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삼국사기나 고구려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합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발전기(동천왕~고국양왕)
Ⅲ. 고구려의 절정기(광개토왕~평원왕)
Ⅳ. 고구려의 쇠퇴기(영양왕~보장왕)
Ⅴ. 논찬연구
Ⅵ. 맺음말
본문내용
Ⅰ. 머리말
고구려본기 권 5~10 부분은 11대 동천왕(東天王)부터 마지막 28대인 보장왕(寶藏王)까지 약 440년(227~668)을 기록한 부분이다. 권 5~10에 해당하는 3C초부터 7C중엽동안 고구려는 중국이 위, 촉, 오의 삼국으로 나뉘어 있는 동안 주변 국가들을 병합하여 영역을 확장하여 갔다. 이후 4C말 중국이 남북조로 경쟁하는 사이 남조와 북조 모두와 외교관계를 맺고 고구려의 자주성을 지켜나갔다. 하지만 중국이 통일되고 수ㆍ당 제국이 성립되면서 이들과 경쟁을 하였지만 국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668년 당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다.
이 글에서는 동천왕부터 보장왕까지 약 440년의 기간을 크게 3부분으로 나누어 살펴보고자 한다. 구분의 기준은 중국의 정세 변화로 고구려의 상황이 중국과의 대외관계에 따라서 변화하기 때문에 필자가 임의적으로 구분하였다. 첫 번째 부분은 동천왕부터 고국양왕까지의 기간(227~392)으로 고구려의 발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후한 말기 혼란을 거쳐 삼국으로 정립되었다가 서진의 짧은 통일을 이루지만 곧 5호 16국의 혼란시대로 전환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광개토왕부터 평원왕까지의 기간(392~590)으로 고구려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남북조 시대가 열려 북위와 남조(동진, 송, 남제, 양, 진)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였다. 세 번째 부분은 영류왕부터 보장왕까지의 기간(590~668)으로 고구려의 쇠퇴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기간 중국은 수ㆍ당의 통일왕조가 나타나 고구려를 압박하였다.
이 분류를 중심으로 각 왕을 간략하게 개괄한 후에 『삼국기사』기사 내용을 정치와 천재지변, 전쟁, 외교기사로 나누어 분석할 것이다. 그리고 아울러 이 부분에서 나오는 논찬의 내용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부족하지만 『삼국사기』편찬자들의 의도를 살펴볼 것이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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