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조선 전기 중앙통치체제의 성립
- 최초 등록일
- 2002.12.04
- 최종 저작일
- 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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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시대 정치와 사회 발표문입니다.
목차
1. 왕조의 건국과 도평의사사체제의 성립
2. 태종대의 통치체제 개혁과 그 의의
① 도평의사사·중추원의 해체와 의정부의 신설
② 문하부의 혁파
③ 육조의 정치적 기능강화
④ 의정부 서사권의 축소
⑤ 육조직계제의 성립
3. 성종대의 유교적 통치체제 확립
① 세조의 집권과 훈구대신에 의한 권력집중
② 유교적 정치이념의 확대와 사림정치의 시작
본문내용
1. 왕조의 건국과 도평의사사체제의 성립
조선왕조가 건국된 직후 반포된 신왕조의 관제는 육조의 역할을 비롯하여 여러 기구의 기능을 명시하였지만, 도평의사사를 비롯하여 문하부·삼사·중추원이 국가권력의 핵심기구가 되었다. 문하부는 국가의 일반 행정업무를 총괄하고, 삼사는 재정을 담당하며, 중추원은 왕명의 출납과 군사에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였다. 비록 관제에서 육조를 두고 거기에 국가의 여러기능을 분산시킨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 육조의 기능은 무시되고 문하부·삼사·중추원에 모든 업무가 집중되어 있었다.
태조 원년의 관제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도평의사사(도당)였다. 도평의사사는 그 구체적인 업무가 무엇인지 전혀 명시되지 않았으며, 그에 전속된 관리가 없었다는 점, 문하부·삼사·중추원의 고위관리들이 도당의 직책을 겸하도록 되었던 것으로 보아 건국 직후 조선왕조의 최고위 인사들이 모여 국가의 중대사를 의논하는 곳이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 통치체제의 기본골격을 그대로 본받은 것이었다. 고려말부터 여러 가지의 개혁을 주도했던 조선왕조의 주역들이 기본적인 통치제도를 입안하는 데 전혀 개혁의지를 내세우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제도개혁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조선왕조의 건국에 공로가 있는 인사들을 새로운 체제 속에 흡수해야 하는 문제로 인해, 수십 명에 달하는 고위인사들을 도당에 참여시켜 나라의 일을 의논하게 함으로써 일단은 왕조건국 직후에 있을 수 있는 심각한 권력투쟁을 방지할 수 있었다.
참고 자료
박영규,『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들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