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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 산유국 힘겨루기
    중앙아시아와 러시아 : 산유국 힘겨루기.0 8 5 2 0 2 5인 태 영 ♥서론기나긴 역사 속 국가의 존립 의미를 가지지 못한 민족들이 종종 있는데 구소련 연방 중 러시아를 제외한 14개 공화국이 여기에 포함된다. 그러나 현재 오랜 세월 이슬람 문화를 보존해 온 중앙아시아는 오늘날 세계열강들의 새로운 패권다툼의 장으로 부상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지정학적 위치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동으로는 중국에 인접해 있으며, 서로는 카스피해, 북으로는 러시아와 남으로는 이란, 아프간에 접해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구소련 붕괴 전까지 중앙아시아는 오랜 러시아의 중요한 ‘세력권’이었다. 탈 냉전기 중앙아시아지역은 에너지자원을 중심으로 강대국의 치열한 경쟁 지역으로 변모했는데, ‘21C 석유보고’라고 불리는 카스피해 에너지자원의 개발문제는 이 지역이 주목받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거대한 매장량의 천연가스와 원유를 포함한 중용한 광물자원이 풍부하다는 요소들은 새로운 질서 재편과정에서 강대국의 패권경쟁으로 인해 지역적 불안정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로써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근외정책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구소련 붕괴와 그에 따른 러시아의 영향력 약화는 유라시아의 권력 공백을 초래했고, 새로운 지역 패권의 주요 행위자로 미국과 중국이 등장하기에 충분했다.)때문에 푸틴 정부는 강대국들의 중앙아시아 진출에 대응하여 중앙아시아와 새로운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러시아의 이익을 확보해내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은 중앙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외교 관계의 강화 뿐 아니라 중앙아시아 역내 문제에 대한 영향력의 확대에까지 미쳤다. 이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 대한 기존 전략 환경을 변화하면서 서로 필요조건에 의한 협력관계를 강화시켜 나아가려는 의도에 기인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고 이슬람 문명권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 대 중앙아시아 관계를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면 중앙아시아는 주변국들과의 국경· 민족· 종교문제 등의 각축과 경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특히 옐친시기 자국 내의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지역에 대한 세력 약화는 미국의 영향력 강화와 중국의 부상으로 힘의 공백을 채우는 새로운 강자의 등장을초래하게 되었다. 특히 2001년 9/11 테러와 동년 10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의 공격이후키르기스스탄의 마나스 공군기지를 시작으로,) '신 거대게임(New Great Game)' 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미국은 2001년 ‘국가 에너지 정책’ 보고서에서 카스피해를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권리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지역으로 분류했다.중앙아시아지역의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은 이슬람분리주의 위협에서 정권유지와 에너지 개발에 주력하고 민주화의 색깔혁명의 도전에 직면을 극복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약화된 러시아의 영향력에 비해 적극적으로 진출을 꾀했던 미국과 중국 등의 강대국에 의존하게 되었다. 2000년대 푸틴 전 대통령의 집권은 중앙아시아지역에 대한 러시아의 정책에 새로운 전환을 가능케 했다. 푸틴은 ‘유라시아 대륙의 세력판도는 중앙아시아의 상황에 의해 결정된다,’고 언급했다. 중앙아시아지역을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지정학적 역할을 부각시켰고, 에너지자원의 주요 공급지로서 러시아의 영향력 ‘범위와 수위’ 회복에 주력하기 시작했다.그는 다자간 및 지역간 협력기구를 통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증진하고 실질적인 경제적 상호 의존적인 보완을 강조하면서 다층적인 관계를 발전시켰다. 정기적인 군사합동훈련, 실질적인 교역량 증대, 송유관 연결 확대 등을 통해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책이 정치외교, 경제, 군사, 안보적 요소가 다층적으로 연동되고 있다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지역의 국가들과 일방적이 아닌 ‘쌍무적’ 협력안보 구축에 주력했고, 경제적 측면에서 실질적인 교역량 증대와 에너지 협력의 상호보완적인 측면에 서 다시 중앙아시아의 주요 행위자로 역할을 회복에 주력했다. 또한 에너지 수입과 공급 보고인 카스피해지역에 영향력을 유지해야 함.