단 이상의 축대가 완만한 경사지에 조성된 모습이다. 혜음원지 발굴조사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점은 뒷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을 적절히 가두었다가 건물 주변을 흐르도록 하면서 아래로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곳곳에 물을 가두는 저수시설이 높고 낮은 축대 여러 곳에서 마련되었다. 물은 한 방향으로 흘러내려가는 것이 아니고 건물 앞을 가로지르거나 축대 사이로 빠져나가도록 하면서 절 전체 어디서나 물의흐름을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한 흔적을 보여준다.법천사지 배치도◆ 법천사의 가람구성남한강 상류 원주에 있는 법천사는 지금은 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곳이다. 그러나 그 절은 대단히 큰 규모였고 당연히 수많은 승려들이 있었으며 절 안에는 장려한 불전들과 독립된 생활공간들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법천사는 마을 전체를 덮고도 남는 거대한 규모였다. 절터 뒤편 경사지에 지광국사의 탑비가 서있다. 이곳도 혜음원처럼 큰 석재를 정교하게 다듬어 쌓은 많은 축대와 경사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건물 사이로 적절히 빠져나가도록 한 시설들이 발견되었다. 두 절터에서 공통적으로 물과 건물에 대한 각별한 처리가 돋보인다.◆ 금산사의 가람구성금산사 전경금산사 가람은 크게 세 구역으로 구성되는데 본 절이 있는 부분과 광교원, 봉천원이다. 본 절 부분의 중심 건물은 3층 건물인 장육전과 대광명전 외에 60동이 넘는 건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11세기의 금산사는 각각에 일정한 예불 공간들이 독립해서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후대에는 잘 볼 수 없는 3층 건물들이 각 구역마다 세워져 있었던 점도 흥미롭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단층으로 조성된 사찰에서 3층 종루는 멀리서도 바라다 볼 수 있는 상징적인 형태였다고 짐작된다.◆ 풍수지리설의 시작풍수의 개념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조금씩 퍼져갔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그것이 본격적으로 하나의 이론 체계를 갖추고 사람들의 삶과 건축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10세기경에 와서이다. 당시 풍수설은 선승들 사이에 폭넓게 수용되었다. 전남 영암, 곡성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승려 도선은 이시기 풍수지리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대흥사 배치도◆ 풍수지리설의 유행10세기를 전후하여 건축이 지방으로 널리 확산되고 특히 불교사찰이 도회지를 벗어나 지방산간에 조성되면서 한반도 산천이 갖는 지리적인 이점을 집을 짓고 생활하는데 살리고자 하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것은 점차 이론화되고 체계화되어 갔으며 결국에는 풍수지리설이라는 사상체계로 자리 잡게 되었다.풍수설은 음양과 오행이 서로 작용하여 땅에 좋은 기(氣)를 탄생시킨다고 보고, 좋은 기가 많이 모이는 곳을 명당으로 파악하여 집이나 마을, 무덤을 조성할 것을 주장한다. 그 출발은 기원전 200년경 중국 동진에서라고 하며 세월이 흐르면서 산의 형세나 토질, 물의 흐름, 그리고 방위를 요체로 해서 여러 가지 이론이 만들어졌다. 풍수설에서는 산과 물의 관계를 중시한다. 산을 정적인 것으로, 물을 동적인 것으로 보며 산이 잘 포위하고 있어 기운을 흩어버리지 않고 물이 기운을 적절히 이동시키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공포형식(주심포 . 익공 형식)목차◆ 주심포 형식 (고려시대 13~14세기)1. 주심포형식 배경2. 주심포형식이란..3. 주심포형식 분류3-1 제 1형식(봉정사 극락전)3-2 제 2형식(수덕사 대웅전)3-3 제 3형식(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4. 주심포형식 특징◆ 익공 형식 (조선시대 16~17세기)1. 익공형식 배경2. 익공형식의 초기 형태 (강릉 해운정 , 오죽헌)3. 17세기 익공형식 형태 (종묘, 경회루)4. 익공형식 특징◆ 출처◆ 주심포형식1. 주심포형식 배경고려시대는 매우 활발하게 외국과 교류를 가진 시기였다. 고려전기에는 주로 북송과 요나라와 활발한 문물 교류와 불교승려의 왕래가 있었다. 이 시기에 고려의 건축이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자극을 받거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주심포 형식은 고려 초기에 신라와 송의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크게 발전되었으며, 주로 조선 초기 이전에 많이 사용되었다. 지붕의 형태는 맞배지붕이 많고, 천장은 특별히 만들지 않아 서까래가 노출되어 보이는 연등천장이 대부분이다. 또한 중국 절강이나 복건 지방과 한반도 서해안 지역은 무시할 수 없는 뚜렷한 연관성을 유지했다. 