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검열”과 “언론개혁” 사이-기본권과 ‘언론개혁’의 충돌을 중심으로-Ⅰ. 들어가며: 언론개혁의 딜레마(dilemma)Ⅱ. 표현의 자유 보장과 언론 관련 법률1. 자유권적 기본권으로서의 ‘표현의 자유’2. ‘표현의 자유’의 구체적 보호범위Ⅲ. 언론개혁과 표현의 자유의 충돌1. 언론개혁의 난제 ① : 어디까지가 가짜뉴스인가?2. 언론개혁의 난제 ② : 언론을 어떻게 개혁할까?3. 언론개혁의 난제 ③ : 언론개혁은 누가 진행하는가?Ⅳ. 결론: 기본권과 충돌되지 않는 언론개혁Ⅴ. 참고문헌Ⅰ. 들어가며: 언론개혁의 딜레마(dilemma)영화 거짓말의 발명(The Invention of Lying, 2009)에 등장하는 세상은 모두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세상(The world in which people never evolved the ability to tell a lie)이다. 그 중 주인공(마크 벨리슨)만이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세상은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상황 속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는 한다. 정보가 쉽게 전달되는 세상이지만 어떤 정보가 진실(Truth)된 정보인지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정보에 대해 쉽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그러나 일종의 유토피아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다보면 몇 가지 의문이 생기게 된다. ‘거짓 없이 진실된 세상’이라는 것은 과연 가능한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누가 ‘거짓 없이 진실된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그 사람이 만드는 ‘거짓 없이 진실된 세상’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최근 언론개혁의 이슈가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검찰개혁, 사법개혁의 키워드와 함께 가장 뜨거운 감자(hot potato)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 더불어민주당계 의원들은 지속적으로 언론개혁 입법안들을 제출하면서 언론에 대한 규제강화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는 헌법에서 보장한 방어권적 기본권, 자유권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를 억자는 국민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즉, ‘표현의 자유’는 그 자체도 기본권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정부나 국가로부터의 방어권적 성격과 자유권적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핵심적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반대로 이야기하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특성이 있다.2. ‘표현의 자유’의 구체적 보호범위언론개혁을 위한 법리적 해석의 핵심은 어디까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느냐에 대한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까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또 어느 정도까지는 보장하지 말아야 할지를 정해야 언론개혁이 이루어지는 한도를 정할 수 있다.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표현의 자유에도 부분적 제한이 가해질 수 있겠지만 표현의 자유가 국가로부터의 방어권적 성격을 지녔음을 생각해본다면 이와 같은 형식의 제한이 표현의 자유의 본질적이고 절대적인 기본권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따라서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먼저 해석하여 언론개혁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이전에 선행되어야 할 핵심 과제라 하겠다. 결국 이 범위를 넘어서는 형식의 언론개혁은 언론검열로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한국에서는 헌법 제21조를 통해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음은 앞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본고에서 주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은 언론개혁이기에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언급하진 않고자 한다. 그렇다면 헌법에서 구체화하고 있는 언론·출판의 자유는 어떤 것들이 존재할까. 먼저 제21조의 규정들만 놓고 본다면 ②항의 허가와 검열에 대한 불인정, ③항의 법률로의 유보, ④항의 언론·출판의 자유의 허용범위와 피해배상을 나열하고 있다. 이처럼 명문으로 규정된 범위 이외에도 법리에 대한 해석에 따라 추가적으로 유추 가능한 ‘표현의 자유’의 범위도 존재한다. ‘오락이나 연예보도나 스포츠보도 등도 공익 추구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 보호범위반한 것이라면 법적인 제재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마지막 세 번째로는 유머로서 소비되는 가짜뉴스나 풍자 뉴스에 대한 경우다. 가짜뉴스의 본래 목적이 ‘거짓 정보를 생성하여 사회의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라면 이 두 경우는 그 목적에 준할 수 있으면서도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속하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풍자의 경우 대상을 희화화하거나 특정 사실을 과대 포장하거나 비교하여 사회상을 비판한다. 