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53개
검색어 입력폼
  •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평가B괜찮아요
    제 1강: 성격은 자아실현의 기반사람은 저마다 다양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같은 성격을 지신 사람이 있는가하면 온화한 성격을 지닌 사람도 있고, 친절하고 솔직한 사람이 있는 반면 가식적인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은 남을 돕는 일을 기쁨으로 여기지만 어떤 사람은 옹졸하고 이기적이다. ‘성격’이란 분명하게 단정 짓기 어려운 매우 복잡한 심리적 체계이다. 다만 모든 사물에 나름의 규칙이 존재하듯 성격도 크게 ‘사교형’, ‘신중형’, ‘주도형’, ‘안정형’의 네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사교형 - 매우 명랑하고 밝은 성격으로 매사에 적극적이다 새로운 것을 좋아해 취미가 다양하며 관심이 생기면 금세 몰두하는 편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인생의 행보고가 즐거움을 목표로 삼는다. 말이 많고 웃음도 많아 항상 주변에 즐거움이 가득하고, 활동적이어서 쉽게 친구를 사귀는 것도 사교형의 특징이다 실패하더라도 마음에 담아두기보다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는데 능하다. 하지만 사물이나 상황에 세세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편이고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기에 침착하고 차분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에는 취약하다.신중형 - 매사에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다. 일을 처리할 때나 사람과의 교류에서나 항상 진중한 태도를 보이며 까다로운 안목을 지니고 있다. 단 매사에 기준이 너무 높아서 타인에게 부담감을 안겨주는 일이 잦으며, 자신 역시 피곤함에 자주 울화가 치밀다 비관적이고 소극적이며 의기소침한 유형이지만, 특유의 꼼꼼함과 주도면밀함으로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 후 계획대로 착실히 처리한다. 조직적이고 논리적이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을 추구하는 것도 신중형의 특징이다. 이러한 성격의 소유자는 자기계발로도 쉽게 두각을 나타낸다.주도형 -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고 저돌적인 성격으로 1등을 목표로 하는 타고난 지도자형이다. 무엇보다 일을 중시하고 독립적이며 항상 제때 목표를 실현하고 임무를 완수해야 직성이 풀리는 전형적인 워커홀릭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주관이 뚜렷해 중요한 순간에 빠른 의사결심하지 않은 사람은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할수도, 큰 성과를 낼수도 없어 임금인상이나 승진 기회와 멀어질 수밖에 없고, 심지어 타인의 인정과 신임을 얻기도 어렵다. 한 철학자는 치밀함이 지능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다며, 치밀함이 곧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을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지적했다. 즉, 성공한 사람은 무슨 일에서든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고 아무리 사소한 일에도 소홀함이 없지만, 실패한 사람은 그와 정반대라는 것이다. “쉬운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면 어려운 일을 피할 수 있고, 작은 구멍을 열심히 메우면 큰 화를 피할 수 있다” 치밀함은 오류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이자 성공을 향한 탄탄한 기반이며 자아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다.개성이란 무엇일까? 사전에서는 ‘주도형’ 성격의 지표이기도 한 개성을 ‘일정한 사회 환경과 교육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한 사람의 고유 특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타인과는 다른 특징, 즉 독특한 성격적 매력이 곧 개성이며, 개성은 한 사람의 언행이나 말투,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건을 대하는 모습 등에서 표출된다. 개성은 하버드대가 가장 중시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학과 성적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면 얼마든지 합격할 수 있을 정도로 하버드대에서는 개성을 사람의 가치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한마디로 그들이 원하는 인재상은 개성 있는 학생이다. 이유는 ‘자아’가 태어나는 토대가 ‘자기’이기 때문이다. ‘자기’는 ‘자아’가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잠재성으로, 자아가 의식적으로 가능성의 영역을 탐색할 때만 ‘자기’가 발견되고 실현된다. 따라서 갇혀 있던 나(자아)를 넘어 진정한 나(자기)로 사는 사람이야말로 끊임없이 자기를 가다듬고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고 진정한 성장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겸손이란 공손하고 예의바르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자, 타인과 쉽게 어울리는 곰살가움, 자만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배움을 구하는 겸허함을 의미한다. 어떤 이들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과 똑똑한 바로 자신감의 힘이다. 자신의 부족함과 마주하라. 부족함을 꽁꽁 숨기려 애쓸 필요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불쌍히 여길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성공의 문은 베일에 싸여 있어서 아무나 발견할 수 없고, 설령 발견했더라도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성공의 문을 열지 못하는 이는 그 문을 열 용기가 없어서, 대담하게 시도해보겠다는 바로 그 용기가 없어서다. 첫발을 떼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신이 바라던 종착점에 다다르게 된다. 성공의 문은 그저 닫혀 있을 뿐이다 마음속의 용기를 찾아 당신의 잠재의식이 분명하고 의미 있는 목표를 인식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용감하게 달려가 문을 열어젖혀라. 이렇게 하면 자신감의 무한한 잠재력이 발현되어 당신의 눈앞에 드넓은 새 세상이 찬란하게 열릴 것이다.