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레비는 이 책에서 강제수용소 안에서 벌어졌던 현상들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 가라앉은 자(죽은 자)와 구조된 자(살아남은 자)를 가로지는 기억과 고통, 권력 관계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다.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의 피해자이자 ‘인간성 파괴’의 희생자인 당사자가 그날의 사건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프리모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직접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1943년 아우슈비츠로 끌려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이 책은 단순한 고발이나 증언을 넘어, 수용소의 현실을 냉정하고 치밀하게 들여다본다.
수용소에서의 삶은 인간에게서 존엄과 자율성을 모두 빼앗아 갔다. 배고픔은 일상이고, 모욕은 익숙해졌다. 누군가는 빵 한 조각을 위해 친구를 속였고, 누군가는 하루 더 살기 위해 약한 자를 밀어냈다. 그런 생존의 조건에서 사람들은 더 이상 선하거나 악하다고만 평가할 수 없었다. 레비는 자신을 포함한 생존자들이 모두 이른바 “최고의 사람들”이 아니었음을 고백한다. 그곳에서 가장 정직하고 용기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타협하거나 굴복하며 버텼던 이들이었다. 이런 깨달음은 레비에게 오래도록 씻기지 않는 부끄러움으로 남았다.
수용소 안의 시간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시간이었다. 나치의 목적은 단지 노동 착취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부심과 연대감을 무너뜨리는 데 있었다. 레비는 굶주림에 시달리며 한 조각 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때 그는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고 말한다.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레비는 죄책감을 느낀다. 그는 “더 현명하고, 더 관대하고, 더 자격 있는 사람들 대신 내가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한다. 그런 고백은 이 책을 단순한 생존담이 아닌, 깊은 성찰의 기록으로 만든다.
인류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전쟁은 바로 제 2차 세계 대전이다.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을 넘어서 전 세계가 싸웠으며 국가들의 이념과 이익을 두고 전쟁을 치렀다. 그리고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무기들과 암호체계가 등장하였고 무엇보다도 대학살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전쟁을 단순하게 보자면 그 중심에 한 가지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생각이란 인종을 우열로 나누고 그에 따른 차별적 대우가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모든 인류의 가치를 마음대로 규정하며 삶과 죽음을 마음대로 결정하는 반인륜적 행위, 그 중심에는 바로 인간이 무엇이며 인간의 존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의문이나 인류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는 이들에게 있어 다른 인종들은 평가의 대상이자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희생물로 바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