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세사: 삼국에서 오대까지 740년의 분열과 통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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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로 보는 아시아사> 중국 중세사(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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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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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중세의 시대 구분과 특징중국 중세는 삼국에서 육조, 수당을 거쳐 오대에 이르는 740년간으로, 한제국의 멸망과 삼국의 분열로 시작된다. 이 시기는 골짜기의 시대, 천하삼분, 서진의 통일과 민족 대이동, 강남의 발전, 호마의 말발굽소리, 신군벌의 발흥, 대당제국, 중국 중세의 종말 등 8개 단계로 구분된다. 중세사회는 도처에 권력자가 존재하여 세력권을 정했으나 무질서하게 겹쳐져 있었고, 권력자의 확장욕에 의해 균형이 수시로 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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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족의 성장과 민족 대이동후한 광무제가 강족을 중원에 이주시켰으나 후한 말기에 강성해져 제국의 위협이 되었다. 서진 멸망 후 오호십육국 시대에 흉노의 한, 선비족 모용씨 등 이민족이 봉기했다. 북위 효문제는 한화 정책을 추진하여 낙양으로 천도하고 호복을 금지하며 한어 사용을 강제했으나, 이는 선비족 무장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북위의 분열을 가져왔다. 호족적 성격을 지닌 수와 당이 통일제국을 수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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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도의 발전: 구품중정제에서 과거제로위무제가 능력 위주 등용을 위해 구품중정제를 만들었으나, 진대에 이르러 '낮은 품에는 가문 좋은 사람이 없고, 높은 품에는 집안 나쁜 사람이 없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변질되어 귀족제를 견고히 지탱했다. 수와 당은 과거제를 도입하여 개인의 능력을 중시했고, 이를 통해 능력에 따른 계층 이동이 가능한 '열린 사회'가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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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지제도의 변화: 균전제에서 양세법으로북위 효문제의 균전제는 15세 이상 남자에게 노전 40무, 부인에게 20무를 지급하여 공평한 분배를 추구했다. 당은 이를 계승했으나 안사의 난 이후 원래 주거지에 사는 사람이 5% 미만으로 감소하자, 양염이 양세법을 시행하여 화폐로 세금을 징수했다. 양세법은 빈부차이에 따른 과세로 균전제를 유명무실하게 하여 지주계층의 성장을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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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중세의 시대 구분과 특징중국 중세는 일반적으로 3세기 삼국시대부터 10세기 송나라 건립까지를 의미하며, 이 시기는 정치적 분열과 통일의 반복이 특징입니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분열, 수당의 통일과 번영, 그리고 오대십국의 혼란이 순환적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 중국 문명은 내적 성숙과 외부 영향의 수용이 동시에 일어났으며, 특히 불교 전래와 도교의 발전으로 정신문화가 풍요로워졌습니다. 또한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점차 관료 중심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이는 이후 근대 중국 사회의 기초를 마련했습니다. 중세 중국은 단순한 쇠퇴기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 체제로의 전환기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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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호족의 성장과 민족 대이동호족의 성장은 중국 중세 사회 변화의 핵심 요소입니다. 한나라 말기부터 지방의 유력한 귀족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중앙 권력이 약화되었고, 이는 결국 삼국시대의 분열을 초래했습니다. 동시에 흉노, 선비, 거란 등 북방 민족의 대이동은 중국 북부에 새로운 정치 체제를 형성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민족 이동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라 문화 교류와 융합의 과정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중국 문명의 다양성을 증대시켰습니다. 호족과 민족 대이동은 중국 중세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야기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사회 질서 형성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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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제도의 발전: 구품중정제에서 과거제로구품중정제에서 과거제로의 전환은 중국 관료 체제의 혁신적 변화입니다. 구품중정제는 지방 관리의 추천에 의존하여 인재를 선발했으나, 이는 귀족 중심의 폐쇄적 체제로 변질되었습니다. 반면 과거제는 시험을 통해 신분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인물을 선발하는 개방적 제도였습니다. 이 변화는 수나라 때 본격화되어 당나라에서 완성되었으며, 중국 관료 체제의 민주화를 의미합니다. 과거제는 사회 이동성을 증대시켰고, 중앙 집권 강화에 기여했으며, 유교 경전 학습을 장려하여 문화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이는 중국 전통 사회의 가장 진보적인 제도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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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토지제도의 변화: 균전제에서 양세법으로균전제에서 양세법으로의 변화는 중국 경제 체제의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균전제는 북위 시대에 도입되어 당나라까지 시행된 제도로, 국가가 농민에게 토지를 균등하게 분배하고 세금을 거두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는 소농 중심의 안정적 사회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토지 부족으로 균전제는 점차 유명무실해졌고, 당나라 말기부터 양세법이 도입되었습니다. 양세법은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실제 소유 현황에 따라 세금을 거두는 현실적 제도였습니다. 이 변화는 토지 사유화를 촉진했고, 결과적으로 대지주 중심의 봉건 사회 심화로 이어졌습니다. 두 제도의 전환은 중국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