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우리 대한민국은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삼일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대한민국2. 1910년, 삼일운동 직전상황에서 국내에서는 많은 항일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했다. 국외에서는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 여러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했다.3.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 운동은 점차 지방도시로 확산되었다.4. 비폭력운동으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차츰 면사무소, 헌병 주재소 등 식민 통치 기관, 친일 지주 등 습격하는 무력적인 저항 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삼일운동은 국외로도 확산되어 만주와 연해주,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국외 동포에 의해 시위가 전개되었다.5.그러나 일제는 온갖 무력을 동원하여 만세 시위를 탄압했다.6. 황성 제암리에서는 전 주민을 교회에 집합, 감금하고 불을 질러 하살했다. 당시 만세 시위에 참가한 인원은 총 200여만명이었다.7. 간단한 헌병통치하려고 하으나 삼일운동의 치열함, 조선인의 강인한 독립의지에 일본이 포기함.8. 1910년대에 나라 잃고 여러 국가에 독립기지 설치->삼일운동->나의 아집이 올히지 않았구나->1달 내에 독립기지 통합(상하이)->헌법에 삼일운동 명시됨.9.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그 헌법이 성립하게 된 사상적 배경은 1919년 삼일운동에서 비롯된다. 상하이를 거점으로 1919년 9월 개헌형식으로 통합되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되었다.10. 임시정부의 변천과정-상하이(1919-1932) : 가장 반도에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최초의 임시 정부: 국내외동포사회에 통합조직으로 확대하면서 외교활동이나 독립전쟁 등을 지도, 통할하는 데 주력. 임시 정부는 1932년 4월 윤봉기의사의 의거로 활로를 찾게 된다. 그러나 일제의 반격으로 상해를 떠났다.-항저우(1932), 전장(1935), 창사(1937), 광둥(1938), 류저우(1938): 윤봉길의사의 의거 직후 항저우로 옮긴 임시정부는 일제의 치열하고 지속적인 추격을 피해 중국 각처로 옮겨 다녀야 하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던 중 발발한 중일전쟁(1937)은 8년간 지속되어다. 중일전쟁은 태평양 전쟁이 종결되면서 끝을 맺었다.-치장(1939), 충칭(1940): 1939년 치장으로 옮긴 뒤부터는 전시체제로 정비함으로써 정상적 운영을 회복할 수 잇었다. 충칭에서는 상해시대처럼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었다.광복군을 창설하여 태평양전쟁에 임하여 대일선전포고를 발하고 연합군과 함께 중국, 인도, 버마 전선에 참전했던 점을 들 수 있다.임시 정부는 주로 중국정부를 통로로 국제외교도 강화하여 카이로선언(1943) 이후 우리나라 독입에 대한 열강의 약속도 받았다. 건국강령을 1941년도에 발표하고 헌법을 1940-1944년에 개정하면서 광복 한국의 새로운 통치기반을 다져나갔다.*카이로 선언: 1914년 제 1차 세계전쟁 이후(1914년, 우리나라는 1910년) 이후~~앞의 3대국은 조선 인민의 노예상태 유의하여 적당한 시기에 조선이 자유 독립할 것을 결의한다.삼일운동은 어떻게 대한민국임시정부 건설로 이어졌고 이는 얼마나 가치 있길래 헌법에 기재되었는가?삼일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우리 대한민국은 삼일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삼일운동->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대한민국2. 1910년, 삼일운동 직전상황에서 국내에서는 많은 항일 비밀 결사를 조직하여 일제에 대항했다. 국외에서는 만주와 연해주 등지에 여러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했다.3. 서울에서 시작된 만세 시위 운동은 점차 지방도시로 확산되었다.4. 비폭력운동으로 시작된 만세 시위는 차츰 면사무소, 헌병 주재소 등 식민 통치 기관, 친일 지주 등 습격하는 무력적인 저항 운동으로 바뀌어 갔다. 삼일운동은 국외로도 확산되어 만주와 연해주, 미국, 일본 등지에서도 국외 동포에 의해 시위가 전개되었다.
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ca43aaa.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22pixel, 세로 205pixel연도사건명1894년(갑오년)동학농만운동(고부봉기 1.10-전봉준 체포 12.30)청일전쟁(1894 6-1894.3)1895년(을미년)삼국산섭을미사변(경복궁)1896년아관파천(1896.2.11.-1897.2.20.)*아관=러시아공사관*바로 가지 않았고 2.20까지 경운궁 준비기간을 거쳤다.1897년대한제국(10.12 : 황제즉위식)(경운궁=덕수궁)*고종의 길은 도망가는 길이 아니다. 위치 상, 아관->경운궁으로 가는 길이다.*1895년에서 1896년으로 가는 사이에 양력으로의 전환시기동학논민운동 : 나라를 도와서 백성을 안정시킴.2. 시대를 보는 다른 시선이 필요한 단서들2-1. 양력으로의 전환시기(1895->1896): 조선 정부는 태양력을 채택하고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삼았다. 즉 고정 32년 11월 16일까지는 음력으로 표기하고 다음날을 고종 33년 1월 1일로 삼아 양력으로 표기하기 시작했다.2-2. 삼국간섭(1895)이 보여주는 제국주의적 세계질서(약육강식, 힘의 논리): 일본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해 중국으로부터 요동 반도를 빼앗았다. 이에 일찍부터 남하 정책을 추진하고 있던 러시아는 이 지역에 오래전부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 끌어들여 요동 반도를 청에 돌려줄 것을 일본에 요구했다. 이를 삼국 간섭이라고 한다. 삼국간섭에 일본이 굴복하여 요동 반도를 포기했다. (프랑스+독일+러시아일본)3. 동학농민운동의 소박함-(무장 동학 무리의 포고문)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할(보국안민)-우려한 농민군은 관군에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이를 정부가 받아들인다면 동학 농민군을 해산하겠다는 강화안을 정부 측에 제시했다.-(폐정개혁안 내용) 토지는 평균적으로 분작하게 할 것4. 동학 농민 운동 주요 사건 시기별 정리-고부봉기(1894.1) : 고부 조병갑의 가렴주구에 항거: 고부봉기에 앞서 1893년 12월에 억울한 사정을 민소의 형식으로 군수에게 진정하기로 하고 동학접주 전봉준을 장두로 삼아 군수 조병갑에게 2차례에 걸쳐 호소를 하였다. 한편 전봉준은 동학접주인 동지 20명과 함께 각 마을 집강에게 보내는 사발통문을 작성해 봉기를 맹약했다.-무장봉기(1894.3): 전봉준, 독학접주들과 함께 무장현에서 민간에 무장동학포고문을 포고했다. 탐관오리 숙청과 보국안민을 천명했고 인근 10여 읍에서 호응했다. 10일 만애 1만여명이 동원했다.백성은 나라의 근본인 바, 근본이 쇠약해지면 나라도 쇠약해진다. 나랏일을 도와 백성을 편안하게 할 보국안민 방책은 생각하지 않고 시골에 집을 지어 오직 혼자만 온전할 방법만을 찾고 오로지 녹봉과 지위를 도둑질하니 이것을 어찌 도리라 하겠는가.(3) 황토현전투(1894.4) : 1894년 4월 농민군이 전라감영군을 격파한 전투: 1894년 3월 20일에 전봉준이 전라북도 무장에서 포고문을 발표하며 본격화된 농민 항쟁은 4000여명의 농민군을 바탕으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 후 태인으로 이동해서 4월 1일에는 태인 관아를 점령했다. 이미 각 고을의 아전들까지 농민군에 가담할 정도로 농민군의 세력이 커졌다.전라감영군 소집->4.3 농민군을 막기 위해 금구 방향 이동->농민이 이동방향을 전주성에서 태인 방면으로 바꿈->농민군은 4.3 부안으로 이동->4.4 부안 관아 점령, 무기 이용해 전열 갖춤.->4.6 부안 떠나 고부로, 태인 병력도 고부로 이동->도교산 접선->도교산 서쪽=태인과 고부 잇는 요지=황토현전라감영군은 농민군 주력부대 쫓아 고부쪽으로 이동->농민 패배한 척 황토현에서 후퇴->감영군은 밤에 황토현 도착->4.7 새벽 4시에 농민군은 무방비상태의 관군 기습에서 큰 승리 거둠->감영군은 천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지휘부 다수 죽거나 도망침.->황토현전투에서 얻은 대승을 기반으로 농민군은 이후 전주성에 입성(4) 전주성 점령(4월)-청과 일본군 상륙-전주화약(5월)-일본군 경복궁 점령(6월)-1894.4.27. 동학농민군의 전주성 입성.->5.5와 5.7에 청군대가 조선 정부 요청에 입성, 5.6에는 톄진 조약을 근거로 일본의 제물포 군대 상륙-> 청일 양국 군대가 진주하면서 사태가 더욱 악화될 것을 우려한 농민군은 관군에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정부가 받아들이면 동학 농민군을 해산하겠다는 강화안을 정부 측에 제시->관군을 이글던 초토사 홍계훈이 강화안 수락->1894.5.7.에 전주 화약 체결->동학농민군은 귀가하고 전라도관찰사는 농민들애개 폐정 개혁을 약속함.->6.21에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순변사와 초토사가 상경하면서 전라도 지역의 군사, 행정은 공백 상태->전라도관찰사가 전봉준과 전주에서 7월 6일 대타협하여 전라도 지역에서의 행정권 상당 부분 위임->치안기구이자 폐정 개혁을 주도하는 행정 자치 기구인 집강소 설치-> 동학교도가 각 고을의 집강이 되어 지방의 치안과 행정 담당. 