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통론]-사람을 공부하는 음악학-** 대학교 **대학****학과20****** 김**사람을 공부하는 음악학을 읽으며…….너무나도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던 11장의 프린트물에 담겨 있던 내용. 생각했던 대학 생활과 달랐던 1년. 음악의 음자도 모르고 그저 대중음악 한 소절도 제대로 못 따라 부르고 악보의 계이름도 모르던 내가 엉뚱하게 ** 대학 ***학과에 입학한 것부터 공연기획가를 생각한 나에게 시창 청음과 음악 통론, 음악개론, 창작 세미나(음악학), 음악 문법 등 일주일에 단 한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은 음악학과 작곡 중심의 커리큘럼이라 항상 불만 속에 학교생활에 임했고, “ 음악 ” 에 대해 어떠한 다른 생각도 없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음악학을 머리 아프고 음악의 분석 정도로 치부해버리곤 수업은 학점이 신경 쓰여 출석 정도나 하던 나에게 많은 생각을 안겨준 글이다.하지만, 공부가 부족한 탓에 무지한 나에게 필자의 전문적이고 세세한 생각까지 전부 이해하기란 너무 어렵고, 답답한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중요한 생각은 읽을 수 있었다. 음악학이란 것은 생각했던 것만큼 고리타분한 것이 아니라 수학적이지도 계산적이지도 아니라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단지, “내 전공이 아니니까”로 치부해버리고, 출석 체크에나 신경 쓰던 음악 관련 과목들……. 큰 실수란 것을 느끼며, 아직 더 생각하고 더 공부해야겠구나! 라고 느꼈던 대목이다.그동안 음악에 대해 너무 무지함을 알면서도 전공과 상관없는 핑계로 묵인했던 나에게 너무 소중한 대목이었다.음악을 그 음악의 틀 안에서만 분석 연구하는 것이 아닌 여러 가지의 틀 안에서 인간과 사회와 세계 이렇게 큰 틀까지 확장 시켜 음악이 담고 있는 관계성을 파악하고 공부하는 일.이 음악학 대목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 음악이야…….내가 듣고 좋으면 끝이지.”로, 나의 무지함과 생각 없음에 한탄했다.음악학의 연구 범위는 음악 그 자체 또는 다른 것뿐만 아니라 글에서 담고 있었던 공연을 하는 것과 동시에 일어나는 관객과 배우, 그리고 staff 둘에게 통틀어 음악 사회학적 음악 연구를 설명 해주고 있으며, 여기서 음악학의 연구가 얼마나 광범위하게 탐색할 수 있으며 깨달을 수 있는 학문인가를 설명해주고 있다.이처럼 음악 관련한 사람들에게 음악학적 철학이…….고민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음악가, 작곡가, 연주자, 기획자, 음악학자가 하는 일, 해야 할 일은 다르지만, 계속해서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학문이라고 생각한다.사람을 공부하는 음악학: 음악학(musicology)의 공연연구(performance studies)란 11페이지의 글을 읽으며 음악학을 “ 음악의 정체”를 탐구, 연구하는 학문이라 서술하고 있다.그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음악학이란 음악과 관련하여 어떠한 역사를 밟으며, 기보법의 변화와 특정 단위의 선율들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그리고 몇 세기에는 어떤 음악이 몇 세기에는 어떤 음악이 활발했으며 발전되었는지, 이 음악의 선법은 어떤 형식인지 하는 그저 뻔한 음악학을 저자 역시 연구해 왔다.그래서 글의 저자 주성혜 씨는 음악학과 답답함을 “ 소통”을 할 수 없음에 밝혔다.주성혜 씨는 음악 자체의 연구보다는 음악과의 연관성에 대한 주체들, 음악학이란 틀 안에 박혀 있던 궁금증이 아닌 그 외의 궁금증에 대하여 물음표를 던졌다. 하나하나의 모든 음악적인 가치관과 환경과 연관성 들의 경험을 외면하고 음악학의 절대적 틀 안에서 뻔한 궁금증을 주입한다는 것에 대한 음악학과의 단절감과 소통을 못 함에 답답함을 느끼며, 그러던 중에 외국에서도 나의 궁금함을 이미 예전부터 느꼈던 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외국의 학자들과 ‘ 음악학 ’의 답답함과 대화하기를 거듭하며, 음악학에 대해 답답하고 딱딱한 음악 자체 분석의 노가다로 생각한 나에게는 생각의 전환점을 주었다.글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맥락이라고 느꼈던 분야는 ‘ 공연 ’ 이다. 내 전공이 공연기획 계통이라서 그런지 제일 눈에 띄며, 집중하게 되었다. 음악과의 수없이 많은 관계와 그 많은 관계 개념 중에서 ‘ 공연’이라는 단어의 개념에 초점을 집중하고 음악을 재생, 재현하는 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복잡성과 물리적인 형태와 음악가와 관객 사이에서 거침없이 휘도는 그 무엇인가를 연구했던 학자들의 이론 설명 부분. 런던과 토너의 이론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대목의 흥미로운 부분은 사회와 공연의 관계 그리고 물리적인 형태로 별진 되어 가는 과정을 그래프 화한 것이다.다시 정리해 보면, 공연이란 것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사건을 재조명하는 또 다른 ‘ 사회’라는 말과 같은데 이 말을 내 나름대로 재해석해 보자면, 사회란 곳은 역시나 연극과 같은 공연이 있는 것이고, 사회와 미적인 연극 사이에서 보이는 세계와 숨겨진 세계 그리고 실제 존재하는 무대와 실질적인 작업 세계를 통하여 끊임없는 상호 작용을 이루고 있다.위의 글의 한 맥락을 읽고, 토너의 이론은 사회를 통해 음악을 읽으며, 음악을 통해 사회를 읽는 흐름이 탄생하며, 새로운 음악학의 길을 터주었다. 주성혜 씨는 토너의 이론 연구를 그동안의 막노동자식 음악학적 연구가 아닌 새로운 소통의 음악학적 연구에 대한 범위 대상을 늘려준 신선한 이론 배경이 되었다고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