이에 사실에 대한 왜곡 역시 생겨날 수 있으며 그 경우에 한하여 이를 가짜뉴스로 지칭할 수 있을지도 문제가 된다. 풍자가 예술 공연이나 미술품, 영화, 웹툰 등 행위나 작품을 통해 시도된 경우에는 헌법 제22조에서 규정하는 ‘예술의 자유’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결국 일반 신문사나 미디어 언론사에 벌어지는 시사만평, 성대모사 등의 풍자표현을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는 지도 사회적으로 합의를 도출해야한다. 만약 풍자나 처음부터 유머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짜뉴스를 규제의 대상에서 제외시켜야 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가짜뉴스가 유포되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뒤 ‘사회에 대한 풍자’였다는 형식으로 책임을 무마할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흔히 사용하는 가짜뉴스의 정의는 “뉴스 형식으로 전달되는 허위 정보”를 뜻하는 말로 그의 어원을 둘러싸고 다수의 논쟁이 있으나 일각의 견해에서는 “거짓말쟁이 언론(뤼겐프레세·Lugenpresse)”가 그 시초라는 시각이 있다. 이는 1920년대 당시 독일의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나치당)에서 처음 개념화한 것으로 정권에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전례가 있던 용어다. 이를 토대로 보면 가짜뉴스는 그것을 정의하는 사람으로부터 선악을 떠나 언론을 제재하고 진실과 거짓됨을 정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표현으로 바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가짜뉴스로부터의 피해로부터 법익을 보호하는 것 역시 중요한 관건이라 하겠으나 가짜뉴스를 규제하는 주체가 국가가 된다면 정권의 필요에 따라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가 상대화될 우려가 있다.앞서 살펴본 더불어민주당계 의원들의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최강욱의원 대표발의, 의안번호 7949)’ 역시 피해자의 권리 침해 여부를 ‘언론위원회(현 언론중재위원회)’에서 결정하고 언론사에 시정명령을 내리는 것 역시 표현의 자유에 대한 인정 기준을 사법기관이 아닌 행정기관(본 개정안에는 언론중재위원회를 문체부 산하 기관으로 하여 침해사항 조사·구제 등의 업무를 추가함)이 결정하게 하여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또한 이는 표현의 자유를 단계적으로 보호한 헌재의 결정(헌재결 헌재 2013. 6. 27. 2012헌바37)에서도 ‘국가의 중립성 원칙에 반하는 표현내용에 대한 규제입법을 엄격 심사한다는 요건에 접촉될 우려가 있기도 하다.’ 본 입법안이 표현의 방법을 규제하는 것이 아닌 표현내용에 대한 규제로서 가짜뉴스에 대한 행정적 차원의 처벌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언론·출판사, 그 직업종사자의 결과적 위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3. 언론개혁의 난제 ③ : 언론개혁은 누가 진행하는가?‘표현의 자유’가 국가로부터의 방어권적 성격을 지니는 기본권이라면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오해를 살 수 밖에 없는 언론개혁을 단행하기 어렵다. 설령 단행한다고 하더라도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려는 의도가 없다고 판단하기에도 어려움이 많다. 본고에서는 언론개혁의 주체는 정부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언론개혁의 필요성을 요구하는 논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의 의사를 표시하고 싶다. 실제로 다음에서 나열하는 몇 가지 이유들을 토대로 언론개혁의 필요성이 전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가고 있는 추세다.- 매체의 변동에 따른 정보의 무분별한 확산과 언론 신뢰도 하락의 문제.2019년의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포털을 포함한 디지털 플랫폼을 ‘언론’이라고 인식하는 비율도 높게 조사됐다. ‘포털을 언론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64.2%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메신저: 24.6%, SNS: 21.8%, 온라인 동영현의 자유를 설명하는 중요한 논지로 작용한다. 근대적 자유주의의 대변자인 존 스튜어트 밀(1806~1873)은 그의 저서 자유론에서 이렇게 웅변한 바 있다.“의견 발표를 침묵케 하는 데에서 발생하는 해악의 특수성은 현세대와 차세대를 포함한 전 인류의 행복을 강탈한다는 사실과,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들보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손실이 더 크다는 사실이다. 만일 그 의견이 옳다면, 인류는 오류를 진리와 교환할 기회를 상실하게 되고, 만일 그것이 틀리다면, 진리가 오류와 충돌하면서 발생하게 되는 진리에 대한 더욱 명백한 인식과 더욱 선명한 인상을 상실하게 되는 엄청난 혜택의 손실을 입게 된다.”영국의 자유주의 사상가들로부터 비롯된 이 계보는 미국의 수정헌법 제1조에 명시되면서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 질서 형성에 이바지 했다. 밀의 사상을 다시 들여다보아도 오늘날 가짜뉴스 담론에 시사하고 있는 유의미한 문제제기가 존재한다. 