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령왕릉의 건축은 남조의 영향을 받았지만 백제만의 것을 가미하여 완성이 되었고, 미륵사의 경우엔 목탑 구조를 석탑에 가미하여 만들었고, 그 크기와 면적 역시 최고였다. 그리고 백제 대향로는 백제의 종교와 세공 그리고 백제의 악(樂)을 알 수 있어 백제의 현(絃)에 대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삼국사기의 기록으로 일본에 문물을 전파 하는 등 백제문화의 우수성과 국제성을 나타내고 있는 사료 및 유물 유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정작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이러한 무령왕릉의 기와, 미륵사지 석탑, 백제 대향로, 왕인박사는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불가능하고 발전 또한 없다는 사실이다. 바로 백제의 교육제도이다.
<중 략>
『三國史記』를 보면 近肖古王 29년 (364년)“ 고기(古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백제는 나라를 창건한 이래 문자로 일[事]을 기록함이 없었다. 이때에 이르러 박사(博士) 고흥(高興)을 얻어 비로소 서기(書記)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고흥은 일찍이 다른 책에는 나타나지 않아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또한 성왕19년 (541년)에, 왕께서 사신을 양나라로 파견하여 조공하고, 겸하여 글을 보내 모시박사(毛詩博士)와 열반(涅槃) 등의 경의(經議)와 아울러 공장(工匠), 화사(畫師) 등을 청하니, 이 청을 받아 주었다.
<중 략>
고구려와 백제의 연관성은 백제의 건국신화에서 나온다. 같은 부여에서 시작된 것을 이야기하며, 그 세계(世系)를 성씨로 사용한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양서』백제전에 나오는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와 백제는 언어와 복식이 같다 하였으므로 두 나라의 문화적 유사성이 많이 날 것이다. 교육제도의 내용 또한 고구려와 백제는 유사성과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기에 암묵적 동의로 백제와 고구려의 교육제도는 같을 것이라 말하고, 추측한다. 그만큼 유사한 기록이 곳곳에서 나온다는 이야기가 된다. 대표적인 예가 박사제도라고 할 것이다. 백제에 경우 왕인박사 기록이 나왔다면, 고구려의 경우 태학박사 이문진이라는 인물이 나온다.
· 공병석, 1999, 「예기를 통해 본 중국고대의 유가교육제도와 교학이론」, 『동방한문학』 17, 동방한문학회
· 권태원 저, 2004, 『백제의 의복과 장신구』, 주류성
· 근통호일(Kondo Ko Ichi), 2005, 「백제시기의 효사상 수용과 그 의의」, 『백제연구』 42,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김경식 저, 2006, 『중국교육전개사』, 문음사
· 김기섭 저, 2000, 『백제와 근초고왕』, 학연문화사
· 김기섭 저, 2006, 『사료를 보니 백제가 보인다 (국내편)』, 주류성
· 김동화, 1962, 「백제시대의 불교사상」, 『아세아연구』 5,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 김두진 저, 2006, 『백제의 정신세계』, 주류성
· 김상근, 1995, 「당대의 중국종교와 그 교육제도」, 『중국연구』 16, 한국 외국어대학교 중국연구소
· 김익수, 2009, 「高句麗의 孝思想 정립과 民族敎育의 主體性」, 『청소년과 효문화(구 한국의 청소년문화)』 14, 한국청소년효문화학회(구 한국청소년문화학회), 28쪽
· 손명조 저, 2008, 『백제의 철기문화』, 주류성
· 신형식 저, 2005, 『백제의 대외관계』, 주류성
· 양기석, 2009,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국제성」, 『백제문화』 40,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왕괴위(Wang Goe Wi), 1995, 「위진 사회와 사상 : 언어, 문학, 사상, 정치, 종교 : 위진 남북조 사서에 보이는 어료의 가치에 대한 견해」, 『아시아문화』 11,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 유남상, 1975, 「백제유학의 기반과 본질 탐구를 위한 시도」, 『백제연구』 6,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유남상, 1982, 「백제사상의 연구」, 『백제연구』 별책,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이왕기 저, 2006, 『백제 사찰건축의 조형과 기술』, 주류성
· 임창순, 1983, 「백제의 한문문화」, 『백제연구』 14,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장삼덕 저, 2003, 『한국교육사』, 동문사
· 정재영, 2003, 「백제의 문자생활」, 『구결연구』 11, 구결학회
· 정재윤 저, 2007, 『사료를 보니 백제가 보인다 (국외편)』, 주류성
· 조종업, 1975, 「백제시대 한문학의 경향에 대하여」, 『백제연구』 6,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증일민(Yat Man Tsang), 1990, 「위진 남북조적 학풍 - 유학적 반탄」, 『중국학보』 30, 한국중국학회
· 진상승(Shang Sheng Chen), 1996, 「분열 시대의 외교경쟁 - 위진남북조 시기 중한관계 술평」, 『동아연구』 32,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
· 한승(Sheng Han), 위존성, 「남북조여 백제정치 문화 관계적 연변」, 『백제연구』 26, 충남대학교 백제연구소
· 홍윤식, 1985, 「삼국시대의 불교수용과 사회발전의 제문제」, 『마한백제문화』 8,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