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선화』 이후 6년 만의 신작 경장편인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에서는 가족이라는 혈연 공동체의 족쇄에 발이 묶인 한 여성의 숨 막히고도 진저리나는 일상들이 펼쳐진다. 때론 고통스럽고 참혹하기까지 한 삶을 정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이러한 현실 직시를 통해 좀 더 나은 삶의 가능성이라는...
김이설 작가의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은 짧은 이야기로 가득 찬, 그러나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제목처럼 이 소설집은 어느 정류장에서 멈춰선 사람들, 어두운 밤을 지나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펼쳐놓는다. 이야기는 작고 일상적인 것에서 시작하지만, 끝내는 우리의 마음 어딘가를 묵직하게 건드린다. 작가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필사적으로 하루를 견디는 인물들의 삶을 그리며, “살아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묻는다.
이 책은 여러 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고, 공통적으로 ‘여성’이라는 존재가 중심에 있다. 그 여성들은 엄마이거나, 아내이거나, 딸이거나, 혹은 아무도 아닌 존재로 살아간다.
표지가 예뻐서 빌린 책이었다. 파스텔 톤의 색감이 따스했고, 낮은 건물 앞 호젓한 정류장과 그 앞을 서성이는 고양이 일러스트가 정겨웠다. 김이설이라는 이름도 그렇고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이라는 제목도 나에게는 그저 서정적으로 다가왔다. 차례에 적힌 여섯 개의 제목을 보고는 단편집이라고 마음대로 생각해버렸고 판본의 무게만큼 가벼운 내용일 거라 지레짐작했다. 한가로운 토요일 오전에 커피를 마시며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고 다 읽고 난 후 반도 못 마신 커피는 차게 식어 있었다.
‘나’는 마흔의 나이에 시를 쓴다. 온갖 공모전에 떨어지지만 그래도 쓴다. 남편의 폭력을 피해 동생이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와 같이 살게 되면서 ‘나’가 조카들 돌봄을 도맡게 된다. 자식과 손주를 부양하기 위해 동생과 늙은 부모는 돈벌이에 여념이 없다. 동생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나’를 알아봐 주고 늦깎이 대학생이 되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 유일한 사람이었기에 책임을 다해 조카들을 먹이고 씻기고 어린이집에 등원시키며 3년을 보낸다.
꿈이 있었으나 오랜 시간 그 꿈을 포기하고 살았던 여성의 자아 찾기 정도가 이 소설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의 주제가 아닐까 싶다.
많은 것을 짊어진 첫째 딸. 그것이 업보가 아닌데, 자신의 현재의 삶에 순응해 살아간다. 분명 싫었을 텐데, 적응 안 됐을 텐데 하다 보니깐 모든 것이 그녀의 일부가 됐다. 그렇다고 좋아진 건 아닐 테다.
청소와 식사 준비 등 집안일, 동생의 아이들까지 떠맡아 유치원을 보내는 일 등 정말 티 안 나게 힘든 일들의 연속. 절대 노동으로 쳐주지도 않는 이 힘든 삶 속에서 곪고 곪았던 설움은 결국 폭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