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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9년의 대공포 서평입니다.
    서평 : ‘1789년의 대공포’를 읽고사실 처음에 서평을 쓸 책을 고를 때에는 프랑스혁명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종교혁명에 관한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자 하였다. 그러나 교양 수업으로 서양사 개론 비슷한 수업을 듣던 도중에 프랑스 혁명에 관한 발표를 맡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 혁명의 해석에 대한 부분을 맡아서 준비하게 되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르페브르라는 사람에 대해서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 사람이 프랑스 혁명기의 농촌과 농민의 역할 등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했던 사람이었다. 사실 대학에 들어오기 이전까지 읽은 책이나 배운 수업에서는 프랑스 혁명 중에서 부르주아 혁명과 도시 혁명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배웠고, 그 이외에 농촌에서 벌어진 일 등에 대해서는 거의 배우지 못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알아왔다.하지만 발표를 준비하면서 프랑스 혁명에는 꼭 그런 도시혁명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도시에서 그러한 혁명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농촌에서도 혁명은 같이 일어나고 있었으며, 농촌에서도 많은 것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에 대해 더 공부하고 지식을 쌓고자 르페브르의 ‘1789년의 대공포’라는 책을 정해서 서평을 쓰게 되었다.'대공포'라는 단어는 프랑스 혁명이 일어났던 1789년 여름에 프랑스 농촌에 널리 퍼졌던 사회 불안 현상이다. 이러한 공포는 7월 20일부터 8월 6일까지 2주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여러 지방으로 급속도로 확산된다. 르페브르는 이 책에서 도대체 왜 이런 공포가 일어났으며,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연구함으로써, 프랑스 대혁명기의 공포심에 대한 총체적인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이 책은 크게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르페브르는 첫 장에서는 당시 1789년의 프랑스 농촌이 어떠했는가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대공포의 배경 중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배경을 이야기 한다. 두 번째 장에서는 대공포의 원인으로 여겨져 온 귀족들의 '음모'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장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대공포를 불러왔으며, 그 경과와 영향은 어떠했는지, 또 대공포는 어떠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우선 가장 먼저 이야기 되는 것은 당시 프랑스 농촌의 굶주림이다. ‘당시의 프랑스의 재정상태는 파산 직전이었고, 농민들의 삶은 비참함의 극단을 위태롭게 걷고 있었다.’고 책은 말하고 있다. 게다가 프랑스는 영국과 경제 협정을 맺는데 자신들보다 압도적으로 발전해 있던 영국 산업에 대해 급작한 개방으로 인해 프랑스 경제는 몰락하고 만다. 이러한 급격한 경제의 몰락은 수많은 부랑자를 낳았다. 이러한 부랑자들은 구걸을 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이러한 부랑자들이 많이 생기고 삼삼오오 모여 다니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비적 떼로 오인받기 시작한다. 여기에 이미 평판이 좋지 않았던 상인들이 같은 비적 취급을 받게 되면서, 비적에 대한 공포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한편 정책실패로 인한 대량 실업과 굶주림으로 인해 하층민들은 소요를 일으키는데 이는 자신들에게 세금을 거두어가는 봉건영주들에 대한 것이었다. 소요를 일으킨 하층민들은 곡물창고를 공격하여 약탈했으며, 이로 인해 또 다른 굶주림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이 다른 지방으로 옮겨 가면서 전국적인 혼란 상태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혼란 상태는 국가는 통제 할 수가 없었다. 귀족들은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요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소요가 너무 다발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군대의 병력을 파견하기에도 어려움이 많았다. 게다가 당시의 많은 도시들은 자신들의 독자적인 군대인 민병대를 조직, 운영하고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원인들이 농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스스로를 무장하게 만들게 되었다.