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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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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생성일 2025.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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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정보

소개글

"평신도를 깨운다"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평신도를 깨운다
1.1. 요약
1.1.1.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문제점
1.1.2. 삼허 현상: 허수, 허세, 허상
1.1.3. 평신도 재발견의 필요성
1.2. 평신도 운동의 중요성
1.2.1. 교회 역사에서의 평신도의 역할
1.2.2. 평신도 운동의 시대적 요청
1.3. 평신도란 누구인가
1.3.1. 교회의 주체로서의 평신도
1.3.2. 평신도라는 용어의 왜곡된 사용
1.3.3. 잠자고 있는 평신도
1.3.4. 중요한 일에서 소외된 평신도
1.4.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
1.4.1. 교역자 신분의 의미
1.4.2. 섬김과 모범의 리더십

2. 세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2.1. 목회 철학의 정립
2.1.1. 목회 철학의 의미
2.1.2. 그동안 소홀했던 주제
2.1.3. 목회 철학이 주는 중요성
2.2. 교회란 무엇인가
2.2.1. 교회의 성경적 정의
2.2.2. 소명이 부족한 지상교회
2.2.3. 지상교회의 사도성
2.3. 전통적 교회론에 대한 도전
2.3.1. 교회론에 대한 비판들
2.3.2. 교회의 선교적 사명 간과
2.4. 교회의 사도적 본질
2.4.1. 사도성의 의미
2.4.2. 사도의 계승자로서의 교회
2.4.3. 하나님의 뜻과 교회의 소명
2.4.4. 성령과 사도성의 관계
2.5. 교회의 존재 이유
2.5.1.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
2.5.2.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존재
2.5.3. 성도를 양육하는 어머니

3. 제자도
3.1. 평신도 훈련의 전략적 가치
3.1.1. 제자의 개념에 대한 혼란
3.1.2. 제자도의 정의
3.1.3. 제자도와 교회 본질의 관계
3.2. 예수님과 그의 제자
3.2.1. 예수님의 제자 선택 이유
3.2.2. 성경에 나타난 제자 개념
3.2.3. 믿는 자와 제자의 구분
3.3. 인격적 위탁자
3.3.1. 위탁의 의미
3.3.2. 예수님의 제자가 치러야 할 대가
3.3.3. 전적 위탁의 중요성
3.4. 복음의 증인
3.4.1. 예수님의 제자의 사명
3.4.2. 성령과 제자의 내적 충동
3.4.3. 말씀의 증거
3.5. 섬기는 종
3.5.1. 예수님의 모범
3.5.2. 고백과 증거의 필요성
3.5.3. 자발적 섬김

4. 제자 훈련의 원리와 실제
4.1. 제자 훈련의 목적
4.1.1. 유의해야 할 오해
4.1.2. 왜 '훈련'이라고 하나
4.1.3. 제자 훈련의 본질적 목적
4.2. 누가 제자 훈련을 시킬 것인가
4.2.1. 교역자의 책임
4.2.2. 먼저 제자가 되어야 함
4.2.3. 올바른 목회 철학 점검
4.3.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4.3.1. 자신의 철학 나누기
4.3.2. 훈련 대상의 선택
4.3.3. 집중의 원리
4.3.4. 첫 제자반의 중요성
4.4. 무엇으로 가르칠 것인가
4.4.1. 예수님의 세 가지 훈련 내용
4.4.2. 하나님의 말씀
4.4.3. 지도자의 모범
4.4.4. 제자들의 경험
4.5. 훈련 교재의 실제
4.5.1. 복음이 살아 있는가
4.5.2. 내용의 균형
4.5.3. 말씀 적용의 강조
4.5.4. 교리적 중요성
4.5.5. 목회 철학 반영
4.5.6. 귀납적 방법
4.6. 소그룹 환경의 중요성
4.6.1. 인격적 관계 형성
4.6.2. 치유와 변화의 요소
4.6.3. 모방과 헌신의 동력
4.7. 제자 훈련이 가져올 변화
4.7.1. 교회 이미지의 갱신
4.7.2. 평신도 자아상 정립
4.7.3. 보호 목회에서 훈련 목회로
4.7.4. 유기적 관계 회복
4.7.5. 사역 분담과 지속적 성장

