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특강 - 제 11장 한국의 상공업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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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 자료는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에서 내놓은 `한국사특강-개정신판`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제 2부 주제로 본 한국사` 중 `제 11장 한국의 상공업`을 간략히 정리 후 각 목차별로 본인의 생각을 적어넣었다. 이 자료를 접한 사람의 의견과는 상당한 혹은 작은 차이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史觀은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면 좋겠다.목차
1. 조선시대 상업의 조건2. 조선후기 상업발달과 전국적 시장권의 형성
3. 도시의 성장과 도시문화의 발흥
4. 개항기의 상공업
5. 일제 강점기의 상공업
본문내용
3. 도시의 성장과 도시문화의 발흥1) 한양 - 왕도(王都)에서 상업도시로
(1) 한양의 기능
․10만 명의 주민이 거주할 수 있도록 건설된 계획도시
․군사, 행정, 정치의 중심도시
- 왕과 종친, 고위관료들이 거주하는 도성으로 둘러싸인 왕도
․건설물 : 종묘와 사직, 궁궐과 각종 관청, 도성, 시전행랑 등
(2) 한양의 상업도시화
① 인구의 급증
․17세기 소빙기(小氷期) 기후로 인해 다수 인구가 농촌에서 유리된 현상 발생
․대부분의 유민이 한양에 정착 - 도시공간이 도성 밖으로 확대
② 도시구조 변화
․유입 인구의 증가로 인해 왕도에서 상업도시로 전환
․상가의 확대, 한양의 삼대시(三大市) 형성 - 종로, 이현(梨峴), 칠패(七牌)상가
③ 인구구성의 변화
․1638년의 인구구성 : 종실(宗室), 부마(駙馬), 사대부, 의관, 역관, 서리, 시전상인
․19세기 초의 인구구성 : 직임자(職任者), 서리, 공인(貢人), 시전상인, 군병, 상인,
수공업자, 다수의 한잡지류(閑雜之類)
④ 도시민 성격의 질적 변화
․봉건적 구속에서 탈피한 상인, 수공업자, 임노동자층이 한양 주민의 대다수 차지
2) 도시문화의 발흥 - 여항문화(閭巷文化)
(1) 도시문화의 배경
․상업도시 한양 : 화폐경제 위주의 경제활동, 경제적 이해관계가 모든 부분을 지배
․유교적 강상(綱常)명분이 점차 퇴조
(2) 여항인(閭巷人)
․18세기 상업도시 서울이 배출해 낸 새로운 인간유형
․서울의 중간계층으로서 새로운 도시문화 형성(경제활동과 인간본성을 긍정)
ex.) 기술직 중인의 일부(역관이나 외관 등), 서울 관청의 아전층,
액예(掖隸)[대전별감, 무예별감 등], 군교(軍校)집단, 시전상인 등
(3) 문화적 측면의 변화
① 문화 ․예술적 욕구의 증대와 유흥문화의 발달
② 도시민의 생활과 문화 - 행락문화 조성
․농민과 달리 시간적 여유의 향유
․생필품 관련 노동에서의 탈피
③ 유흥의 상업화 경향 강화
․서울 여항(閭巷)과 시정의 도시민적 취미와 향락 소비생활 발전
․관람오락의 발전 동력 - 인구의 증가와 도시민의 경제력
▶ 앞서 살펴본 조선시대 상업의 발달이 가져온 결과는 사람들의 생활상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들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소비시장이 확대되고, 애초에 왕도의 기능을 수행한 한양이 상업도시로 변모되기도 했다. 거주지별로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갖고 있지만 특히 한양은 현재의 신도시와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에 많은 유민들이 몰려드는 현상을 빚었다. 게다가 인구의 급증으로 인해 위성도시처럼 한양 외곽으로도 거주지가 마련되었다. 이를 보면 과거의 생활상이 지금 우리의 모습과 각별히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전에도 지적했듯이 국가가 상업억제정책을 내놓았다고 하더라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산력과 화폐경제의 발달이 나타났고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구(舊)질서가 붕괴되는 조짐을 보였다. 필자는 여가를 즐기는 여항인들에 견주어 농민층을 제시했는데, 먹고사는 데에 여유가 있는 부농층 또한 유흥문화를 등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기에 농촌보다 도시가 더 적합한 환경을 갖고 있을 뿐이며, 도농의 격차를 해소하지 못하는 한 행락문화를 즐기는 도시민과 농촌인의 편차를 좁히기 어려운 것이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