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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헬레니즘 철학
1.1. 견유학파
견유학파는 자연스러운 생활을 주장하며, 인습적이고 인위적인 모든 것을 거부하였다. 그들은 모든 사람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을 자기 내부에서 함양해야 한다는 자족을 달성하는 것을 강조하였다. 음악과 미술을 인위적인 것이라 하여 경멸하였다.
견유학파의 사상은 스토아 철학을 위하여 선구적 구실을 하는 동시에 부분적인 배경을 마련하였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하였는데, 이 학파의 최초의 창조자로 알려져 있는 안티스테네스는 선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해악도 닥쳐오지 않는다고 한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받아들여 발전시켰다. 이는 인간은 자신의 능력으로 좌우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감정적 얽매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하고, 재난의 공포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외적 사물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벗어나야 하며, 타인들의 좋아하고 싫어함에 따라 좌우되는 태도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해석하였다.
견유학파는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잦은 전쟁으로 인한 쇠퇴와 알렉산더 제국의 멸망에 따라온 혼란스러웠던 사회를 보며 주변의 세상이 붕괴하거나, 혹은 개인적 정말 때문에 삶이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처방에 대하여 고민하였다. 견유학파는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 모든 인위적인 감각적 쾌락들, 즉 사회라는 것을 거부하는 데서 그리고 단순한 생활(금욕적 생활)을 하는데서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견유학파는 세상의 근본을 악이라고 보았으며, 그 악을 회피하기 위해서는 세상일에 참여하지 않는 것뿐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해답에서 알 수 있듯이 견유학파는 세상에서 선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무시하고 그것을 나 자신 안에서 찾음으로써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안티스테네스는 사람들이 어떻게 덕을 가질 수 있는가를 가르치면서 2가지 대상 범주, 즉 첫째, 개인 재산, 감각적 즐거움, 그밖의 향락 등을 포함한 외부 대상, 둘째, 진리와 인식 등을 포함한 내부 대상을 구분했다. 그는 개인이 외부 대상에서 쾌락을 얻으려는 유혹을 받을 경우 많이 참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정신이 내적 풍요를 추구하는 데 따르는 육체와 정신의 고통은 기꺼이 짊어지라고 학생들에게 권했다.
디오게네스는 철학자로 보기는 어려운 사람이지만, 너무나도 생생하게 견유학파의 태도를 드러낸 사람이었기에 견유학파의 상징처럼 되어 왔다. 그는 이 세상에서 통화와도 같이 유통되고 있는 온갖 인습을 타파하고자 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개성의 완전한 자유를 보전케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개의 생활 태도를 찬양하였는데, 개야말로 거의 아무런 부족도 느끼지 않고 있으며, 육체적 기능에 관한 거짓된 수치심, 그리고 위선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견유학파는 사회적 제도와 관습을 거부하고 자족적이고 자연적인 삶을 추구하였다. 그들은 감정, 정념, 욕구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속에서 평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였다. 견유학파의 사상은 이후 스토아학파 등에 영향을 미치며 발전하였다.
1.2. 에피쿠로스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의 전통은 쾌락주의의 윤리설을 최초로 옹호하고 나온 사상이다. 쾌락주의란 쾌락이 진정한 선이요, 그 밖의 모든 것은 적어도 가치가 있다면 쾌락을 산출함에 있어서의 그 효용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하는 설이다.
이러한 쾌락주의는 처음의 퀴레네 학파와 후의 에피쿠로스 학파의 그것과는 판이하다. 퀴레네 학파의 쾌락주의는 소크라테스의 친구인 아리스티포스가 처음 내놓았는데, 아리스티포스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이 곧 덕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는 점차 이기적인 형태로 변화하면서 결국 염세주의에 빠지게 되었다.
반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퀴레네 학파와는 달리 순간적·감각적·육체적 쾌락보다는 영원한 정신적 쾌락을 강조하였다. 이 학파의 창시자인 에피쿠로스는 마음의 안식과 쾌락을 결합함으로써 고통을 피하고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평정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이상적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공포는 정신의 안정에 위협 요소가 되며, 그중 가장 나쁜 것은 죽음에 대한 공포이다. 따라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제거되어야 한다.
에피쿠로스는 "우리가 '신처럼 자유롭기 위해서는' 행복이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아야 하고 덕으로 구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덕은 우선 '평정'으로 나타나며, 더욱 바람직한 덕은 쾌적하고 단순하며 온화한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고상한 쾌락이나 정신적 가치는 육체적 만족보다 우월하다.
에피쿠로스가 죽은 뒤 이 학파는 약 600년간 계속되었으나, 그동안 스승의 학설을 변경하거나 발전시킨 사람은 없으며, 오직 한 사람 눈에 띄는 제자로는 루크레티우스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학파는 쾌락주의라는 기치 때문에 많은 오해와 비난을 받아 오다가, 겨우 근세에 와서야 가생디가 에피쿠로스 철학을 부흥시킴으로써 로크를 통해 영국 경험론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에피쿠로스는 병과 빈한, 정치적 추방으로 인한 망명 등 불행한 초년을 겪었는데, 이러한 좌절 의식에서 비롯된 쾌락주의가 그의 학설의 기반이 되었다. 그는 평정, 즉 '아타락시아'에 있었는데 공포·고통·감정에서 해방되는 것이 그 기본이었다. 쾌락은 인간 행복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인간 정신의 평정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전제하는 경우에 한했다.
에피쿠로스는 감각적 쾌락보다는 영원한 정신적 쾌락을 강조하였다. 그는 고통을 피하고 육체적인 건강과 정신적인 평정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는 이상적 쾌락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인간의 불행의 근원이라고 보고, 이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철학을 데모크리토스의 유물론적 원자론에 기반하여 정립하였다. 그는 영혼이 순전히 물질적인 것으로, 매우 미세하고 부드러우며 둥근 원자들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원자론적 유물론에 근거하여 그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하였는데, 원자들에게 내재된 능력으로 인해 수직선을 벗어나 서로 결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에피쿠로스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도덕의 기초로서의 자유의지를 믿었다. 그는 신들은 인간의 삶에 개입하지 않으며 자연의 과정은 목적론적이라고 주장하였다. 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