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 도의에 맞도록 바로잡아 도덕을 실천하며 의리정신을 함양할 수 있도록 하는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남명학파(南冥學派)는 남명(南冥) 조식(曺植)이 퇴계(退溪) 이황(李滉)과 더불 ... 의 보루이며, 유교문화의 중심지로서 한국정신문화의 근간이 되어 왔다. 그러한 영남 지방의 정신적 학문적 줄기를 형성하는데는 영남학파의 영향이 컸다. 영남학파(嶺南學派)는 우리나라 ... 학파(江右學派)라고 불려졌다. 당시 조식은 혼탁하고 문란하던 사회 풍조 속에서 방황하던 선비들에게 우뚝한 존재로 부각되었으며 의 를 강조한 그의 학풍은 그의 문하에서 임진왜란 때
로 이름을 떨친 두 인물이 경상좌우도에서 태어났다. 경상우도의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70)과, 경성좌도의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72)이다. 이들은 같은 해에 태어나 ... 고 오히려 당쟁(黨爭)과 예송(禮訟)의 소인(素因)이 되었다. 그리하여 공리공론만 거듭되는 순리학파(純理學派)를 대신하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학문을 주장하는 실학파(實學派
(退溪) 이황(李滉)을 배알하였는데, 이 때 퇴계는 율곡을 보고 "후생가외(後生可畏)" 즉, 두려운 후배라고 말하였다. 같은해(1558년) 겨울에 별시해(別試解)에 "천도책(天道策 ... 는 일이라면 딱 잘라 끊어 버리고 시비로 인해 마음이 혼미해서는 안 된다.철학사상(哲學思想)율곡은 한국 도학사상(道學思想)의 정맥을 이어받으며 정통성리학파(正統性理學派)의 입장을 굳
(儀禮派)로 나타난다. 이 정파들의 내용은 학문을 중심으로 모인 학파집단(學派集團)이었기 때문에 학문의 이론집단(理論集團)이었다. 다시말해서 임란(壬亂)과 호란(胡亂) 양란때의 국가 ... 주자다. 그는 퇴계(退溪)와 율곡(栗谷)의 이기(理氣) 론리(論理)의 학설론쟁(學說論爭)이 심화(深化)된 가운데 성리학 재건의 중심체제(中心體制)로서 선도적 사림파 남인(南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