의결기관으로 읍마다 의사원을 둠 무력으로 호위군을 두어 만일의 사태에 대비.-> 잡강소 설치하고 폐정개혁안 추진->집강소가 행정 자치 기구로 확림됨에 따라 동학농민군은 지역적 차원이지만 사회, 경제적 생활 질서를 변화시킴.=>동학농민군의 비약적 성장이자 조선 사회의 역사적 전진이라고 할 수 있다.*폐정개혁안 내용-노비문서를 불태워 버릴 것.-청춘과부의 개가를 허락할 것.-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징세 제도의 개혁, 탐관오리 처벌, 중소 상인층 보호, 사회적·정치적 개혁 등에 관한 요구(5) 청일전쟁 발발(1894-1895), 우금치 전투황토현 전투 비교-전주 화약 이후 농민군은 해산했고 정부는 일본군 철수 요구.->거부하고 일본군의 궁궐 침범, 청·일 전쟁 일으킴.->청일전쟁 승기를 잡은 일본이 조선 내정에 간섭, 화약 맺음.->동학농민군은 일본을 내쫓기 위해 다시 일어남.(10만명)->농민군은 관군의 근거지인 공주 진격->관군이 일본군이 주둔하던 우금치로 후퇴->동학농민군은 우수한 근대식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일본군에게 많은 사상자 내고 참패->12월 전봉준 체포=>고부 봉기로부터 1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동학 농민 운동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막을 내렸다. 그러나 동학 농민군은 뒤에 항일 의병전쟁에 참전해 항일 투쟁의 전통을 이어 갔다.5. 삼국간섭과 을미사변: 고종과 명성황후는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 승리로 중국으로부터 요동 반도를 빼앗았다. 일본이 러시아 남하를 막고 중국 대륙에서 세력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 지역에 오래 전부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 들여 요동 반도를 청에 돌려줄 것을 일본에 요구했고 이를 삼국간섭이라고 한다.삼국간섭에 일본이 굴복함으로써 러시아 세력의 우위가 드러나자 일본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던 고종과 명성 황후는 러시아 세력을 이용하려는 정책을 추진했다.일본 공사는 일본군과 일본인 불량배들을 동원해 궁궐에 침입하고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를 을미사변(1895)라고 한다.*을미사변의 장소 : 경복궁 건청군(향원지 북쪽의 신무문 앞에 조성한 궁궐 내 별궁)->1896년에 아관파천으로 고종은 경복궁을 떠났다.6. 아관파천과 경운궁 조성, 대한 제국 선포: 고종은 러시아의 도움으로 일본의 위협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러시아로 처소를 옮겼다. 이를 아관 파천이라고 한다.(1896)고종은 파천한 후에도 국정을 운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발간비용을 전액 지원해 독립신문을 간행토록 했고 독립문을 조성했다. 서재필은 갑신 정변 실패후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1895년에 귀국하고 고종은 서재필에게 관직을 제수했다.파천 직후부터 경운궁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러시아 공사관에서 약 1년만에 경운궁을 왔다. 자주 독립의 근대 국가를 세우려는 국민적 열망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국제 여론에 힘입어 대한제국을 수립했다.(1897) 1897년 2월 경운궁으로 환공한 이후 8월에 광무로 연호를 고치고 10월에 환구단에서 황제즉위식을 갖고 대한제국을 출범했다. 대한제국은 1897년 10월 12일부터 1910년 8월 29일까지 13년간 지속되었다.
조선 후기 붕당 정치사림이 살아남은 이유-사림은 재지적 기반을 계승하고 가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삼았다.(있을재, 땅지)(가학=집안)-사림은 성리학적 정통성과 정치적 명분의 필요에서 학통(스승-제자)을 형성했다.->그들은 재지적 생활기반에서 상호관게를 맺으면서 학문세계나 현실 정치 개혁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사림파는 도학정치(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는)를, 새로운 정치질서의 수립을 통해 군주나 백성이 천명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상사회의 실현을 최종적 목표로 규정했다.-사림파는 위민과 애민에 따라 정칙의 목표를 두고 그 실천을 위해 노력했다.-언로의 개방과 간쟁이 필수적임을 강조했다.-서원건맂을 통해 향론을 점차 주도하게 됨에 따라 사림파의 향촌질서 재편운동은 결실을 맺었다.-향악의 보급을 통해 그들의 결속을 다지고 아울러 신분보다는 연령적 질서를 존중함으로써 소농민의 지지를 받았다.*서원은 훈구파의 탄압을 받은 사림파가 을사사화 이후 건립했다. 이는 사림파의 향촌활동에서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선조 이후 서우너은 사림간의 상호결속을 위한 장소로서의 사회적 역할을 가지게 되었다. 붕당정치 이후 지방 사족의 여론이 정치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방 사족 역시 중앙 정치세력과 연계하여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 했다. 이때 서원이 중심적 기능을 수행했다.사림이 중앙정계에 16세기 진출함에 따라 성리학적 세계관에 대한 이론적 연구로 발전했다. (명분과 실천 중요)2. 선비의 뜻-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신진사대부-성리학의 개혁적인 성향)3. 사림의 농업정책: 소농민경영의 안정을 위해 권농정책을 펼쳤다. 사림파는 소농민의 농업경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농서의 편찬과 보급에 힘썼다.수리관개시설 : 천방과 제언사림파훈척세력(공신세력과 외척세력)가용처를 더 많이 개발넓은 지역 관개 가능둑을 설치천방=보=둑낮은 습지 개발(대규모 공사)산꼴짜기나 언덕 사이에 제방을 쌓아 빗물 및 게곡물을 모아 두는 수리시설제언=저수지14대 선조붕당 형성 :이조 전랑직 문제로 동인과 서인으로 분파.세자 책봉 문제로 동인이 북인과 남인으로 분파.15대 광해군북인 정권16대 인조반정 : 서인의 권력기반 강화, 서인과 남인 공존17대 효종18대 현종예송논쟁 :서인과 남인의 대립1차 : 효종의 죽음으로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복상 기간 문제(1년=서인, 3년=남인)->1년(서인)2차 : 효종 비 인선왕후의 죽음으로(9개월=서인, 1년=남인)=>1년(남인)19대 숙종환국(손바닥 뒤집듯이 착착 바뀜)즉위 초 남인 정권 장악.경신환국 : 서인으로 교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파.20대 경종소론(경종 보호), 노론(영조지지)21대 영조즉위 초 노론 강세탕평책 시행22대 정조탕평책 계승, 노론의 분파(벽파와 시파의 갈등)4. 붕당정치 발전: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동인은 신진세력으로 이황과 조식, 서경덕의 학문을 계승했다. 서인은 기성 세력으로 이이와 성혼의 문인이 중심이었다. 이후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졌다. 이후 숙종 때 서인이 노론과 서론으로 갈렸다.정치적인 면에서 상호 견제, 경쟁, 타협을 통해 특정 세력의 독주를 막아 정치를 활성화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연구와 논쟁을 통해 학문의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가학과 학통으로 형성된 붕당은 그 기반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다.5. 붕당정치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300동안 지속된 붕당정치가 가진 무게는 상당하다.-당쟁이 만들어진 배경-조선시대에 대한 왜곡된 용어=>‘그들 조상의 무위, 무능, 악행을 들추고 과장해 조선의 후손들에게 가르쳐라’=>왜곡용어 : 당쟁, 단군 신화, 이조학파에 따른 예학의 차이는 17세기 예송 논쟁에서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종법에 대한 견해와 경서비판이다. 견서는 해석에 따라 왕례를 강조하는 면과 사례를 강조하는 면이 공존한다.왕사동례(서인) : 종법을 왕이든 사서인이든 모두에게 똑같이 작용해야 한다.왕사부동례(남인) : 왕에게는 종법을 사서인과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예송에서의 사상적 차이는 결국 사회에 대한 관점의 차이(세상을 바라보는 학문적 차이)로 연결되었다.6. 조선을 보는 마음에 따라 무게가 달라진다. 내 고민의 가치를 타인에게 측정하게 하지 않는다. 내 고민의 가치를 알고 당당해라!조선 후기 붕당 정치사림이 살아남은 이유-사림은 재지적 기반을 계승하고 가학의 전통을 바탕으로 삼았다.(있을재, 땅지)(가학=집안)-사림은 성리학적 정통성과 정치적 명분의 필요에서 학통(스승-제자)을 형성했다.->그들은 재지적 생활기반에서 상호관게를 맺으면서 학문세계나 현실 정치 개혁에서도 동일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사림파는 도학정치(백성을 위하고 백성을 사랑하는)를, 새로운 정치질서의 수립을 통해 군주나 백성이 천명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이상사회의 실현을 최종적 목표로 규정했다.
