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특강 - 제 10장 지방사와 지방문화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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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본 자료는 한국사특강편찬위원회에서 내놓은 `한국사특강-개정신판`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제 2부 주제로 본 한국사` 중 `제 10장 지방사와 지방문화`를 간략히 정리 후 각 목차별로 본인의 생각을 적어넣었다. 이 자료를 접한 사람의 의견과는 상당한 혹은 작은 차이를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역사를 바라보는 史觀은 개인마다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을 반드시 염두에 두면 좋겠다.목차
1. 지방사회의 발전과 지방사 연구2. 한국 고대 지방제도와 지방문화
3. 고려의 계서제적 지방지배질서
4. 조선의 중앙집권적 군현제와 사족 중심의 향촌지배체제
5. 근 ․현대 지방사와 지방문화 발전의 영향
본문내용
제 10장 지방사와 지방문화1. 지방사회의 발전과 지방사 연구
1) 지방사회의 발전
군현(郡縣) : 조선시대에는 정치의 기본 단위이자 주민들의 정체성의 기반
조선시대 : 전국 8도 330여 개 군현에 수령을 파견
내부 사회구조의 균질성 확보, 나름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모습
풍속의 기본 단위 형성[규모 : 군현(郡縣) < 도(道)]
(1) 지방사회 정체성의 상대적 격차
신라사회 : 왕경인(王京人)과 지방민 사이의 계선(階線) 형성 - 차별대우
고려사회 : 계서제(階序制)에 따른 각 지방의 편제
- 군현의 등급과 주민들의 위상이 일치
(2) 환경에 따른 정체성의 변화
초기에는 국경(國境)을 단위로 한 정체성의 기반 형성
접촉 대상과 범위의 확대 → 정체성의 중층성(中層性) 형성
(지배 피지배 관계 형성)
(3) 중앙권력과 지방사회
2. 한국 고대 지방제도와 지방문화
1) 한국 고대 국가체(國家體)의 성립
․형태 : 우세한 부족이 장기간에 걸쳐 주변 부족을 정복 또는 연맹관계로 흡수
․기간 : 전제왕권 형성 전까지 기존의 정치적 유제(遺制)가 장기간 존속
(1) 삼국의 정치체제
① 연맹체(부체제) 단계
․연합체로서 내부에 부체제(部體制)가 강고하게 존재
․각 지방에 여러 소국(小國)과 읍락집단을 형성
․각 부족장급 세력이 독자적인 자치력을 소유 · 행사
․지배층의 합의체가 주요 정책을 결정(왕권은 미약)
․국가 통합력의 도모 : 일종의 추수감사제와 같은 제의(祭儀)가 큰 기능을 담당
② 영역국가 체제
․국왕 중심의 집권력 강화
- 부(족)장급들의 정치 · 경제적 기반을 확충하고 새로운 관등체계로 편제
- 중앙권력 참여를 위한 부(족)장세력이 왕도[왕경(王京)]로 결집
→ 중앙귀족으로 변화, 왕도의 행정구역 내에 정착
․행정조직의 구축 : 왕경과 지방 사이의 경계선이 뚜렷해짐.
2) 삼국의 왕경과 지방사회의 변화
․중심 정치세력이 장기간에 걸쳐 주변 소국과 읍락사회를 정복
- 중앙과 지방의 구분이 확연
․자치성의 문제
- 지방관이 파견되고 지방 행정구역으로 개편되면서 소국이나 읍락사회의
자치성이 소멸
- 수장층 중심의 자치성은 유지(중앙에서 지방 세력의 흡수 필요성 대두)
(1) 왕권 강화, 중앙집권체제 구축
․구지배층이 중앙귀족으로 재편, 정치 중심지로서의 왕경의 역할 중시
․왕경의 성격 : 부 연맹체의 유제를 반영, 점차 행정구역의 성격을 갖춤.
(2) 새로운 지역의 통치방식
․주요 지역에 부도(3경, 5소경 등)를 설치
․군사적 거점시에 주치(州治)를 설정 : 주치(광역 지배도시)를 통해 여타 지방을 통제
․중국식의 주군현제 채택(운영방식의 차이 존재)
- 각 단위의 도시들이 나름의 직할지 소유
(3) 지방제도의 재편 - 중앙집권화 과정의 일환
① 백제 : 6 ~ 7세기까지 전통적 정치세력과 지방문화 존재
- 중앙과 지방의 상관관계의 변화 필요
② 신라 : 통일기에 중앙집권화 추진, 9주 5소경제 등 지방제도의 일정한 진전
그러나 여전히 전통적인 왕경인 중심의 사회 운영방식 유지
(4) 신라 하대 - 왕경 중심의 사회 운영이 한계에 도달
① 골품체제의 모순 심화
․중앙(왕위 계승전 · 쟁탈전 지속)
․지방사회(초적(草賊)의 출현 등 혼란에 정착)
② 새로운 사회세력들의 출현
․구체제의 모순을 부정
․자위조직 형성(직접적인 무력 형성 또는 무장세력과 결합)
→ 후삼국시대 개막
▶ 한국 고대의 대표 국가로 뽑을 수 있는 고구려, 백제, 신라는 초창기에 연맹체제를 운영했다. 여러 부족이 서로 경쟁해서 우세한 세력으로 집중되는 구성원들이 제각기 다른 문화와 풍습을 지녔었기 때문이다. 지리적인 요인으로써 혹은 생활양식의 차이가 국가 형성의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구성원의 규모가 확대된 만큼 다양성이 묵인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앙 정치세력은 좀 더 국가의 운영체계를 견고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자각하고, 중앙과 지방의 상관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물론, 국왕은 왕권강화를 위해 행정체계를 지방사회 구석구석까지 펼치려 했지만 수장층의 자치성까지 소멸시키진 못했다. 이렇게 국왕을 비롯한 중앙 세력은 지방사회 세력을 포섭하기 위해 체제의 변화와 법적 장치를 사용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지역성(地域性)이 정치적 분위기에 쉽게 휩쓸렸을 리 만무하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도 여전히 전통을 고수하는 사회 분위기는 그 국가의 정체성과 자주성에 큰 지지력을 제공한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 고대의 초창기에 지방사회가 중앙 권력으로 흡수되기 어려웠던 점은, 부족 또는 연맹 집단이 속해 있는 지방사회 안에서 그들의 삶을 대표하는 사회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왕의 입장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왕권의 강화를 위해 회유책과 강화책을 병용(倂用)했으며 지방사회세력의 동태를 감시하는 수고로움은 감수했어야 할 일이다. 중앙집권화의 과정으로서 지방사회의 재편은 더욱 강력한 체제의 국가를 형성하기 위한 ‘지역성의 희생’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