야심은 일종의 포부이자 성공을 향한 욕망이다. 사람의 운명은 그 사람 마음속의 간절한 바람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즉 한 사람이 인생의 최고점에 설 수 있느냐 없느냐는 ‘야심’의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공의 정도 또한 ‘야심’의 크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야심을 가지고 성공을 갈망하는 사람은 자신의 미래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어 주변의 환경이 그들의 의지와 어긋나더라도 동요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이 실현될 것을 자신하며,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에너지를 발산해 목표를 향해 나아감으로써 운명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다.제 3강: 좌절 속에서 이뤄지는 변화고난이 닥쳤을 때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하나는 능동적으로 맞서는 것, 다른 하나는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버드대에는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고 싶으면 남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견뎌라’라는 명언이 전해진다. 고난은 아픔과 상처와 피로를 동반하지만 이를 견뎌낸 경험은 앞으로 큰일을 해낼 기반과 자신감이 됨을 시사하는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탈바꿈 할 수 있다.모든 성공인사가 증명한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끈기가 우리를 성공한 인생으로 이끈다는 사실이다. 하버드대 출신들은 역량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이쓴냐가 바로 성공의 열쇠라며, 어떠한 목표에 도달하고 싶다면 끈기를 기르라고 입을 모은다. 꾸준히 지속하는 것. 성공하기까지는 항상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그 시간을 견뎌내는 끈기가 필요하다. 주목을 받지 못할 때나 중요한 업무를 맡지 못했을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소홀이 하고 대충대충 처리하거나 당장의 상황에 감정이 휘둘려 제 할 일을 해내지 못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을 옭아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라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다 소용없게된다. 출발점이 낫다고 그 일을 하찮게 여기거나 포기하지 마라. 초조해하거나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없다.제 4강: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워라‘자기감정의 노예가 되는 것이 폭군의 종이 되는 것보다 훨씬 불행한 일이다’ 화가 난다고 돌을 발로 차면 결국 아픈건 자신의 발가락이다. 살다보면 우리는 많은 외부적 요소에 감정적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중요한 순간에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내 감정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나쁜 감정을 퍼뜨리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성숙함이다. 공개적으로 불쾌한 일을 당하고도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제어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버드대 출신들의 모습임을 기억하라.좋은 일에 기뻐하고, 나쁜 일에 힘겨워하는 것을 우리는 ‘감정’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가르는 기준은 오롯이 한 개인에게 달려있다. 즉, 어떠한 일을 바라보는 당신의 시선이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에 따라 좋은 일이 될 수도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긍정의 마인드를 가지면 비단 태도뿐만 아니라 언어와 행동 그리 대하는 것이 곧 인생의 의미이자 즐거운 삶의 원천이다. 왜 우리는 무엇인가를 잃은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불평불만의 습관이 되고, 받는 것에만 익숙해져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마음은 은혜에 대한 표현이자 긍정의 마인드이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감사함을 표현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떠올려보자 누군가 진심을 다해 당신의 도움에 감사 인사를 할 때, 그 사람이 일면시도 없는 낯선 사람이더라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고, 그 속에서 유쾌함과 만족감을 얻어 상대에게 더 많은 호의를 베풀고 기쁨의 보답을 하게 되지는 않았는가? 이렇듯 감사하는 마음은 선순환을 형성한다. 지나친 욕심은 버리고 항상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시도를 해보고, 매일매일 당신의 마음을 움직인 일들을 꾸준히 적어보며,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할 때, 당신은 그 사람에게서 무엇을 해줄수 있는지를 생각해보자.인생은 단 한번 뿐인 지금의 순간순간이 모여 완성되며, 지난날은 되돌릴 수 없고 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 열정적인 사람은 분명 오늘을 아낄 줄 알고, 자신이 충실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오늘, 바로 지금 뿐이라는 사실을 잘알고 있기에, 지금을 살고 이 시간을 온전히 누린다.제 7강: 나만의 커뮤니티를 만들어라전문 지식도 중요하지만 인맥의 중요성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하버드대가 벨연구소의 톱 연구원을 대상으로 인간관계가 한 사람의 성공에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조사한 결과에서도 인맥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잘 드러났다. 조사 결과 전문적 능력에 기대 성공한 사람이 조사대상 중 26%, 집안 배경에 기대 성공한 사람이 5%, 인간관계에 기대 성공한 사람이 무려 69%로 나타난 것이다. 하버드대는 자체가 인맥형성을 위한 하나의 훈련 캠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신입생이 입학하면 아주 방대하고 긴밀한 동문 네트워크를 제공한.
