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2024학년도 1학기 중간과제물(한국사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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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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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구석기시대 전기에는 큰 석기 한 개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다가(뗀석기) 중기와 후기로 갈수록 주먹도끼 또는 긁개, 밀개 등의 정교한 도구를 만들어 식량을 얻었다. 중기 무렵 불을 피우는 방법을 알게 되어 불에 음식을 익혀 먹었다. 불의 사용 이후 인류의 지적 능력이 크게 발달하면서 의사소통 또한 가능해졌다. 반면 신석기시대에는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로 화살이나 창, 낚싯대 등을 만들어 식량을 구했으며 괭이, 보습 등의 농기구와 갈돌과 갈판을 만들어 식량을 채집·가공했다. 늘어난 식량을 효율적으로 운반·저장하고 음식을 가공하기 위해 토기를 발명하였다.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실을 뽑고 옷을 지어 입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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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사회의 신분제와 농민생활삼국은 중앙집권 통치조직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지배층을 여러 개의 신분으로 나누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신라의 골품제이다. 골품에는 성골과 진골, 6두품, 5두품, 4두품이 있었다. 김 씨와 박 씨 왕족이 주로 성골과 진골에 속했고, 수도 6부와 소경의 지배층은 6두품 이하의 신분에 편제되었다. 골품에 따라 관등이나 관직의 승진에 제한을 두었고, 가옥이나 수레의 크기, 의복과 그릇의 사용에 관한 것도 제한이 되는 등 사회생활이 엄격하게 규제되었다. 반면 이러한 골품제 때문에 평민은 관리로 나아갈 수 없었다. 삼국시대의 평민은 대다수가 농민이었으며 자신들이 소지한 소규모의 토지에 농사를 짓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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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 하대의 정치·사회 변동과 사상계의 변화8세기 말 96각간의 난이 일어나 혜공왕이 반란에 휩싸여 목숨을 잃고, 이후 나물왕의 먼 후손인 김양상이 왕위를 계승한 때부터의 시기를 신라 하대로 칭하고 있다. 이 시기의 무열왕계 왕권은 심히 흔들렸으며 신라 하대 155년 동안은 20명의 왕이 즉위할 정도로 왕위 계승 분쟁이 잦았다. 지방에서는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을 원망한 아들 김헌창이 난을 일으키고(822) 장보고가 살해당하는 등(841)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지방에 대한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크게 약화되어 지방 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한편 '누구나 수행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이 유행하면서 왕실과 진골 귀족, 호족의 후원을 받고 지방민의 호응을 얻으며 지방 곳곳에 선종 사찰이 세워지는 등 주된 사상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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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12세기의 다원적 국제질서와 고려의 '외왕내제'907년 당이 멸망한 뒤 송이 건국되었으나, 송보다 먼저 세워진 거란과는 대립 관계였다. 거란은 만주의 시라무룬강 유역에 국가를 세우고 발해를 멸망시킨 뒤 황하 유역의 연운 16주를 차지하고 중원으로 진출했다. 한편 고려는 건국 초부터 송과 책봉-조공 관계를 맺는 등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나 거란에 대해서는 적대적으로 일관했다. 이러한 친송·반거란 정책은 결국 거란의 고려 침략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고려는 대외적으로는 국왕으로 책봉을 받는 입장이었으나 내부적으로는 왕이 아닌 황제로 칭하는 외왕내제 체제를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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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려 후기 역사 서술과 역사 인식고려 후기에는 무신란으로 파괴된 고려 전기의 보수적인 문화를 대체하는 새로운 문화의 기운이 일어났으며 이는 역사를 정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었고, 일연은 「삼국유사」를, 이승휴는 「제왕운기」를 지었다. 이들은 단군조선을 우리 역사의 시작으로 삼음으로써 중국사와 대등한 역사체계를 구성하였다. 성리학이 유행하면서부터 이 사상은 역사에도 영향을 미쳐 민지의 「본조편년강목」, 이제현의 「사략」, 이인복·이색의 「금경록」 과 같은 사서들이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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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구석기시대에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활했으며, 간단한 도구를 사용했습니다. 반면 신석기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발달하면서 정착 생활이 가능해졌고, 토기와 같은 더 발전된 도구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러한 생활상의 변화는 인류 문명 발전의 중요한 이정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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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삼국사회의 신분제와 농민생활삼국시대의 신분제는 사회 구조를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귀족과 평민, 노비 등의 신분 구분은 당시 사회의 권력 관계와 경제 구조를 반영했습니다. 특히 농민들의 생활은 이러한 신분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습니다. 농민들은 토지와 노동력을 제공하며 국가와 지배층을 지탱했지만, 동시에 가혹한 수탈과 착취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삼국시대 신분제와 농민생활에 대한 이해는 우리나라 역사와 사회 구조의 근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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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라 하대의 정치·사회 변동과 사상계의 변화신라 하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많은 변동이 있었던 시기입니다. 왕권의 약화, 지방호족의 성장, 농민 봉기 등이 일어났고, 이는 결국 신라 통일왕국의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불교, 도교, 유교 등 다양한 사상이 유행했는데, 이는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한 반성과 새로운 이념 모색의 움직임이었습니다. 신라 하대의 정치·사회 변동과 사상계의 변화는 고려 건국의 배경이 되었으며, 이후 한국 역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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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0~12세기의 다원적 국제질서와 고려의 '외왕내제'10~12세기는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다원화된 시기였습니다. 고려는 중국의 송, 요, 금 등 여러 세력 사이에서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며 '외왕내제'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이를 통해 고려는 자주성을 지키면서도 국제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시기 동아시아의 다원적 국제질서와 고려의 대응 전략은 한국 외교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가 간 관계의 복잡성과 외교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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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고려 후기 역사 서술과 역사 인식고려 후기는 몽골 침략, 권문세족의 등장, 신진사대부의 대두 등 많은 변화가 있었던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대한 역사 서술과 인식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예를 들어 권문세족 중심의 역사 서술은 그들의 입장을 옹호하는 경향이 있었고, 신진사대부의 역사 인식은 기존 질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었습니다. 고려 후기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이해는 우리가 과거를 보는 시각을 넓히고, 현재를 바라보는 안목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