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독후감] 서편제 - 소리와 윤리, 듣는 공동체의 문학적 상상

목차

1. 서론: 소리로 읽는 한국 근대의 그림자

2. 본론
2.1 유봉의 교육과 폭력: 예술의 윤리
2.2 송화의 시선과 실명: 보는 것과 듣는 것의 전도
2.3 동호의 길: 추적하는 청자와 근대의 이동성
2.4 ‘득음’의 미학: 한(恨)과 흥의 변증법
2.5 지역성과 장단: 서편제의 음향적 공간
2.6 서사 구조와 구술성: 이야기하는 소리
2.7 타자들과의 접촉: 장터와 객석의 윤리
2.8 상호매체적 기억: 영화적 이미지와 텍스트의 차이

3. 결론: 눈먼 소리와 듣는 공동체

본문내용

이청준의 「서편제」는 한 가족의 유랑과 한 소리꾼의 득음이라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이 작품은 소리의 길을 따라 한국 근대의 상처를 더듬는 문학적 청취의 실험임이 드러난다. 이 텍스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듣느냐이다. 인물들은 끊임없이 길 위에서 노래하고, 그 노래는 지리적 지역(전라도 서편)의 억양과 장단을 몸에 지닌 채 관객의 귀를 겨냥한다. 듣는다는 행위가 곧 관계 맺기의 방식이 되는 순간, ‘소리’는 개인의 미학을 넘어 공동체의 윤리로 확장된다.
작품의 서사는 간단해 보인다. 소리를 생의 전부로 삼은 가장 유봉, 그의 곁에서 혹독한 수련을 견디는 송화, 그리고 어긋난 채 흩어졌다가 다시 소리로 서로의 자리를 확인하려는 동호. 그러나 이 단순성은 곧바로 질문으로 뒤집힌다. 탁월한 예술을 위해 타인의 삶과 몸을 희생시켜도 되는가. 예술의 깊이를 보장한다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고통은 어떤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이 물음은 유봉이 택한 가혹한 방식—송화의 시력을 박탈하고 한을 심어 소리를 깊게 하려는 선택—을 둘러싸고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따라서 「서편제」를 읽는 핵심은 비범한 소리의 탄생 신화를 찬미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고통이 어떻게 미학으로 번역되는지, 그 번역의 과정에서 누구의 목소리가 지워지는지를 밝혀내는 데 있다.
서편제라는 말 자체가 지역의 이름이자 양식의 이름이라는 점도 중요하다. ‘서편’은 한반도의 특정 음향 지형을 가리키며, 여기에는 억양, 발성, 장단, 방언이 한데 얽혀 있다. 작품의 소리는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장소와 몸의 기억을 매개로 산출되는 물질적 진동이다. 이 물질성은 텍스트의 문장 리듬 속에도 배어 있다. 이청준은 장단을 닮은 문장 호흡으로 독자를 끌고 가며, 구술 전통의 잔향을 지면 위에 옮긴다. 덕분에 독서는 묘하게 ‘듣는 독서’가 된다.

참고자료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