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경이 어릴 때 평양의 한 기녀와 인연을 맺었으나 급제한 뒤에는 그 기녀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기녀는 절개를 지키다가 죽었는데 심공이 관서 지방에 갔다가 그것을 알고 심히 ... 었다. 이방의 주선으로 자란을 만나 맹산으로 도망해 숨어 사는데 자란이 책을 사다 주어 공부를 해서 장원 급제했다. 왕이 이를 알고 어명으로 자란을 세창의 부실로 삼게 했다.4) 암행어사
은 비록 유학자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니라 민생에게도 복이 된다고 주장 - “유교를 숭상하고 중의 여기는 일이야 말로 심공(深功)하여야 한다. 국학은 풍화(風化)의 근원이고, 인재 ... 구하기 위한 기송공리의 학문에만 치중->학교교육 부진◊학교교육부진 해경방안-급제자가 아닌 사람이 관직을 제수 받기도 하고 국학을 경유하지 않고 급제자가 되는 학교 시정Ⅴ.결론목
었다. 스님은 여신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속세의 명리심을 끊고 심공급제를 위한 공부를 해 볼 것"을 권했다. 여신은 서울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숭인장로가 권하는 {전등록 ... 하고 승과는 중이었다. 조정은 빗발치는 유생들의 반대 상소에도 불구하고 명종7년 4월(1552) 첫 승과를 실시했다. 휴정은 이 시험에 응시하여 상상품으로 급제 했다. 그의 나이 33세
였다. 문과에 급제하여 청요직을 역임하고, 세 번 두 도의 안렴사를 지냈고 원주 목사가 된 것은 스스로 외직(外職)을 구하였던 데서 연유한 것이다. 참판인 시헌(時獻)은 그의 맏이로 ... ) 겸순찰사심공성희애군휼민비(兼巡察使心公聖 希愛軍恤民碑) : 높이 134㎝, 가로 너비 49㎝, 두께는 18㎝이며, 후면에는 "건륭경신립"(乾隆庚申立, 1740)이라고 새겨져 있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