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감상] 이인성, 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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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소설은 ‘그녀’의 모습을 묘사하는데서 시작된다. 그녀가 존재하는 공간은 모든 것이 빛을 빨아먹는 거머리들이라 어둡고 축축하다. 그곳에서 그녀는 병적인 고요함을 끌고 돼지고기를 다져댄다. 그녀가 쥔 식칼의 섬뜩한 빛만이 그 빛을 빼앗기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거머리들이 그 빛만은 어쩌지 못한다. 그러한 공간에서 그녀가 무언가를 문득 응시한다. 안 쪽 창과 바깥 창 사이에 갇힌 벌 한 마리. 어느 쪽으로도 나가지 못하고 떠도는 그 벌의 가까이로 가 그녀는 어떤 얼굴 하나를 떠올린다. 벌은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어느 얼굴을 자꾸만 그려댄다. 이제 그녀를 묘사하는 집요한 시선은 그녀의 상처 안으로 조금씩 진입해 들어간다.
십년 전 돈벌러간, 혹은 그녀가 그렇게 여기고 싶어 하는 남자가 있다. 그 얼굴에 대한 그녀의 기다림은 삶의 조건이며 병이다. 그녀는 자꾸만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 그 얼굴을 그려보면서, 그리고 물빛에 차올라 방울져 움직이는 몸으로 수없이 다르게 겹쳐지는 부리부리한 눈의 얼굴들을 더듬으며 ‘저 너머’에 있는, 언젠가는 자기 앞에 서리라 믿는 그 얼굴을 다시 되뇐다.

참고자료

· 이인성.<유리창을 떠도는 벌 한마리>
· 치명적인 사랑의 실험, 이광호,『강 어귀에 섬 하나』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