본문내용

1. 평신도를 깨운다
1.1. 요약
1.1.1.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문제점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과 문제점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시작하여 그 후 20~30년 동안은 한국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하였다. 복음주의 선교 기관들의 지속적인 복음화운동, 오순절 운동의 거센 열풍이 가져다 준 충격, 그리고 이와 같은 외부적인 도전에 크게 자극을 받은 교회 자체의 영적 각성 등이 그 배후에 작용하였다. 또한 정치적, 사회적 불안 요인이 교회 성장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수십 년 동안 양적 성장에만 매달렸던 한국교회는 교회가 교회의 부흥을 가로막고 있는 지경에까지 오게 되었다. 근대화 운동의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국 교회 부흥의 결과 경제적인 문제의 모습이 교회 내에도 일어나게 되었다. 부흥이나 성장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양적으로 해석하여 왔다. 물론 부흥은 양과 질을 다 포함하는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지만, 양이 질을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면 우리는 이미 기독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1.1.2. 삼허 현상: 허수, 허세, 허상

양적 성장에만 몰두한 나머지 한국교회에는 허수, 허세, 허상의 후유증이 있다.

먼저 허수는 한국 교회가 그동안 통계에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여 교회의 크기만을 강조한 것을 가리킨다. 이로 인해 목회를 '성공'이라고 하는 좁은 시각을 갖게 되었고, 대형교회만이 이상적인 것으로 보는 맹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도 소중히 여기시므로, 참 교회는 회중의 크기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 허세는 사회 각 분야에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향력이 미미한 것을 가리킨다. 믿음이 있어도 세상에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면 허세에 불과하다.

마지막으로 허상은 대부분의 평신도가 신앙과 삶을 일치시키지 못해 불신자와의 차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믿는 자는 타락한 피조물이 창조주와의 화목을 회복하는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맛을 잃은 소금이 되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처럼 양적 팽창에만 급급한 한국교회에 나타나는 허수, 허세, 허상의 문제는 성경의 원리로 돌아감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1.1.3. 평신도 재발견의 필요성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평신도가 자신의 위치를 바로 지키고 역할을 감당할 때 교회는 건강하고 부흥했다. 그러나 평신도가 잠자고 있거나 주저앉아 있는 교회는 절대로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평신도를 재발견하는 일은 지역 교회에서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소명이다.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이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성직자와 평등한 지체들이다. 그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몸에 속해 소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들어 있는 현실이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소명을 받았는지 성경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이에 잃어버린 성경적 평신도상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신도가 깨어나지 않으면 교회는 세상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집단이 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세기를 교회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평신도를 깨우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1.2. 평신도 운동의 중요성
1.2.1. 교회 역사에서의 평신도의 역할

교회 역사에서의 평신도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교회가 시작되면서 처음에는 평신도가 자기 위치를 바로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 동안 개혁의 횃불들은 거의 다 평신도의 손에 들려 있었다. 따라서 평신도가 잠자고 있거나 주저앉아 있는 교회는 절대로 건강하다고 볼 수 없다. 교회의 역사를 보면 평신도가 재구실을 하던 교회는 어두운 시대를 밝혀주는 불빛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이런 개혁과 부흥의 시대는 대개 평신도가 재기하는 때였다. 오히려 침체와 타락의 시대는 성직자들이 횡포하는 때였다. 따라서 우리가 평신도를 재발견하는 일은 어떤 선교 기관이나 국제 기구에게 떠맡길 문제가 아니다. 바로 지역 교회에서 눈물과 땀을 쏟으며 헌신하는 우리 목회자들이 짊어져야 할 시대적 소명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2.2. 평신도 운동의 시대적 요청

오늘날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평신도 운동은 20세기에 들어와 교회에 새로운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평신도가 호응적이고 능동적이며 건설적인 교회의 일원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바른 이유는 신학적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평신도는 교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바로 세우고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평신도가 소명감을 가지고 교회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시대적 요청이다.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평신도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때 진정한 개혁과 부흥이 있었다. 반면 성직자들이 교회를 좌우하면서 평신도가 소외되었을 때는 암흑기와 타락이 이어졌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평신도의 각성과 역할이 시급히 요청되고 있는 실정이다.

평신도가 침묵하고 교회에서 수동적인 존재로 머물러 있어서는 교회가 세상을 향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평신도의 능동적인 참여와 헌신이 없이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갈 수 없다. 따라서 목회자와 평신도가 협력하여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힘쓰는 것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이다.