    독후감/창작| 2018.01.13| 11페이지| 5,500원| 조회(372)
    미리보기
  • 순교자 문중경의 신앙과 삶
    요 약제 1장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출생 그리고 유년시절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는 1891년 2월 전라남도 신안군 암태면 수곡리의 매우 작은 산골마을에서 문재경씨의 3남 4녀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문준경 전도사가 살던 수곡리는 몇 가호 안되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할아버지가 진사였기에 양반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라 유년시절을 보냈다. 또한 천성이 유달리 곱고 인정이 많아 어려운 사람을 보면 꼭 도와주는 삶을 살아 다른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인물로 성장했다. 남다른 재질과 총명스러움, 재덕까지 겸비한 전도사는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전도사가 처한 그 사회는 중세 봉건사화의 틀을 벗어나지 못해 당연히 받아야 할 의무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교육에 대한 열망이 강한 전도사는 집안 어른들에게 자신도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졸랐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하기 일쑤였다. 그녀가 어른들로부터 향학열 억압을 받은 사건은 당시 여성들의 위치를 고스란히 잘 보여준다. 문중경 전도사는 어렸을 때부터 노래 부르며 춤추며 즐기는 “산다이”놀이문화에 익숙했기 때문에 훗날 찬양을 통한 복음전파가 더 익숙하고 자연스러웠을 수 있다. 전도사가 출생한 1891년은 기독교가 전래된지 6년이 지난 이후다. 왜냐하면 한국에 개신교를 통한 복음이 처음 들어온 때가 1885년 4월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과 함께 한국의 근래식 교육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배제학당이 미국 북 감리교회 선교사인 아펜젤러에 의해 우리나라 신교육의 개척자적 역할을 한 중등학교가 1885년에 세워지고, 1886년은 이화학당이 미국 북 감리회 선교사 스크랜턴에 의해 최초 여성 교육기관이 설립된다. 그리고 이어서 1894년 구 교육 행정을 관장하던 예조가 폐지되고 학무아문이 설립되었다. 드디어 1895년 고종황제가 「교육조서」를 통해 교육의 중요성을 천명하기에 이른다. 그러기에 전도사가 향학열을 불태우던 그 시점의 한국은 일대 교육사상의 변혁기였고 과도기적 상황이었음을 알 수 있다.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기를 돌보지 않는 남편의 외도에 처음엔 남편의 마음을 돌이켜보기 위해 남편의 오른팔처럼 사업자금을 위해 발품을 팔기도 하고 또 여자로서 저항보다는 순응으로 일관해 보았지만 끝내 남편의 마음을 돌이킬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오히려 선으로 승화해 그녀는 며느리역할과 억척스런 남편의 역할까지 도맡아 가족을 돌보았다. 그런 지극한 효심에 감동을 받은 시부모님들은 며느리를 더욱 사랑하게 되었고 며느리를 의지하는 마음을 굳게 가졌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자신들을 그토록 사랑으로 보살피는 모습과 배우려고 하는 욕심이 큰 것을 알아채고 준경을 불러다가 일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내리 사랑도 보여주었다. 결국 그녀는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했지만 시집에서의 시부모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배움의 열망을 충족받는 은혜를 누린다. 그래서 시부모님에 대한 사랑의 폭이 그녀에겐 더해졌다. 전도사의 시아버지가 소천 당하자 시어머니는 큰 시숙댁에 거주하게 되었고 얼마 후 그녀가 양아들로 삼았던 큰 시숙의 둘째 아들 태진마저 취직되어 서울로 이사 가게 되자 전도사는 섬에 홀로 남게 되었고 그녀는 인생의 허무를 느끼고 목포에 있는 오라버님 댁 근처로 거처를 옮기게 되고 그 때는 1927년경이었고 삯바느질을 하게된다. 그렇게 살던 어느날 목표 북교동 교회에서 들려오는 복음의 메아리가 그녀의 귀를 끌어 당겼고 복음의 메시지가 희망 가득히 전도사의 마음 속에 스며들기 시작했다.제 3장 문준경 전도사의 신앙적 멘토들 그리고 그녀의 회심전도사의 첫 신앙의 출발은 목표 북교동 교회의 어느 한 여성도의 전도를 통해 시작된다. 당시 북교동 교회는 한국 성결교회의 초기에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위대한 지도자, 두 명은 이미 다른 지역으로 사역을 위해 떠나시고 전설적인 한국의 부흥사였던 이성봉 목사님이 그 교회 지킴이었다. 전도사는 1927년 3월 5일 등록일로부터 2년 4개월간 당신 장전도사의 깊은 영성훈련을 받으면서 신앙의 기초를 다졌고 세례받고 집사직분까지 받아 압해도와해 물었고 복음을 전해 듣는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못했으나 목포에서 객지 생활한지 얼마 되지 않아 대화 상대자도 없었고 누구와 길게 이야기 나눌 수 없었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체가 너무 좋았을 것이다. 그녀의 생애에 계속 찾아볼 수 있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정신과 호기심이 어울러졌고 자기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었던 생의 일대 혁신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속에서 복음을 즐거운 맘으로 영접하기에 이른다. 예수 믿은 그 감사와 감격을 안고 그녀는 친정을 찾아가 전도하지만 친정아버지는 양반집 가문인 문씨 문벌이 서양놈들의 도를 믿어야 왜 믿어야 하냐며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물을 뒤집어쓰는 곤경을 치르면서도 집안 전도를 쉬지 않았다. 그 배경에는 그녀의 회심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문준경 전도사는 자연인으로서 재물과 명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 금보다 귀하고 은보다 귀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신앙이 최선이란 점을 확신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 그녀는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를 불의 역사로 이해했다. 성령이 역사하는 초자연적 현상을 “불이 떨어진다.”라는 매우 감각적이며 현실적인 면으로 설명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그녀의 신앙이 전인적이면서도 체험적이란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이처럼 그녀의 회심은 지정의가 복합된 복음적인 회심이란 점을 분명히 발견할 수 있다.제 4장 문준경 전도사의 신학 수업과 그녀의 신학생 시절전도사의 학업상황은 손쉽지 않았다. 40세 만학도의 입장과 겨우 국문을 읽고 쓰는 정도의 학력 수준이었기에 어려운 학과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려웠다. 무엇보다 학교의 학제가 당시 수업 년한이 3년이었는데 그녀가 입학한 시접에 6년으로 변경되었고 또한 당시 교단은 한국 사회의 교회 설립을 촉진 하기 위해 6개월은 학교 수업을 하고 6개월은 현장 실습을 통해 교회를 어디든지 개척하도록 했다. 