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답사 리포트
- 최초 등록일
- 2009.04.11
- 최종 저작일
- 20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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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경원궁에서 덕수궁으로의 명칭 변화 과정과 덕수궁의 내부배치, 아관파천 이후 덕수궁으로 환궁 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위하여 노력한 고종에 관하여...
목차
1.덕수궁의 역사
2. 덕수궁의 내부
3. 덕수궁을 다녀온 소감
▶참고서적
본문내용
1.덕수궁의 역사
덕수궁 본래의 이름은 경운궁은 광해군 3년(1611)당시 시어소 또는 정릉동 행궁이라 부르던 곳에 처음으로 붙인 궁궐이름이다. 덕수궁이라는 명칭은 그 뒤 1907년부터 불린 이름이다. 당시 일본은 헤이그밀사파견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 시키고 순종을 즉위하여 그의 거처를 경운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기도록 하고 고종은 그대로 덕수궁에 머무르게 하였다. 그리고 1919년 고종은 이곳에서 사망하였다.
고종은 아과파천 이후 환궁하면서 경운궁의 규모를 키우고 대한제국을 이룩하기 위한 많은 정책을 펼친다.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으로 들어간 것은 고종의 새로운 정치를 펴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었던 것 같다 . 황제즉위, 대한제국 선포, 도시개조사업 등 근대국가가 되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주었는데 그 중에서도 덕수궁 근처의 시청 앞 광장은 도시개조사업의 일환으로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하여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방사형 도로 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력과 결과들을 보았을 때 덕수궁은 그러한 정세를 펼친 곳 이었다는 점에서 근대사회 그리고 지금의 현대사회까지 그 의미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2. 덕수궁의 내부
① 대한문
덕수궁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선 대한문을 거쳐야 한다. 사실 일반인에게는 덕수궁 돌담길은 친숙하여도 대한문은 덕수궁으로 들어가면서도 눈여겨보지 않게 된다. 대한문의 본래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 이었는데 1906년 대한문(大漢門)으로 바뀌었다. ‘한양이 창대해진다’는 뜻으로 이 역시 고종의 대한제국이 영원히 창대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대한문을 지나면 옆의 사진과 같은 길이 보이는데
참고 자료
· 김순일, 빛깔있는 책들 108『덕수궁(경운궁)』, 대원사, 1991
· 김정동, 『고종황제가 사랑한 정동과 덕수궁』, 발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