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탈춤 처용무의 이해와 감상
- 최초 등록일
- 2009.12.07
- 최종 저작일
- 20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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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신라 때부터 있어왔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탈춤인 처용무가 얼마 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학계에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처용무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위해 구성요소와 연원에 대해 살피고, 처용과 처용무의 현대적 변용인 처용문화제와 직접 처용무 공연을 보고 와서 느낀 감상에 대해 자세히 적었습니다.
사진도 많이 첨부해 정성드려 쓴 레포트입니다, 좋은 점수 받았구요^_^ 도움되세요~
목차
1. 처용무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대표목록 등재
2. 처용무
2.1 처용
2.2처용무란?
2.3처용무의 발달
2.4. 처용탈, 처용 옷
2.5 처용무의 음악과 춤사위
2.6처용문화제
3.처용무 공연 감상
참고문헌
본문내용
처용무는 신라 말기에 시작된 이후 궁중 나례(악귀를 쫓는 의식) 또는 중국 사신의 연회 등에 추어졌으며 그 뒤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더욱 세련된 예술 형태로 발전하였다. 처용무는 신라 때에는 한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추을 추는 일인무였다고 하나 고려 초기에 연등회나 팔관회 등의 행사에서 행해졌으며, 고려 말의 기록엔 두 사람이 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조선 초기 성현의 용재총화에는 붉은 색의 가면에 검정색 옷차림과 머리에 사모를 쓰고 한 사람이 추었다는 기록이 있고, 이후 세종때에 와서 더욱 발전되고 세련되어져 지금과 같이 다섯 사람이 추는 오방 처용무로 확대되었고, 음악과 가사까지 개선되었다. 그리고 20여 년 후인 성종 때에는 더욱 발전하여 완전한 무용으로 정립되어 궁중 의식에 사용되었다.이후 궁중 나례 의식에서 학무와 연화대무와 합쳐져 악학궤범에 전해지는 학연화대처용무합설(처용무를 처음과 마지막에 추고 중간에 학무와 연화대무 넣어서 춤)로 발전되었는데, 악학궤범에는 처용의 얼굴 그림과 처용무를 추는 방법과 노래 가사, 처용탈 제작 등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처용무는 조선 말까지 궁중의 행사 때마다 행해졌으나 일제 침략으로 1900년대부터 30년간 단절됐다가 1930년 순종 황제 탄신 기념 행사 때 공연한것이 조선 왕조에서의 마지막 처용무 공연이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1930년대부터 광복 때까지 옛날 왕궁의 아악부 출신이던 김녕제, 함화진, 이수경이 젊은 악사들에게 악학궤범의 기록에 따라 처용무를 가르치면서 명맥을 이어갔다. 그리고 광복 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맥을 이어받아 오늘날까지 전수되어 왔다.
얼마 전 처용무가 위의 다른 무형유산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는 기쁜 일이 일어났다. 국 내,외적으로 처용무의 뛰어남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우리나라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처용무에 관심이 생겨 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린 이 대표목록 등재를 기념하는 기념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
참고 자료
단행본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 , 화산문화, 2000 , 이홍구
<춤, 탈, 마당, 몸, 미학공부집> 민속원, 2009 ,채희완
논문
<처용무의 시대적 변천과정> 논문 ,상명대 교육대학원, 2003, 손혜정
<白山學報> 제83호 pp.297-322, 2009, 이종숙
공연 팜플렛
처용 http://cheyong.culturecontent.com/
인터넷 뉴스 SBS NEWS 2009 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