물론 이 두가지 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는 학생으로서의 자격이 미달되어 학과 과정을 포기해야 하는 학칙성결교회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증도에서는 문 전도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녀는 비애의 사람으로 유명했고 시아버지의 3년상까지 치러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정평이 나있던 비애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교회를 개척할 마음을 먹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시숙이었던 정영범과 대화하고 과거 그녀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효부의 역할을 잘 감당한 감동적인 모습을 떠올려 복음을 영접하고 교회를 건축할 수 있는 부지까지 마련해주었다. 결국 정영범씨는 준경의 남편이 무책임했던 것에 대한 보상과 시부모를 그토록 극진히 모신 효부에 대한 정당한 대우가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 전도사의 조력자가 되어준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증도교회에 신유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문 전도사의 보고서의 글을 보면 이런 글들이 있다. “이곳은 오래 전에 장로교회가 와서 전도를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오히려 그들을 핍박함으로 폐지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 결과 두려움 없이 전도를 하였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떤 집 마당에든지 가서 찬미를 불렀다.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은 미친 여자가 왔다고 하여 모여들게 되었다. 모이면 나는 복음을 전했고 모여든 사람은 3, 4백 명씩 되었지만 예수님을 믿으러 온 것이 아니라 나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6년 동안 악한 영에 사로잡힌 여자가 기도 받고 악한 영에서 자유케 되는 역사를 맛보게 되었다”고 김준곤 목사님은 문 전도사의 증언자로서 목사님이 병들었을 때 문 전도사가 있는 곳으로 청하여 간호도 해주고 친구랑 들릴 때마다 후한 대접을 해주었다고 회상한다. 목사님이 어려서부터 지켜본 문 전도사의 모습은 마치도 인도 캘커타에서 〈죽음의 집〉을 운영하던 성 테레사 수녀가 오버랩 될 정도였다고 한다. 문 전도사의 사택을 목민 센터라 칭한다. 병든 자, 귀신들린 자 그리고 의지할 떼 없는 자 고아와 과부와 같은 이들이 그곳에서 운집해 공동체 생활을 통해 치유를 체험하는 종합 목민 센터라는 것이다. 한국의 일부 교단이 여성 안수를 통과하고 또한 1950년 10월 5일 순교의 피를 흘리던 그 날에도 현장에 끌려와 같이 협박을 당하던 백정희 전도사를 “나는 늙은 몸이니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저 젊은이가 무슨 죄가 있길래 지금 죽어야 하는가? 저 젊은이만은 살려달라”고 서슬 퍼런 공상당원들에게 요청했던 그 구명장면은 백정희 전도사로 하여금 3년 동안이나 상복을 벗지 않고 생활하는 결과를 낳았다. 1950년 10월 5일 가까운 임자 진리교회의 13명의 가족들과 함께 순교의 피를 흘린 이판일 장로와 같이 피로써 순교를 입증한 성결의 은총의 극치를 이뤄놓았다. 문 전도사의 순교현장에서 죽음 직전에 목숨을 건진 백정희 전도사는 1958년-1961년에 신안군 자은면에서 3년 동안 사역한다.제 7장 문준경 전도사에 대한 고 김준곤 목사의 추모의 글1951년 순교 1주년 되는 그분의 환갑날, 장례추도식이 있었다. 호남지방 성결교 남녀 교역자들이 다 모여 건을 쓰고 상복을 입었다. 전도 받은 교인들, 도움 받고 못잊어하는 사람들, 전도 받은 시가집 사람들, 친정 일가친척들, 그를 죽였으나 용서받은 식구들, 동네사람들 등 흰옷 입은 구름 떼 같이 많은 사람들이 상여 뒤를 따랐다. 서울에서 온 어느 성도는 “김구 선생 장례식보다 추모 인파가 많다.”고 했다. 중동리교회당은 순교의 피 묻은 현장의 모래로 만든 벽돌로 신축되었다. 평소에 그분은 양딸인 백 전도사님에게 자기는 정씨문중 선산에 묻힐 수 없으니, 자기가 죽으면 그 산 아래 밭의 한 모퉁이에 묻어달라고 했다. 순교 1주기 때 이 얘기를 들은 정씨 문중에서는 전도 받은 분들로 많아 문중회의를 열었다. 결국 그 분은 문중을 빛낸 분이니 선상 중앙에 모시자고 만장일치로 결의해서 지금 그분의 묘는 정씨 문중 선상 한가운데에 있다. 한국 교호의 밑거름처럼 숨겨져있는 한 여성 순교자, 한하운의 가도 가도 전라도길, 황토길을 더 가서 노두길 나룻배길 낙도 길가에 우리들의 룻이여, 에스더여, 마리아여! 어머니라고 불러버리고 싶은 나의 아주머니. 어느 집으로 시집을 갔더라도
    독후감/창작| 2018.01.13| 12페이지| 5,500원| 조회(264)
    미리보기
  •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목 차Ⅰ 서론Ⅱ 본론1. 하나님 말씀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2. 교회에 속한 지체를 서로 사랑하고 돌아봐야한다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Ⅲ 결론참고문헌서론양이 목자의 음성을 알 듯, 하나님의 백성은 어떠한 방법을 통해서든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주신다. 그곳은 바로 예수님의 핏 값과 눈물로 세우신 주님의 몸을 예표 하는 곳 교회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 있는 인간의 모양으로 오사 인간의 죄를 친히 다 담당하시고 그 죗값을 치르심으로 인하여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허락하셨고 초대교회부터 시작해 지금의 교회에까지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믿음은 누구에게나 다 허락된 것은 아니었기에 많은 환난과 고초가운데서 신앙을 지켜내야만 했다. 그 선진들의 수고와 힘씀을 인하여 말씀에 기초로 삼은 교회는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많은 성장을 이뤄갔고 우리나라에까지도 큰 영향을 미쳐 나라와 사회도 더불어 많은 발전이 되어갔다. 교회들은 서로의 의견이 대립되어 파가 나뉘게 되었지만 말씀위주의 장로교도, 성령중심의 순복음도 또한 행위에 비중을 실었던 감리교도 각각의 중심에 선 것을 붙들고 맡은바 잘해왔으며 부흥도 되었지만 시대가 변화되어 갈수록 어느 한가지의 특정한 것만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 현실화 되어가고 있는 실정이 되었으며, 교회들은 목마른 사슴같이 되어 버렸고 세계적으로도 교회들이 많이 흔들리고 있는 추세다. 마지막을 치닫고 있다는 현세에 앞으로 다가올 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준비되어져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강건하게 서갈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려한다.1.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한다교회란 예수님이 오셔서 그 후 부활 승천하심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으로 교회를 세우게 하셨다. 