가짜뉴스의 심각성이 거론되는 것도, 시민들의 비판과 온라인 기사들에 대한 정보의 신뢰도가 감소하는 것 모두 민간적 차원의 자정기능이며 역설적이게도 가짜뉴스의 담론이 등장함과 동시에 자정적 기능은 정상적인 형태로 실현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Ⅳ. 결론: 기본권과 충돌되지 않는 언론개혁민주주의의 본질적 성격이 피와 뼈로 이루어진 혁명과정을 토대로 했다는 점을 보았을 때, 표현의 자유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앞서 언급된 밀의 주장처럼 표현의 자유는 그것의 진위여부를 상정하고 주어진 권리가 아니다. 옳든 그르든 다양한 방식의 표현들은 사회에서 상호보완적, 경쟁적 관계를 가지며 자연적으로 자정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설령 무비판적으로 거짓정보를 수용하는 사람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의 발생을 막기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인 국민주권주의는 국민의 지적수준, 판단력, 학력 등을 고려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을 나온 사람도, 고등학교만 졸업한 사람도, 평생 책을 들여다보지 않은 사람도 다.
서울중앙지법 2021. 1. 8. 선고 2016가합505092 판결인간의 존엄과 재판청구권- 본 판결과 인간존엄의 관련성본 판결은 민법 제750조, 751조에 따른 손배소이나 그 본질은 피해당한 인간 존엄의 회복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965년 6월 22일 한·일 기본조약의 부속협정인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한일 양 국가 간 배상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일본정부를 대상으로 한 개개인의 청구권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는 청구권 협정 이후 한국 정부가 제정한 「대일 민간청구권 신고에 관한 법률」에도 적용을 받지 아니하였으며 2005년 1월경 공개된 청구권 협정 문서를 살펴볼 때, 한·일 기본조약의 목적 자체가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이 아닌 샌프란시스코 조약에 근거하여 민사적 채권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기본조약에 적용을 받지 아니한다고 볼 수 있음과 더불어 제3공화국 독재정권 의한 한·일 기본조약은 배상금이 피해자에게 돌아가지 않고 경제발전과 재벌, 부정부패에 사용되어 “과거사 평가와 피해자 개인의 권리를 외면한 두 나라 권력집단의 정치적 야합”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의 정치집단에 의하여 한국 정부에 의한 일본 정부에 대한 배상 청구권이 사라진 상태에서 개인 청구권이 가지는 의미는 일제에 의해 침해된 인간 존엄권을 회복하고 책임 소재를 재고해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므로 본 판결을 단순한 손배소 판결로 보기에는 역사적 의의가 과분하다 할 수 있다.- 본 판결에서 확인 가능한 인간존엄의 침해본 판결의 원고는 직접적으로는 “일본군과 일본경찰, 일본제국 정부로부터 위탁받은 민간업자”들에 의해, 간접적, 계획적으로는 일본제국 정부에 의해 납치, 회유, 사기, 약취, 유인을 당하였고 위안소에 끌려간 상황에서도 강제적 성행위, 폭행, 구금, 협박, 임금체불 등의 피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었다. “일본제국은 1937년 9월 29 두는 것 자체 또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군대의 보유와 지휘 역시 국가의 행위 중 가장 권력적 행위”이며 일본제국 정부의 정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배경에 깔려 있으므로 “사법적 행위”가 아닌 일본제국의 주권적 행위라 봄이 타당하다.< 표 1. 인간존엄의 기본권 여부에 따른 헌법 제37조 2항 적용. > 학설헌법 제37조 2항소극설(인간존엄의 기본권성을 인정하지 않음.)적극설(인간존엄의 기본권성을 인정함.)보호범위헌법이념이므로 헌법 제37조 2항의 3단계 심사구조가 적용될 수 없다.o제한x제한의 정당성x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oo문제는 원고가 피해당한 생명권, 자기결정권, 인격권 등의 기본권은 현행 헌법 제37조 2항에 따라 제한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소극설(헌법이념설)에 의하면 인간존엄은 형량 가능하지도 않으며 절대적인 원리로서 침해될 수 없으므로 논외로 한다. 적극설(기본권설)에 따라 인간존엄 역시 형량 가능한 것으로 본다면 ‘보호범위’에 속할 것이고 이에 따라 가장 먼저 원고들의 인간존엄이 “국가안전보장 ·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의해 침해되었는지 여부(‘제한’)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본제국의 위안소 설치는 “1932년 상해사변 시 일본군 병사에 의해 강간사건이 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부터”라고 본 판결에서는 밝히고 있다. 전쟁에 의한 인력의 공출은 국가안전보장과 질서유지, 공공복리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나 상해사변부터 시작하여 1945년 태평양 전쟁 종전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이 야기한 전쟁들의 특성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와는 무관한 제국주의적 침략전쟁이었다. 타국에 대한 이권을 침탈하고 일본제국의 영토 및 자원 확보 등을 목적으로 한 자국만의 영위를 위한 것으로 일개 개인이었던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이 받은 인간 존엄 침해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본다. 