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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사마안 연구(2) - 곡성 사마안 사례 - (A Case Study of Goksung Samaahn in Joseon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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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6.04 최종저작일 20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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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전라도 사마안 연구(2) - 곡성 사마안 사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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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호남사학회
    · 수록지 정보 : 역사학연구 / 70호 / 33 ~ 64페이지
    · 저자명 : 윤희면

    초록

    곡성 사마재는 중종 32년(1537)에 건립되었다. 생원 합격한 경력이 있는 현감 김윤장이 사마재의 설립을 주도하였다. 사마안도 작성하였는데 다른 고을과는 다르게 현재 사마재에 드나드는 생원 진사만을 기재하였다. 그리하여 수령을 포함하여 모두 6명의 이름으로 곡성사마안이 작성되고 사마재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들 생원 진사들은 사마재에 모여 강신과 상호부조 등의 활동을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곡성사마재가 불타버리기 전까지 곡성사마안에 이름을 올린 생원 진사들은 곡성 신씨 이외에는 해주 오, 순흥 안, 순창 조, 금산 김, 전주 이씨 등 외가나 처가, 또는 이거, 謫居의 연고로 곡성에 입거하여 서로 婚脈을 이루면서 양반으로 터를 내린 집안들이었다.
    임진란 때 곡성 사마재는 불타버렸다. 선조 37년에 재력이 부족하여 사마안만 다시 작성하였다. 사마재의 복설 노력, 사마안의 복구는 전란으로 흐트러진 향촌사회의 질서를 다시 잡아나가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양반사족들이 선조 37년에 鄕案을 새로이 작성한 것과 같은 의도였다. 향안에 이름을 올린 10개 성관 가운데 여섯이 사마안에 이름을 올린 성관이었다.
    1755년(영조 31)에는 사마안을 새롭게 改裝하였다. 생원 진사가 연이어 합격하자 드디어 사마재가 1779년(정조 15)에 복설되기에 이르렀다. 이때 양사재도 함께 건립되었는데, 사마재가 중건되고, 양사재가 건립되는 것은 모두 양반들의 주요한 활동장소였던 향교의 기능 확대라 할 수 있고, 궁극적으로 향촌사회 변화에 대응하는 양반사족들의 보수화 노력이었다.
    선조 37년 이후 철종대까지 사마안에 이름을 올린 생원 진사는 모두 23명이다. 기존의 姓貫이 寡占을 하는 가운데 18세기 이후 새로운 성관(성주 이, 풍산 홍, 초계 정 등)이 사마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들도 곡성 고을에서 양반으로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곧 곡성 사마안은 양반들의 독점물로 유지되어 왔다.
    고종대에 12명의 생원 진사 합격자 가운데 3명만 사마안에 등재되었다. 제외된 이들은 향리나 부유한 평민들로 보이며, 이들과 사마안에 등재된 양반들과의 향전은 언제든 예견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곡성 사족들은 1882년 진사 합격자를 끝으로 사마안 등재를 중단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1918년에 吏族이 편찬한 『谷城郡誌』에는 사마안에서 제외되었던 사람들도 수록되었다. 그런데 1923년에 양반 후예들이 편찬한 『浴川續誌』에는 사마안을 그대로 轉載하고, 사마안에서 배제된 이들을 新增이라 하고 따로 수록해 놓아 아직도 반상의식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해방 이후 편찬된 『곡성군지』(1956년), 『곡성향교지』(1962년)에는 생원 진사의 합격 여부가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도 다수 수록하고 있다. 이는 자기 선조들을 빛내려는, 그리고 양반의 후예임을 주장하려는 후손들의 열망이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영어초록

    Samajae was the school where Saengwon(classics licentiate) and Chinsa(literary licentiate) got together and engaged in studying. Samajae made Samaahn in which the names of Saengwon & Chinsa were listed. By the time of 1537 when several Saengwon & Jinsa passed an examination all together, Samajae was built and Samaahn was written in Goksung county.
    Before Goksung Samajae had been burnt during Japanese invasion, Saengwon & Jinsa whose names were recorded Samaahn were Yangban clans. Saengwon & Chinsa of Goksung county tried to rebuilt Samajae but could not accomplish the goal because of lack of fund. But Samaahn was restored in 1604. In 1755 Samaahn was newly revised, and Samajae was rebuilt in 1777 because several Saengwon & Jinsa successfully passed the examinations.
    In the period of King Kojong the number of Saengwon & Chinsa who passed the exam has increased the total number of 12, but only 3 was enlisted in Samaahn. Hyangri and rich commoners passed the examinations, but their names could not be listed. Up until the end of 19th century stubbornness in regard to social status was still working in Samaahn. Yangban sajok stopped recording Samaahn after listing those who passed Jinsa exam in 1882 to prevent local conflict.
    Those who excluded in Samaahn were listed in 『Goksung Gunji』(1918) which was made by descendents of Hyangri. But Consciousness of distinction between yangban and commoners was still shown in 『Yokchonsokji』(1923) that was made by the descendents of Yangban sajok.
    Clonicles of Goksung province that were edited after the restoration of independence listed those whose passing of the exam was not clear. This fact reflected the desire of the people who wanted to claim that they were the descendents of Yangban.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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