다시 말하여 교회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성령의 임재를 통한 신자의 공동생활에서부터 비롯된다. 따라서 성령의 임재로 알려진 교회의 목적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다. 교회가 존재하는 참된 목적은 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완성되는 영적공동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이시라고 골로새서 1장 18절에도 나와 있지만 교회의 몸인 우리 지체들은 머리를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임에도 우린 우리의 생각을 따라 내 마음과 뜻대로 살아갈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우리 몸도 머리에서 나오는 생각을 따르듯 우리도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 즉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우리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머리로는 말씀을 생각하되 몸이 순종하지 않아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도 주의 깊게 살펴서 하지 않고 생각나는 대로 내뱉어 버릴 때가 수도 없이 많다.“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 3:16-17).하나님의 성전은 하나님의 신이 임한 거룩한 곳이며 우리 몸은 성령이 계신 하나님의 성전으로 주님의 몸인 교회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신다. 그리고 이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핏 값으로 사신 것이 되었기에 우리 몸을 함부로 세상에 굴려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몸에 속한 아주 부족하고 작은 것 하나가 있을 지라도 우리 뜻대로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성전은 심히 부패되었었고 우상을 섬겼었으며 말씀 중심이 아닌 자기중심으로 세상을 따라 살던 시대였다. 그 결과 성전은 불에 다 타버렸고 부서졌다. 우리 몸도 성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약 우리 몸을 지탱하고 있는 마음의 성전에, 있어야 할 것이 있지 않고 세상에 속한 것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면 우리 몸은 어떻게 되어 버리게 되어버리겠는가. 말씀 속에서 뜻하고 있는 것을 깨달아봐야 한다. 성전을 짓고 세울 때는 오랜 시간과 수고와 역사가 있듯이 하루아침에 교회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고, 추위가 오면 버텨야 하며 바람이 불어도 굳건히 서있어야 나중에 온전한 성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하나의 결실을 맺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 있듯 오늘 하루의 삶에 푯대를 말씀에 맞추고 따라 살면 될 것이다.2. 교회에 속한 지체를 서로 사랑하고 돌아봐야한다루터는 교회란 믿음 안에 있는 성도의 공동체라고 하였으며, 칼빈은 선택받은 자의 무리라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성령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참 지체가 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함으로, 조직체로의 교회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우리 몸의 구조는 놀라울 정도의 세밀함과 각 부분의 역할이 흐트러짐 없이 너무나 정확히 잘 분배되어져 있으며 그 기능들이 서로에게 충실함으로 하나의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뇌에서 명령을 받아 목을 거쳐 온 전신으로 퍼지면 몸은 그 명령에 일제히 순종하듯이 그 안에 속한 것은 어느 것 하나도 중요치 않은 것과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롬 12:4-5). 우리 몸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지 하지 않는다. 눈은 위에 달렸다고 발을 무시하지 않으며 발은 밑에 있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자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한다. 그 이유는 서로 같은 지체이며 한 몸이기에 서로를 기뻐하며 돕고 협력을 일궈나간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우리의 현 모습은 그렇지 않다. 좋은 일이 있으면 진심으로 내 일처럼 같이 기뻐해주기 보단 시기함으로 곁눈질할 때가 더 많고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마음 아파하기 보단 내 몸만 사리려는 경우가 더 많다. 세상은 더더욱 강퍅해지고 사나워만 가는데 교회 안에서도 그다지 다른 모습이지는 않은 것 같다. 내 몸에 작은 부분이 아프면 그곳만 아픈 것이 아닌 온 몸이 같이 고통을 느끼게 되고, 치료가 되면 온 몸이 성하게 되듯 우리는 주님의 피와 살을 나눈 형제자매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서로 돌아봐야한다. 남을 돌아보는 것은 곧 나를 돌아보는 것과 같다. 몇 주 전 주일오전 예배 때 담임목사님께서 설교예화를 하나 말씀하신 것이 생각난다. 한 중년의 남성이 우연히 길을 걷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 있길래 무슨일이 있는가 봤더니 한 아이가 강에 빠져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다들 걱정만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남성은 아무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이를 구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 아이는 바로 이 남성의 아들이었다고 한다. 짧은 예화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남을 위해 헌신하고 봉사하는 것은 결국 내게 선으로 돌아올 것이기에 계산이 아닌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씀에 순종하다보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의 발걸음을 인도해주실 것이며 보호해주실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를 돌아보며 아껴야한다.3.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1) 교회 안의 성도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해야 한다.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가난과 고통, 괴로움에서 구원받기 위해 교회로 온다. 머리로는 괜찮아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지만 실제적인 형편과 사정들은 낳아지지 않고 더 고통스러워하며 울부짖고 결국 얼마가지 못해 교회를 떠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분명 사도행전 16장 31절 말씀에 예수님을 믿으면 개인과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계신데 왜 말씀과는 달리 예수님을 믿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생활과 형편 사정이 낳아지지 않는단 말인가. 