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예송의 빌미가 되었다.3. 2차예송(갑인예송 : 1674)2차 예송(갑인예송)은 효종의 비인 인선왕후(仁宣王后)가 죽자 조대비(趙大妃:자의대비)가 어떤 상복을 입을 것인가 하 ... 는 문제를 놓고 벌어졌다. 1차 예송에서는 국제기년복(國制朞年服)이 채택됨으로써 효종의 장자 ·차자 문제가 애매하게 처리되었으나, 인선대비가 죽으면서 이 문제가 다시 표면으로 떠올랐 ... 다. 즉 효종을 장자로 인정한다면 인선대비는 장자부이므로 대왕대비는 기년복(1년)을 입어야 하지만, 효종을 차자로 볼 경우 복제는 대공복(大功服:9개월)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으로 전환되면서 양파는 여기에 정치적 운명을 걸었고, 결국 서인의 주장이 채택됨으로써 정권에는 변동이 없었다. 그러다가 1674년(현종 15) 효종의 비(妃) 인선왕후(仁宣王后)의 상(喪 ... 게 배격하면서 영창대군(永昌大君) 살해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유폐 등 무리한 정책을 편 끝에, 정변을 일으켜 인조를 앞세운 서인에 의해 숙청되었다.이리하여 북인은 정파로서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