3. 조선전기 : 국가기틀마련(15C)과 사림등용(16C)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de856b5.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04pixel, 세로 395pixel고려는 10-11세기에 왕권을 강화했고 권력체계는 왕-귀족-호족이다. 반면에 조선은 15세기에 국가기틀을 마련했고 왕-관료 권력체계로 왕도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다.2. 조선의 건국과 국가기틀 마련(통치체제를 정비하다): 조선 건국은 고려후기 사회 모순을 극복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이루려는 사대부세력과 민의 성장 속에서 성립되었다, 조선 왕조의 통치제제 정비와 국정운영은 민본적인 유교사상을 기본 이념으로 했다. 고려시대에도 유교사상이 정치철학을 주도했지만, 불교철학에 의하여 크게 제약을 받았다. 유교사상이 정치, 제도,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에 지배적 위치를 차지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이후이다.2-1. 조선초기의 유교사상에서 중시된 것은 왕도정치사상이다. 왕도정치란, 왕이 도를 갖춘다는 뜻이다. 유교로 교양된 국왕과 관료들이 유교적 정치체제 하에서 유교적 민본사상에 근거한 덕치와 인정을 베풀고, 또 유교윤리가 양반 사대부뿐만 아니라 일반 민중 모두에게 생활화된 정치를 말한 조선 초기 건국의 주도세력은 이러한 유교정치를 실현할 수 있는 국가의 통치구조뿐만 아니라 경제구조, 산업부문을 국각가 주도해 권세가에 의한 개인 소유나 개인경영을 억제하려고 했다.3. 용어로 시대읽기 1 : 충(忠)-중심에 서 있는 마음, 마음에 중심이 있다.-군군신신부부자자 : 임금을 섬기고 임금을 교양시킨다. 마음의 중심에는 백성이 있다.-천명 : 왕으로서의 권위를 이미 상실한 자는 필부(한낱 사람)에 불과하다. 조선시대의 반정(중종반정(연산군 때), 인조반정(광해군 때))은 신하가 도리어 임금(천명)을 바꿔 바르게 일으키는 것이다.4. 용어로 시대읽기 2 : 경연(經筵)-TEXT를 의미하는 경(책)과 자리를 의미하는 연.-경연은 임금에게 유학의 경서를 강론(토론)하는 일이다. 임금에게 경사를 가르쳐 유교의 이상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다.-왕권의 행사를 규제하는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태조는 경연청을 설치하고 정종과 태종도 각각 경연을 실시했다. 세종은 즉위한 뒤 약 20년동안매일 경연에 참석했고 집현전을 정비해 경연관을 강화했다. 성종은 25년동안 매일 3번씩 경연에 참석했다,-새조와 연산군에 경연은 폐지되기도 했다. 곧 부활되어 고종 때까지 존속했다.-강의 방식 등은 세종과 성종 때 대체로 확립되었다. 성종은 하루에 세 번 참석했다.5. 왕권과 신권의 강약변화 : 6조 직계제와 의정부 서사제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de80001.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00pixel, 세로 329pixel조선 건국 초기 통치체계는 왕권과 재상권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더하는가에 따라 육조직계제와 의정부서사제가 각각 선택되었다.6. 6조직계제 : 6개의 행정부처에 곧바로 왕에게 아뢰는 것을 말한다. 왕이 6조에 직접 명령을 내려 실행하도록 하고 6조가 왕에게 직접 보고하는 제도를 말한다. 국정운영에 왕의 결정권이 강해지고 재상권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게 된다.7. 의정부서사제 : 의정부가 결재하여 6조에 일을 시키는 것이다. 조선 건국과 동시에 지나친 왕권의 비대함을 견제하기 위해서 만든 제도이다. 육조에서 각기 맡은 업무를 의정부에 보고하고 의정부에서는 3정승이 모여 육조에서 올라온 보고 내용의 가부를 헤아려 왕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리고 왕이 의정부에서 올린 내용을 보고 결정하여 교지를 내리면 의정부에서 받아 육조로 돌려보내 시행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국왕에게 집중되는 국정을 경륜이 풍부한 의정부 3정승이 함께 처리한다는 의미가 있다.실질적으로는 의정부의 권한이 강해지고 상대적으로 왕구너이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8. 15세기를 대표하는 다섯명의 국왕 : 태조-태종-세종-세조-성종9. 태종 : 재상중심 국정운영-개국 초에는 정치적, 사회적 안정이 급선무였고 태조로서도 왕권 강화가 우선이어서 정치기구와 통치체제를 정비할 여유가 없었다. 도평의사사는 문무고관의 합자기관이었으나 능률적으로 운영되지 못했다. 태조 때의 정치는 강력한 왕권을 가진 태조와 그의 신임을 받은 조준, 정도전 등 소수의 재상에 의해 이루어졌으나 아직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지 못했다.10. 태종 : 의정부설치, 6조 직계제-태종은 2차례의 왕자의 난을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태종은 도평의사사(40명 중견신하가 국정운영)를 혁파했고 의정부를 설치했으며 사병을 혁파해 왕권강화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왕권 강화를 도모화려는 태종은 의정부 대신의 정치적 권한을 축소하고 배제할 수 이쓴 정치체제로 6조직계제를 택했다.11. 세종 : 권위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유교정치, 집현전, 의정부서사제-조선시대의 유교정치는 세종 때에 이르러 발전되었다. 세종은 지방제도와 군사제도를 정비하여 권위에 바탕을 둔 합리적인 유교정치를 하고자 했다. 집현전은 세종 2년에 설치되어 많은 학자를 양성했고 의례와 제도의 정리와 다양한 편찬사업을 벌여 유교정치의 바탕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배출된 유학자들과 더불어 유교 정치를 펼쳤다. 이러한 집현전은 세종의 왕권강화에도 기여했다. 6조직계제를 세종 18년에 의정부서사제로 이행했다. 정치체제상으로도 유교정치를 펴기에 적합했다.12. 세조 : 6조직계제, 경연중지, 집현전 폐지-문종, 단종을 거치면서 의정부 재상들의 권력이 비정상적으로 증대되었고 왕권이 약화되었다. 세조는 독재적 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의정부서사제를 6조직계제로 고쳤고 경연을 중지하며 집현전도 혁파했다. 이는 관료중심 체제와 자유분방한 정치비판, 언론활동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언관과 집현전 학자들의 유교적 이상주의가 왕권강화에 걸림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세조 때의 정치는 이와 같이 유교정치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강력한 집권정책을 실시했다.13. 성종 : 경연부활, 의정부서사제 논의, 사림등용, 세조때부터 시작한 경국대전 반포-세조 이후 예종을 거쳐 성종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경연을 부활시키고 의정부서사제를 다시 시행하기 위한 논의 펼쳤다. 한편 사림세력을 대거 등용하여 비대하진 훈구세력을 견제하면서 왕권의 안정을 꾀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등장한 사림과 훈구세력의 대립은 양반관료체제 내의 여러 문제와 결부되어 연산군 때 이후에 4차례의 사화로 나타났다. 성종은 세조 때부터 만들어진 경국대전을 수정하고 반포하면서 조선 초기의 정치제도를 일단 정비했다. 경국대전의 반포는 조선 초기의 중앙집권적 정치체제 확립을 의미한다.14. 두 번째마디 16C, 사림등용과 4번의 사화, 특히 조광조의 기묘사화15. 고려에서 신진사대부로, 극소수는 조정의 중앙정부로 진출하는 훈구파가 되고 대부분은 향촌의 지방에서 사림이 되었다. 성종이 사림의 대거 등용하면서 훈구파와 사림파 사이 갈등이 점화되었고 4차례의 사화가 일어났으며 이후 사림파의 붕당시대가 열렸다.16. 훈구파는 조선 건국, 왕자의 난, 세조의 정변 등에 협조하여 공을 세운 세력이다. 조선 초기의 문물제도정비에 기여하고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했다. (공을 세운 오래된 세력)17. 사림파는 정치권력을 잡지 못하고 지방에서 학문에 종사하던 양반 세력이다. 15세기 중반 이후, 중소 지주적 경제배경, 성리학에 투철하다. 영남과 기호지방 주심이다. 향촌 자치, 도덕과 의리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강조한다. 훈구세력을 견제한다. (수풀에 있는 선비)18. 연산군 때부터 명종 때까지 4차례나 커다란 사화가 일어났다. 훈구세력은 중앙 집권 체제를 강조한다. 사림파의 형성은 성리학 보급과도 상호 관계를 갖는다. 신진사대부에 의해 수용된 성리학은 성균관과 향교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 되었다. 성종 16년 이후에 훈구 세력에 대응되는 정치세력인 사림파로서 모습읗 갖추어 나갔다. 사림파의 중앙정계 진출은 훈구세력과의 갈등과 충돌을 예고했다.19. 사화의 발생으로 사림파가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축출당한 사림파는 다시 힘을 키워 중앙으로 진출했다. 향촌 사회에 뿌리를 두고 있던 사림 세력은 정치 세력을 꾸준히 넓힌 반면, 훈구 세력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점차 사림파가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했다.
