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의 이름에 나타난 중세시대
- 최초 등록일
- 2006.11.24
- 최종 저작일
- 20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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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서양역사시간에 쓴 레포트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분석한 것입니다.
목차
<그 당시의 시대적 모습>
<14세기 수도원을 배경 설정한 이유와 기호학에 대해>
<수도원에 관해>
<장미의 이름의 의미>
<웃음 의 의미>
본문내용
수도원의 모습을 통해 중세시대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는 『장미의 이름』. 에코는 이 소설을 통해 중세 수도원의 타락과 부패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단순한 수도원의 부패를 꼬집기 보다는 그 시대상의 사상과 문화를 통해 좀더 중세에 대해 알려는 계기를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중세수도원의 모습과, 이 소설이 왜 하필 1327년 11월을 배경으로 삼았는지 부터, 수도사들에 관한 것과 제목에도 등장하는 ‘장미’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고 중세시대의 이해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그 당시의 시대적 모습>
가톨릭교회는 로마제국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고 세속의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체계를 확립함으로써 명실상부하게 지상과 천국 모두의 지배자로서 오랫동안 군림해왔다. 그러나 12-13세기의 전성기가 지나감에 따라 세속화하고 타락했고, 이로써 교회가 원래 가졌던 종교적 열정과 청신한 기풍은 점점 쇠퇴해갔다. 하나의 권력체로서 비대해진 이상 교회 역시 그 본래의 이상에 투철하기 보다는 현세적 이익과 세속적 권력 확장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14세기 이래로 교회는 스스로를 개혁할 의지를 잃은 것은 물론 교회 밖의 새로운 신앙운동에 대해서도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았다. 이 시대의 교회는 자신을 일신할 수 있었던 정신적 유연성과 개혁의지를 더 이상 가지지 못했다. 그런데 1300년대 초부터 세속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수많은 개혁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12세기 후반에 다른 한편으로는 교황에 대한 숭배보다는 국가에 대한 숭배 풍조가 증가했고, 가시적이고 외적인 것을 중시하는 종교적 행위들이 만연했다. 이러한 청빈운동과 국가에 대한 숭배라고 하는 서로 모순적인 것이 동시에 등장한 것은 그만큼 현실의 삶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323년, 프랑스의 아비뇽에서 교황에 오른 요한 22세는 일찍이 프랑스와 필립을 도와 거짓 모함으로 성당기사단을 박해한 바 있다.
참고 자료
움베르토 에코,이윤기역,2003,《『장미의 이름』창작노트》,열린책들
인터넷 검색 ‘중세 수도원의 모습’ ‘장미의 이름’ ‘기호학’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