정리하자면, 프랑스 경제의 몰락과 그로인한 실업과 식량가격의 폭등은 구걸행각을 증가 시켰고, 또 식량부족으로 인한 많은 소요들이 혼란을 가중 시켰다. 게다가 이렇게 구걸하고, 폭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비적 떼로 오인받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가중 시켰다. 이러한 혼란 중에 농민들은 스스로는 보호하기 위해서 무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두 번째 장에서는 ‘특권계급의 음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 대공포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것이 ‘특권계급의 음모’ 인데, 특권계급들이 제 3신분들을 몰아내기 위해서 외국을 끌어들이고, 비적들을 고용했으며, 이러한 특권계급의 음모가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이야기이다. 1장에서 이야기 했던 대로 당시 프랑스의 재정은 바닥난 상태였고, 경제정책의 실패와 기근으로 인하여 농민의 굶주림은 극에 달할 정도였다. 이것은 농업생산력에도 영향을 미쳐, 추수기를 앞두고는 특권계층과 제3신분 사이에서 갈등으로 인한 내전이 일어날 정도였다. 이러한 내전에서 패배한 특권계층은 외국의 협력과 비적 떼들을 고용함으로써 제 3신분을 몰아내려 했다는 것이다. 1789년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두려워한 부랑자들이 특권계급을 위해 매수되었다.” 라는 소문이 유포되기 시작했으며, 특권계급과 외세의 연계는 1789년 7월부터 확실한 것으로 여겨졌다. 게다가 정부에서는 언론을 통제하였다. 당시에 정보 전달 매체에는 우편과 신문이 있었는데, 정부에서는 이러한 우편을 검열하고 신문이라는 언론을 억압함으로써 정보를 제한하였다. 이러한 정보의 제한이 오히려 유언비어의 유포를 부추겼고, 공포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과장되었다. 정부의 언론제한으로 인하여 이러한 유언비어들은 검증받을 곳을 잃었고,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킬 따름이었다. 이렇듯 특권계급의 음모라는 것은 특별한 증거도 없이, 정부의 언론통제에 반동하여 유언비어로 확산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유언비어들은 사회에 엄청난 혼란을 낳게 되었다.가장 마지막 장인 3장에서는 대공포의 특징, 전파과정, 결과 등을 이야기 하는데,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이전에 이야기 되어온 대공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들에 대한 비판과 자신의 새로운 시각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먼저 르페브르가 가장 크게 비판하는 기존의 생각은 이전의 사람들은 대공포가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났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르페브르는 이러한 점에 대해 반대하는데 이것은 사람들이 ‘비적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일반적인 현상과 대공포라는 특수한 현상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맨 앞에 있는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대공포라는 것은 6개 정도의 주요 발생지에서 일어나서 흐름을 타고 프랑스 각지로 퍼져 나갔지만, 대공포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은 곳도 있었고, 이미 그 이전에 봉기가 일어난 곳도 있었다. 전국에 일반적으로 퍼진 ‘비적에 대한 두려움’ 과는 달리 대공포라는 현상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또한 르페브르는 이전에 이야기 해왔던 특권계급의 음모론이 허구라고 주장한다. 이전에는 대공포가 특권계급의 음모의 결과이며 농민반란을 일으켰다고 여겨져 왔다. 하지만 대공포와 특권계급, 그리고 농민반란 사이에는 일정한 연계성은 있지만, 이것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고 별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대공포가 특권계급에게 유리하지 않았으며, 농민반란이 일어났던 지역이 대공포가 있었던 지역들과 일치하지 않다는 것을 연구함으로써 밝혀냈던 것이다.마지막으로 르페브르는 대공포가 파리를 중심점으로 하여 지방으로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는 기존의 생각을 비판한다. 필자가 위에서 한 지도 이야기처럼 대공포는 6곳은 원초적인 공황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우편배달부나 마부, 여행객 등의 여러 매체 들을 통하여 급속도로 퍼져 나갔으며, 이는 대략 시간당 4km정도의 속도였다고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황이라는 것이 파리라는 단 하나의 진원으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여섯 곳에서 비슷한 시기에 다발적으로 일어났으며, 비적에 대한 두려움이 공통의 원인이긴 하지만 그 외에 각기 다른 원인으로 인하여 일어났다는 점이다.
