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도시와 국토 중간과제 - 전라남도 나주시 개발방안
- 최초 등록일
- 2019.09.18
- 최종 저작일
- 20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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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환경적으로는 토지가 넓고 비옥하며 기후는 온화하여 농업에 적합하고, 지역적으로는 예로부터 쌀, 누에고치, 면화 등의 특산물로 유명해서 삼백지방이라고도 불렸던 도시가 있다. 바로 전라남도 나주시이다. 현재 나주시는 성장촉진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이지만, 사실 한국 역사에서 봤을 때 현재처럼 저발전된 도시가 아니었다. 먼저, 삼국시대 전에는 세력이 강했던 삼한 중 하나인 마한의 중심지로 추정되고, 그 후 통일신라 초기에는 전남지역 전체를 관리하는 치소가 되기도 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고려 왕건의 거점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또한, 10세기에는 전국 12개 목 중 하나인 나주목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였다. 왕건의 적통을 이어받은 혜종의 출신지이기도 하였고, 혜종 사후에는 현종이 고려-거란 전쟁 당시 피난을 간 도시가 나주이기도 하였다. 1018년, 현종이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전라도라는 광역도를 만들 만큼 나주는 당시 중심적인 도시였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도 남부 행정의 중심지였으며, 전라도에서 나주보다 큰 도시가 전주밖에 없었을 정도로 이 당시에도 전라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도시였다. 갑오개혁 당시 전국의 행정구역을 23부제로 개편하려고 시도햇을 당시 23개의 부중 하나가 나주부였다는 것을 보면 그 당시 나주의 위세를 알 수 있다. 이렇게 나주가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지리적 특성 때문이었다. 한국 4대강 중의 하나인 영산강을 양분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했고, 그 유역에는 나주평야가 전개되어 농업 생산력 역시도 굉장히 뛰어났다. 이런 나주가 몰락했던 것은 의병 봉기 당시 나주 관찰사가 광주로 피신한 후 그곳에 쭉 상주해 처소를 두었고, 그 후 원래 나주가 받아야 할 혜택들을 광주가 받으면서 자연스레 광주가 전라남도의 중심지가 된 것이다. 그 후로 자연스럽게 광주는 나주시의 세력을 흡수했고, 나주의 몰락이 서서히 진행되었다. 후에 나주는 2009~2010년에 인구수가 10만 미만으로 떨어지는 사태도 발생하고, 결국 공식적으로 성장촉진지역에 선정되기까지 한다. 그렇다면 나주시를 개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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