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1920년대 조선 지식인의 실존적 고뇌
김우진의 『난파』는 1926년 봄, 작가 자신이 자살하기 직전에 쓰인 작품으로서, 단순한 희곡을 넘어 한 시대 지식인 영혼의 기록이자 실존적 절규가 담긴 문학적 유서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표현주의(Expressionismus) 기법을 통해 유교적 가족 구조와 근대적 개인의식 사이에서 파멸해 가는 한 젊은 시인의 내면을 극도로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난파(難破)'는 말 그대로 배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한 개인이 전통과 근대, 동양과 서양,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좌초되는 실존적 파국을 상징한다. 작가는 독일 표현주의 희곡의 영향을 받아 사실주의적 재현을 거부하고, 대신 고도로 추상화되고 상징화된 인물들과 장면들을 통해 내면의 갈등을 외화(外化)시킨다.
제1막: 어머니와의 원초적 갈등
제1막은 커다란 조선식 집 앞마당, 흐린 달빛 아래에서 시작된다. 이 공간적 배경 자체가 이미 상징적이다. 조선식 집은 전통적 가부장제와 유교 질서를 대변하며, 흐린 달빛은 불명확하고 혼돈스러운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암시한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작품의 첫 장면에서 등장하는 어머니와 시인의 대화이다. 어머니는 유령처럼 등장하여 "내가 너를 낳고 제일 미워하는 아들아"라고 말한다. 이는 전통적인 모성애의 관념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파격적인 설정이다. 더욱이 어머니는 시인을 낳기 전에 두 형을 죽게 했으며, 시인을 불완전하게 태어나게 한 것이 자신의 의도였다고 고백한다.
여기서 어머니는 단순한 생물학적 모친이 아니라, 생명력 그 자체, 혹은 맹목적인 자연의 힘을 상징한다. 그녀는 "나는 인생의 본상, 부단한 생명력과 부단한 진화에 대한 신념이 있으면 누구든지 내 정인으로 삼는다"고 말하며, 심지어 버나드 쇼와 결혼하자는 농담까지 던진다. 이는 어머니가 개별적 인격체가 아니라 추상적 원리, 즉 생명의 의지(Wille zum Leben) 자체를 의인화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러한 어머니에게 저주와 원망을 퍼붓는다. "이 인간을 왜 이 모양으로 만들어 냈소. 당초에 그만두든지 그렇잖으면 아름답게 곱게 흠처 없게 모든 것에 꼭 들어맞도록 만들어 보지." 이 절규는 불완전한 존재로 태어난 인간의 근원적 항의이다. 시인은 완전성을 갈구하지만 불완전성 속에 던져진 존재이며, 이 간극이 그의 모든 고통의 원천이다.
난파는 1926년에 나온 김우진의 작품이다. 김우진의 ‘난파’는 현실부정과 개혁의 의지가 있으며 작가가 겪은 경험을 극에 녹아내리면서 개척자적인 정신을 표현하였다. 김우진의 ‘난파’는 표현주의적인 색을 강하게 띠고 있다. 표현주의는 의식의 흐름으로 내면에서 나오는 상징성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나타내는 리얼주의와 반대되는 미학으로 주관적인 심리와 의식구조로 다른 희극처럼 이야기의 흐름이 아닌 주인공 내면의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1926년이란 시대적 흐름에서 주인공의 내면을 표현한 희극인 점에서 놀랐으며, 내용이 난해하여 보는 이마다 해석이 다양할 수 있다. 상당히 실험적인 작품으로 최초의 표현주의 작품으로 이야기의 구성이 일관성이 없으며 무질서하고 시인이 내면의 괴로움으로 방황을 하다가 결국에는 마지막을 선택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희곡을 통해 극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희곡에서 분석자가 읽을 수 있는, 또는 재창조 될 수 있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본고는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김우진의 <난파>에 대한 분석을 쓰고자 하였다. 이에 대해 먼저 장면 나누기와 그에 따른 목표 설정을 하였으며, 각 장면의 목표설정을 통한 관통행위, 즉 초목표를 설정하였다. 또한, 이러한 작업에 있어서 극 텍스트의 수차례의 정독을 통해 상상 속, 다시 말해 영상을 그리는 내면을 통한 파노라마에서 형상화된 주어진 상황을 정리하였다. 이러한 주어진 상황은 작중 인물에 대한 이해를 가능케 하였으며, 그에 따른 인물 성격에 대한 설정을 용이하게 하였다. 또, 주어진 상황과 인물 성격에 있어서 미리 학습한 ‘표현주의’라는 양식적 특성에 참고하여 재수정 되었으며 이러한 작업은 다시 장면나누기와 목표문장을 재설정하게 하였다. 이러한 작업들이 반복 진행 되면서 주제의식이 형상화되고 이에 따라 본고가 찾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는데 본론을 통해 이러한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본론
Ⅰ. 주어진 상황: 모성으로부터 배제된 채로 가치관이 혼란된 사회 속에서 사는 시인
주어진 상황이란 한 인물에게 있어서 그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있었던 모든 일을 가리킨다. 여기서 모든 일이란, 희곡의 줄거리, 희곡의 사실들, 시대, 사건과 시간과 장소, 삶의 조건 등을 의미하는데 주어진 상황에 대한 작업은 서사적 채워 넣기 개념, 전사 쓰기와 관련한다. 서사적 채워 넣기는 텍스트가 제공하지 않는 빈 시공간을 분석자(또는 독자, 연기자, 연출자 등)가 자신의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분석자의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되는데, 주어진 상황에 대하여 인물의 대사를 통해 재구성하지만 분석자의 경험에 따라 희곡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바탕으로한 재구성이 보다 쉽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