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숨어버린 내면아이 찾기
1.1. 나에 대한 믿음 깨기
올해로 어느덧 대학교 3학년이 된 나는 고등학생 때는 단지 대학만을 바라보고 3년을 보냈다. 대학이 세상의 전부인줄 알았던 소녀였다. 그렇게 원했던 대학에 입학하고 난 뒤 무서울 것이 없었다. ""졸업은 나중 일이다"" 라고 생각하며 현실을 외면했다. 그렇게 목표 없던 2년이 지났고, 22살이 된 올해 나는 우울했다. 얼마 남지 않은 졸업 뒤에 어떤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은 취업 준비를 한다며 공모전준비, 자소서 첨삭 등 하나씩 자신의 발판을 쌓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들 옆의 나는 그 모습을 외면하고 싶었다. 3학년이 되고 난 뒤, 나는 문득 저 세상 밖을 상상했다. 이상하게도 두려웠다.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나를 저 단호한 세상에 던지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을 외면하며 살아가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겨울방학에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방학 때 마다 항상 했던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하고 싶었던 활동을 하나씩 도전했다. 스쿠버다이빙, 해외여행, 조리사자격증 등을 도전했다. 나는 이 활동을 하면서 내가 행복 했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행복했다. 하지만 평생 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했었던 것만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그것은 지금까지도 나에게 가장 큰 난제로 남아있다.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은 아직, 내 자신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일까? 예전에 어떤 심리 검사를 한 경험이 있다. 고등학교 때에 했던 검사라서 또렷한 기억은 아니다. 그 검사는 아마 성격 검사로 기억한다. 검사가 끝나고, 몇 주 가 지나 검사 결과를 선생님께서 나누어 주셨다.
나의 성격에 대한 이런 저런 설명이 나와있었고, 검사 결과지 마지막 장 에는 응답에 대한 일관성 정도가 나와있었다. 그 때에 친구들이 거의 70~80%의 응답 일관성 정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40% 정도에 미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의미는 같지만 말을 조금 바꿔서 해놓은 질문들이 섞여있었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있으셨다. 같은 질문을 해도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르면 일관성 정도가 낮게 나온다고 한다.
그 때 나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검사 결과를 보고 내가 아는 나에 대해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나를 이해하는 내 믿음을 깨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것이 지금까지 이어왔다. 그래서 이번 과제에서 용기를 내어 진정한 나를 찾고, 내 자신에게 '진정한 나'를 이해시키고 싶다.
1.2. 종단분석
1.2.1. 사랑 받는 둘째 딸 되기
나의 유년시절은 굉장히 가난했다.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볼 여유도 없을 정도로 가난했다. 27살의 가진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밖에 없었던 두 남녀에게 첫째 딸아이가 생겼고, 그 후 2년 뒤에 둘째 딸로 내가 태어났다. 없는 살림에 두 딸까지 생겼던 부모님께서는 내가 3살 때부터 나를 나와 언니를 어린이 집에 맡기고 맞벌이를 하셨다. 특히 내가 유년시절 때에는 IMF가 일어났을 때였다. 때문에 더욱 어려웠던 상황일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그 당시에 웨이터, 생선장사 등 안했던 일이 없을 정도로 가정을 위해 노력하셨다. 우리 가족은 투 룸의 반지하 집에서 부모님과 언니 그리고 나, 이렇게 네 가족이 옹기종기 살았다. 열악했던 상황은 수시로 나타나는 바퀴벌레를 일상으로 여기며 살았던 그 모습이 대변해 준다. 부모님도 나의 유년시절처럼 가난하게 살아오셨다. 아버지는 외동 아들이었는데, 친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일찍이 이혼하시고 아버지는 버려진 자식과 다를 바가 없게 생활하셨다고 했다. 때문에 한창 돌봄을 받아야 할 때에 혼자 힘으로 살아가셨고, 학력은 초졸로 마치실 수 밖에 없었다. 4남매 중 막내였던 어머니는, 홀로 4남매를 키우셔야 했던 외할머니 밑에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돌봄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라셨다. 이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학력을 중졸로 마칠 수 밖에 없었다. 외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으로 어머니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에 걸릴 정도로 술을 많이 드셨다. 특히 술을 드시면 폭력적인 행동이 난무 하셨다. 딸은 자신의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난다는 이야기가 있다. 술을 좋아하는 외할아버지를 똑 닮은 남자. 나의 아버지 이다. 우리 아버지는 술을 자주 드신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아버지는 매일 저녁마다 술을 드셨다. 그리고 술을 드시면 폭언을 일삼으셨다.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나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그래서 집에서 아버지가 취해있는 모습이 정말 싫었다. 내가 7살 때쯤에는 어머니께서 경찰서로 나와 언니를 데리고 달려갔었는데, 아빠가 그 안에 있었다. 음주 후에 누군가와 몸싸움을 벌이셨다고 했다. 그 정도로 아버지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에게 참 좋지 못한 모습을 많이 보여주셨다고 느낀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도 항상 어머니께서는 아버지를 이해하려 노력하고, 돌봐주셨다. 위에서 말했듯이, 4남매 중 막내였던 어머니는 외삼촌, 이모들과 나이차이가 크다. 때문에 항상 언니오빠들에게 지고, 배려했던 모습이 아버지 에게도 적용 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었다. 매일 술을 드시고 폭언을 일삼으시는 아버지, 그 앞에서 조용히 듣고만 있는 어머니.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의 유년기는 지나갔고, 내가 8살 때에 남동생이 태어났다. 부모님이 36세에 낳으신 늦둥이 아들 이었기 때문에 아낌 없이 사랑을 주었다. 아버지께서는 남동생이 태어난 뒤에 그렇게 좋아하시던 담배도 끊으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긍정적인 측면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니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아버지는 나의 유년기 시절의 모습 그대로 다시 돌아가셨다. 부모님께서는 두 분 모두 가방끈이 짧으신 편이기 때문에 장녀였던 언니가 자신들의 배움의 한을 풀어주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언니가 원하는 학원, 물건 등 없는 살림에 모두 해주었다. 그래서 초등학생 때 까지만 해도 공부를 꽤나 잘했었고, 부모님의 사랑도 나와 남동생 보다는 언니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언니가 중학교에서 질이 좋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가출을 하고 부모님을 속상하게 할 행동을 많이 했다. 성적도 떨어졌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에게 하셨던 것처럼 언니를 이해 하려 했지만, 아버지는 정 반대였다. 언니 때문에 속상하시다며 술을 드시고는 언니에게 폭언과 폭행을 일삼으셨고, 그 행동을 말리는 나머지 가족들에게도 화를 내셨다. 그 때부터 가족이 다같이 밥을 먹게 되면 아버지께서는 술을 드시면서 또 다시 언니에게 폭언을 하셨다. 나는 아버지와 언니가 굉장히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다. N극과 N극이 만난 것처럼 서로를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이다. 언니가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하고 자신의 행동을 절제했으면 하는 생각을 했지만, 언니는 거기에 대해서 항상 가족들에게 실망감을 주었다. 그리고 언니에게 실망감을 느끼셨던 부모님께서는 언니에게 걸었던 기대를 나에게 하시기 시작하셨다. 초등학교 저학년 까지만 해도 나에게는 성적도, 숙제도 물어 봐 주신 적이 없었던 부모님이셨다. 하지만 언니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신 뒤에는 나의 성적과 학업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지셨다. 가끔 좋은 성적을 가져가면 큰 칭찬을 해주셨다. 그것이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이라고 느꼈다. 단순히 부모님의 칭찬을 듣고 싶었던 나는 더욱 공부를 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