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 춘향이 마음
- 최초 등록일
- 2018.01.21
- 최종 저작일
- 20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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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시인의 무늬, 무늬의 시인
2. 춘향의 물빛
3. 죽음의 물빛
4. 가난의 물빛
5. 사람의 물빛
본문내용
시인에도 여러 가지 무늬가 있다.
목울대에 핏대를 세우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쓸쓸히 방 안 한 구석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인도 있는가 하면, 일렁이는 마음의 물결을 그려내는 시인도 있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김영랑의 시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면모를 보여 준다. 우리의 현대시사에서 시의 기능과 형식을 확대하는 실험이 끊임없이 존재했고 그에 의해 현대시가 한층 풍성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시의 범주가 넓어졌다 하더라도, 김영랑의 시와 같이, 마음의 일렁이는 물결에 대해 노래한 시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으며 또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전통적 서정시는 문학을 문학 자체로 의미 있는 것으로 본다. 이러한 문학관에 대한 반론과 그에 따른 갈등은 동아시아의 유교 전통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며, 우리의 현대시사에서는 1920~30년대의 계급 문학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다.
즉, 형식이 투박하더라도 내용이 진실한 것이 진정한 문학이라는 것이다.
「도산십이곡」의 이황과 「우리 오빠와 화로」의 임화―초기의 경향시보다 문학적 형상성이 뛰어났다고 볼 수는 있지만―가 그 대표적인 작가들일 것이다.
한편 현대로 들어서면서 전통적 서정시는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면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김영랑이 있기에 김영랑이 아닌 시인이 존재하며, 이상이 있기에 이상이 아닌 시인이 존재한다.
차이는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시사는 이러한 차이에서 여러 겹의 무늬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학에는 여러 기능이 있고, 그 중에 미적 기능에 절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시인들을 ‘무늬의 시인’이라 할 수 있을 때, ‘무늬의 시인’은 여전히 의미 있는 시인들이다.
참고 자료
박재삼, 『박재삼 시전집 1』, 민음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