파이프라인 구축정치경제적으로 기존의 파이프라인의 유지 및 구축을 통한 통제권 유지를 통해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유지해야 함.상호협력 강화경제협력 강화 및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을 보호하고 러시아어와 문화의 상호교류 확대를 통해 정치·문화적 측면의 역할 강화를 유지해야 함.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정책의 주요 특성2000년대 초반 푸틴은 ‘강한 러시아 국가' 건설과 이슬람 원리주의 척결’)과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체첸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국제공조를 강조했다. 푸틴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 구축을 최우선 정책 목표로 삼고 2001년 중국과 카자흐스탄, 키르키즈스탄 등을 중심으로 SCO를 출범했다. 그는 완전한 통합추구전략을 재고하고 독립국가연합 회원과의 이른바 ‘쌍무관계’를 강화하게 되었다. 강한 러시아 건설을 대선 구호로 내세웠던 푸틴은 대통령 권한대행직과 정식 대통령직을 수행하면서 2000년 1월 ‘국가안보개념’(National Security Concept), 동년 4월 ‘군사독트린’(Military Doctrine)과 6월 ‘대외정책 개념’(Foreign Policy Concept)을 발표하면서 러시아가 직면하고 있는 대내외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처방안들을 제시하였다. 특히 대외정책에서 구소련 즉,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의 최우선 정책으로 채택되었는데 국제테러주의와 극단주의로부터 안전보장 강화와 카스피해 에너지 자원 확보와 동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강화가 중요시되었다.이렇듯 카스피해는 지리적, 문명적 교차점에 걸터앉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사적으로 유라시아의 패권경쟁에 뛰어든 국가들에게 있어 중요한 목표물 중 하나가 되었으며, 거대한 에너지 자원의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어 막대한 규모의 원유와 천연가스는 연안국은 물론이거나와 경제적 이익과 에너지 안보를 실현하려는 강대국들 간 치열한 지정학적 경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사실, 카스피해는 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 정치가 뒤섞인 지역’으로 묘사하기도 했다.카스피해 석유의 국제적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은 1994년 9월 이른바 ‘세기의 계약’체결로 볼 수 있다. 아제르바이잔의 석유매장지 개발을 위한 이 생산물 분배 협정에 아제르바이잔의 국영석유기업 COCAR를 비롯하여 13개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참여했고, 이에 따라 아제르바이잔 국제운영기업이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카스피해의 에너지 자원은 불균등하게 분포되어 있었으며 이 때문에 연안국들이 처한 입장 역시 차이를 보였다. 카자흐스탄 외무장관 토카예프는 자국에 있어 카스피해 석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긴 연안선과 카스피해 대륙붕의 자기 구역에 막대한 석유 확인매장량을 가진 국가로서 카자흐스탄은 지역의 정치적 안정, 안보, 경제적 번영이라는 세 가지 통합적인 목표의 달성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이 목표 달성에 관심 있는 모든 국가들과 협력을 견지하고 있다.” 현재 카자흐스탄은 카스피해 근해에 가장 많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국가이다. 2009년 조사에 따르면 약 53억 톤(전 세계의 약 3.0%)의 석유 확인매장량과 1조 8천억 입방미터의 천연가스 확인매장량을 가지고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카스피해의 카자흐스탄 근해에 위치해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카자흐스탄에게 있어, 카스피해 석유의 개발과 수출은 국가 경제발전의 핵심과제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카자흐스탄과는 달리 투르크메니스탄은 다른 연안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있다. 2009년 석유 확인 매장량이 1억 톤으로써 다른 연안국들에 비해 적은 양이나, 가스 매장량은 8조 1천억 입방미터로서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아직 투르크메니스탄 근해의 석유 및 가스 매장량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며, 산업적 규모의 석유 및 가스의 채취는 기본적으로 내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요약하자면, 카스피해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자원의 불균등한 분포로 인의 수출 노선 다변화를 위해 대안노선의 개발을 시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생각하고 있는 우선적인 대안은 카스피해를 횡단하는 악타우-바쿠(Актау-Баку) 송유관을 건설하여 이것을 기존의 바쿠-트빌리시-제이한(BTC) 송유관과 연결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른바 남부 노선(카자흐스탄-투르크메니스탄-이란)송유관 건설을 통해 페르시아만으로 석유를 수송하려는 프로젝트 역시 존제하나 그것은 경제적으로 경쟁력이 있긴 하나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의 국제적 고립 상황이라는 정치적 요인이 개입하고 있어 그 전망이 아직 불투명하다.