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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明軍 逃亡兵 문제에 대한 一考 (A Study of Ming Army deserters duringthe Imji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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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등록일 2025.04.30 최종저작일 20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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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시기 明軍 逃亡兵 문제에 대한 一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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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지정보

    · 발행기관 : 인하대학교 한국학연구소
    · 수록지 정보 : 한국학연구 / 44호 / 453 ~ 484페이지
    · 저자명 : 한명기

    초록

    임진왜란 당시 명군 도망병이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은 1593년 1월, 벽제전투에서 일본군에게 패한 뒤부터였다. 異國에서의 주둔은 길어지고 보급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명군의 사기는 떨어지고 歸還 열망과 厭戰意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조선에 잔류하는 도망병은 명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1600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현안이 되었다. 도망병은 부상이나 질병 때문에 귀환을 포기한 자들, 군대에서 빚을 지고 갚을 수 없는 자들, 군대에서 죄를 진 자들, 고향이 너무 멀거나 돌아가도 먹고살 수 없는 자들 가운데서 출현했다. 복귀나 귀국을 포기하고 조선에 잔류하는 도망병이 속출했다.
    조선에 남은 도망병들은 농업, 상업, 침구술 등을 통해 생계를 꾀하는 자들이 많았다. 일부는 무리를 지어 횡행하면서 조선 官民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명군 지휘부는 도망병을 송환하라고 누차 요구했지만 조선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을 체포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고, 그들을 데려가려고 조선에 왔던 명군 委官들이 도망병들에게 뇌물을 받고 풀어주거나 부하로 삼으려 했기 때문이다. 1601년 서울에서는 위관과 도망병들의 이해 다툼 때문에 作變이 발생하기도 했다.
    조선은 특정한 도망병들을 송환하지 않고 활용하려고 했다. 무기, 화약, 毒藥 등을 만들 줄 아는 기술자들과 地理, 風水 등에 밝은 術士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전쟁을 계기로 運數, 風水 등에 예민해진 선조는 명의 술사들을 유치하는데 적극적이었다. 특히 선조가 유치했던 술사 葉靖國은 도망병들을 끌어 모아 갖가지 사단을 일으켜 선조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조선은 일본의 再侵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명군 도망병들을 활용했다. 도망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부산 일대에 배치하여 借重之計를 펼쳤던 것이었다. 조선은 도망병으로 구성된 부대를 1606년까지 유지하면서 이들은 명으로 송환 대상에서 제외하려고 시도했다.
    요컨대 임진왜란 시기 명군의 참전을 계기로 발생했던 명군 도망병들은 참으로 독특하면서도 미묘한 성격을 지녔던 존재였다.

    영어초록

    The victory of Ming army in the Pyeongyang(平壤) battle in January 1593 turned the tide of the Imjin war. However after the defeat of the following Byeokje(碧蹄) battle, Ming army adopted reconciliation strategy. Since then, the talks between Ming China and Japan with the exclusion of Choson headed for the deadlock. It was at this point that Chinese decampment soldier became a problem. A lack of supplies and a prolongation of stay in Choson after the crushing defeat in the battle compromised the strength and morale of the fighting force, but fueled an aspiration of returning home and an aversion of war.
    The Ming army deserters remaining in Choson became a major pending issue from the 1600s, where the withdrawal of Ming army started. Those who had injury or disease, those who owed a load of debt to the army, those who committed a crime in the army, or those who have no future back in their hometown were susceptible to abandon their post and run away. In this context, many of the deserters had remained in Choson.
    Many of them earned a living through agriculture, commerce and the art of acupuncture. The demand of repatriation of the deserters by the Ming military command was not easy. Arresting them was a challenging task, and the Ming officers who came to Choson to take them back home were willing to set them free in exchange of bribes, or the officers just hired the deserters as their subordinates. There was even an accident caused by a conflict of interests between a Ming officer and deserters in 1601, Seoul.
    Choson deliberately refused to repatriate some of the deserters and used their talents to make weapons, gunpowder and poison. Choson was eager to keep geomancers since King Seonjo(宣祖) became highly interested in fortune and geomancy. However, the one who were employed by King Seonjo, ended up causing some troubles by recruiting more deserters.
    Also, Choson used the deserters to prepare for Japan’s demand of reconciliation and menace of reinvasion. Its intension was to deploy troops composed of deserters to Busan(釜山) and to take advantage of them as means of “an ass in lion’s skin”. Choson maintained the troops until 1606 and tried to exclude them on the list of repatriation back to Ming.
    In short, the appearance of Ming deserters with Ming’s entry into the Imjin war had led to a very delicate and unique situation at the time.

    참고자료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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