설령 일본제국에 의해 벌어진 위와 같은 침략전쟁들의 성격이 정당한 것이라 하여도 당시 국제조약 및 일본 구 형법에, 공공복리 역시 인정된다고 가정하더라도 원고들이 겪은 피해는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침해로 보아야 한다(‘제한의 제한’). 인간존엄의 기본권성이 인정되는 경우(적극설, 기본권설)나 인간존엄의 헌법이념적 성격이 부각되는 경우(소극설, 헌법이념설)에도 원고들이 당한 피해는 형량 가능하나 침해될 수 없는 “본질적 내용” 혹은 형량 가능하지 조차 않은 절대적 불가침 내용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다. 후자는 논외로 하고 전자만 살펴보더라도 과잉금지의 원칙(비례의 원칙)을 적용하여 해당 침해내용이 본질적 내용인지 확인할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는 앞서 살펴본 것처럼 ①목적의 정당성부터 부인될 것이며 인정된다 하더라도 ②수단의 적절성에서 논의될 여지가 없다. 특히 원고들이 침해당한 것으로 보이는 주된 기본권인 생명권, 자기결정권, 인격권 등 기타 불문기본권은 침해가 정당화될 시 곧바로 국가에 의한 국민 수단화 등 ‘객체공식’에 반하는 것이기에 더더욱 인간존엄의 절대적 보호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침해당한 기본권이 대일본제국헌법 및 기타 법률에 명시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원고 측이 한국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임으로 한국 헌법 제10조 2문에 따라 기본적 인권에 대한 국가의 확인과 보장의무가 존재한다. 더욱이 헌법 제37조 1항에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본 소송이 제기된 대한민국 법원에서는 이 같은 존엄권 침해 사례를 당시 일본국 법체계에 명시되지 아니하였다고 소극적으로 판단을 내리거나 경시할 수 없으며 본 손배소의 목적이 위자료 청구를 통한 육체적·정신적 피해보상이므로 헌법 제10조 2문에 따라 국가는 피해사실에 대한 보상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 피해사실에 대한 보상이 원고들의 존엄권 회복과 연결되고 있는 해당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들의 피해사실에 대한 확증을 가졌으므로 보상 청구를 외면하는 것 역시 헌법 제10조에 접촉될 수 있다.다안부’로 두고 있고” 본 소송의 제기한 원고 측 역시 조선인으로서 일본군 ‘위안부’ 물색의 주된 대상이 되었음이 확인된다. 이는 일본국 본토(내지)의 국민과 그 바깥, 식민지 국민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다. 원고들이 일본군의 전선 및 자신들의 고향과 관계없는 타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받으며 당한 피해는 납치, 회유, 협박, 사기 등의 불법적 요소를 고려할 때 일본국 본토의 국민과 동등한 상황에서 벌어지기 어려우며 식민지 국가의 국민을 수단시 하는 정책적 판단으로 확인된다. 또한 인간존엄은 자연권론이나 소통론으로 보더라도 미성년자가 아닌 국민의 경우, ‘인간존엄’의 크기나 그 가치가 차이가 날 수 없다. 일본제국 정부의 차별적 물색은 인간존엄의 크기나 가치에 차등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평등위반에 대해서도 인간존엄, 혹은 그에 상응하는 기본권 위반이라고 보아야 한다.”- 본 판결에서 보장되고 있는 인간존엄 (재판청구권 중심으로)현행헌법 제10조에서는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국가는 인간존엄에서도 불가침을 확인하며 이를 보장할 법적 의무를 가진다.” 그러나 국가가 모든 인간존엄 침해사례를 전지적으로 파악하여 법적 처리과정을 밟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인간존엄 및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이자 그 자체로도 기본권이 되는 ‘재판청구권(배상청구권)’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인간존엄을 불문기본권의 도출 근거로 보는 견해”(적극설)에서는 기본권의 주관적 공권성과 마찬가지로 인간존엄 역시 주관적 공권성도 있다고 보고 있으므로 인간존엄을 위한 ‘재판청구권’ 역시 도리어 인간존엄과 직접적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존엄의 기본권성을 인정할 경우 재판청구권 역시 인간존엄으로부터 비롯된 기본권이라 볼 수 있다.현행헌법에서도 재판청구권을 제27조 1항에서 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존엄을 실현하는 기본권이므로 “다른 실체적 기본권과 더불어 충된 기본권을 법적 수단 외의 방법으로 회복하고자 한다면 법치국가의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으므로 이는 다시 헌법 제37조 2항의 목적에 반하는 것이다. 국가는 헌법 제37조 2항의 목적을 토대로 재판청구권의 본질적 가치를 인정하여 침해 불가능한 절대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본 소송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내용은 국가면제론 논쟁이다. 주권국가 간의 주권적 행위는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이루어 진 것이기 때문에 재판하여 그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 전통적 국제법 이론이다. 여기에 적용된 “기본적 원리는 ‘대등한 자는 다른 대등한 자에 대해 지배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재판이라는 행위는 상호가 동등한 위치에서 판결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 소송에서 다루고 있는 원고 측의 피해사실이 일본국의 주권적 행위가 아닌 사법적 행위라면 전통적 국제관습으로부터 면제된다. 본 소송에서는 일본제국 군인과 경찰의 직접적인 납치, 사기, 약취, 유인 등의 행위가 있었으므로 일본제국은 군 지휘의 통솔권을 가지고 있는 입장에서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예산안을 편제하여 이를 지원한 바 있으므로 주권적 행위라 봄이 타당하다. 