2. 고려시대(후기) : 고려 무신정권, 그리고 공민왕의 개혁정책(12C,13C,14C)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bb44875.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83pixel, 세로 472pixel고려 광종과 공민왕이 시행한 왕권강화정책의 공통점/차이점- 공통점 : 새 인물 등용과 국가수입기반 확대 및 위협세력 약화(위협세력; 광종:호족, 공민왕:권문세족, 친원파)- 차이점 : 광종의 노비안건법은 노비조사를 통한 호족의 세력을 약화시켰다. 공민왕의 전민변정도감은 노비와 토지조사를 통해 권문세족의 세력을 약화시켰다.*권문세족 : 힘 있는 사람 옆에 붙어서 더 강하게 하는 사람, 오래된 세력이어서 토지 보유多2, 무신란이 발생한 배경배경 1 : 전쟁과 중국 정세 변화=> 예종 때는 여진의 정벌이 있었고 금나라가 새로 일어나 고려에 군사적 압박을 가해왔다.배경 2 : 국내 정치적 혼란과 귀족사회 분열=>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무신란은 귀족사회 분열과 무신의 지위 상승이 맞물리면서 초래되었다.3. 공민왕의 개혁정책의 한국사적 의미왕권강화를 위한 정책 :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정방혁파, 전민변정도감 설치조선건국을 이끈 배경 : 성총관부 수복, 과거제 정비, 신진사대부 등용4. 공민왕이 성공하고 충선왕이 실패한 이유: 충선왕은 권세가들의 농장 몰수(전민변정도감), 사림원 설치(정방 혁파), 민생 안정(친원파 배제) 등을 도모했지만 권문세족의 반발, 원의 반대, 개혁 세력이 성장하지 못하여 실패했다. *사림원 : 왕명의 출납과 문서를 작성하고 인사행정을 관장하던 중앙관청5. 공민왕이라는 성공의 칼날 : 쟤는 됐는데 왜 너는 못해! 노력이 부족한거야! 지혜로운 농부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잘되면 하늘 덕분이고 안 되면 최선을 다했다는 것에 집중하자.6. 문신란 : 과거제도와 유교주의가 채택되면서 문치정치가 되었다. 무신들의 지위가 하향으로만 기울어지지 않았다. 예종 때는 여진의 정벌이 있었고 금나라가 새로 일어나 고려에 압박을 가해왔다. 인종 때는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이 있었다. 거듭 일어나는 군사행동은 무신의 지위를 상승시켰다.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을 거치면서 고려 귀족사회는 분열되었고 귀족사회가 갖는 폐쇄성으로 인해 그 자체 내의 대립과 분쟁을 가져왔다. 무신란은 귀족사회의 분열과 무신의 지위 상승이 맞물리면서 초래되었다.의종이 궁밖으로 행차할 때, 정중부와 이의방이 반란을 일으켰다.7. 무신정권 : 이의방->살해->정중부->살해->경대승(착함)->벙사->이의민(엄마 천민, 글자 못 읽음)->살해->최충헌->최우->최항->최의->김준->임연->암유무정변의 동지들을 제거한 정중부는 장군 경대승에게 살해되었고 경대승은 4면 만에 병사했다. 이어 이의민이 정권을 독점했으나 최충헌에게 살해된다.최충헌은 자신이 구축한 강력한 독재정권을 자손들에게 세습시킴으로써 4대 60년간의 최씨정권을 형성했다. 최우가 집권한 10년만에 몽골의 침입이 있었다. 대내적으로는 화전을 둘러 대립 갈등과 전쟁으로 입은 사회경제적인 피폐는 최씨정권을 크게 약화시켰다. 특히 어린 나이에 집권한 최의는 어리석고 나약했다. 김준은 최의를 제거하고 무신집권자가 지니는 교정별감에 임명되나 임연에게 살해된다. 임연은 병사하고 아들 임연무가 교정별감이 되지만 제거 당했다.8. 전국적 농민·천민 봉기: 무신정권기를 거치면서 사회적으로는 신분질서의 동요와 하극상의 풍조로 하층민의 반란이 일어났다.(만적의 난) “이래로 높은 관직도 천한 노비에서 많이 나왔으니, 장상에 어찌 타고난 씨가 있겠는가?”=>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경험과 그 축적(신분질서의 동요, 신분해방을 위한 시도)9. 봉건적이고 왕-귀족-호족 권력관계인 고려가 근세이고 왕-관료 권력관계인 조선이 된 것은 무신란으로 인한 신분동요와 신분 해방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9. 공민왕의 개혁정치: 공민왕은 14세기 후반, 원명교체라는 대륙정세를 이용해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공민왕은 대외적으로 배원정책을 펴 몽고의 잔재를 일소하고 빼앗긴 영토의 회복을 위해 북진정책을 실시했다. 대내적으로는 고려왕실을 약화시킨 친원권문세족을 제거하고 국가기강을 재정립하기 위해 일곱 차례에 걸친 관제개혁을 실시했다.(1)공민왕은 신흥사대부들을 대거 기용해 반원개혁정치를 실시하고자 학교제도와(2)과거제를 개혁했다.(3)내정에 간섭하던 원나라의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고(4)100년이나 존속해 온 쌍성총관부를 폐지하여 원나라에게 빼앗긴 영토를 회복했다.(5)정방을 폐지하고(6)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해 귀족들이 겸병한 토지를 원래의 소유주에게 환원시키는 한편, 불법으로 노비가 된 사람들을 해방시켰다.10. 정방 : 최우가 문무백관의 인사행정을 담당하기 위해 자기 집에 설치한 기구이다. 이는 공식 인사기구로 설치된 것이고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에는 국가기관으로 변해 존속되었다가 공민왕 때 폐지되었다.11. 정동행성 : 고려후기 원에 의해 일본 우너정을 위한 전방사령부로서 고려에 설치되었던 관서이다. 이문소는 본래 개경에서의 대원관계의 범죄행위를 다스리는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가 친원세력의 불법과 전횡을 옹호해주고 반원세력을 억누르는 기관으로 변질했다. 공민왕의 반원개혁의 첫 조치의 하나로 정동행성 이문소가 타파의 대상이 되었다.12. 쌍성총관부 : 고려 후기 몽고가 고려의 화주 이북을 직접 통치하기 위해 설치한 관부이다. 대대적인 반원운동을 전개하면서 이 지역을 수복한 것이다. 이 때 이 지역에 토착해 있던 이자춘이 고려군에 내응함으로써 쌍성총관부는 폐지하는 데 큰 도움을 끼쳤다. 이후 이자춘은 동북면병마사에 임명되어 이 지역에서 세력을 확대시켰고 이것이 그의 아들인 이성계가 뒷날 조선왕조를 개창할 수 있는 세력의 기반이 되었다.*쌍성총관부 폐지 : 기구 폐지, 이 지역을 수복 : 빼앗겼던 영토를 회복(지역회복)13. 신진사대부의 등용과 성장 : 신진사대부는 주로 하급관료나 지방향리의 자제들로 가문적 배경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력을 갖추어 과거 등을 통해 이미 무신정권기부터 대두하고 있었다. 공민왕대의 혁신정치와 더불어 크게 성장하여 정계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결국에는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건국하는 데 주체가 되는 세력이다.유교적 소양을 알아 예의 범절을 지키고 청렴을 표방하면서 그렇지 못하여 여러 가지 불법과 부정을 저지르는 세족과 권문을 비판하며 대립되는 위치에 섰다. 이들의 성장은 고려후기 계속되는 개혁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충선왕의개혁정치에 이어서 충숙왕, 충목왕, 공민왕 등이 연달아 개혁을 추진했다. 공민왕대의 반우너개혁저이를 거치면서 정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성계와 손을 잡은 이들은 마침내 위화도회군으로 정계를 주도하는 세력이 되거니와, 이후 그들은 당시의 현안문제였던 토지제도나 공양왕의 옹립 및 왕조 교체 등을 둘러싸고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혁파로 분화되었다.