결국, 카자흐스탄은 경제발전을 담보하는 석유수출에 있어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즉, 러시아 통과 노선의 확대와 카스피해 횡단 노선 건설을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우호적인 양국관계와 카스피해 경계획정 문제 해결 등을 포함한 연안국들의 합의가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그리고 투르크메니스탄 경제에 있어서 석유가스 영역(특히 가스채취)은 발전의 기반이 되고 있기 때문에 천연가스의 수출 확대를 시도하고 있는데, 현재 수송 노선에 있어서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러시아이다. 또한,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 가스를 제3국을 우회하여 흑해를 지나 터키까지 직접 공급하는 ‘블루스트림’프로젝트에도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투르크메니스탄은 현재 가스 수출에 있어 러시아에게 크게 의존하고 있지만, 수송 노선의 다변화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1990년대 말 미국과 유럽은 투르크메니스탄 가스를 러시아와 이란의 영토를 우회하여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 영토를 지나 터키까지 공급하는 카스피해횡단 가스관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러나 카스피해의 법적 지위 문제 미해결로 인한 러시아와 이란의 반대,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공급량 협상 결렬로 인해 프로젝트의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해졌다. 아마도 이러한 결정의 배경에는 카스피해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가스 수출 노선 건설을 저지하려던 러시아의 압력과 함께 투르크메니스탄과 아제르바이잔 간의 유전 영유
    인문/어학| 2013.04.06| 7페이지| 2,000원| 조회(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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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루지야와 러시아_러시아 민족문제
    그루지야와 러시아0 8 5 2 0 2 5인 태 영 ♥서 론카프카즈 지역은 중앙아시아와 함께 ‘신 거대게임(New grate game’)의 격전지라 불릴 만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남카프카즈 국가들은 독립 이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아직까지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한 상태이며 이러한 대내적 불안정으로 인해 국가 경영과 관련하여 높은 대외의존성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대외정책에 있어 균형적이기 보다는 어느 한 편에 치우쳐진, 친미적인 대외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 이유는 미국이 그루지야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을 지지하고 이곳에 자국의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등 포스트 소비에트 공간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뿌리내리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적극적 지원을 보냈기 때문이며, 이에 반해 러시아가 과거의 기득권을 회복하기 위해 공세적 국가전력을 취해 친서방 성향을 보이는 국가들에 대해 정치· 경제적 압력을 가했기에 강한 반러적 성향을 지녔다 할 수 있다.러시아가 이러한 그루지야의 대외정책노선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그루지야가 우크라이나와 함께 흑해를 접하고 있는 국가이면서 지리적으로토 터키 및 이란과 근접해 있어서 이슬람 국가와 러시아 사이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고 있는 안보전략적 측면에서 중요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카스피해의 에너지 자원을 수송하는 주요 파이프라인들이 그루지야를 경유하고 있어 지경학적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루지야의 독립 이후 양국의 관계는 2008년 8월 그루지야의 남오세티야 침공이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발전되면서 최악으로 치달았다. 러시아의 무력개입과 남오세티야 및 압하지야 자치 지역들에 대한 러시아의 독립 인정에 항의하며 그루지야는 독립국가 연합 탈퇴를 선언하였다.지금부터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관계를 압하지야 분쟁과 남오세티야 분쟁에 초점을 맞춰 분석하려고 한다. 