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독후감] 적과 흑 - 욕망의 속도와 윤리의 무게

소개

"[A++독후감] 적과 흑 - 욕망의 속도와 윤리의 무게"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서론: 19세기 프랑스와 욕망의 문법 — 『적과 흑』을 읽는 이유

2. 본론
2.1 줄리앙 소렐의 ‘문장(紋章)’ 없는 야망: 나폴레옹의 유령과 복고왕정의 질서
2.2 ‘적’과 ‘흑’의 상징체계: 군복의 적, 성직자의 흑, 그리고 활자와 피의 색
2.3 사랑과 전략: 레날 부인과 마틸드 사이의 서로 다른 시간
2.4 계급, 언어, 몸짓: 줄리앙의 사회적 연기술과 들키는 순간들
2.5 제도와 위선: 성직 교육, 법정, 신문—권력의 말하는 방식
2.6 실패의 형식: 자존, 오만, 그리고 자기 파괴의 논리
2.7 독서와 거울: ‘기억의 연습장’으로서의 소설 읽기

3. 결론: 욕망의 속도와 윤리의 무게 — 오늘의 독자로서의 응답

본문내용

1. 서론: 19세기 프랑스와 욕망의 문법 — 『적과 흑』을 읽는 이유

스탕달의 『적과 흑』은 개인의 야망이 사회적 구조와 마찰을 일으킬 때 어떤 형태의 윤리적 파열이 발생하는지를 가장 냉정하게 보여 주는 소설 중 하나다. 줄리앙 소렐은 출생의 운으로 닫힌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지식, 언어, 제스처, 침묵까지 도구화하는 인물이다. 그가 동경하는 것은 단지 부와 지위가 아니라, 나폴레옹 이후 사라진 상승의 신화 자체다. 따라서 소설은 한 청년의 연애담이 아니라, 몰락한 서사—즉 근대 초입의 ‘열린 미래’에 대한 믿음이 복고왕정의 질서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에 관한 해부에 가깝다.

이 작품이 여전히 오늘의 독자에게 불편하고도 매혹적인 이유는, 줄리앙의 욕망이 시대적 특수성을 넘어 우리 각자의 생애 전략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규칙을 읽고, 정답을 외우고,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표정을 짓는 연기술은 오늘의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다만 스탕달은 그 연기술이 타자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하는 폭력을 끝까지 추적한다. 줄리앙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조립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조립된 자아의 빈 중심—자존과 오만이 뒤엉킨 공허—을 끝내 메우지 못한다.

소설의 제목이 암시하듯, ‘적’과 ‘흑’은 단순한 직업적 선택(군인/성직자)을 넘어 삶의 두 질서, 두 시간, 두 윤리의 충돌을 가리킨다. ‘적’은 열정, 행동, 위험, 최전선의 시간을 상징하고, ‘흑’은 계산, 절제, 제도, 늦춤의 시간을 상징한다. 줄리앙은 이 둘 사이를 진자처럼 오간다. 그는 나폴레옹적 상상력의 잔광을 좇으면서도, 현실에서는 성직 교육을 받아 신분 상승의 사다리를 탄다. 이 이중 노선은 승부를 지연시키는 전략이면서 동시에 파국을 예약하는 모순이다. 결국 그는 사랑과 권력의 게임을 동시에 수행하다가, 어느 한 순간 ‘진짜 감정’이 전략의 프레임을 파열시키는 지점에 도달한다. 레날 부인에게 총을 쏘는 장면은 그래서 우발이면서 필연에 가깝다. 감정이 전략을 배반하는 순간, 줄리앙은 비로소 자신이 누구였는지를—혹은 누구도 아니었음을—마주한다.

읽는 동안 가장 강하게 남는 감각은 ‘속도’다. 줄리앙의 내적 독백, 계산, 비교는 빠르다. 그는 언제나 다음 수를 본다. 반면 그가 접속하려는 상류 사회의 시간은 느리다. 혈통, 관습, 사교의 리듬은 서두르지 않는다. 이 상이한 속도의 간극이 인물의 초조를 낳고, 초조는 허세와 과잉으로 표출된다. 스탕달은 과잉이 낳는 우스움과 잔혹함을 동시에 포착한다. 줄리앙의 ‘과도한’ 정장, ‘과도한’ 말, ‘과도한’ 침묵은 늘 조금씩 어긋난다. 그는 진짜가 되려면 가짜가 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가짜에 능숙해질수록 진짜가 무엇이었는지 잊는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