그것은 혹 머리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우리가 어떤 사람을 잘 알고 있을 때 믿을 수 있으며 의지할 수 있게 되지, 그냥 믿을만하다고 해서 믿지않고 신뢰하지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실질적인 주님을 알지 못함으로 믿지 못하고 형식에 매여서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예배드릴 때는 거룩한 자 되 있는 것 같은데 밖에 나오면 여전히 내 마음엔 변화가 없고 행동 또한 여전히 습관대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 말씀을 따라 살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교회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살아가도록 교훈을 주는 곳이 아닌, 닫혀있던 것을 열어주고 막혀있던 것을 뚫어주며 죽어있던 것을 살리는 생명의 터전이 되어야 한다. 교회에 들어와 앉아있다고 해서 그들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며 생활의 형통함이 있는 것이 아니다.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냥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필요 없다. 실질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함으로 말씀에 인도함을 받을 수 있도록 열어줌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어지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인문/어학| 2018.01.13| 6페이지| 3,000원| 조회(133)
    미리보기
  • 루터의 성찬론 평가A좋아요
    요약제 1장 종교개혁과 마틴 루터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1517년 10월 31일 역사의 획을 긋는 종교개혁을 단행하였다. 그 어느 누구도 도도히 흐르는 역사의 물줄기를 막을 수 없었다. 이것은 루터 개인의 의지 때문이 아니라 때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 대부분의 신자들은 루터에 대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올바르게 사수한 자요, 오직 성경으로만 외친 철저한 복음주의자라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중세교회의 부패를 척결하고 교회전통을 파괴하여 교회를 성서 중심으로 교회의 질서를 바로 세운 인물로 평가를 하고 있다.루터는 1483년 11월 10일 독일의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한스 루터(Hans Luther)와 마아가렛 루터(Margaret Luther)의 여덟 자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부모들은 가난한 농부 출신이었다. 루터가 출생한 이듬해에 양친이 광산업에 손을 댄 이래로 가업이 날로 번창하였고 루터의 부친 한스는 1491년에 시민의 권리를 변호할 수 있는 4명의 대표중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었다. 루터의 소년시절은 그렇게 밝지는 않았다. 루터의 부모들은 루터를 매우 거칠고 엄격하게 양육하였다. 부모들의 규율이 너무 엄격하였지만 루터는 부모님에 대해서 모두 선량한 분이라고 고백했다. 부모님이 엄하기는 했으나 인간적인 야심에서 그러했고, 부모님은 그의 아들의 발전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터는 여섯 살 때 만스펠 시에 있는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초등교육을 받을때부터 독일어와 라틴어를 병행하여 학습하였다. 또 그 gkrrsms 용서가 전혀 허용되지 않았고, 가혹한 채찍을 가하여 교육을 시켰다. 1497년 루터의 부모들은 루터를 마그데부르그 시에 있는 중등학교로 유학을 보냈다. 그 이유는 지방학교에서는 소년들에게 수사학과 논리학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터는 이곳에 있으면서 공동생활 형제단들이 운영하는 교회학교에 접촉하여 만 1년을 보람되게 보냈으며 성서와 경건을 배울 수 있었다. 공동생활 형제다고 했다. 이 공포감은 점점 더 시간이 갈수록 가중되었는데. 이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 하나님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했다. 자기 자신이 하는 봉사나 헌신이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여 늘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그리고 가혹한 재판관으로 생각하였다. 이런 공포와 진노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자신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하는 루터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고해성사를 자주 드려보기도 했으나 공포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로마 교황청은 수도원장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럽에 있는 모든 수도원들을 교황청의 관할 아래 두려고 했다. 그래서 수도원장 슈타우피츠는 자파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해서 똑똑하고 영리한 루터를 어거스틴파 수도회를 대표해서 로마에 파송하였다. 그러나 루터는 파송의 궁극적인 목적에는 관심이 없었고 수도승으로서 로마를 순례함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기대에만 몰두했고, 진노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갈급해 하던 그였기에 이것은 커다란 은혜요 절호의 기회였다. 루터는 로마에 도착하자마자 본무는 뒤로하고 거룩한 계단이라고 불리는 라테랑 성당 28개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순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계단을 기어오를때마다 주기도문을 한 번씩 외웠고, 계단에 입을 맞추고 마지막 계단까지 고행의 순례를 하면서 기어올랐으나, 루터의 마음에는 사죄로 인한 평안한 마음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이때부터 루터는 고행이나 성지 순례, 성물이나 성화 수집이 은혜의 수단이 될 수 없으며, 구원의 확신을 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루터의 영적인 갈급함은 여전하였다. 다시 비텐베르그대학으로 돌아와서 공부를 계속하여 1512년 성경학 박사학위를 받고 수도원장의 추천으로 비텐베르그대학의 종신직 성경교수로 임명되었다. 루터는 1513-1525년까지 대학에서 줄곧 시편을 강의하였다. 특히, 시편연구를 통한 기독론적인 해석은 많은 의미를 그에게 부여했다. 시편 기자가 1인칭으로 말할 고 인간의 구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진리를 발견한 루터가 처음부터 중세 로마 카톨릭교회의 모순과 잘못된 전통을 비판하지는 않았다. 