고려시대(전기) : 고려의 성립과 발전(10C, 11C, 12C, 13C, 14C)그림입니다.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5bb44875.bmp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83pixel, 세로 472pixel고려 태조 왕관과 광종의 공통점/차이점공통점 : 10세기 왕권 강화를 했다.차이점 : 태조 왕건은 융합과 포용을 펼쳤고 광종은 호족 세력을 숙청했다.(태조 왕건)고려 건국, 호족과의 혼인, 개성으로 도읍 옮김, 발해 멸망, 견훤 망명, 신라항복, 후백제 멸망, 후삼국 통일, 북진정책과 서경 개발(광종)통치의 3시기, 쌍기 등용, 과거제 시행, 노비안건법, 호족세력 숙청, 왕권 강화2. 지방관 파견과 왕권 강화 관련성(성종)호족세력이 강성한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감무)을 파견했다. 지방관은 왕의 대행자이다. 왕이 관료를 통해 백성을 직접 통치하는 시작을 이루었다.3. 고려건국->발해멸망->후백제의 내분->견훤 망명->신라 항복->후백제 멸망->후삼국 통일4. 태조 왕권의 왕권강화918년에 고려 세우고 919년에 자신의 근거지인 송악(개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토지 제도를 정비하고 조세를 경감하는 등 민심안정책을 펼쳤다. 발해가 거란에 멸망당했을 때, 고구려계 유민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고려로 망명해 왔다. 이에 태조는 이들을 우대하여 포용했다. 발해국의 세자 대광현 등이 무리를 이끌고 오니 이들을 매우 후하게 대접했다. 대광현에게는 왕계라는 성명을 내려 주고 종실의 적에 붙여 그 선대의 제사를 받들게 하고 그를 보좌하던 사람들에게 모두 작위를 내려주었다. 후백제가 신라를 공격하자 신라를 도와 신라인의 신망을 얻었다. 후백제 내부 분열로 왕위에서 쫓겨난 견훤이 고려에 투항한 견훤을 개성으로 맞아들여 극진하게 대우했다. 이 해에 신라 경순왕의 항복을 받아 전쟁 없이 신라를 통합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 후백제와의 결전을 통해 후삼국 통일 이루었다. 이처럼 태조는 발해의 고구려계 유민을 포용하고 후삼국을 통일하여 한국사에 재통을 이룩했다.5. 광종의 3시기-1시기 (즉위년-7년) : 왕권강화와 관련된 정책은 시행하지 않았다. 국내정세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했다. 증극왕조와도 밀접한 와교관걔를 맺었다. 국내외 정책을 통해 새 국왕으로서의 지위 및 그 정치기반을 닦아나간 것으로 추측된다.-2시기 (7년-11년) : 효족세력의 제거와 왕권강화에 필요한 제도적인 조치를 취했다. 956년에 노비안건법을 실시했고 958년에는 과거제도를 시행했다. 960년에는 백관의 공복도 제정했다. 호족세련의 반발을 야기하기도 했으나 광종은 철저한 탄압을 통해 강행했다.쌍기는 후주에서 왕권강화책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이를 광종에게 제시함으로ㅆ 고려사회에서도 왕권강화를 실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3시기 (11년-26년) : 왕권강화책에 반발하거나 장애가 되는 호족세력에 대해 과감한 숙청을 단행했다.과거제도와 독자적으로 육성한 시위군졸은 문무 양면에서 왕권을 강화하고 뒷받침하는 세력기반이 도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반을 배경으로 정적들에 대한 과감한 숙청을 단행할 수 있었다.6. 노비안건법 : 살필(안), 교정할(검)으로 노비를 살펴 본래 노비가 아니었던 자를 본래의 신분 양인으로 올바르게 고쳐준다는 뜻이다. 광종은 노비안건법을 통해 호족세력을 약화시키고 국가수입기반을 확대했다.7, 과거제 : 조선시대와 2가지 차이점이 있다.무과 유무이다. 광종이 시행한 과거제는 문과, 잡과, 승과만 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와 함께 무과도 시행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시험으로 무과가 되지 않고 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권력가 수하에서 스카우트를 해서 무과가 될 수 있었다. 따라서 무신은 글자를 못 읽는 경우가 다반사였다.원칙적으로 양인신분이라면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자격이 있었지만 실제로는 응시자격의 폭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다. 문과는 귀족관료의 자제나 국자감 유생, 지방 유력 향리의 자제 등만이 응시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법전에 명확히 기록된 대로 양민은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8. 성종 : 지방에 12목(호족세력이 강성한 지역)을 설치하고 왕의 대행자인 지방관(감무)를 파견했다. 왕이 관료를 통해 백성을 직접 통치하는 시작을 이루었다. 성종이 시행한 10도제는 시행과정에서 유명무실해졌으나 우리나라 도제의 시초가 되었다.9. 현종 : 현종의 아버지는 태조의 9번째 아들이고 어머니는 경종의 비이다. 목종의 생모인 천추태후는 그를 미워했으나 목종이 폐위되자 왕위에 현종이 올랐다.국가의 기본방향과 지방제도는 성종 때 일 단계 정비되고 현종 때 비로서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현종은 호족세력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책과 군현제의 완성을 이루었다. 5도양계체제라는 군현제의 기본골격이 완성되었다. 같은 해에 각 군현의 호장 등 향리의 정원 규정, 향리의 공복을 제정했다. 향리들에 대한 호칭을 개정, 왕권을 바탕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정치체제를 확립한다.10. 인종이자겸의 난(마지막 조금 더, 간절함의 가면): 현종 때 거란의 침입으로 인해 피난갈 때 도와준 김은부의 딸을 왕비로 맞아 들였다. 문종 때부터 인종에 이르기 까지 80여년동안 역대의 국왕들이 모두 경원이씨의 딸들을 왕비로 들였다. 예종과 인종의 이중 외척이었던 이자겸은 예종의 장인이고 손자로 인종이 있다. 셋째 딸, 넷째 딸을 인종의 왕비로 들여보냈다. 이자겸은 지군국사(나라의 모든일 맡고 있다)가 되고자 왕이 자기 집에 와서 그 조칙을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런 이자겸을 제거하기 위해 거사가 일어났고 척준경의 동생과 아들이 죽었다.이자겸의 난이 일어났다. 이자겸과 척준경은 궁궐을 포위하고 불을 지르며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군신관계를 요구한 금나라에 대해 모든 신료의 반대에 무릅쓰고 받아들였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결정이었다. 척준경의 배신으로 이자겸은 영광으로 유배 보내졌다.난중에 불탄 궁궐의 잔해는 개경 귀족사회의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주었고 개경의 지덕이 쇠했다는 풍수지리설이 호소력이 생겼다.11. 인종의 서경세력 등용내 사람을 만들고자 했던 인종과 중앙직 등용의 욕망을 가지고 있던 묘청의 만남12. 묘청의 난(지금이 아니면이라는 간절함, 그 가면): 묘청이 자기를 증명해야 하는 상황->대동강(평양 밑)에 용이 지나가는 것을 보여주겠다->강에 참기름->인종이 알면서 한 번 봐줌->대화궁 갔는데 5월에 눈내림->묘청 내침->급하게 반란 준비->서경세력의 묘청 살해->인종의 협상X->토벌대VS반란군(서경세력)13.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이후: 고려 권력 구조의 균형이 깨졌다. 개경 세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 서경 세력의 쇠퇴는 개경의 문신 귀족 세력의 독주를 가능하게 했다. 이처럼 내부분열이 드러난 고려의 귀족사회는 예전과 같을 수 없었다.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정치적 계파가 형성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자겸과 묘청의 난 등을 진압한 공신세력이 추가 되어 귀족간의 대립 갈등이 심해졌다.
