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도참설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
- 최초 등록일
- 2020.05.09
- 최종 저작일
- 20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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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지리도참설과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인종 시기 대외관계와 국내정세.
3. 묘청의 서경천도 운동의 전개와 결과.
4.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서경은 고구려 이래로 산을 베개로 삼고 하천이 띠처럼 둘러 흐르는 침산대수(枕山帶水)의 풍수지리적 조건을 갖춘 중요한 땅으로 여기던 곳이다. 이러한 서경이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커다란 발자취를 남기게 된 것은 고려 인종 때의 승려 묘청 등이 들고 나온 서경 풍수지리의 지덕설(地德說)과 뒤이어 서경 천도 중심으로 발발한 묘청의 난 때문이다. 이 시기에 서경 천도가 거론될 수 있었던 배경과 묘청의 난이 일어난 과정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인종 시기 대외관계와 국내정세.
이자겸의 난을 겪고 난 개경은 매우 어수선한 상태였다. 왕실의 위엄이 크게 손상되었으며, 동아시아의 새 강자로 등장한 금나라의 압력이 계속되고 있었다.
예종 2년(1107) 여진과의 전쟁으로 승리를 거둔 고려는 윤관으로 하여금 9성을 설치하게 하여 고려의 영토로 삼으려 했으나 여진의 계속적인 공격과 애원에 밀려 결국 9성을 돌려주었다.
참고 자료
『고려사』
『고려사절요』
박용운, 『고려시대사』, 일지사, 2008.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웅진닷컴, 2004,
이정신, 「고려의 대외관계와 묘청의 난」, 『사총』45, 고대사학회, 1996.
최창조, 「도교 및 풍수지리ㆍ도참사상」, 『한국사』14, 국사편찬위원회,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