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조영래"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들어가며
2. 전태일의 삶
2.1. 어린 시절
2.2. 평화시장 노동자로서의 삶
2.3. 바보회 조직과 활동
2.4. 바보회 해체 이후
2.5. 분신과 마지막 행동
3. 조영래와 『전태일 평전』
3.1. 조영래의 인권변호사 활동
3.2. 『전태일 평전』 집필 과정
3.3. 『전태일 평전』의 사회적 영향
4. 평화시장의 실체와 노동자들의 삶
4.1. 열악한 노동환경
4.2. 저임금과 착취
4.3. 노동자들의 삶
5. 전태일의 유산과 교훈
6.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들어가며
비록 43세의 나이로 한창 일할 나이에 세상을 떠난 조영래 변호사이지만, 그는 인권문제가 빈민, 노동문제나 시국사안과 같은 정치문제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 여성, 사회복지, 환경 등의 우리사회 모든 문제들이 포함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인식 시켜준 변호사이다.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조영래의 삶을 통해 인간에 대한 끝없는 사랑과 열정, 인간을 위한 법 정신을 배울 수 있었다. 우선 그의 생애를 간략히 소개하고, 법률구조의 관점에서 그의 활동과 업적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2. 전태일의 삶
2.1. 어린 시절
전태일은 1948년 대구에서 아버지 전상수, 어머니 이소선에게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매우 어려운 환경에서 보냈다. 전태일은 1960년 남대문초등학교를 나왔고 1963년 청옥고등학교를 다니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학업을 계속할 수 없었다. 어린 나이부터 삼발이 장사, 신문파이, 구두닦이, 손수레 뒤밀이 등의 다양한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대구에서 살다 아버지가 사업을 망하고 매일 술을 마시며 어머니에게 폭력을 가하는 가정환경에 견디지 못하고 가출을 하기도 했다. 가출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평화시장에서 '시다'로 취직하게 되었다. 전태일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도 성장하면서 행복감과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느껴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에게 매우 잔혹하고 괴로웠으며,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일찍부터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이처럼 불우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전태일은 후에 자신의 삶을 "벌레보다 못한 인생"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2.2. 평화시장 노동자로서의 삶
16살부터 평화시장에서 일하며 현실을 마주한 전태일은 어린 나이부터 절망과 좌절을 경험했다. 그는 평화시장 노동자로서 살아가면서 점점 자신의 꿈과 이상을 잃어갔다.
평화시장에 입문한 초기에 전태일은 안정된 직장생활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자신의 노력으로 가난한 부모님께 행복을 선물해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평화시장의 열악한 환경과 불합리한 처우에 그의 꿈은 점차 무너져 내렸다.
평화시장은 "내 이상의 전부"였던 전태일에게 절망과 좌절을 안겨주었다. 탁한 공기와 어두운 조명, 빽빽이 들어선 노동자들, 그리고 코를 찌르는 원단 냄새로 가득한 열악한 작업 환경이었다. 이러한 환경에 환기 장치 하나 없었으며,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했다.
임금 지불 방식 또한 매우 불공정했다. 도급제 방식으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했기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으면 반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평화시장 업주들은 저임금 기업 연합체를 구성하여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했다.
노동자들은 단지 업주들의 돈벌이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마저 잃어버리고 기계의 부품처럼 여겨졌다. 절대적으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어 나갔다.
평화시장은 전태일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지만, 동시에 절망과 좌절을 경험하게 했다. 어린 나이에 현실을 마주한 전태일은 자신의 사상을 정립해 나가며,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분투했다. 그의 불타는 열정과 헌신이 "바보회"의 시작이 되었으며, 마침내 그의 분신으로 이어졌다.
2.3. 바보회 조직과 활동
전태일은 평화시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노동자들의 착취 실태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바보회"를 조직하였다. 전태일은 아버지를 통해 근로기준법을 접하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평화시장의 노동 현실과 근로기준법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었다.
전태일은 바보회 회원들과 함께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노력하였다. 바보회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모임을 가지며 근로기준법에 대해 설명하고 회원들 간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전태일은 바보회를 통해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참혹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바보회의 활동은 쉽지 않았다. 바보회가 노동자들의 권리 향상을 위해 실태 조사를 하려 하자 업주들은 이를 알아차리고 전태일을 "위험하고 주의해야 하는 인물"로 낙인찍었다. 이처럼 평화시장 안에서 노동자들의 권리 의식을 높이고자 하는 움직임은 반사회적 행동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바보회는 해체 위...
참고 자료
1. 박상률,「인권변호사 조영래」, 1999
2. 최종고,「한국의 법률가」, 1995
3. 조영래,「전태일 평전」, 2001
4. 경향신문 88년 5월 10일자 신문
5. 조선일보 05년 9월 5일자 신문(노동자의 영원한 벗, 청계천과 함께 살아나다)
조영래 저, 「전태일 평전」 아름다운전태일(전태일기념사업회), 2020
[한국민족문화대백과] 노동운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3521&cid=46634&categoryId=46634
이덕로 (1992). 한국노동운동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당면과제. 현상과 인식, 16(12), 124-152
임송자 (2018). [반독재민주화열전] 조영래,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시대의 어둠을 밝히고 청춘을 불사르다. 내일을 여는 역사, 73, 107-119
[국립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평화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503049&searchKeywordTo=3
[국립 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도급 임금제 https://stdict.korean.go.kr/search/searchView.do?word_no=83619&searchKeywordTo=3
조영래,『전태일 평전』, 아름다운 전태일(2020), p.116 재인용
Francis Bacon, 1597
[실무노동용어사전] 근로기준법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2208836&cid=51088&categoryId=510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