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고발한 현대의 고전!
「21세기 총서 우리 공동의 미래」3 번째 시리즈 『구별짓기』. 이 책에서는 학력자본, 상징 자본, 사회관계 자본으로 구분해 각 계층별로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차별적으로 소비되는 현 사회를 비판한다. 그리고 문화를 통한 실천 특히 예술작품의 수용형태가 취향의 차별화 계기가 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1편에서는 '취향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실천의 경제'에서는 방법론적 비판과 새로운 방법론에 대한 모색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취향을 비교적 사적인 영역으로 생각해 왔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선호하며, 어떤 공간에서 편안함을 느끼는지는 개인의 성향이나 경험의 문제라고 여겼다. 물론 환경의 영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향은 느슨하고 간접적인 것이라고 판단했다. 구별짓기는 이 안일한 전제를 처음부터 끝까지 무너뜨린다. 취향은 개인의 내면에서 자라난 선택이 아니라 사회적 위치가 몸에 새긴 흔적이라는 사실을, 이 책은 집요할 정도로 반복해 보여준다.
부르디외가 제시하는 핵심 문제의식은 단순하다. 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취향을 갖게 되는가. 그리고 그 취향의 차이는 어떻게 위계로 굳어지는가.
개인의 취향이 지성과 별개로 현재 처한 ‘계급론’적인 부분에 따라서 결정될 수밖에 없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을 했다. 문화나 여가를 향유하는 계층은 일반 노동자 계급보다 돈이 훨씬 많다고 생각을 한다. 일반적인 노동을 하고 겨우 풀칠을 하는 사람은 당연히 미래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자격증이나 실용성이 높은 것들에 도전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취향에 따른 지각의 차이는 이해가 잘 되지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고상한 취미를 많이 익혀서 심지어 학식이 많은 상태라고 해도 모든 지각을 노동계급인 사람보다도 더 미학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제2장 제 2부 실천의 경계의 주요한 내용은 교육제도에 관한 것이다. 내가 부르디외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은 몇 년 전 사회학 수업에서 배웠던 아비투스의 개념 그리고 문화적 취향이 개인의 선호가 아니라 교육 또는 사회적 배경에 의해 형성된다고 설명했다 정도이다. 피상적인 느낌으로 ‘그렇구나’에서 머물고 있었던 부르디외의 주장이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은 명확해진 것 같다. 계급을 나누자면 하위 계급(예컨데 노동자와 같은)에게 교육제도가 건내는 것은 ‘희망’이다. 저자가 설명하듯 너무나 평등해보이는 교육제도가 약속하는 임시적인 사회적 정체성과 학교 이후의 노동시장의 실제적인 정체성의 괴리로 인해 불일치가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불일치는 사회계급에 따라 사뭇 다른 형태로서 표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