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의 소설의 현장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벼랑 끝으로 이는 전쟁 직후의 절박한 상황을 의미한다. 손창섭의 전후 사회 인식은 경제적인 궁핍과 사랑의 결핍으로 그 결핍은 다시 정신적인 결핍과 육체적인 불구로 요약된다. 잉여인간, 비 오는 날 등 13편의 작품을 담았다.
손창섭 작가의 '잉여인간'은 제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 소설입니다. 전후(戰後)의 피폐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잉여인간들의 무기력하고 허무한 삶의 모습은, 제가 상상했던 문학의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비정상적인 행동과 심리, 그리고 파괴된 인간성은 읽는 내내 불편하면서도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허물어진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마저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깊은 회의감과 함께 많은 질문을 던졌습니다.
만기 치과 의원에는 원장인 서만기와 간호원 홍인숙 외에도 날마다 출근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비분강개파 채익준과 실의의 인간 천봉우인데, 두 사람은 만기의 중학교 동창이기도 하다. 익준과 봉우는 평소 만기의 치과에 먼저 나와 대합실에서 간호원 홍인숙의 청소를 도와주고 신문을 몇 시간에 걸쳐 샅샅이 훑어보곤 하는데, 어느 날, 남달리 정의감이 강한 비분강개파 채익준은 신문에서 가짜 약을 만들어 팔다 법망에 걸린 범죄단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흥분한다. 하지만 이에 별 관심을 주지 않는 봉우에게 핏대를 올리며 화를 내고 병원에서 나가 버린다. 사실 봉우는 매사에 흥미가 없고 늘 수면 부족에 시달리는데, 이러한 그의 실의 상태는 한국 전쟁을 치른 후 더욱 현저해졌다.
줄거리
치과 의사인 서만기의 병원에는 그의 친구들인 채익준과 천봉우가 매일 찾아온다. 익준은 사회의 부조리를 담은 신문 기사를 보며 분노하고, 아내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봉우는 매사에 무기력한 채 간호원인 홍인숙을 짝사랑하여 그녀를 쳐다보거나 앉아서 낮잠을 잔다.
‘잉여인간’은 작가 손창섭이 1958년에 발표한 단편소설로, 제4회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 손창섭은 1922년생으로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서 2010년에 작고한 인물인데, 13년 전 돌아가신 내 할아버지께서 1929년생이셔서 아마도 두 분이 비슷한 세월을 살아오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할아버지께서는 다른 할아버지들과는 다르게 옛날이야기나 할아버지 살아온 세월은 잘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었다. 크고 나서야 할아버지의 어릴 적은 나라를 빼앗긴 일제 강점기였고, 청년이 되어서는 한국 전쟁에 참전하셔야만 했고, 전후에는 증조할아버지의 부(富)는 증조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두 종친회에 기증되어 가난 그 자체의 삶을 살며, 처(妻)에게도 자식에게 가난을 나눠가며 살아가셔야만 했다.
잉여인간을 읽으면서도 괜히 눈물이 났다. 내가 알 수 없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은 것만 같았다. 만기의 얘기를 읽을 때는 아주 어릴 적 할아버지 집 옆에 있던 낡은 치과가 생각이 났고, 익준 처의 장례를 치른 뒤 익준의 아이들이 익준을 보고 뛰어가는 모습을 읽으며 얼마 전 가 보았던 아버지 고향 동네의 차 한 대도 들어갈 수 없는 골목길이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