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사르트르가 제시한 새로운 휴머니즘,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는 장 폴 사르트르가 1945년 10월 29일에 파리에서 한 강연을 정리한 책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인간의 가치와 의미, 존엄성, 미래 등 휴머니즘에 대해 반성적으로 돌아보는 일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 존재가 단순히 어떤 본성이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스스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사르트르의 주장에 깊이 끌려 들어갔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본질보다 존재가 먼저라고 말한다. 인간은 만들어지고 태어난 후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구성한다. 나는 이 말을 읽기 전까지 인간의 성격이나 행동이 어느 정도는 타고난 부분이나 사회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이런 사고를 전면적으로 부정한다. 인간은 스스로의 선택을 통해 자신을 구성하며, 선택의 책임 또한 전적으로 자신에게 귀속된다고 말한다. 이 관점을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자유와 책임이라는 단어가 단순한 윤리 개념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핵심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인간이 스스로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말의 무게를 처음으로 실감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이 본질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인간이 어떤 본성이나 목적에 의해 결정된 존재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은 태어난 이후의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만들어간다. 나는 이 생각이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책임이라는 것을 느꼈다. 본질이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그저 그것에 맞춰 살면 된다. 하지만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면, 인생의 모든 결정이 나 자신을 규정한다. 자유는 축복이면서 동시에 짐이었다.
“아이야,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니? 그야 요즘 같은 세상엔 너도 나도 가려는 게 대학이잖니.”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어머니의 조언. 그렇게 나는 수긍했고 대학의 길을 향했다. 남들처럼 열심히 공부하다가도, 여유가 되면 학비를 마련했다.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준비를 했고, 지금은 이렇게 XX 중이다. 그래, 고맙게도 나란 녀석은 한 번의 방황에도 빠지지 않고, 어엿한 대한민국 남성의 길을 잘 따라와 준 참 기특한 친구였다.
하지만 이러한 나에게도 차마 말하기 부끄러운 고민거리가 하나 있었다. 그렇다, 과연 그때의 나는 무엇에 이끌려 대학에 진학했던 걸까? 더 나은 비전, 주변의 눈초리나 부모님의 체면을 위했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저 조언에 못이긴 척 넘어갔던 걸까. 하지만 나는 씁쓸한 미소 속에 고백해본다. 그것은 어쩌면 아주 단순 했던 이유. 단지 남들도 다가는 대학이었기 때문은 아닐까.
1. 사르트르 철학에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무슨 뜻인가?
실존이란 존재하는 그 자체를 말하며 본질이란 본디부터 가지고 있는 사물 자체의 성질이나 모습을 말한다. 예를 들어 ‘책상이 여기 있음’ 책상의 실존을, ‘책상은 ~이다’는 책상의 본질이다. 사르트르는 신 존재를 부정하기 때문에 인간이 신에게 부여된다고 하는 모든 것 (본성)을 부정한다. 때문에 인간은 본디 순수 현존(無)의 상태 즉, 실존의 상태가 먼저고, 기투를 통해 규정성을 지닌 존재가 되면서 본질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실존주의 제1원칙인 주체성이다.
2. “우리는 결코 악한 것을 선택할 수 없다.”는 사르트르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인간이 선택은 다른 인간이 자신의 선택을 하는데 영향을 준다. 그래서 인간의 선택은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판단하는 인간의 이상적인 상을 제안하는 행위이며, 모든 인간을 선택함으로써 스스로를 선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