또한 일본제국 정부로부터 위탁 받아 활동한 민간업자들의 납치, 사기, 약취, 유인의 범죄에서도 이를 지원하거나 묵인한 행위를 사법적 행위라 보기는 어렵다.국가의 주권적 행위임에도 본 판결에서는 일본국의 책임 소재를 물었다. 이는 국가면제 이론을 새롭게 해석한 시도와 더불어 재판청구권을 인간존엄의 불가침적 영역으로 보고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국가면제론을 포함한 국제법 논의는 인간의 존엄에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전 헌재 판결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확인된 바 있다.“배상청구권의 실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신체의 자유를 사후적으로 회복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고, 그 배상청구권의 실현을 가로막는 것은 헌법상 근원적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의 침해와 직접 관련이 있다정했다.
한국의 낙태관련 개선입법에 대한 방향성어렸을 때 낙태 수술 영상을 시청한 경험으로 태아의 생명권에 중요성을 느껴,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필자는 낙태관련 개선입법안을 생각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현재 법적 공백 상태가 지속되다보니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그 어느 것도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선입법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꼈다. 또한 헌법 불합치 결정 이후, 더 이상 일부 예외 규정을 제외한 전면적인 한국의 낙태죄 존립을 거론하기에는 법적 무리가 수반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개선입법의 방향성은 22주 이전까지 전면적인 허용 이후, 단계적인 낙태 절차, 낙태 조건을 마련하고 이에 해당하지 아니한 방식으로 낙태를 실행한 여성과 배우자 및 임신에 이르게 한 남성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강화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적절한 낙태죄 존립 방안이라고 생각하였다. 여기서 필자가 제시하는 낙태죄의 입법목적은 ‘태아의 생명권’ 존중 보다는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할 수 있는 권리’를 지키기 위함으로 법적 방향성에서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약물 낙태 허용 규정 신설, 낙태 시술의 건강보험 적용 등을 추가하였다. 한편, 의사의 임신중절시술 거부권 역시 존중될 수 있도록 입법안을 추가로 마련하고자 했다. 의사 역시도 자기결정권, 직업 수행(직업 선택의 자유)의 주체로서 자신이 어떤 시술을 할 수 있는지,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있으며, 특히 생명을 구하는 의사의 직업 목적과는 거리가 있는 임신중절 수술에 대해서는 거부권이 강하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다음은 필자가 고려해본 개선입법안이다.- 형법 제27장 제269조, 제270조를 삭제한다.- 「여성의 출산 안전에 관한 특례법」을 신설하여 모자보건법을 보강하고, 출산 안전이 보장되지 아니한 방식의 무분별한 낙태는 따로 처벌규정을 마련한다.- 「여성의 출산 안전에 관한 특례법」는 여성의 출산 상의 안전을 위하는 것이 입법의 목적이며, 모자보건법을 보충하는 성격을 가진다. 해당 법률에는 다음과 같은 처벌규정을 마련한다.1. 법률(모자보건법)에서 정하지 아니한 기간과 방식에 따라 낙태를 실행한 부녀와 낙태에 동의하거나, 조력한 배우자 및 임신에 이르게 한 사실이 증명된 남성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기존 낙태 규정의 처벌 범위 확대, 형법 제269조 ①의 처벌 수위 적용.)2. 부녀가 낙태를 결정하도록 협박하거나 임신의 사실을 고지 받고 잠적, 도피한 남성은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 ①의 처벌 수위 적용.)3. 의도적으로 피임을 회피하거나 부녀를 기만하는 방식으로 피임의 물질적 수단을 몰래 제거한 사실이 있는 남성은 ‘1’(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과 동일하게 처벌한다.- 의료법 제15조(진료거부 금지 등) ①를 보충하기 위해 제15조의2(인공임신중절수술의 거부 등) ① 의료인 또는 의료기관 개설자는 제15조제1항에도 불구하고 「모자보건법」 제2조제7호에 따른인공임신중절수술(이하 “인공임신중절수술”이라 한다) 요청을 받으면 이를 거부할 수 있다. ② 보건복지부장관은 인공임신중절수술을 받으려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도록 이를 실시하는 의료기관을 지정하여 고시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 제2조제7호 중 “인공임신중절수술”을 “인공임신중단”으로, “태아가 모체 밖에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는 시기에”를 “약물이나 수술 등 의학적인 방법으로”로, “배출시키는 수술을”을 “배출시켜 임신을 중단하는 행위를”로 변경하여 약물에 의한 낙태도 허용 가능하도록 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의2를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제14조의2(건강보험의 적용) 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국민건강 보험공단은 인공임신중단에 대한 보험급여를 실시하여야 한다. ② 제1항에 따른 보험급여의 범위ㆍ방법ㆍ절차,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 모자보건법 제28조를 「형법」에서 ‘「여성의 출산 안전에 관한 특례법」에도 불구하고 처벌하지 아니한다.’