주심포식 건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중 하나는 첨차 하단부에 새겨진 쌍S자 또는 연화두식이라고 부르는 장식인데, 이런 장식은 중국의 절강, 복건 등지에서 광범하게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다만 이러한 영향은 일시적이고 집중적으로 한 건물에 나타나 서서히 오랜 시간을 두고 부분적으로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현존 고려의 건물을 보면 밀접한 중국과의 교류에도 불구하고 매우 고려 토착적인 구조를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려 주심포식 건물들은 기본적으로 재래식의 구조방식을 견지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선택적으로 외래의 새로운 요소들을 도입해서 고려했으며, 독자적인 건축형식으로 전개해 나간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며 수덕사 대웅전은 그러한 특색이 가장 잘 드러난 건물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출목 익공계 주심포형식(出目翼工界柱心包形式)한다. 주심포형식은 대부분 1출목(出目)인 3포집이지만 익공형식은 출목이 있는 포작계의 출목익공형식(出目翼工形式)과 출목이 없는 비포작계의 무출목익공형식(無出目翼工形式)이있다.3. 주심포형식 분류현존 건물을 보면 봉정사 극락전을 비롯하여 부석사 무량수전이나 수덕사 대웅전, 강릉 객사문 외에 3, 4동이 주심포형식에 속하게 된다. 이들 건물 가운데 봉정사 극락전은 비록 같은 주심포 형식이라고는 하지만 구조방식이 나머지 건물과 크게 다르다. 이 건물은 신라 말이나 고려 초기 건물의 특징을 계승한 것으로 보며 학자들은 이 건물을 주심포 제1형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수덕사 대웅전은 주심포 제2형식으로 분류되는 건물이다. 이건물의 세부는 봉정사 극락전과 차이가 많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두 건물의 중간 정도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시대적인 차이로 본다면 봉정사 극락전이 가장 고식에 속하며 13세기 초기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부석사 무량수전이 13세기 중반경, 수덕사 대웅전은 14세기 초인 1308년에 지어진 것이다. 나머지 주심포식에 속하는 건물로는 강릉 객사문,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등이 있다.3-1. 제 1형식 ? 봉정사 극락전봉정사 극락전 (신라시대-안동)고려시대 나머지 건물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은 우선 이 건물 주두에 굽받침이 없다는 점이다. 첨차는 소첨차와 대첨차가 十자형으로 짜여 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첨차의 양끝이 수직으로 잘려 있는 점도 지적된다. 기둥과 기둥 사이 포벽 중간에 놓이는 화반은 불꽃 모양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삼각형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 화반의 형상은 실내 대공의 하부나 중도리 하부의 지지부 등 여러 곳에 나타난다. 여기 보이는 굽받침 없는 주두, 수직으로 잘린 첨차 끝은 통일시나 건물과 공통되며 독특한 형상의 화반 등은 당나라말이나 10세기경 일본의 건축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세부 장식이다. 종도리 좌우에 소슬합장을 두는 것은 후대 건물에도 보이지만 경사재가 중도리에서 주심도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첨차가 十자 모양으로 결구되면서 처마를 받치는 봉정사 극락전과 달리, 여기서는 살미 또는 살미첨차라고 부르는 여러 개의 부재가 건물 바깥 방향으로 돌출하면서 처마를 지지하도록 하고 있다. 즉 제일 하단은 기둥머리에 연결된 짧은 부재가 돌출하는데 이것을 편의상 헛첨차라고 부른다. 그 위에 하나의 살미가 놓이고 그 위에는 퇴보에서 뻗어 나온 부재가 세번째 살미 역할을 한다. 이 두개의 살미 끝은 독특한 곡선 형상으로 꾸며져 있다. 살미의 내부는 보아지라고 부르는 뭉뚱그린 풀잎 모양의 복잡한 곡선 장식이 가미되어 있다. 지붕틀의 결구는 고주 둘을 앞뒤에 세우고 대량과 종량을 올리고 고주 바깥쪽은 퇴량을 걸어 평주에 연결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고주와 대량, 대량과 종량 사이를 연걸하는 곳에는 복잡한 장식이 가미된 받침재들이 놓여져서 내부를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점도 이 건물의 특징인데, 그러한 장식적인 표현이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우미량이라고 부르는 부분이다. 우미량이란 중도리에서 주심도리 사이 서로 높이 차이가 있는 부분을 연결하는 부분을 가리키는데, 봉정사 극락전처럼 단순한 경사재가 아니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커다란 곡선을 그린다. 그 형상을 소의 꼬리로 이름 붙여 우미량이라고 하였다.3-3. 제 3형식 - 부석사 조사당,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주심포식에 속하는 나머지 건물들로 부석사 조사당이나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성불사 응진전 등이 있다. 