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근대역사학의 시작, 비판적 역사학
- 최초 등록일
- 2006.06.04
- 최종 저작일
- 20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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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19세기 근대 역사학의 출발인 비판적 역사학에 대한 발제문입니다.
랑케류로 대표되는 역사주의자들이 어떻게 역사를 과학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는지. 그 핵심인 사료비판과 그들의 한계에 대한 글입니다.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목차
1.근대역사학
2.사료비판의 기능과 역사적 의의
3.사료 비판과 역사서술 작업
4.사료비판과 19세기 비판적 역사학의 한계
본문내용
1.근대역사학
근대역사학의 출발은 비판적 역사학에서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랑케가 도입한 문헌해석학은 역사를 보다 엄정한 과학으로 연구하는 초석이 되었으며 이후 역사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랑케의 역사연구는 고대의 투키디데스나 폴리비우스처럼 역사가의 주관을 최대한 자제하고 사실 그 자체만을 다루고자 하는 전통을 그대로 이어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랑케에 있어서 史料는 곧 과거와 대화하는 유일한 통로였다. 즉 랑케는 철저한 사료비판을 통해 과거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이것을 통해 역사가는 객관적 역사서술과 인식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랑케의 사료비판이 가지는 기능과 방법을 검토하는 일은 근대 역사학의 특징을 분석하는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2.사료비판의 기능과 역사적 의의
사료비판을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첫 번째 기능은 사실에 대한 증빙능력 판단이다. 사료에 대한 증빙능력 판단은 사실성을 뒷받침하기 위한 외적비판 과 사료에 대한 내적 고찰에 해당하는 내적비판의 형태로 진행된다. 이러한 작업은 궁극적으로 사료의 진위여부와 text ․context들의 정확한 인식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노력들은 유물이나 문서에 대한 위작 혹은 오인을 발견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의 개발로 이어졌다. 그 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외적형식(언어 ․문자 ․문체 ․구성등)이 당시의 시대와 일치하는가, 장소 혹은 지식의 종류가 그 시대의 상황과 그리고 지적 수준과 일치하는가. 즉, 같은 시대에 알려진 지식의 내용이나 사료가 일정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는가 혹은 모순이 없는 가의 문제 사료의 인공적인 작위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 가 등 여러 가지 과학적인 방법을 통하여 사료에 대한 정학한 접근과 해석을 시도하였다.
앞서 지적했던 바와 같이 사료에 대한 이러한 가학적 접근은 이전시대 교훈으로서의 역사와 구별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사는 과학적인 전문분과로서 재정립되었다.
참고 자료
E. 베른하임, 역사학 입문, 범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