1.3. 평신도란 누구인가
1.3.1. 교회의 주체로서의 평신도

평신도의 교회 주체성

평신도는 교회의 주체이다. 교회는 성경적으로 볼 때 하나님의 백성, 곧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들의 모임이다. 따라서 교회의 주체는 성직자가 아니라 평신도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본질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성령 안에서 동등한 권위를 부여받았다. 교회는 항상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전 백성이며 전 교회이며, 전 신자의 교제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근본적인 평등의 바탕에서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인 것이다. 또한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전혀 차이가 없다. 성령으로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라는 점에서도 둘은 구별이 되지 않는다.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는 것은 모든 신자가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모두가 서로 보살피고 사랑하며 기쁨과 감사함으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또한 신자들이 지체로서 서로 깊은 의존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상호 사역의 필연성을 전제하는 것이다.

즉, 평신도는 교회의 핵심적인 주체이며 성직자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평신도는 성령 안에서 동등한 권위를 부여받고 교회를 이루는 중요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성직자와 평신도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교회의 사명을 함께 감당한다.


1.3.2. 평신도라는 용어의 왜곡된 사용

평신도라는 용어의 본래 의미는 주님을 모신 선택받은 자, 성도 혹은 제자, 믿는 자의 공동체인 전 교회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평신도라는 말에는 교역자와 그 나머지 신자들을 갈라놓는 의미가 조금도 들어있지 않다. 모든 신자는 근본적인 평등의 바탕에서 교회요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인 것이다. 또한 성령을 모시고 있다는 점에서 성직자와 평신도는 전혀 차이가 없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모든 신자가 지체로서 다 중요하며 각자가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직자와 평신도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많은 교회에서 평신도가 잠을 자고 있는 실정이다. 엄청난 저력을 지닌 거인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어느 교회나 열심히 헌신하는 일부 평신도 그룹들이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범적인 평신도마저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 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소명을 받았고, 어떻게 준비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해 성경을 가지고 자세히 배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잔 대회의 메디슨이 말했듯이 평신도가 바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에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성경적 평신도상을 다시 회복하는 용기와 노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잠들어 있으면 그 교회는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1.3.3. 잠자고 있는 평신도

교회 내부에는 엄청난 저력을 가진 평신도 거인들이 잠들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어느 교회나 열심히 헌신하는 소수의 평신도 그룹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로 제기되는 부분은 그와 같은 탁월한 평신도의 대부분이 통상적인 봉사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소수 모범적인 평신도마저도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 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소명을 받았고, 어떻게 준비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해 성경을 가지고 자세히 배우지 못하고 있다. 로잔 대회에서 메디슨이라는 평신도는 "평신도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에 우리를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잃어버린 성경적 평신도상을 다시 회복하는 용기와 노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잠들어 있으면 그 교회는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다가오는 예측 불허의 세기를 교회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평신도를 깨우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1.3.4. 중요한 일에서 소외된 평신도

일반적으로 평신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소명을 받았고, 어떻게 준비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해 성경을 가지고 자세히 배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로잔 대회에서 메디슨이라는 평신도는 "평신도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에 우리를 참여시켜 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잠들어 있으면 그 교회는 세상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집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다가오는 예측 불허의 세기를 교회가 책임지기 위해서는 평신도를 깨우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평신도들은 자신이 교회의 주체라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 그들 대부분이 통상적인 봉사 활동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교회의 본질적인 사역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모범적인 평신도마저도 교역자의 옷자락을 받들어 주는 소극적인 시녀 역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중요한 일에서 소외된 평신도들은 자신이 누구이며, 무슨 소명을 받았고, 어떻게 준비해서 주님을 섬길 수 있는지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역할과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1.4. 교역자와 평신도의 관계
1.4.1. 교역자 신분의 의미

교역자의 신분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칼빈은 성직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면서 교역자 제도를 교회에서 교인들을 하나로 규합시키는 중요한 열쇠로, 교회를 보호하는 역할로, 주님 자신이 현림하시는 제도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성직 자체를 반대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못을 박고 있다. 그러나 교직을 절대화시켜서 그것에 도전하는 행위는 무엇이든지 정죄하는 행동은 '교역자가 무슨 필요가 있느냐' 하고 소리치는 자들의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경에는 어떤 사람을 공직에 임명하는 것 외에도 다른 경우에도 안수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안수 그 자체는 절대적인 권위가 없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수식은 하나님께서 명령한 신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공적으로 행했다는 것, 그리고 안수받을 사람을 하나님 자신이 지명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안수식이 임직받는 자를 하나님께 드리는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보았다.