부석사 조사당은 첨차의 하단부가 중국 송대 건축기술서인 영조법식에 묘사된 것과 유사하게 3단의 절단면을 나타냈다. 또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은 헛첨차가 2단으로 된 점이 특징이다. 이 건물들은 주두에 굽받침이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지만 나머지 부분들은 대체로 수덕사 대웅전과 유사하다. 학자에 따라서 이 건물들을 주심포 제3형식으로 분류하기도 한다.4. 주심포형식 특징이상의 고려시대 주심포식 건물들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봉정사 극락전처럼 첨차가 十자 형태로 중첩되는 오래된 방식이 나 실내를 초라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수덕사 대웅전 등의 건물 세부에 많은 조각 장식이 가미되는 것은 이런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도에서 나타난 것이 아닌 가 추정된다.◆ 익공형식1. 익공 형식 배경주심포 형식은 서서히 그 존립 기반을 상실해 가면서 쇠퇴되었고 절충적인 방식으로 명맥을 이어갔다. 주심포를 대신해서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구조 방식으로 익공형식이 나타났다. 익공형식은 비록 간략하고 구조적으로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중국 일본에도 없는 독창적인 기법이었다. 주심포형식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응축해 온 기술적 세부들은 다포형식에 녹아 들어가서 재현되거나 간혹 다포식에 주심포식을 절충한 방식으로 재현되는데 머물렀다. 이러한 현상에 직면해서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새로운 형식이 다음 시대의 건축으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 익공형식의 창출이 바로 그것이다. 15세기 말 이후 건물 중 일부 별당이나 사찰의 소규모 전각에는 종래 보이던 다포나 주심포식과는 구분되는 매우 간략화된 기둥머리와 보의 결구 방식이 보인다. 17세기 이후 이 방식은 널리 확산되었고 나중에 그 명칭은 익공이라고 통칭되는 하나의 형식으로 정착한다.2. 익공형식의 초기 형태 (강릉 해운정 , 오죽헌)실제 익공계를 사용하였던 가장 오래된 유구는 강릉 오죽헌(烏竹軒, 1536)과 해운정(海雲亭, 1530) 등 조선 초기의 것으로서, 오죽헌은 2익공 형식이고 해운정은 1익공 형식이다. 해운정 건물의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직교해서 바깥쪽에 쇠서가 하나 돌출하여 있고 안쪽으로는 보아지가 보를 받치면서 기둥머리 주두를 일체로 엮어준 모습을 하고 있다. 이처럼 쇠서가 하나 돌출한 것을 보통 초익공이라고 부르며 익공의 가장 간단한 형태가 된다. 해운정은 네모기둥 위에 초익공을 짜 주두를 놓고 그 위에 보머리를 얹었다. 여기서도 익공 내부는 당초문의 양봉(樑奉)을 만들고, 익공쇠서는 상하면에 굴곡 있는 조각을 두었다. 특히, 귀포에서는 도리와 장여 뺄목 밑에 소로를 받치고 있어 익공계의 구조에서 흔하지공 위에는 재주두를 놓고 그 위에서 보와 장여 등을 맞추었는데, 보머리는 주심에서 원래의 폭대로 빠져 그 끝이 직각으로 절단되었다. 익공쇠서에는 화두자(華頭子)가 잘 나타나고, 1익공에는 상 하면에 굴곡이 있는 조각을 두어 주심포계의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익공의 내부는 보 밑에서 보를 받는 보아지를 형성하고, 첨차 일부는 교두형(翹頭形)으로 하고 일부는 당초나 초화지(草花枝) 문양을 나타내며, 주간(柱間)에는 화반을 놓았다. 해운정이나 오죽헌에서 보이는 익공식의 결구 방식과 유사한 형태는 이미 15세기 말에 지어진 해인사 장경판전이나 개목사 원통전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된다. 그러나 이 건물에서는 내부의 가구 방식에서 주심포형식의 특징이 그대로 남아있고 쇠서의 새김 형태도 주심포식을 따르고 있어서 완전한 익공형식으로 정착하기 전의 과도기적 형태로 분류된다. 또한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청평사 회전문 역시 기둥머리에서는 초익공의 결구와 유사한 모습이지만 내부 지붕 가구에서는 주심포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15세기말이나 16세기에는 주심포형식을 간략히 하면서 기둥머리 부분의 구조를 강화한 익공형식이 일부 건물에서 채택되고 또 기존의 주심포식 건물에서도 내부는 주심포로 하면서 기둥머리는 익공 형식으로 결구하는 절충적인 시도들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3. 17세기 익공형식 형태 (종묘, 경회루)17세기로 넘어가면서 익공은 완전히 하나의 독립된 구조형식으로 정착되었다. 기둥머리에서 주두와 밀착된 쇠서를 내밀어 기둥머리 부분을 구조적으로 보강하면서 필요에 따라서는 출목을 두어 외목도리를 받치는 공포 본래의 기능까지 수용하는 형태로서울 종묘 공포 발전한 것이다. 이렇게 주심포계의 형식을 취하면서 익공으로 발전되는 양식이 많이 있는데, 예를 들어 안동 개목사원통전(開目寺圓通殿, 보물 제242호)의 정면포작을 비롯하여 전라남도 송광사하사당(松廣寺下舍堂, 보물 제263호), 강원도 청평사회전문(淸平寺回轉門, 보물 제164호) 등은 과도기적인 형식으로 주심포계로 분류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