물벼룩심장 박동 관찰실험 날짜 :조교 :학과 :학번 :이름 :공동 실험자 :목차01. 실험목적--------------------------------------------3p02. 실험원리 (이론)--------------------------------3~11p03. 실험재료와 방법------------------------------12~13p04. 실험결과--------------------------------------14~15p05. 고찰-------------------------------------------16~18p06. 참고문헌------------------------------------------18p01. 실험목적: 물벼룩을 관찰해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 등의 화학적 메신저에 의한 신체 조절 현상을 이해한다. 그리고 화학적 메신저로 인한 온도변화, 화학물질에 의한 심장박동 수 변화를 관찰한다.02. 실험원리 (이론)- 화학적 메신저: 화학적 신호와 전기적 신호가 신체기능을 조절한다. 동물의 체세포는 항상성을 유지하고 여러 다른 공동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이것은 두 중요한 기관계인 내분비계와 신경계를 거쳐 전달되는 화학적 신호와 전기적 신호를 통해 이루어진다. 내분비계는 신체기능을 유지하는 화학물질을 만들어 분비하는 샘과 조직이다. 내분비세포는 호르몬이라는 화학적 신호를 방출하는데 이것은 혈류를 타고 온 몸에 이동한다. 신경계에서 전기적 신호는 뉴런이라는 신경세포를 통해 전달된다.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대해 알아보자.① 호르몬 : 호르몬은 주로 내분비샘에서 만들어져 분비된다. 척추 동물에서 내분비샘의 예로 성장과 생식을 조절하는 뇌하수체와 대사를 조절하는 갑상샘이 있다. 내분비세포 내에 있는 분비 소포 안에는 호르몬 분자가 가득 들어 있다. 이 호르몬 분자가 내분세포에서 분비되어 혈관 안으로 확산된다. 분비된 호르몬은 순환계를 통하여 온몸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표적 세포라는 특별한 형태의 세포만이 특정접 연결되어 있는 신경이고 12쌍이다. 반면에, 척수 신경은 척수에 직접 연결되어 있고 31쌍이다. 흥분방향에 따라 말초신경계를 분류하면 구심성 뉴런과 원심성 뉴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운동뉴런은 자율신경계와 체성신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중추는 뇌줄기, 간뇌, 척수로 주로 내장기관에 연결되어 있다.자극이 감각이 전달되면 감각뉴런이 이를 수용해 중추신경계에 전달하고 중추신경계의 연합뉴런이 받아들인 정보를 분석하고 수용해 적절한 명령을 운동뉴런에 전달한다. 운동뉴런은 운동기에 자극을 전달해 자극에 대한 반응을 행한다.교감신경의 경우, 위기 상황에 대응하도록 신체를 긴장, 흥분하게 한다. 두개의 뉴런이 신경절로 연결되어 있는데 신경절 전 뉴런이 신경절 후 뉴런보다 길이가 짧다. 신경절 이전 뉴런에서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되고 신경절 이후 뉴런에서는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된다.반면에, 부교감 신경은 신체를 편안하고 안정하게 한다. 두개의 뉴런이 신경절로 연결되어 있는데 신경절 전 뉴런이 신경절 후 뉴런보다 길이가 길다. 신경절 이전 뉴런, 이후 뉴련 모두 아세틸콜린이 분비한다.심장에 교감신경이 연결되면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이때 신경절 전 뉴런의 신경세포체는 척수에 있다. 반면에 심장에 부교감신경이 연결되면 심장박동이 느려진다. 이때 신경절 전 뉴런의 신경세포체는 연수에 있다.심장 박동호흡 운동동공방광소화 운동말단 분비물교감촉진촉진확대이완억제노르 에피네프린부교감억제억제축소수축촉진아세틸콜린- 심장박동: 이번 실험에서는 온도에 따른 물벼룩의 심장박동을 관찰한다. 온도에 따른 심장박동을 비교하기 위해 심박수를 측정할 것이다. 심박수는 heart rate, 즉 1분당 박동수이다. 심박수에 심장 1회 수축시 내보내는 혈액량을 곱하면 심박출량을 구할 수 있다.- 온도가 심박수에 미치는 영향: 정온동물은 외부 온도에 상관없이 비교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는 동물을 말하고 변온동물은 외부 온도에 따라 체온이 변하는 동물이다. 정온동물과 변온동물이 온도에 따라 심박수를 염기인 아데닌, 구아닌 염기와 관련 있다.※ 알칼로이드는 식물체 속에 들어 있는 질소를 포함한 염기성 유기화합물을 총칭하는 말이다. 식물 염기라고도 한다. 식물계에 널리 분포하고 동물에 대한 중요한 생리 작용, 약리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많다. 대표적인 예시로 니코틴, 모르핀, 카페인, 아드레날린, 코카인 등이 있다.② 니코틴 : 주로 가지과 식물에서 발견되는 알칼로이드 물질로 곤충에 강력한 신경독성을 발휘하고 저농도의 니코틴은 포유류에게 각성효과를 보인다. 니코틴은 체내에서 부신 수질 내 신경절형 니코틴 수용체에 결합하여 에피네프린 분비를 증가시켜 혈중 글루코스 수치, 심장박동 수, 혈압, 호흡 수를 증가시킨다. 또한, 중추신경형 니코틴 수용체와 결합해 도파민 수치를 증가시켜 기쁜 감정을 유도한다.- 물벼룩: 민물에 사는 아주 작은 절지동물 양갑목 물벼룩과의 갑각류이고 몸길이가 1.2~2.5mm이다. 너비가 넓고 반원 모양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이는 등쪽에 붙어 있다. 갑각은 배쪽에 붙어 있고 두 장의 껍질이 보통 반투명하다. 몸빛은 무색, 담황색 혹은 담홍색을 띤다. 겹눈은 크기가 크나 홑눈은 상대적으로 작다.배 뒷부분에 12~18개의 가시가 있다. 그리고 머리 앞쪽에 더듬이가 있는데 물벼룩은 이를 이용해 노젓기를 해 헤엄친다. 물벼룩은 개방순환계를 가진다. 혈관이 없어 심장에서 나온 피가 바로 조직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심장으로 되돌아온다. 갑각이 투명하여 현미경으로 물벼룩을 관찰해 심장박동수를 셀 수 있다.사진에 등 쪽에 척수처럼 길게 들어있는 것이 대장이다. 물벼룩은 흑갈색의 알을 여름에 30개, 겨울에 2개 정도 낳는다. 물벼룩은 수정을 하지 않는 단위생식을 한다. 알을 등쪽에 보관하며 알 대신 새끼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 물벼룩이 생명의 위헙을 느끼는 경우, 알 혹은 새끼를 몸에서 방출한다.물벼룩은 작은 녹조류를 섭취하여 영양분을 얻고 물고기와 포식자-피식자 관계를 형성한다.학명Daphnia pulex계동물문절지동물강갑각류목양갑목과물벼룩과멸종위8534010742888회 증가용액A----용액B--62248용액C81324109436112회 증가용액D--30120-※심박수=(15초간 심장박동횟수)4 공식을 이용해 심박수를 계산했다.: 용액 A는 1조에서 실험을 3회 시도했는데 용액을 처리한 후 물벼룩이 모두 죽어 심장박동을 관찰할 수 없었다. 용액 B, D의 경우, 카톡방으로 실험자료를 공유받을 때, 용액처리후 심박수만 전달받아 용액 처리 전 심박수를 알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용액이 심박수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할 수 없었다. 용액 C는 3조(본인 조)로 실험 전후 데이터를 전부 제공해서 용액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상온 조건에서 2회 심박수를 측정했을 때, 360(회/분)와 372(회/분)로 측정되었고 전후 차이가 12(회/분)이다.4 온도조건에서 물벼룩은 온도처리 전에 376(회/분), 온도처리 후에 284(회/분)로 92(회/분) 감소했다.34 온도조건에서 물벼룩은 온도처리 전에 340(회/분), 온도처리 후에 428(회/분)로 88(회/분) 증가했다.용액 C 처리조건에서 물벼룩은 용액처리 전에 324(회/분), 용액처리 후에 436(회/분)로 (112회/분) 증가했다.용액 B, D조건에서 물벼룩은 용액 처리 후에 248(회/분), 120(회/분)로 측정되었다.05. 고찰: 이번 실험은 물벼룩의 모습을 관찰하고 온도와 화학적 메신저인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으로 인한 심장박동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이다. 이론에서 화학적 메신저인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에 대해 알아보고 실험에서 사용한 신경전달물질과 화학물질인 카페인, 니코틴, 아세틸콜린, 에피네프린에 대해 조사했다. 또한, 물벼룩의 구조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자율신경계 조절과정을 학습했다.물벼룩의 심장박동을 관찰하기 전에 물벼룩의 모습을 관찰했다. 물벼룩은 절지동물문에 속한 변온동물로 개방순환계를 가지고 있다. 물벼룩을 관찰했을 때 반원 모양의 머리를 가지고 있고 몸통이 반투명함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론에서 학습한대로 머리 앞쪽에 더듬이가 있고 소했다. 저온 조건에 의해 심박수의 가 감소했다. 반면에 고온(34)조건에서 온도 처리 전에는 340(회/분), 온도 처리 후에는 428(회/분)로 88(회/분) 증가했다. 