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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광종의 개혁과 근왕세력』"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외척
1) 광종대 외척세력
2) 외척들과 호족들의 관계
3. 종실(宗室)
4. 귀화한 후주인(後周人)
5. 광종의 정책과 과거제
1) 광종과 과거급제자
6. 나가며
본문내용
1. 들어가며
태조는 호족연합정책으로 정치적 안정을 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호족연합정권은 통일왕조를 이루는 데에는 유용했으나 고려가 중앙집권 국가로 발돋움하는데 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태조의 뒤를 이은 혜종과 정종 시기에 왕위 쟁탈전으로 정권이 불안정 해진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 와중에 정종의 뒤를 이어 즉위한 광종은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들은 광종의 지지 세력이 없으면 불가능 한 일이었다. 본 발제에서는 광종의 지지 세력인 외척, 종실, 귀화한 후주인, 과거합격자를 중심으로 그들이 어떤 세력이었으며 광종의 개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보려 한다.
2. 외척
1) 광종대 외척세력
태조는 중앙과 지방을 다스리기 위해 호족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방편으로 각지의 유력한 호족의 딸들과 혼인하는 혼인정책을 사용하였고 유력호족들을 매개로 하여 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29명의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을 근친결혼 시키게 되는데, 이는 자녀들이 유력한 가문과 결혼하여 나타나게 되는 왕실세력의 분열을 막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광종의 모후인 신명순성왕후 유씨(神明順成王后 劉氏)의 가문인 충주 유씨는 유긍달(劉兢達)을 시작으로 중앙정계에 진출 하였다. 태조 대에는 유권열(劉權說)이 정계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특히 유권열은 왕건에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던 명주의 김순식(金順式)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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