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표지글] <에쿠우스>는 실화를 토대로 하여 셰퍼가 2년 반에 걸쳐 창작한 희곡이다. 한때 영국의 법정에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던져준, 스물여섯 마리... 원래 '에쿠우스'란 말은 라틴어로 '말(馬)'이란 뜻이며 이 희곡에서는 상징적인 다의성을 담고 있다. 즉 신이라든지, 숙명의 굴레라든지, 냉혹한...
읽어 보니, 해리 포터가 빠져들었다는 그 연극
연극을 잘 알지 못하는데도 <에쿠우스>가 낯익었던 것은 2006년쯤 한 사건 때문인 것 같다. 인터넷에는 난리가 났다. ‘해리 포터’ 역할을 맡은 영화배우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해괴한 누드 연극을 찍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그게 연극 <에쿠우스>였다. 저 배우는 자신에게 박힌 ‘해리’라는 이미지에서 정말 벗어나고 싶었나 보다 하면서도 내 환상 속의 해리 포터는 그렇게 깨졌다.
작품을 읽고 나니, 당시 다니엘 래드클리프가 출연료와는 별개로 왜 하필 ‘앨런’을 하고 싶어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앨런이 부모님으로부터 욕망이 억압되어 에쿠우스를 통해 욕망을 자유로이 해소하고자 했듯이, 다니엘 래드클리프도 ‘해리 포터’라는 이미지에 자유가 억눌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앨런을 연기하면서 해리 포터로부터의 탈출구를 갈망했던 건 아닐까.
에쿠우스는 한 소년이 7마리 말들의 눈을 찌른 사건으로 시작된다. 법원은 소년에게 보호 처분을 내렸고, 정신과 의사 마틴 다이사트에게 치료를 맡긴다. 처음 마틴은 그 소년을 단순한 정신이상자로 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년이 말과 함께 느꼈던 광기와 희열, 강력한 쾌락에 공감하게 된다 한 소년에서 나아가 더 높은 차원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마틴 사이아트는 누군가를 치료할 만큼 건강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p.87 중 “의사는 정열을 파괴할 수 있지만 창조할 수는 없습니다.” 라고 말하며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구자로서 자신은 정열과 욕망을 느낄 수 없음을 슬퍼하는 마틴을 보면 그도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깨닫고 정면으로 인식하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불구적인 수치심을 아내에 대한 냉정함으로 감추지만 알런을 통해 스스로에 대한 자기인식에 이르며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 6마리의 눈을 찌른 죄목으로 재판에 회부 된 ‘알런’이라는 17세 소년을 여자 판사 헤스터가 정신과 의사 다이스트 에게 부탁한다. 알런의 이런 잔인한 행위를 하게 된 과정을 밝혀가며 과거를 회상하듯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알런은 좀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해 치료시간에 노래를 부르며 다른 짓을 하지만 다이스트의 집요한 노력끝에 알런의 정신이상 배후에 그의 부모님이 있음을 알게 된다. 어렸을 적 해변에서 놀던 알런을 기수가 말에 태워 주었는데, 알런의 아버지가 끌어내려 말에서 떨어지게 되었던 일이 있었다. 알런은 그 이후 말을 타지 않았다고 말한다. 알런도 점차 다이스트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다이스트는 말을 타던 때의 행복한 느낌과 거기서 자신을 끌어내린 아버지에 대한 증오,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 종교에 미친 어머니, 종교에 관한 이야기들을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