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산서원답사보고서
- 최초 등록일
- 2012.05.29
- 최종 저작일
- 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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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옥산서원답사보고서
목차
1.서론
2.본론
(1) 우리나라 교육제도와 서원의 형성
(2) 서원의 유래
(3) 서원의 시초
(4) 서원의 역사
(5) 서원의 역할
①공부하는 곳(사립대학)
②선현을 모시는 곳(사당)
③향촌사회의 도서관
(6) 서원의 폐단
2-1.玉山書院(옥산서원)
(1) 역락문(亦樂門)
(2) 변루(진입공간)
(3) 동서 양재(암수재·민구재)
(4) 구인당(강학공간)
(5) 체인묘(제향 공간)
3.결론-답사를 다녀와서
4.참고문헌
본문내용
이번 레포트 주제인 서원과 향교답사를 위해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 옥산서원을 가기러 했다. 경주에 위치해서 그렇게 멀지도 않고 서원으로도 괜찬은 곳이라는 추천을 받았기에 경주로 답사를 떠나게 되었다.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 큰 공헌을 한 회재 이언적 선생의 자취를 따라가 보기로 마음먹고 떠난 답사였다. 서원으로 향하는 길이 무척이나 인상 깊어 더욱 부푼 맘으로 가게 되었다. 답사기록에 앞서, 우리나라 서원의 역사와 유래, 역할등을 알아보기로 한다.
1.서론
우리나라에는 지금의 대학교의 모태가 되는 향교와 서원이라는 것이 존재했다.
서원이란 일종의 사립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서원에는 학생과 선생이 있고 유학의 경전이라는 전문 분야를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서원에도 항상 사당이 있다. 사당 또는 사묘는 돌아가신 이들의 위패를 봉안(모셔두고)하고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유교의 성전이다. 그렇다면 서원은 교육시설과 종교시설이 결합된 건축이라 할 수 있다.
왜 학교 안에 특정 선현을 모셔야 할까? 선현의 학덕과 위대한 유훈을 하나의 모범으로 받들면 후학들을 계도하고 학문을 연마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초창기에 서원을 설립한 주체들은 모두 사림파였고, 서원에 봉안된 인물들도 대부분 사림파의 선구적 위인들이었다. 사림파의 뿌리는 고려 말기에 새로운 사회 주도 세력으로 등장한 사대부 계층이다. 사대부계층이 분리되면서 숲 속에서 글만 읽는 절의파 계열을 일컬어 `사림(士林)`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우여곡절 끝에 조선 사회의 정치 사상적 주역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6세기로, 자신들의 향리에서 경제적 기반을 잡아가는 동시에 여론 주도층으로 사회적 입지를 굳혔다. 향촌 교화와 장자상속제, 가부장제, 사림파의 형성 등은 별개의 사실들이 아니라 모두 성리학의 수용과 실현이라는 거대한 구조 속에 서로 얽혀 있는 현상들이고, 그 구조의 핵심에 서원이라는 건축공간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서원은 성리학의 교육기관인 동시에 종교성전이고, 더 나아가 향촌 교화와 세력화라는 사림들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정치적 거점이기도 하였다.
성리학적 정신과 서원 건축의 관계는 우주와 인간, 자연과 인간의 메커니즘을 동일한 체계로 파악하려 하며, 인간의 이성과 관념으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천인합일(하늘의 뜻과 인간의 뜻이 하나가 됨을 의미) 정신은 이론과 행동, 관념과 현실, 마음과 몸을 일치화하려는 특유의 형이상학으로 발전하였다.
참고 자료
경주시청 홈페이지
관광진흥공사 홈페이지
한국의 서원 -최완기. 빛깔있는 책들
한국의 서원과 학맥연구 -경기대학교, 국학자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