로 변경한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의 제목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를 “(인공임신중단의 허용범위)”로 변경한다. 제14조는 다음의 내용이 들어갈 수 있도록 변경한다.~ 12주12~22주22주~낙태에 제한이 없도록 한다.1. 배우자의 동의가 있어야 낙태가 가능한 것을 원칙으로 하나 ‘2’에 해당하는 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는 배우자의 동의 없이 낙태가 가능하도록 한다.2. 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의 ‘1,2,3,4,5’를 포함하며 사회 경제적 사유, 종교, 신념 상의 사유로도 낙태가 가능하도록 허용한다.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의 동의 없이 낙태가 가능하도록 예외규정을 마련한다.3. ‘2’의 조건을 충족하지 아니한 경우에 ‘여성의 출산 안전위원회’를 신설하여 ‘2’에서 열거되지 않은 그 밖의 합리적한 이유를 검토하고 ‘숙려기간’ 24시간이 경과된 후에 낙태가 가능하도록 한다.현행 모자보건법 제14조 1항의 ‘1,2,3,4,5’에서 규정한 바를 충족하거나 미성년자인 경우는 낙태에 제한이 없다.그 밖의 경우는 아래와 같은 조건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1. 배우자의 동의2. 22주 이전에 낙태하지 아니한 합리적인 이유가 필요하며 사고, 재해, 질병, 사회경제적 요인의 중대한 변동이 있다고 입증되는 경우에 가능하다. (여성의 출산 안전위원회에서 입증) 그 밖의 낙태하지 아니한 이유에 낙태 과정에서의 하자, 부녀의 착각, 착오 등에 의한 경우에는 가능하도록 한다.형법 제269, 270조는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난 조항이므로 폐지하도록 하며 여성이 낙태에 이르게 한 남성에 대해서도 간접적, 직접적 죄를 물어 처벌이 가능하도록 했다. 이 때 처벌의 사유는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한 권리를 저해, 방해한 이유다. 여성이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에는 ‘원하는 때와 장소, 출산의 이유, 목적이 모두 갖춰진 경우’를 포함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의료법에도 개정을 가해 의사가 임신중절 수술에 대한 거부권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모자보건법에도 약물에 의한 낙태가 가능하도록 규정을 마련하였고 낙태시술에도 건강보험이 가능하도록 하여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는 여성도 낙태가 가능하도록 하였다. 앞서 언급한 방안 모두 심사 진행단계에 있는 개정입법안(각주 1)들을 참고했다.본 개선입법안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내용은 단계적으로 낙태를 실행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규정은 주로 해외 낙태죄 규정들을 참고하여 만들었으며 ‘태아’의 발달정도, 고통의 유무 정도를 고려하였다.- 12주 이후부터는 태아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12주 이전과 이후에 차이를 두었다. 또한 12주 이전에는 별다른 조건 없이 낙태가 허용 가능하도록 한 독일, 프랑스, 덴마크,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중국의 규정을 추가하였다. 따라서 12주 이전에는 낙태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가장 중요한 비교법적 우위로서 어떠한 제한도 가해져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12주부터는 태아도 고통을 느낄 수 있으며 성별도 형성되며, 산모와 교감도 가능한 단계로서 12주 이전과는 동일한 방식으로 낙태에 제한이 없도록 하는 것은 어렵게 하였다. 특히 22주 이후부터는 헌법 불합치 결정문에도 나온 것처럼 태아가 독립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 수 있으므로 더욱 신중하게 하여야 했다. 이와 비슷한 규정을 마련한 국가로는 24주까지 배우자의 동의가 있다면 허용한 대만, 20주까지 허용한 뉴질랜드, 24주까지 전면 허용한 싱가포르의 규정을 참고했다. 가장 비중 있게 참고한 국가는 일본으로 일본 역시 22주까지는 배우자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도록 하였다. 필자가 작성한 개선입법안은 배우자의 동의 없이도 가능한 조건을 덧붙여 사실상 전면 허용에 가깝도록 안을 구상했다. 숙려기간은 48시간- 22주 이후부터는 태아의 독립적인 생존이 가능하므로 낙태는 원칙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22주 이후부터는 ‘태아’의 생명권이 더 중요해진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간으로 22주를 기점으로 낙태를 하지 않은 이유가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에는 허용 가능하도록 했다. 또한 태아가 독립하여 생존할 수 있으므로 산모가 낙태를 원하더라도 남성이 양육하고자 하는 의사를 있을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해 배우자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했다. 이 경우 개선입법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22주 이후부터는 낙태는 아니더라도 태아를 강제 적출하는 방안도 고려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했다.낙태를 전면적으로 제한 없이 운영하는 국가는 캐나다, 베트남, 중국, 북한 정도로 공산권 국가를 제외하면 거의 캐나다가 유일했다. 가능하면 전면적인 제한 없음보다는 단계적인 제한 규정을 두는 것이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권을 동시에 보호할 수 있는 입법안이라고 판단하였다.