교역자가 안수를 받아 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할지라도 그의 권위는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평신도를 포함하고 있는 전체 교회에 종속된 권위다. 교역자는 그가 섬기기 위해 부름받은 평신도에게 속한 사람이다. 교역자는 평신도가 소유하고 있는 제사장직을 이행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평신도를 대신해서 그 직무를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나란히 서서 그 일을 하고 있다. 교직은 모범을 보여 주는 위치라는 사실을 알아두어야 한다.


1.4.2. 섬김과 모범의 리더십

교역자는 평신도에게 주어진 특권과 책임, 그리고 기능에 대해 먼저 알아야 한다. 교역자 신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것이므로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지배와 권력의 위치가 아닌, 섬김과 모범의 리더십을 의미한다.

교역자는 예수님처럼 겸손한 종의 자세로 평신도를 섬기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평신도는 교역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교역자의 영성과 인격, 그리고 실력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므로 이를 자신 안에만 간직하지 말고 평신도에게 투자하여 그들을 세워주어야 한다.

평신도는 교역자의 공적인 사역뿐만 아니라 사적인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섬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교역자는 평신도를 존중하고 그들의 능력을 믿으며 격려해줌으로써, 평신도 스스로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를 통해 교역자와 평신도가 상호 신뢰와 존중의 관계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2. 세상으로 보냄받은 교회
2.1. 목회 철학의 정립
2.1.1. 목회 철학의 의미

목회 철학이란 교회를 움직이는 추진력이다.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온갖 종류의 좌절을 맛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교회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고 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잘 정의된 개념을 가지지 못한 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한 교회는 방법론에 의존하지 않는다. 따라서 무엇보다 급한 것은 목회 철학을 정립하는 일이다. 교회라는 주제는 우리 모두에게 매우 익숙하면서도 대단히 오해가 많은 것이다. 목회 철학이 확실하면 사람들이 미치도록 하는 힘이 있다. 제자 훈련을 할 수 있는 힘은 목회 철학에서 온다. 목회자는 자신의 철학을 가르치고 주입시킬 의무가 있다. 목회 철학이 교회 본질에 일치하면 할수록 우리는 바른 목회를 할 수 있다.


2.1.2. 그동안 소홀했던 주제

교역자는 목회를 하면서 온갖 종류의 좌절을 맛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 가지의 확고한 철학, 다시 말하면 교회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고 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잘 정의된 개념을 가지지 못한 리더십에 있다.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막연히 짐작하는 이상으로 목회 전반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교역자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의 목회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교회를 움직이는 추진력이 목회 철학이다.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 철학과 전략을 다시 한 번 검증해야 한다. 목회 철학은 제자 훈련의 존폐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2.1.3. 목회 철학이 주는 중요성

목회자는 날마다 교회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교회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의 목회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교회를 움직이는 추진력이 바로 목회 철학이다. 솔직하게 말하면 우리가 목회를 하면서 온갖 종류의 좌절을 맛보는 이유 중 하나는 한 가지의 확고한 철학, 즉 교회가 어디로 움직여야 하고 왜 움직여야 하는지에 대한 잘 정의된 개념을 가지지 못한 지도자의 리더십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강한 교회는 성경의 원리를 충실하게 따르는 데서 기대할 수 있다. 제자 훈련은 이것이 성경의 원리에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목회방법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목회자는 자신의 목회 철학과 전략을 다시 한번 검증해야 한다. 목회 철학은 제자 훈련의 존폐를 가늠하는 절대적인 잣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목회 철학은 교회를 움직이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성경적인 교회를 이루어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2. 교회란 무엇인가
2.2.1. 교회의 성경적 정의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가리키는 용어인 '에클레시아'는 "하나님의 택함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정의는 눈에 보이는 지상교회보다 보이지 않는 종말론적 교회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에 따르면 지상교회는 이미 완성된 실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상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자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다. 지상교회에는 소명이 부여되어 있으며, 이는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상교회는 단순히 택자(選者)의 모임이 아닌, 선교적 사명을 지닌 공동체인 것이다.


2.2.2. 소명이 부족한 지상교회

지상교회는 그 정의상 이미 완성된 실체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상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면서도 세상으로 보냄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소명이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교회의 정의에서 '택자(選者)의 모임'이라는 부분은 보이지 않는 종말론적 교회에 더 큰 비중이 실리고, 눈에 보이는 지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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