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와 신라 공예사에 대한 영향
- 최초 등록일
- 2020.05.19
- 최종 저작일
- 2020.05
- 13페이지/ 한컴오피스
- 가격 2,000원
소개글
"한반도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와 신라 공예사에 대한 영향"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I. 서 론
II. 본 론
II-1 . 외래문물로 부터의 고대신라의 공예사 변천
II-2. 실크로드를 통한 신라의공예사 변천
II-3. 한반도 문물교류에 있는 ‘서역상인’ 은 누구인가
II-4 아프라시압 벽화 고구려사신인가? 신라사신인가?
II-5 당, 서역적 요소가 나타나는 공예기술
III. 결 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I. 서 론
초기 신라 시대로 부터 중국 상인을 비롯한 다양한 상인들이 우리나라를 드나 들었다. 당나라 상인들이나 발해, 일본은 신라와 가까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충분히 드나들 수 있다는 추측을 내릴 수 있지만 또한, 잘 살펴보면 멀리 서역과도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 더 구체적이고 서역상인들로 부터 끼친 신라 공예기술에 대해서 주목해 보려고 한다. 서역 상인들이 우리나라에 왔었다는 것에 주목해 본다. 당시는 이동수단은 육로와 해로 였고, 항해술 역시 지금에 비한다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체계적인 지도가 갖추어 지지 않았고 거리가 가까워서 쉽게 교류가 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한반도 문물 교류 역사에서 말하는 서역의 상인들이라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이며 서역이라는 어휘 자체가 다소 애매한 면이 있다. 서역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 말인지가 아직 학자들 사이에도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한반도를 찾았던 ‘서역’의 상인이라는 집단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에 대해서 알아 보고 당, 서역상인 들에 의해 영향을 미친 신라의 문화중 공예기술 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한다.
II. 본 론
II-1 . 외래문물로 부터의 고대신라의 공예사 변천
경주는 신라초기 B.C 57년 사로국이 경주평야에 자리잡으면서 서기 935년 고려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실로 천 년 동안 수도로 자리잡은 고대도시로서 여러 차례에 걸쳐 밀려온 외래문화의 요소를 흡수하면서 신라문화를 구성하게 되었다. 사로국의 중심집단인 박, 석, 김씨가 모두 극적인 설화 속에 등장하는데, 이는 그들이 외래집단으로서 경주지방으로 유입하는 과정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이렇게 유입된 세력에 의하여 고신라문화가 정착하게 되는데, 이때의 고분군에서 나타나는 적석목곽분의 형식이 북방적인 요소라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서 알려져 있는 일이며, 그 속에 보이는 부장품 중에는 장신구 등 금제유물의 출토가 급격히 늘어나 북방 Seytho-Siberia 계의 문화요소가 신라의 토착사회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참고 자료
한정숙,「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사계절, 2002
김승희, 고대금속공예 동서양의 교류연구 조형논총, 2003
김용만, 「고구려의 발견」, 바다출판사, 1998
김리나, 「통일신라미술의 대외교섭」, 예경, 2001
이난영, 「한국고대금속공예연구」, 일지사,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