특히 남오세티야 분쟁을 더 집중적으로 다룰 것인데 그 이유는 첫째로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야의 갈등에 있어서 러시아가 줄곧 개입해 왔으며 이로 인해 남오세티야의 마찰은 러시아와동안 그루지야에서도 독립에 대한 열기가 타오르게 되는데 1989년 4월 트빌리시에서 소련군이 그루지야 데모대를 학살했던 사건은 이러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데 한 몫 했다. 1991년 4월에는 민족주의자인 감사후르디야가 그루지야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였으나 그루지야 내 자치공화국인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는 그루지야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았고 소연방의 일원으로 계속 남아있기를 희망하였다. 이에 그는 ‘그루지야인을 위한 그루지야’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를 위협했으며 이 지역의 분리독립 움직임을 여러 차례 무력으로 진압했다. 그는 짧은 통치기간동안 반러성향을 띠며 그루지야의 몬족· 영토 통합을 주장하는 등 급진적 민족주의 성향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성향으로 인해 그루지야는 러시아와 멀어지게 된 것이다.그러나 1992년 그루지야 정부가 내전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는 동안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준리주의자들은 그루지야의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비난하고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루지야는 자체적으로 이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였고, 결국 1992년 러시아와의 회담을 통해 평화협정을 맺게 되었다. 그 후 그루지야의 군사력 증강 및 분리주의자들과의 갈등 중재를 이유로 러시아군이 주둔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그루지야로써는 뜻하지 않게 러시아와의 연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세바르드나제 대통령은 이와 동시에 미국 및 유럽과의 관계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경제적인 이득 뿐 아니라 그루지야 영토 분쟁의 해결이나 그루지야가 러시아로부터 탈피하고자 할 때 큰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그루지야의 관계가 다시금 소원해지게 된 계기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로 축약할 수 있다.첫 번째는 독립 이후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몰도바가 1997년 탈러· 친서방적 성격을 띄는 ‘GUAM’이란 협력체를 창설한 것이다. 특히 미국이 GUAM 지원에 나서면서 러시아는 더욱 견제를 강화했다.두 번째는 19인이 완공될 경우 카스피해의 에너지 자원이 러시아 영토를 거치지 않고 서방으로 수송되기 때문에 서방은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자원 의존도를 낮출 수 있으며 그루지야로썬 통과비용 수입으로 경제적 이득을 남기는 동시에 미국 및 서방의 지원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를 창출하는 반면 러시아에게는 큰 경제적 손실을 안겨줄 수 있기에 탐탁치 않아한다.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2002년 12월에 채택한 모든 CIS 국가 국민이 자유롭게 러시아로 입국 할 수 있도록 하는‘비쉬켁 조약’을 그루지야 국민에게만 적용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그루지야인들의 러시아 입국과정에 제약을 가했다. 또한 2005년 1월 그루지야가 OSCE(유럽안보협력기구)에 힘입어 러시아 군사기지 철수를 대가로 공동 반테러 센터의 설립을 러시아측에 제안했으나 러시아는 분리지역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지 않고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의 지역 정부에 개입하는 등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또한 2006년에는 그루지야로의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시켰으며 그 후에는 가스 가격을 두 배 가량 인상하였다. 이 뿐만 아니라 그루지야 생수 및 포도주 수입의 금지), 러시아 내 그루지야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것 금지 등 그루지야를 압박하기 위한 최대한의 조치를 취하였고, 이로 인해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관계는 더 이상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게 되었다.Ⅱ. 압하지야 분쟁그루지야인과 압하지야인은 상호 불신이 매우 심한데 이렇게 양 민족간의 갈등이 노정된 것은 1978년 압하지야자치공국이 탈 그루지야 운동을 시작하면서 부터이다. 당시 압하지야의 요구는 모스크바로부터 거부되었는데, 대신에 압하지야 자치공화국에 대한 대규모 경제지원과 문화정책에서의 자율권의 확대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 정책은 압하지야인들을 만족시키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이 지역에 살고 있던 그루지야인의 친압하지야인 정책에 대한 불만을 가중시킬 따름이었다. 