고온 조건에 의해 심박수의 가 증가했다. 물벼룩은 변온동물이기 때문에 저온조건에서는 효소 활성이 감소되어 대사작용이 감퇴되고 세포의 산소요구량이 감소해 심장박동이 억제되었을 것이다. 반면에 고온조건에서는 효소 활성이 증가해 대사작용이 증진하고 세포의 산소요구량이 증가해 심장박동이 촉진되었을 것이다. 이는 실험결과에서 저온조건에서 심박수가 감소하고 고온조건에서 심박수가 증가한 것을 통해 실험결과와 이론이 일치한다.용액 A를 맡은 조에서 실험을 3번 진행했으나 용액 처리 후 물벼룩이 모두 죽어 용액의 효과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리고 용액 B와 용액 D의 경우, 용액 처리 전 심장박동수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아 용액의 효과를 관찰하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용액 C의 물벼룩에서 조건 처리 전 심박수 데이터인 324(회/분)을 용액 B와 용액 D의 물벼룩 조건 처리 전 심박수로 가정하고 용액의 정체를 추론하려 했다. 그러나 가정하고 나서 심박수 변화를 계산하니 용액 B는 324(회/분)에서 248(회/분)로 76(회/분) 감소, 용액 D는 324(회/분)에서 120(회/분)로 감소해서 204(회/분) 감소한다. 실험에서 사용하는 신경전달물질인 에피네프린과 아세틸콜린, 화학물질인 니코틴과 카페인 중 심박수를 감소시키는 물질은 아세틸콜린으로 1개이다. 이는 위 가정이 유효한 결과를 이끌지 못함을 보여준다. 데이터가 있는 용액 C의 경우, 심박수가 처리 전이 처리 후에 비해 =34.6(%) 증가했다. 이를 통해 신경전달물질인 에피네프린이나 화학물질인 니코틴이나 카페인일 것이다.물벼룩을 100배나 1000배율로 관찰하여 정확한 물벼룩 구조를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물벼룩의 수컷과 암컷의 구조를 확인해 생식기를 비교해 정확한 난소 위치를 구하고 암컷의 알, 유생, 휴면란을 관찰하고 싶다. 그리고 용액 A, )
신경 반사실험 날짜 :조교 :학과 :학번 :이름 :공동 실험자 :목차01. 실험목적--------------------------------------------3p02. 실험원리 (이론)----------------------------------3~9p03. 실험재료와 방법------------------------------10~11p04. 실험결과--------------------------------------12~14p05. 고찰-------------------------------------------15~16p06. 참고문헌------------------------------------------16p01. 실험목적: 수의적 반응과 불수의적 반응을 비교하여 자극에 대한 반응 차이를 확인한다. 그리고 무릎반사 현상을 관찰하여 반사활동의 방식을 이해하고 신경반사속도를 계산한다.02. 실험원리 (이론)- 신경계: 신경계는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구성된다.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에 대해 알아보자.중추신경계 : 뇌와 척수이고 명령을 내리는 역할을 맡는다. 연합뉴런으로 구성된다. 수용된 자극 정보를 처리하고 분석∙판단해 반응을 명령한다. 중추신경에는 뇌와 척수가 있다. 뇌는 우리 몸의 움직임과 행동을 관장하고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시키며 인지, 감정, 기억, 학습기능을 담당한다. 이는 머리뼈 안쪽에 위치하고 이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는 신경세포인 뉴런이다. 뇌는 두개골과 뇌척수막에 쌓여 있고 뇌 아래로는 척수와 연결되어 있다. 그 안에는 뇌척수액이 흐른다. 뇌는 대뇌, 소뇌, 뇌줄기로 나뉘는데 뇌줄기는 중간뇌, 뇌교, 연수로 구성된다. 이러한 뇌줄기는 대뇌반구와 소뇌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지칭하고 수많은 신경섬유로 구성된다.뇌의 구조기능대뇌정신활동간뇌체온, 혈당, 삼투압 조절중뇌눈의 운동 조절연수호흡, 심장박동, 소화운동 조절소뇌신체 균형 유지뇌는 크게 운동 조절 기능, 감각인식과 해석기능, 언어전달기능, 항상성 유지, 학습과 기억 기능, 호르몬 분비 경계와 몸의 각 부분을 연결하는 신경계이다. 말초 신경계는 해부학적 구조와 흥분방향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먼저, 해부학적 구조로 분류하면 뇌신경과 척수 신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뇌신경은 뇌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신경이고 12쌍이다. 반면에, 척수 신경은 척수에 직접 연결되어 있고 31쌍이다. 흥분방향에 따라 말초신경계를 분류하면 구심성 뉴런과 원심성 뉴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때 운동뉴런은 자율신경계와 체성신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율신경계의 중추는 뇌줄기, 간뇌, 척수로 주로 내장기관에 연결되어 있다.- 신경세포와 신경신경세포 : 신경세포는 주로 뉴런을 뜻한다. 뉴런에는 감각뉴런, 연합뉴런, 운동뉴런이 존재한다. 감각뉴런은 척수와 뇌에 신경흥분을 전달하고 연합뉴런은 중추신경계(뇌, 척수)를 구성한다. 운동뉴런은 뇌나 척수에서 내린 명령을 반응기에 전달한다. 뉴런은 1개의 축삭, 1개 이상의 가지돌기로 구성되어 있고 뉴런과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를 통해 전기적 신호를 주고받는다.신경 : 신경은 신경섬유의 묶음이다. 신경은 신체 외부 자극을 감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고 감각신경계를 통해 중추신경에 전달한다. 중추신경을 지나 자극에 적합한 명령을 운동신경에 전달하여 자극에 대해 반응한다. 일반적으로 신경은 신경세포를 의미하고 신경계는 척수, 뇌를 포함한 중추신경계와 말초신경계로 분류된다. 아래 표는 전기적 신호로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신경과 화학적신호로 신체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의 특징을 비교한 것이다.전달 매체작용 범위전달 속도지속성호르몬혈액넓음느림오래 지속됨신경뉴런좁음빠름빨리 사라짐- 신경전달이론: 자극이 감각이 전달되면 감각뉴런이 이를 수용해 중추신경계에 전달하고 중추신경계의 연합뉴런이 받아들인 정보를 분석하고 수용해 적절한 명령을 운동뉴런에 전달한다. 운동뉴런은 운동기에 자극을 전달해 자극에 대한 반응을 행한다.- 수의적 반응과 불수의적 반응① 수의적 반응 : 중추신경계인 대뇌의 판단과 명령에 따라 일어나는 의식적 반응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수학문로 가격한다.충격에 의해 무릎인대가 약간 신장된다. 즉, 넙다리 신경이 순간적으로 늘어난다.근육에 분포된 근방추가 자극되고 이 자극이 감각신경을 통해 중추신경인 척수로 전달된다.단일 시냅스를 거쳐 운동신경을 통해 반응기인 근육으로 신호가 전달된다.펌반사가 일어난다.무릎반사에서 펌반사에 연합신경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금군의 수축 억제에는 연합신경이 관여한다. 무릎반사에서 다리가 올라가는 이유는 대퇴군이 수축하고 오금근 수축이 억제되었기 때문이다.- 조화 평균: 이번 실험에서는 신경전달속도를 계산한다. 조화평균은 속도, 주파수의 평균을 계산할 때 주로 사용한다. 조화평균은 역수의 산술평균의 역수를 말한다.조화 평균 H=이러한 조화평균은 비율의 평균을 계산하는 데 주로 사용한다. 조화평균을 사용하면 각 데이터 가중치가 동일하기 때문에 지율에 대한 가장 적절한 측정이다.03. 실험재료 및 방법- 실험 재료: Logger pro(데이터 수집 프로그램), 측정용 컴퓨터, 줄자, 고무망치, 1회용 부착전극, EKG 센서, 인터페이스, 가속도계Logger pro :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이다. 이번 실험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시간에 대한 가속도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그래프와 표로 나타낸다.고무망치 : 이를 이용해 무릎을 가격해 무릎반사를 일으킨다.EKG 센서 : ekg는 심전도를 뜻한다. 심전도는 정해진 시간에 심장의 전기적 활동을 해석하는 것이다. EKG 센서는 근육 수축 생산되는 전기적인 신호를 측정한다.가속도계 : 물체의 가속도 물리량을 측정하는 장치이다. 단위는 G 값으로 나타난다.- 실험방법1) 인터페이스 1번 채널에 EKG 센서를 연결하고 2번 채널에는 가속도계를 연결한다.2) 가속도계와 고무망치를 케이블로 연결하되, 가속도계의 케이블이 망치 뒤쪽을 향하도록 한다.3) 컴퓨터에 설치된 [Logger Pro]를 실시하고 새 파일을 제작한다.4) 피실험자의 무릎과 머리 사이의 길이, 무릎과 허리 사이의 길이를 줄자로 측정한다.5) 피실험자가 실험테이블 위래프는 수의적 반응에서 나타난 t-V 그래프이다. 가속도의 최대지점과 신경전위가 최대 지점이 일어난 시간을 기록한 것이 아래 표이다. 