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영론 감상문
- 최초 등록일
- 2020.10.27
- 최종 저작일
- 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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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강단講壇과 문단文壇의 대종장大宗匠
2. 종설겸통宗說兼通의 석전과 일본유학승 만해
3. 임제종운동의 허와 실
4. 소리없는 혁명, 교육자의 길
5. 산벽시사珊碧詩社의 주인과 서화배척당 만해
6. 시선일규詩禪一揆, 그 투명한 유산의 계보
본문내용
석전石顚 박한영. 1870년 전북 완주군 초포면에서 출생, 부친 성용聖鏞, 모친 진양 강씨, 본관 밀양 박씨, 속명 한영漢永. 법명 정호鼎鎬, 법호法號 영호映湖, 시호詩號 석전.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백파 긍선(1767-1852)에게 서증書贈한 휘호 ‘석전만암石顚曼庵'에서 시호를 물려받고 진진응(1873-1941) 장금봉(1869-1916) 화상과 함께 호남의 삼대강백으로 이름을 떨쳤다. 만해 한용운(1879-1944)과 임제종운동의 주역으로 종지수호에 앞장섰고, 고등불교강숙과 중앙학림의 강사와 중앙불교전문학교 학장으로 평생 강단講壇을 지키며 수많은 학인學人을 가르쳤다. 광복 후 조선불교중앙총무위원회 제1대 교정으로 추대되었으며, 1948년 전북 정읍 내장사 벽련암碧蓮庵에서 입적했다. 속세나이 79세 법랍法臘 60세. 석전은 학림學林의 법제자들뿐만 아니라 학계와 문단의 석학들에게도 깊은 존경을 받았던 한국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며 대종장大宗匠이었다. 만해는 『조선불교유신론』(1913)의 첨籤(교열 또는 감수)과 정선강의 채근담의 서언을 받고 세속의 전적까지 섭렵하느라 남은 힘 하나도 헛되이 버리지 않았다.涉獵俗典不遺餘力는 그에 대한 존경과 신망의 예를 갖췄으며, 흠모의 정을 담은 여러 편의 한시를 바쳤다. 또한 육당 최남선(1890-1957)은 고사에 대한 깊은 조예와 통철한 식견으로 내경과 외전을 꿰뚫어 보았다.故蘊通識淹貫內外고 상찬하면서 평생 스승으로 모셨으며, 위당 정인보(1893-1950)는 “물외에 노니는 도인은 대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본다. 物外道人多見其不知量也고 칭송하면서 스승 앞에 무릎을 조아렸다. 신석정(1907-1974)은 세간의 물욕을 먼지처럼 털어버리신 스님의 풍모는 그대로 고담한 매화가 설중雪中에 피되 허울 다 벗어버리고 두세 송이 꽃으로 짙은 향기를 던지는 것과 추호도 다름이 없었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