한국의 내각제 개헌안? 내각제 개헌안의 필요성 및 문제제기현재 한국은 대통령제를 중심으로 의원내각적 요소들을 추가하여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느끼기에 한국의 대통령제에는 크게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이 있다.- 대통령제를 통해 한국보다 1인당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는 오직 ‘미국’ 뿐이다. 미국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대통령제에 대한 경험과 선례가 축적되어 있고, 양원제 및 연방정부 구조를 통해 의회와 정부가 각각 상원과 하원, 연방정부와 주정부로 분리되어 권한을 갖고 있어 민주적으로 대통령제가 운영될만한 토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을 몰아줌으로써 생기는 권력형 비리 및 부패문제가 필연적으로 수반되어 왔다.- 9차 개헌으로부터 지금까지 시행 중인 대통령 5년 단임제는 임기 초반 국정 적응시기, 임기 후반 레임덕 시기를 제외하면 정책의 일관성 및 국정 운영의 소신을 유지하는 기간을 기껏해야 2년에서 3년 정도로 생각된다. 이 기간 동안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혁하거나 지속성을 가지고 장기적인 국책 사업을 추진하기 어려운 점이 많다.- 5년 동안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작용할 요소도 가지고 있다. 탄핵을 제외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할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없으며, 탄핵은 성사시키기 위한 요건이 매우 까다롭다. 임기가 변동 없이 보장되는 동안 어떠한 견제도 받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국무총리는 사실상 대통령의 방패막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정권의 이미지 변신을 위해 교체되는 경우가 많다. 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국무총리도 국민적지지 및 민주적 절차를 통해 선출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이 밖에도 다양한 문제점들이 현존하고 있는 이유로 필자는 의원내각제로의 개편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문제점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지나치게 국정운영에 대한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지우거나 기대하게 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국회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식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국정운영에 더 큰 보탬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현재 20대, 21대 국회에서의 입법성과가 매우 미흡한 측면을 고려하였을 때, 한국 권력구조에서 가장 문제시 되는 집단은 정부보다도 의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입법이 필요한 문제에 기간 내로 입법안이 처리되지 않거나, 민생과 무관한 이슈를 여론몰이에 활용하고 미래 산업과 관련한 규제 및 양성 입법들도 조속히 처리가 되고 있지 않는 상황에서 의회에 국민적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으면서도 국민들과 국회의 지지가 지속되는 한 임기를 연장시킬 수 있는 의원내각제가 한국에 가장 적합한 정부형태 개헌안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구체적인 내각제 개편안내각의원제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현재 한국의 대통령제처럼, 한국의 내각의원제에도 역사와 맥락을 고려하여 현 대통령제의 직선 부분들을 일부 유지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가원수는 대통령으로 유지하되, 행정부 수장으로서의 권한을 총리에게 이전하고, 대통령은 6월 항쟁의 역사적 의의를 참고하여 직선제로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국회는 양원을 두어 하원(민의원), 상원(참의원)을 두었던 제2공화국 헌법(3차개헌)을 참고하여 구성하고 총리는 하원에서 선출한다. 총리를 하원에서 선출하는 과정에는 국민들의 의사가 적극 반영될 수 있도록 간선제적 요소들을 직선제적 요소들로 변경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당내 경선을 오픈형으로 진행하도록 하여 국민들이 당대표 경선에 적극적으로 참가할 수 있도록 유도하거나, 당대표가 총리가 되지 않는 경우에도 당내 총리 후보자 투표를 오픈형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방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반드시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투표하여 대통령을 선출하여야만 민주주의적 선거라고 할 수는 없으나 오랜 독재와 정치 후진화를 겪은 한국의 역사와 맥락을 충분히 되새기며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어야만 의원내각제로의 개헌이 가능할 것이다.한편, 하원(민의원)의 경우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의한 국민투표로 선출하고 상원(참의원)의 경우, 선거구에 관계없이 2년마다 정원의 1/3을 돌아가면서 국민투표로 선출한다.