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불교와 사회
- 최초 등록일
- 2006.12.30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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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려시대의 불교가 당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다룬 자료입니다.
고려시대 불교의 종파와, 사회와 불교와의 관계에 대한 자료를 찾는 분께 유용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표본(요약본)이 필요하신 분은 따로 메일 주시면 보내 드리겠습니다. 동시에 두 자료를 올릴 수는 없네요.
목차
1.佛敎의 隆盛 :다양한 宗派의 등장
1.1.華嚴宗
1.2.法相宗
1.3.天台宗
1.4曹溪宗
2.佛敎와 社會
2.1.燃燈會와 八關會의 성행
2.1.1.燃燈會
2.1.2.八關會
2.2.그 밖의 행사들
2.2.1.大藏經의 간행
2.2.2.寺院 經濟의 發達
3.身分思想과 佛敎的 要素
結 - 佛敎 王朝로서의 高麗
본문내용
高麗佛敎는 政治的으로 高麗라는 統一國家를 誕生시키는데 그 理念的 基盤을 提供하였다. 王建은 高麗 建國이 佛法의 加護에 힘입었다고 굳게 믿었고 그로 인해 高麗를 佛敎國家로 建設하려고 心血을 기울였다. 高麗初 佛敎界는 地方勢力을 形成하고 있었기 때문에 王建의 佛敎界와의 結合은 그의 豪族聯合策과도 連結되는 것이었고, 또 民心收拾의 敎化面에서도 의미를 지닐 수 있었다. 이러한 脈絡에서 國家建設에 있어 佛敎의 도움을 받으려는 王建의 의지는 이후 高麗 王들의 治國策에도 反映되어 政治的制度로 發展하였다.
高麗의 佛敎가 발전하는 데는 이러한 王室, 貴族의 보호 외에도 일반 백성들 사이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는 佛敎의 位置도 한 몫을 했다. 이처럼 高麗 社會에서 佛敎는 모든 階層의 歸依를 받아 굳건한 基盤을 구축하고 있었으며, 그 位置는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위치의 佛敎일지라도 羅末麗初의 政治的 混亂期에서는 많은 波瀾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分立 과정에 佛敎는 호족 세력과 결탁하면서 발전을 이루며 더불어 여러 가지 社會적 폐단을 낳기도 했다. 寺院이 호족 세력과 밀착된 데서 오는 政治的․經濟的 폐단을 비롯하여, 觀念化,保守化되어 가며 閉鎖性, 分派性의 특성을 띠는 교리면의 폐단에 이르기까지, 결국 高麗의 佛敎는 高麗初의 지도 이념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정치 세력간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면서 儒佛이 교체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폐단이 있기 이전까지 佛敎는 高麗의 思想과 宗敎,文化,社會․政治 등을 얘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을 만큼 ‘高麗’라는 나라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참고 자료
․ 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論 2(高麗), 民族文化社, 1986.
․ 朴龍雲, 高麗 時代史, 一志社, 1993.
․ 최범서, 이야기 高麗王朝史, 청아출판사, 1996.
․ 許興植, 高麗 佛敎史 硏究, 一潮閣, 19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