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원건축] 병산서원
- 최초 등록일
- 2002.11.30
- 최종 저작일
- 20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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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병산서원의 입지
*건축적 특징
*세부적 특징
본문내용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모태는 풍악서당(豊岳書堂)으로 고려 때부터 안동부 풍산현에 있었는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고장에 왔을 때 면학하는 유생들을 가상히여겨 내려준 토지 8백 두락을 받기도 했다. 조선조인 1572년에 류성룡이 지금의 장소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병화로 불에 탔으나 광해군 2년(1610)에 류성룡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를 중심으로 한 사림에서 서애의 업적과 학덕을 추모하여 사묘인 존덕사를 짓고 향사하면서 서원이 되었다. '병산서원'(屛山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은 것은 철종 14년(1863)의 일이며 1868년에 대원군이 대대적으로 서원을 정리할 때에 폐철되지 않고 남은 47곳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사적 제260호로 지정되어 있는 병산서원의 사적지 면적은 6,825평에 이른다. 건물과 건물을 둘러싼 담장과 그 주위를 통틀어 그러하다. 그러나 병산서원이 시야로 누리는 땅과 강과 하늘이 어찌 6천 평에 한정되랴. 보이는 모든 풍광을 병산서원은 다 끌어안고 있으니 그것이 우리가 이곳을 찾는 까닭의 하나이다. 병산서원은 서원 설립의 역사에서 보면, 초창기인 16세기 초반도 아니고 남설기인 18세기 이후도 아닌 17세기 초반에 지어졌다. 서원이라는 사설교육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이후에 건립된 서원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병산서원의 배치나 구성은 더할 것도 없고 덜할 것도 없는 서원의 전형을 보여준다.
참고 자료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