(미국 상원과 동일) 상원의 신설의 주목적은 하원과 내각을 견제하는 것으로 하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견제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하여 대표적으로 긴급명령권의 적합 여부를 함께 검토, 감시하는 역할을 포함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한국의 경우, 자신의 지역구에 기반으로 한 국회의원들이 지역에서의 영향력과 인맥, 대중성을 확보하여 연이어 당선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 경우 새로운 정치신임들이 국회로 입성하는 경우는 매우 적으며, 보통 당에서 청년위원으로 활동하거나 극소수 비례대표로 선출되는 경우 밖에는 정치입문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 경우 하원과 함께 상원을 활성화하여 신입 정치인들을 국회로 적극 진출시켜 기성정치인들이 모인 하원을 견제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인다.내각불신임권은 하원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되, 독일의 내각제처럼 불신임권 사용에 다음 내각을 구성가능하도록 하는 제한을 걸어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독일의 경우, ‘건설적 불신임제’를 활용하여 의회가 후임자를 선출한 뒤에 현직 총리를 불신임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여 정국 불안의 요소를 축소해두고 있다.위의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의원내각제의 역할을 갖추면서도 국회를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권력관계를 구조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북중혈맹(北中血盟)에 대한 올바른 인식북한은 25일, 6·25전쟁 참전 70주년을 맞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에서는 특집기사를 싣고 북중관계를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를 대외 공표했다. 북중혈맹의 모습을 미국 대선을 의식한 것 마냥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불과 얼마 전 진행된 열병식에서도 북중혈맹 관계는 또렷하게 증명되었다. 수없는 국제 제재에서도 북한이 이토록 오래 버틸 수 있는 것은 ‘자력’이 아닌 ‘타력’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국제제재의 효용성에 근본적인 회의를 요구되는 요즘, 우리가 주목해야할 역사적 사실은 ‘북중혈맹’의 출발점이다.우리는 북중혈맹의 역사를 보통 ‘항미원조’, 즉 6.25전쟁에서 찾는다. 이처럼 우리의 북중혈맹 인식은 안타깝게도 뒤늦은 과거에 멈춰 있다. ‘항장원화’, ‘항일원화’ 같은 표현은 과거에는 존재했던 표현이지만 현재 한국에서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 이제는 기사에서도 다루지 않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북중혈맹의 관계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의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중국은 왜 북한을 지원했는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대규모의 군대를 타국의 전쟁을 위해 투입한다는 것이 과연 말이나 되는 것인가. 이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항장원화’, ‘항일원화’라는 표현이 쓰인 시기로 돌아가야 한다.항장원화(抗蔣援和)는 조선인이 장개석의 국민당의 맞서 전쟁을 시작할 때부터 등장한 용어였다. 당시 만주 조선인 사회에 존재한 대다수의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일국일당’ 지시 하에 조선 공산당이 아닌 중국 공산당으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편입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이 완수된다면 조선의 공산주의 혁명을 중국이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거기에는 조선의 독립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같이 껴있었다. 수많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중국의 약조를 토대로 장개석과의 전투와 일본군과의 전투에 목숨을 바쳤다. 그 때 조선인들이 희생을 감내하면서 외쳤던 구호가 ‘항장원화(抗蔣援和)’와 ‘항일원화(抗日援和)’였다. 그리고 오늘날 중국이 부르는 ‘항미원조(抗美援朝)’는 이에 대한 대응의 개념이었다.조선이 해방을 맞이했을 때 공산당 휘하 조선인 부대들은 곧바로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했다. 그러나 중공은 이들을 구슬려 국공내전을 완수해냈고 국공내전 전후로 많은 조선인 부대들이 북한으로 입국하게 되었다. 결국 6.25에서 38선을 넘은 북한군 47%가 이 조선인부대였으며 항미원조라는 명분으로 출전한 중공군 역시 약 2만 명이 조선인 부대였다.결국 항미원조는 단순히 중국이 6.25를 왜곡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많은 언론들이 이런 내용으로 6.25를 다루고 있지만 과연 이것이 올바른 인식인지는 숙고가 필요하다. 북중혈맹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북한 역시 올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6.25 전쟁 70주년을 계기로 중국과 함께 혈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점에서 우리가 취해야할 태도는 노골적인 비판이 아닌 면밀한 분석이다. 그리고 북한과 중국 간의 친선관계를 근본부터 뒤흔들 전략과 계책은 이런 분석을 토대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