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열전
- 최초 등록일
- 2022.07.24
- 최종 저작일
- 20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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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개요
2. 가랑이 사이로 기어나가다(出胯下)
3. 소하가 달아난 한신을 쫓아간 까닭
4. 천하는 마음을 얻은 자의 몫이다
5. 싸움에 진 장수는 무용을 말하지 않는다.
6. 과욕은 화를 부른다
7.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8. 높이 나는 새가 모두 없어지면 훌륭한 활을 치운다
9. 아녀자에게 속은 것도 운명이다
본문내용
1.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개요
이 편은 작위(爵位)를 편명으로 삼은 것으로 한(漢)나라 초기의 뛰어난 군사 지휘관으로서 탁월한 업적을 이룬 한신(韓信)의 전기다. 아울러 괴통(蒯通)과 무섭(武涉) 등 한신과 관련된 인물이 덧붙여졌다. 한신은 진(秦)나라 말기 농민전쟁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로 젊었을 때는 굶기를 일삼을 정도로 가난했다. 그는 처음에 항우(項羽; B.C. 232 ~ 202)에게 먼저 의탁하려 했으나 중용되지 못했고, 후에 유방(劉邦; B.C. 246 ~ 195)에게로 달아났으나 역시 중용되지 못하다가 유방의 참모였던 소하(蕭何; ? ~ B.C. 193)의 추천으로 대장에 임명되었다. 유방은 B.C. 203년 항우의 초(楚)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초나라 수도인 팽성(彭城)으로 쳐들어갔다가 항우에게 크게 패해 달아났지만, 한신의 공으로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 뒤 한신은 군사를 이끌고 북방지역을 계속 정벌하여 위(魏), 조(趙), 제(齊), 연(燕)나라를 모두 평정함으로써 항우에 대한 전략적 포위망을 구축하고 결국 해하(垓下)에서 항우의 군대를 섬멸한다.
한신의 공이 지나치게 높아 한(漢) 고조(高祖) 유방의 지위를 위협하기에 이르자 유방은 그를 꺼리게 되었다. 그러나 한신은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유방에게 자신을 제나라 왕으로 책봉해달라고 요구하여 화를 자초한다. 항우가 죽은 뒤 한신은 초나라 왕으로 봉해졌다가 죄를 지어 회음후(淮陰侯)로 강등되고, 결국 반역을 꾀하다 멸족의 화를 당하고 말았다.
한신은 젊은 시절에 남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수모까지 겪어가며 대장군의 지위에 오르고 왕까지 되었으나, 그 특유의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것이 몰락의 화근이었다. 그가 괴통의 충고를 듣지 않은 것이나, 친구 종리매(鍾離眜)의 목을 유방에게 바치려 한 점 등 인품 면에서는 상당히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한신이 모반을 꾀하다가 파국으로 치닫게 된 점에 대해 동정과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도 스스로 겸양이 부족해 자초한 것임을 부각시키는데, 한신이 겪었던 심리적 갈등을 주변인물들과 결부시켜 세심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마천은 이 열전을 쓰기 위해 한신의 고향을 방문하고, 마을 사람들이 제공한 소재를 토대로 해서 한신의 인물상을 창조했다. 이로써 사기열전 안에서도 문학적 색채가 잘 드러나는 명편(名篇)이 탄생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