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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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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에세이: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관점에서 본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에 대한 내용입니다.

목차

1. 한국전쟁, 남침과 북침의 논쟁 사이에서
1.1. 문제 제기
1.2. 기존 논의 정리
1.3. 기존 논의에 대한 비평
1.4. 결론

2. 북한 정부의 제 3세계 대상 외교사 검토
2.1. 문제 제기
2.2. 관련 분야 선행연구
2.3. 냉전 시기 북한의 제 3세계 외교의 전개
2.4. 냉전 시기 북한의 제 3세계 외교 평가
2.5. 결론

3. 참고 문헌

본문내용

1. 한국전쟁, 남침과 북침의 논쟁 사이에서
1.1. 문제 제기

전통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이루어진 북한의 외교사에 대한 검토는 한반도 문제의 일환으로서 특히, '남한과의 관계성'을 중심으로 검토되었다. 즉 북한의 외교를 다루는 기존 연구들은 대부분 대한민국과의 관계 속에서 통일을 위한 외교적 유화책과 군사적 위협 전략의 병행이 이루어지는 메커니즘의 분석에 집중하였다. 이렇듯 남북 관계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북한의 외교사 연구로는 유광진(1992), 류길재(1997), 강석승(2002), 김영재(2003), 정규섭(2004), 이용주(2018), 김진하(2020) 등이 있다.
이러한 기존 연구 경향에는 북한이라는 존재가 대한민국 국가 체제를 위협하는 명확한 '주적'이자 실존하는 군사적?정치적 위협으로 간주 되어 왔으며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 등으로 인해 주기적으로 그 위험성이 현실에 실존하는 존재로서 거듭하여 인식되어 온 역사적 배경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남북 간 외교 관계를 넘어서서 자유 진영의 미국과 공산 진영의 소련, 두 패권 국가와의 외교 관계 설정 방식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진 바 있다. 미국과 소련 외에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력한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 등과의 관계가 조명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는 결국 분단된 한반도의 대치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주요 강대국과의 관계성을 조망한 것이라는 점에서 결국 '한반도 문제'의 일환으로서 북한의 외교를 수단적으로 바라본 것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제 사회에서 다양한 활로를 모색했던 북한 정권의 외교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넓은 시야에서 북한의 외교 문제를 조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를 둘러싸고 있는 핵심적인 국가이자 제 1세계 자유 진영과 제 2세계 공산 진영의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는 한?중?일?미?러(소)를 대상으로 삼았던 그간의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삼되, 냉전 시기 양대 진영에 소속되지 않고 독자노선을 표방하거나 두 진영 사이에서 기민하게 움직였던 제 3세계 국가들과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으려 활로의 다각화를 시도하였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하겠다.
이렇게 냉전 시기 국제정치 지형에서 중요한 세력 가운데 하나로 성립한 제 3세계 국가들과 북한 사이의 복합적인 외교 관계를 규명하는 것은 기존의 한반도 중심의 북한 외교 연구가 보여주지 못하는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2. 기존 논의 정리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을 둘러싼 논쟁은 한반도 분단 이후부터 지속되어 왔다. 한국전쟁 발발 직후 북한의 김일성은 이 전쟁이 남한의 선제 '북침'에 의해 시작되었음을 발표하며 자신들의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선언하였다. 이는 현재까지도 북한의 한국전쟁관으로 유지되고 있다.

반면 1970년대 이전 미국 국제정치학계를 중심으로 나타난 전통주의적 견해는 공산주의자들이 사전에 계획하여 시작한 침략전쟁으로 본다. 특히 소련의 스탈린이 전쟁 도발을 주도했다는 스탈린 주도설과 중국의 모택동 또한 가담했다는 소련-중국 공모설이 지배적인 주장이었다. 80년대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한국 학자들 또한 한국전쟁의 기원이 국제적 요인에 있다 주장하며 전쟁이 소련의 팽창주의로 인해 발발한 강대국 사이의 국제 전쟁으로 보았다.

반면 스톤, 콘데, 굽타, 커밍스 등과 같은 해외의 학자들은 전통주의를 비판하는 수정주의 시각을 통해 직접적인 침범은 북한이 먼저 하였다 치더라도 그 원인이 남한의 사전 도발에 있는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이는 '해주-옹진 지역의 부분적 북침설', 또는 '남침유도설'로 불린다.

또한 1980년대에 들어서 커밍스는 '내전설'을 주장하며 사실 한반도는 1945년 해방부터 이미 혼란스러운 상황 속 내전 상태에 있었고 이에 북이든 남이든 누가 선제 공격을 하였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수정주의 시각은 소련이 붕괴하고 1980년대 이후 공산권 국가의 비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의 남침이 객관적인 사료로 증명되자 힘을 잃게 되었다.

이후 많은 자료들은 한국전쟁이 북한의 선제적인 남침으로 발발되었다고 밝혀내고 있다. 소련의 외교 문서를 통해 북한의 김일성이 전쟁 전 2차례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하여 스탈린에게 남침 계획을 보고하고 승인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으며, 김일성이 이후 북경에서 모택동을 만나 남침 계획을 협의하였다는 점 또한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필두로 한 중국의 과도한 국가주의, 민족주의로 인한 중화주의가 역사 왜곡을 지속하면서 '6.25 전쟁의 남침 여부 논쟁'이 다시 화두로 등장하였다. 중국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의 진영 대립에 반발하며 6.25 전쟁이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전쟁이라 주장한다. 이에 동조하여 북한 역시 6.25 전쟁이 미제와 이승만 정권의 북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현재의 논쟁은 한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방 세력은 한국전쟁이 북한의 계획적인 남침으로 발발했음을, 북한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공산 세력은 미국과 남한의 공모를 통한 북침으로 발발했음을 주장하는 대립이라 할 수 있다.


1.3. 기존 논의에 대한 비평

한국전쟁의 발발 원인에 관한 논쟁은 전통주의와 수정주의 간 대립으로 이어져왔다. 전통주의는 소련의 스탈린과 중국의 모택동이 북한을 조종하여 남침하였다고 보는 반면, 수정주의는 남한의 선제 북침설을 주장한다. 이는 결국 남북한과 주변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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