그저 열심히 목회하고 교수에 충실하였다. 루터는 자신이 깨달은 성경에 대한 진리의 내용들을 잘 정리하여 전통교회인 로마 카톨릭교회이 교리와 비교하여 토론을 위한 목적으로 97개항을 작성하였다. 그러나 교황 레오 10세의 면죄부 판매가 본격화 되자, 루터가 이것을 직시하면서 면죄부 판매를 중지해 줄 것을 여러 주교들에게 요청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자 루터는 내용을 다시 정리하여 95개 조항을 항의하기 위해서 작성하였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만성절에 비텐베르그 성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게시한 후 이것은 결국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고 세계 역사를 변화시킨 그 유명한 95개 논제가 되었다. 이 논제의 내용에는 면제부에 대한 잘못 인식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로마교회의 전반적인 신학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처음에는 지식인들만을 위해서 라틴어로 작성하여 배포하였다가 독일 국민 모두가 알 수 있도록 신속히 비밀리에 독일어로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2주만에 유럽 전역에 퍼져 나갔다. 수세기동안 이어져 온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변화를 가져와야만 했다. 루터라는 한 수도승의 순수한 성경의 깨달음은 그 깨달음을 넘어서서 걷잡을 수 없는 종교개혁의 방향으로 치닫게 되었다.초대교회 또는 중세교회에서는 신자가 세례를 받음으로 인하여 세례받기 이전까지의 지은 모든 죄를 모두 사해준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례 후의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서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고해자가 교회에 사제를 통하여 고해하므로(고해성사) 죄의 문제를 해결 하였다. 그런데 신부의 죄 사함의 선언에는 죄 용서가 포함되고, 내세에 받아야 할 죄를 없어지지만, 그러나 현세에 받아야 할 벌 또는 형벌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보속 또는 보상이라는 것을 한다.과 피가 존재한다. 외적으로 생각하게 되면 그것은 떡과 포도주이다. 그러나 영혼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몸과 피라고 하여 당시의 상징적인 주장을 하는 자들로 하여금 대환영을 받았다.실재와 상징에 있어서 곤잘레스는 화체설이 1215년(제4차 라테란회의) 이전까지는 확정되지 않았지만, 성만찬에 관한 실제적인 논쟁은 11세기에 이미 다 종결되었다고 했다. 12세기에 이르러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이 몸과 피로 변화한다는 주장을 유일한 정통교리로 받아들이기만 하면되었다. 루터의 개혁 면면에 이르는 각론을 보면, 로마 카톨릭교회의 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의 자리에서 맴도는 것이 분야에 따라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러한 것들 중에 특히 성만찬 성례전의 교리가 특히 그러하다. 루터는 그의 역사적 유산인 실재론을 인정하였고, 후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배척하고, 오캄의 편재론을 도입하는 것을 보면 이는 분명 유명론에 입각한 것이었다. 그것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은 루터가 에르푸르트대학의 학창시절에 그의 스승의 면면을 보면 잘 알 수 있다.제 3장 마틴루터의 성만찬 신학 사상루터가 자신의 성만찬 성례전에 대해서 언급을 한 것은 1519년에 성례전에 관하여 3부작, 즉 참회, 세례 그리고 성만찬에 대하여 글을 쓰면서부터다. 그의 저서(설교)는 「거룩하고 진실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성찬의 성례와 형제단」(The Blessed Sacrament of the Holy and True Body of Christian and the Brotherhoods, 1519)으로, 성만찬에 대해서 비교적 소상하게 자신의 사고를 드러내고 있다. 루터는 성만찬 성례전을 통한 교제와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서 어떤 형제단들의 타락상을 도입하고 있다. 올바른 교제와 사랑으로 가득찬 성례전과 과식과 주벽으로 가득찬 사랑이 없는 어떤 형제단과 비교하면서, 거룩하고 진실한 성만찬 성례전의 모본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1518년 ‘면죄부 효능의 대해서’에 대하여 루터는 사람이 성례전을 통해서 의로워지는 것 축복이나 중요한 의의를 가져올 수 없다고 하였다.루터의 기독론은 초대교회 기독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니브와 헤이크 역시 루터가 “초대교회의 기독론적 교의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렇게 전폭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그 교리가 성서에 기초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한 부분적으로 그것들이 신앙의 한 필요조건이며, 신앙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루터는 그의 저서 「거룩하고 진실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성찬의 성례와 형제단」에서 교제사상을 중심 내용으로 하면서 그의 기독론의 교리적 배경을 물씬 들어내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둘째로, 속성의 교류이다. 이것은 초대교회에서부터 사용한 용어로 루터가 성만찬 논쟁에서 그리스도 현존 문제로 스위스 개혁자들과 한 치의 양보 없이 논쟁을 하면서 사용한 용어이다. 세 번째, 교제라는 말 자체의 의미가 기독론적이다. 루터는 교제가 가운데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과 연합하여 그의 지체가 된다고 했다. Althaus는 “성도의 교제 교리는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아주 중요한 개념을 나타낸다고 했다.” 교제의 백미는 그리스도의 현존이다. 성만찬의 핵심은 사랑의 교제이다. 이 사랑의 범위는 매우 넓고 깊은 공동체적이다. 이 공동체에서의 희생적인 사랑만이 다시금 사랑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이웃의 아픔과 죄악까지도 함께 하는 헌신적인 사랑이 그리스도가 요구하는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과 교제가 없으면 선한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이다.제 4장 마틴 루터의 성만찬 신학 사상의 변화루터는 1519년의 그의 설교 「거룩하고 진실하신 그리스도의 몸인 성찬의 성례와 형제단」에서 평신도들에게 잔이 금지되고 있는 부분에 대하여 반드시 받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1520년의 그의 작품 「교회의 바벨론 포로(감금)」에서는 과감하게 잔 금지에 대하여 비판을 하고 있다. 성만찬 성례전의 신학의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루터의 반대자들이 요한복음 6장 51절의 “나는 산 .