양국의 분쟁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것은 압하지야 최고회의가 1992년 7월 23일 자국이 월 27일 그루지야, 압하지야, 러시아 3국의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정전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러나 9월 16일 압하지야 분리주의자들이 정전협정을 위반하자 세베르드나제 의장은 전 국민 총력전을 촉구하였고, 러시아와 UN안보리도 압하지야 반군의 공격 중단과 즉각 철수를 촉구하였으며 반군지역에 전력공급을 중단하는 등 제재를 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국은 사태는 점점 커져 이중내전으로까지 치달았다.사실 러시아는 원래 압하지야에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한다는 이유와 그루지야가 CIS의 일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압하지야를 묵시적으로 지원해온 바 있다. 그러나 압하지야 반군이 러시아 주도의 정전협정을 계속 위반하자 압하지야에 경제적 제제를 취하는 등 반압하지야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으며, 그루지야 정부군이 지역을 탈환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Ⅲ. 남오세티아 분쟁현재 남오세티아 지역은 러시아 연방에 속해있는 북오세티아와는 달리 그루지야에 속해 있는데 이는 13세기에 북오세티아에 거주하던 오세티아인이 그루지야 왕국을 침공함으로써 생겨난 결과라 할 수 있다.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기에 들어와서 오세티아 인은 당시 그루지야의 멘셰비키 파에 반대하였고 혁명군인 볼셰비키를 지지하였는데 이에 1922년 소비에트 공산당은 자신을 지지한 남 오세티아 지역이 자치 공화국임을 인정하였다. 이것이 훗날 그루지야 내 분쟁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구 소련 붕괴 후 1990년 9월 20일 그루지야 내 남 오세티아 공산당은 소비에트의 일부로서 남 오세티아 소비에트 민주공화국을 선포하면서 그루지야로부터의 분리를 선언하였는데 이에 그루지야 정부는 이 지역에 바상사태를 선포하고 남 오세티아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본격적인 대규모 정규전의 발발은 1991년 1월 6일 그루지야 군이 남오세티아에 진입하면서 시작되었다. 1년여에 걸친 크고 작은 전투는 1992년 5월 14일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아 정부의 휴전협정으로 인해 끝나는 듯 했으나 5월 29일 남오세티아가 탈그루지야를 선언하면서 양국의 긴장을 고아의 평화유지군이 이 지역에 주둔하게 된 것이다.그루지야 내 남오세티아 분쟁의 배후에는 북오세티아가 있었고, 또 그 배후에는 러시아가 있었다. 러시아는 남 오세티야 지도자들로 하여금 러시아로의 통합을 추구하도록 조정하면서 한편으로는 반 그루지야 운동을 펼쳤다. 2000년 12월 5일 그루지야와 러시아 간에 비자협정이 체결되었는데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양국민이 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남오세티아인은 비자를 취득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러시아에 입국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오세티아는 러시아보다 1시간 빠른 그루지야 시간대를 사용하지 않고 러시아 시간대를 사용하는데 이러한 모든 사실들은 남오세티아가 진정한 친러· 반그루지야 지역임을 확실하게 증명한다.Ⅳ. 평화협상과 미국· 러시아· 서유럽의 이해관계휴전 이후 이 지역들에서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그루지야와 압하지야, 남오세티아, 러시아 OSCE(유럽안보협력기구)등 간에 여러 가지 협상이 이루어져 왔으나 그 결과는 미미하였다. 특히 협상의 주된 주제는 남오세티아 자치권 인정 문제인데 양자 간의 의견차를 조절하려 노력하고 있으나 현재까지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평화협상이 진전을 보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루지야와 남오세티아, 러시아와 미국 및 서유럽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루지야는 GUAM의 일원으로 반러벨트를 형성해 왔는데 최근의 ‘5일 전쟁’도 표면적으로는 그루지야가 친러 세력인 남오세티아를 침공하자 이를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강력한 군사행동으로 제압하는 형국이었다.그러나 이면에는 ‘신 거대 게임’이라는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이 지역들에서 터진 여러 차례의 분쟁과 갈등의 배경에는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미국과 EU, 그리고 옛 소련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러시아가 있었으며 이번 그루지야 전쟁 역시 러· 미가 직· 간접적으로 개입한 신 거대 게임의 양상을 보여주었다.남오세티아 분쟁을 통해 러시아다.
    인문/어학| 2013.04.06| 6페이지| 2,000원| 조회(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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