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동명의 영화 원작소설『스틸 앨리스』의 저자이자 하버드대 신경학박사 리사 제노바(Lisa Genova)가 기억과 망각에 관한 모든 것을 담은 뇌과학 교양서『기억의 뇌과학(Remember)』으로 한국의 독자를 만난다. 이 책에 따르면 기억이란 마치 우리가 숲을 가꾸듯이 의미 있게 여긴 것을 선택하고...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을 읽으며 나는 ‘기억’이라는 인간 존재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얼마나 복잡하고 신비로운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삶과 정체성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단순한 과학서적을 넘어서,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삶과 그 주변인들의 감정을 세밀하게 그려내며 인간애와 과학적 탐구가 어우러진 매우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저자는 하버드대에서 신경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로 자신의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던 할머니를 모티브로 한 "스틸 앨리스"라는 소설을 쓴 소설가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주인공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저자는 알츠하이머병, 외상성 뇌손상, 자폐증, 헌팅턴병 등 신경질환에 대한 전문가인데 인간이 기억하고 망각할 때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설명해주는 탁월한 작가이자 이 분야의 전문가이다. 이 책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유명 북클럽 선정 도서에도 올라 있는 경이로운 인간 기억에 대한 관찰 서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머릿말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들과 순간들이 하나로 이어져 삶의 서사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룬다고 한다. 우리는 기억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를 지각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기억 능력이 떨어지는 알츠하이머병으로 개인의 역사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는 기억이 인간다운 삶을 경험하는데 얼마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저자 본인의 할머니가 알츠하이머병으로 투병하였다고 하니 이론과 경험에 대해 제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까지 썼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을 어떻게 꺼내 쓰는지에 대해 저자가 쉽고 친절하게 이야기해 준다.
기억을 잘 하는 사람을 흔히 ‘카메라’로 찍듯이 기억한다고 표현을 하는데 저자는 모든 걸 찍어내듯이 기억을 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주의를 집중해서 본 것만 우리 뇌에 저장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겪은 모든 것을 기억을 못하는 이유는 당연히 다 기억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인지하는 것으로는 기억을 형성하기 힘들다고 했다. 사람의 천성에 따라서 기억도 다르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낙관적인 사람은 기억을 좋게 편집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나쁜 것만 뽑아서 기억을 한다고 했다. 계속 반복하는 것이 기억을 많이 하는 방법이고 주의력을 기울이는 게 답이라고 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기억하고 또 잊어버린다. 금방 둔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기도 한다. ‘업은 아기 삼년 찾는다’는 재미있는 속담도 그런 상황을 빗댄 것이다. 그런데 어떤 기억은 수십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는 어떤 것은 기억하고 또 어떤 것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 뇌가 의미 있는 것들만 기억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뇌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다. 리사 제노바의 『기억의 뇌과학』의 우리의 그런 궁금증을 한꺼번에 날려 버린다.
이 책은 기억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이러한 기억의 실체를 살핀 역작이다. 저자는 신경과학을 연구하는 학자이지만 탁월한 글 솜씨를 가진 작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저자는 ‘과학자의 눈과 시인의 귀를 가진 신경과학자’라는 칭송을 듣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기억에 대한 모든 것을 다양한 사례를 곁들여 소설 같은 문장으로 설명해준다. 저자는 기억에 대해 설명하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심각해할 필요가 없다고 다독인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금방 손에 있던 것을 어디 두었는지 모르고 찾는다면 그보다 더 답답할 데가 없지만 그것이 정상이라니 일단 마음이 놓인다. 저자는 우리가 중요한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잊어버리는 것은 뇌에 필요한 정보가 제대로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기억이건 생성되려면 반드시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이 책은 기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렇게 만들어지니 기억을 우리가 어떻게 꺼내 쓰며, 어떻게 유지해야하는지에 대해 쉽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억과 망각 모두 어떤 면에서는 과학인 동시에 예술이다. 오늘 경험하고 배운 것을 내일이면 잊을 것인가, 세세한 추억과 지식을 수십 년이 지나도록 간직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우리의 기억은 기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동시에 허점투성이인 채로 제 할 일을 하고 있다.”(22쪽)
우리 모두는 소중한 기억만큼은 오랫동안 기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뇌는 불완전하기에 망각과 기억사이를 오가며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작동한다. 디지털 기술 발달은 기억이라는 뇌기능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오히려 퇴보시키고 있다. 사소한 나쁜 생활습관은 우리의 기억력을 서서히 갉아 먹으며, 비극적인 알츠하이머병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는 뇌를 끊임없이 보살피고 기억력 강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약화되는 것은 완전히 막을 수는 없어도 늦출 수는 있다고 뇌 과학자들은 많은 연구 결과를 통해 속속 밝히고 있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사람이 부럽다. 기억력이 좋은 사람은 똑똑해 보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처럼 시험으로 인생이 판가름 나는 사회에서 기억력이 좋다는 것은 성공으로 가는 길이 남들보다 더 탄탄하게 깔려있다는 것과 같다. 사실 기억력은 수험생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필요한 능력이며, 좋으면 좋을수록 득이 되는 재능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억력을 향상시키고자 노력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다. “공부머리는 타고나야 한다.”는 말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자조적인 태도를 느낄 수 있다.
자기 머리가 공부머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준에 그친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거기에서 더 나아가면 자기학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자꾸만 잊어버리는 자신을 자책하고 멍청하다며 자기를 비하하는 사람들이 그렇다. 나도 그랬었다. 나는 뭔가를 잘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쪽이라면 평범한 사람 정도는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에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특히 역사 쪽이 그랬다. 지금도 성적표를 보면, 다른 과목은 고만고만한 가운데 역사 관련 과목은 거의 바닥을 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억법에 관심이 많아졌었다. 그 때는 ‘기억법’이라는 말이 매우 생소한 것이어서 잘 기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방법은 공부법 책에 많이 실려있었다. 하지만 음악교본을 읽는다고 모두가 음악가가 될 수는 없듯, 기억법 관련 서적을 많이 읽는다고 내 기억이 좋아지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예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렇게까지 도움을 얻은 것 같지는 않은, 애매한 느낌만 받았었다.
완전히 채워지지 않은 욕심은 사람을 자꾸 귀찮게 한다. 나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틈틈이 기억법에 대한 책을 찾고, 강의를 들었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님에도 기억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나는 그저 더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간혹 나는 사소한 건망증을 겪는다.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자주 사용하는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마다 문득 나는 나의 뇌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들곤 한다. 또한 미래에 치매로 인해 고생을 하게 될 것 같은 걱정이 앞선다. 주차할 장소나 지인의 이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생각나지 않아 가슴이 벅차오르거나 한 적이 있는 것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로 걱정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말한다. 우리는 알츠하이머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현상들이 우리가 기억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신호라고 말해주는 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