    독후감/창작| 2007.11.04| 3페이지| 1,000원| 조회(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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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르크 블로크 -역사를 위한 변명 서평 평가B괜찮아요
    서평 - ‘역사를 위한 변명’을 읽고“아빠, 도대체 역사란 무엇에 쓰는 것인지 저에게 설명 좀 해주세요.”라는 독특하면서도 의미있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은 마르크 블로크가 쓴 책이다. 마르크 블로크는 수업시간에 배운 대로 제 1기 아날학파의 중심인물이다. 이 책은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쓴 책으로 역사에 대한 그의 사유가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첫 번째 장에서는 역사, 인간, 시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 세 가지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역사는 시간 속을 살아가는 인간들을 대상으로 한 학문이다”라고 이야기 한다. 그는 역사학이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는 말에 반박하며 역사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말은 사회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분야와 더 가까울 수도 있다고 보이는 말인데, 이런 점에서 다른 학문과의 제휴에 적극적이었던 아날학파의 성격을 찾아볼 수 있는 듯하다. 책 내용으로 돌아와서 블로크는 역사가가 궁극적으로 다루어야 할 것은 인간이며, 그렇지 않다면 역사학은 쓸모없는 지식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에 시간의 개념을 첨부하는데 현재의 인간, 과거의 인간 하나만을 연구해서는 안 되며, 과거로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변화하는 것을 연구해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인간중심적인 사고는 역사에서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실증주의의 비판으로 이어졌다. 블로크는 인문과학은 객관성을 가지되 인문과학 특유의 독창적 방법을 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했다. 이런 독창적 방법으로 역사적인 관찰과 그러한 증거를 미시하는 것을 말하였다. 역사적인 관찰의 산물인 지식과 이것의 직접, 간접을 나뉘며 또한 그는 역사가의 현실참여를 통한 견문록을 중시하였다. 이렇게 역사가의 현실참여는 중시한 그는 "어떻게"라는 지식인의 방법적인 면의 비판을 뚜렷이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참여를 중시한 블로크(2차대전에서 프랑스의 장교로 까지 참전)는 이러한 현실참여로 인해 객관성을 잃어버린 듯하다. 물론 완전한 객관성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역사에 있어서 역사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편파적이거나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블로크는 이 책의 서문에서도 2차 대전에서 프랑스의 패배를 ‘우리 사령부의 이 참담한 패배’라고 표현하는 등, 이미 민족적, 국가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된다.블로크는 또한 정치사, 제도사의 중요성을 비판한다. 이전까지의 역사가가 해왔던 것은 문서로 기록된 기록만을 열심히 파헤쳐보면서, 왕조와 제도의 흥망성쇠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사, 제도사의 연구였다. 블로크는 이런 것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고, 이러한 것은 정치사, 제도사 일 뿐 인간사라고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역사의 시대 구분에 있어서도 이전의 시대 구분을 비판한다. 역사를 세기별로 연도별로 분절하는 것 또한 위험하고 정확하지 못한 분류라는 것이다. 인간은 시계추처럼 정확하게 움직이지 않으며, 사건의 발단과 결말은 시계추를 따라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블로크는 이러한 숫자화 된 구분 대신에 세대라는 개념이 이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간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을 왜곡하지 않고 그것들을 표현하려고 애쓰는 매우 유연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대를 통한 구분도 수치를 통한 구분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것일 뿐, 연속적인 활동은 구분되지 않으면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시대구분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지는 못한 듯하다.역사적인 서술에 있어서도 블로크는 역사가의 일이라고 생각되는 역사적 사실의 구체적 서술 또한 역사가가 사실의 묘사를 세밀히 하려고 할수록 역사는 왜곡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자세하게 서술하려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세 번째 장에서는 역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유사성을 이용한 비판이다. 이는 블로크가 주장하는 ‘비교사’와 연관이 되는 이야기이다. 블로크는 고문서학의 기초를 세운 마비용과 성서주해가 복음서 사이를 다른 내용을 비교함으로써 완성되었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모든 역사적 비판의 기초에는 ‘비교’라는 작업이 깔려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이러한 유사성의 비교는 역사적 증거를 비판하는 방법이 되는데 이는 진실성을 증명하기도, 진실성의 가치를 떨어뜨리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증거를 비판하는 과정에 있어서 다른 학문들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비교라는 것은 이미 기준이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즉 기준이 없는 비교는 일어날 수 없다는 점에서 블로크의 이러한 비교를 통한 역사 연구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또 비교를 통한 연구는 그 기준이 되는 것이 비교되는 대상을 이미 있던 기준에 포함시키는 과정일 될 뿐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할 수 있을 것이다.미완성으로 남은 다섯 번째 장에서는 역사의 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는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인 인과관계 인식에서 연대기적 방식에 대한 비판이 주된 내용이 되고 있다. 블로크는 낭떠러지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사한 사람의 예를 드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추락의 원인으로 발을 헛디딘 것을 지목한다. 이는 발을 헛디딘 것을 사람들이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단지 추락 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일어났으며, 가장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블로크는 이러한 생각을 비판하며, “유일한 원인이 있다는 미신은 책임자를 밝혀내는 일, 따라서 가치판단의 교활한 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다양한 원인을 폭넓게 연구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는 역사가 “원인이라는 물결의 행렬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인과관계를 밝혀내는 방식의 역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후감/창작| 2007.11.04| 3페이지| 1,000원| 조회(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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