    독후감/창작| 2018.01.13| 11페이지| 5,500원| 조회(281)
    미리보기
  • 하나님 어떻게 살까요
    책을 읽으면서 교수님이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무시하지 않고 그 속에서 사막교부들의 지혜를 따라 자신을 비춰보며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바르게 갖고자 노력하는 모습에 대해 다소 놀라기도 했으며, 어떤 부분에서는 그 소식자체가 한편으로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각박한 세상 속에 실로 존재하며 각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을 향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영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뜨리려 애를 쓴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함으로 죄를 짓고 죄 가운데 종노릇 하면서도 그것이 죄인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교수님도 타지에서 사시면서 많은 어려움과 환난을 몸소 겪으셨겠지만 나또한 교수님보다는 년 수가 작지만 불과 20년 전만해도 꿈의 나라라고 불리던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5년 동안 하였었다. 내 이름 석자 외에 영어로 쓸 수 있는 것은 없었고 오직, 하이와 바이, 땡큐, 쏘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전부였다. 물론 외가가 있어 먹고 자는 것은 얼추 해결은 됐지만 그 외에 짊어져야 할 짐은 20살이 감당하기에는 아니, 지금 10년이 훨씬 더 넘은 지금이라도 나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교수님이 책에 말하는 내용들의 실상을 상상으로 추론하지 않아도 되었고 오히려 많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경험한 일 중에 한번은 대학에서 만난 이스라엘 친구에게 내가 기독교인이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더니 나보고 불쌍하다고 했다. 하나님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인데 이방인인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나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가까이 지내던 일본인 친구와는 독도문제가 이슈가 될 때마다 그 친구에게 왜 자꾸 그러냐며 따지기 까지 하고 그리 길지 않은 토론도 하곤 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보니 많이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물론 교수님은 학자로서 훌륭하신 분이고 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학생으로서의 경험이지만 새록새록 지난날이 스쳐지나갔다.처음 페이지를 넘기면서 마지막의 페이지를 닫을 때까지 무수한 세계의 역사가 이 안에 펼쳐져 있었고 그 안에서 사막 교부들의 호흡의 경로를 조금은 느껴볼 수 있었던 아주 좋은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은 세상의 것을 단호히 격리시키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음을 깨달은 마음의 여러 가지 갈등과 잡념 그리고 사념들에 대해 온 뜻을 모아 대항했다. 그 결과의 열매는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자기의 영혼을 돌보는 것이 가장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씀에 집착하려 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실로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으며 많은 영육의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큼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단일 내에 쉽게 얻으려는 습성에 젖어 살고 있다. 그래서 인내하지 못하고 조급하여 눈앞에 이익을 쫓아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현실에 놓여 있는데, 이 책은 사막교부들의 삶 속에서 배어나오는 지혜를 교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적용시키고 또한 우리에게 숨을 고르고 자신을 살펴보도록 권면하는 좋은 지침서와도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는다. 그 가운데 슬픔과 괴로움, 기쁨과 즐거움의 감정의 틀에서 내 마음에 이루고자 하는 계획이 작거나 크게 성취되거나, 또는 그렇게 되지 못할 때 속에 있는 감정들의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표현된다. 즉 현 기독교인들의 관점에서 볼 때 내 뜻에 맞으면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틀어지면 가차 없이 원망과 불평을 하는 내 멋대로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막교부들을 보면 그들의 뜻을 자기 자신에게 맞추지 않고 온전하신 푯대의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있었다. 그리하여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선물로 받아 그들의 육적인 것이 비록 연약하고 부족할지라도 그들은 서로 구제하며 나누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실현하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므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인격에 도달하려 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다가가려 했는데 그 이유는 전적으로 복음과 그리스도 삶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금식을 기본으로 하는 기도생활과 관상, 형제애, 이웃환대, 겸손과 순종의 사랑 등의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실천해 나가므로 주님의 십자가의 사건이 이 땅에서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됨을 몸소 따르려 했던 이들의 수고와 헌신을 조금은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독후감/창작| 2018.01.13| 2페이지| 2,000원| 조회(217)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3개
13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7
  • A좋아요
    4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2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10월 15일 목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7:47 오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