그 결과, 가속도 피크 시점 3.69s, 6.57s, 10.73s, 15.42s, 26.43s을 찾았고 전압 피크 시점 4.05s, 7.26s, 11.38s, 15.63s, 26.72s을 찾았다. △t를 계산하면, 0.36s, 0.69s, 0.65s, 0.21s, 0.29s이다.조화평균을 이용해 시간의 평균을 구하면 이다. 줄자를 이용해 머리-무릎까지 길이가1.35m이다.신경전달속도가 1.35(m)/0.36(s)=3.75(m/s)이다.시간(s)가속도()전압(mV)2.5244.070.9772.591.8151.8156.3067.831.0636.33-6.832.2108.7364.421.0208.79-12.312.60919.4770.671.10719.49-67.182.89025.5170.671.02825.5424.482.820위 그래프는 불수의적 반응에서 나타난 t-V 그래프이다. 가속도의 최대지점과 신경전위가 최대 지점이 일어난 시간을 기록한 것이 아래 표이다. 그 결과, 가속도 피크 시점 2.52s, 6.30s, 8.73s, 19.47s, 25.51s을 찾았고 전압 피크 시점 2.59s, 6.33s, 8.79s, 19.39s, 25.54s을 찾았다. △t를 계산하면 0.07s, 0.03s, 0.06s, 0.02s, 0.03s이다. 불수의적 반응에서 △t가 수의적 반응에서 △t보다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조화평균을 이용해 시간의 평균값을 구하면 =0.038(s)이다.줄자를 이용해 무릎-허리 길이를 잰 결과, 0.60m이다.신경전달속도는 (0.6*2)/0.038=31.58(m/s)이다.수의적 반응불수의적 반응반응경로의 길이(m)1.351.20자극-반응 걸린 평균 시간(s)0.360.038신경전달속도(m/s)3.7531.5805. 고찰: 이번 실험은 수의적 반응과 불수의적 반응을 비교하여 자극에 대한 반응 차이를 이해하는 실험이다. 수 이용해 시간의 평균 로 구했다. 수의적 반응은 대뇌가 관여하기 때문에 머리-무릎까지 길이가1.35m를 반응경로 길이로 판단했다. 이를 통해 신경전달속도가 1.35(m)/0.36(s)=3.75(m/s)임을 알아냈다.불수의적 반응에서는 가속도 피크 시점 2.52s, 6.30s, 8.73s, 19.47s, 25.51s을 찾았고 전압 피크 시점 2.59s, 6.33s, 8.79s, 19.39s, 25.54s을 찾았다. △t를 계산하면 0.07s, 0.03s, 0.06s, 0.02s, 0.03s이다. 조화평균을 이용해 시간의 평균값을 =0.038(s)로 구했다. 불수의적 반응은 대뇌가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무릎-허리 길이를 반응경로 길이라고 판단했고 이는 0.6m이다.이를 통해 신경전달속도는 (0.6*2)/0.038=31.58(m/s)임을 알아냈다.△t 평균 값을 비교했을 때, 수의적 반응이 불수의적 반응보다 9배이상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의적 반응은 자극-감각기-감각신경-척수-대뇌-척수-운동신경-반응기(근육)-반응 순서로 자극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는 것에 반해 불수의적 반응은 자극-감각기-감각신경-척수-운동신경-반응기(근육)-반응 순서로 대뇌를 거치지 않고 자극에 대한 반응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수용기와 효과기까지의 거리를 비교해도 머리-무릎 길이가 1.35m인 것에 비해 (무릎-허리길이)*2=1.20m가 더 짧아 속도가 불수의적 반응에서가 수의적 반응에서보다 빨라진다. 이를 통해 무릎 반사와 같은 불수의적 반응이 뜨거운 물체에 닿거나, 갑작스럽게 많은 양의 빛을 받아들이거나, 뾰족한 물체에 찔리는 것과 같은 위급한 상황에서 일어나 개체의 생존확률을 높임을 추론할 수 있었다.Q1. 반사궁에 대하여 설명하고 중추신경계에 있는 반사궁의 요소와 말초신경계에 있는 반사궁의 요소에 대해 설명하시오.A1. 반사궁이란 생물들이 특정한 자극에 의하여 반사 작용을 일으킬 때, 그 반사의 신호를 전파하는 경로를 말한다. 중추신경계에 있는 반사궁의 요소로 반사중추가 있다.kr)
발생(수정란의 관찰)실험 날짜 :조교 :학과 :학번 :이름 :공동 실험자 :목차01. 실험목적--------------------------------------------3p02. 실험원리 (이론)----------------------------------3~8p03. 실험재료와 방법-----------------------------------9p04. 실험결과--------------------------------------10~13p05. 고찰-------------------------------------------14~15p06. 참고문헌------------------------------------------15p01. 실험목적: 이번 실험은 척추동물 발생과정을 이해하는 실험이다. 이를 위해 닭의 수정란을 이용해 배의 구조를 구별하고 발생 과정을 관찰할 것이다.02. 실험원리 (이론)- 발생① 정의 : 발생의 항상성, 물질대사, 자극에 대한 반응 등과 더불어 생물과 비생물을 구분하는 중요한 생물의 특성이다. 발생이란, 동물의 생식세포인 정자와 난자가 수정되어 배를 형성하고 성장해 새로운 개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이때 세포가 증식, 분화하며 형태를 형성하므로 발생은 단순히 생식세포가 만난 수정란에서 복잡한 하나의 개체가 되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개구리의 발생에서 개구리 수정란이 어린 개구리가 되는 과정을 발생이라고 한다. 어린 개구리에서 성체 개구리로 되는 과정은 생장이라고 한다.② 발생의 세 가지 원리(1) 세포분열 : 배우자 2개, 즉 난자와 정자가 모여 생성된 2n의 수정란이 다세포 생물이 되는 데에는 세포분열이 필수적이다. 발생의 첫 단계는 분할인데 이때 수정란은 빠른 세포분열을 통해 다세포구를 만들어낸다. 이 과정에서 한 번이라도 분열된 수정란은 배라고 부른다. 이 분열과정에서는 배의 크기에 변화가 없는데 그 이유는 분열할 때마다 세포 수가 2배로 늘어나더라도 세포가 성장하는 G1기가 거의 없는 채로 분열만을 반복하기 때문에 분열할수록 세포 1개의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이다.(2) 일부 딸세포의 분화 : 발생과정에서 세포분열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중에서도 세포 분화가 일어난다. 세포 분화는 미분화된 세포가 특정 조직 및 기관을 구성하는 특수한 세포로 변환되는 과정을 말한다. 이러한 분화는 발생이 끝난 시기에도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상피 줄기세포는 전구체 세포로 다양한 피부세포로 분화되고 골수의 조혈모 줄기세포는 성체 줄기세포가 되어 백혈구, 적혈구, 혈소판으로 분화된다.(3) 세포의 이동 : 발생의 2번째 원리인 세포 분화 과정이 일어나는 동안 세포는 이동한다. 이를 통해 같은 종류의 세포가 모여 승모근, 뇌 등 다세포 구조를 띠는 조직이나 기관이 형성될 수 있다.- 호미오 유전자와 호메오 도메인① 호미오 유전자 : 호미오 유전자는 비슷한 유전자들의 집합이다. 이는 다양한 생물에서 배의 패턴형성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 초파리의 호미오 유전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호미오 유전자에 180개의 공통 염기 서열이 있음을 발견했다. 효모, 식물, 사람을 포함한 연구된 모든 진학 생물과 심지어 원핵 생물에서도 매우 비슷한 염기서열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염기서열을 호미오 박스라고 하고 6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의 일부 구간을 만든다. 배 발생동안 호미오박스의 폴리펩타이드 조각은 DNA의 특정 염기서열에 결합하여 다른 유전자를 작동시키거나 억제한다.② 호메오도메인 : 호메오도메인은 60여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고 유전자 결합의 활성을 나타내는 구조의 단백질이다. 이는 호메오박스로부터 발현되고 타깃 유전자 프로모터 부위의 염기서열에 특이적으로 결합해 유전자 발현의 속도를 조절한다. DNA에 결합한 호메오도메인은 2가지 형태를 띤다. 아래 사진이 그 2가지 형태이다.첫 번째 호미오도메인 구조두 번째 호미오도메인 구조- 닭의 수정란 구조①난황 : 노른자를 의미한다. 난황은 탄력성이 있는 비텔린막으로 둘러싸여 존재한다. 산란 후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비텔린막이 약해져 탄력성을 잃는다. 난황의 한쪽애는 배아가 있고 유정란의 경우에는 난황 표면 중심에 2-3mm 백색 둥근 배반이 존재한다. 배색의 가느다란 줄을 통해 난황과 배반이 연결된다. 이러한 난황은 약 수분 47%, 단백질 16%, 지질 2-9%, 나머지는 회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난황단백질은 대부분 인단백질로 이는 지질과 약한 연결을 가진 리모프로테인으로 존재한다.②배자 : 병아리가 되는 직접적인 부분으로 난황 위에 위치한다. 이는 난백과 난황, 난각의 영양분을 공급받아 병아리가 된다.③난황막 : 이는 탄력성이 있는 젤라틴 성분의 비텔린막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난황막은 알 형성과정에서 난모세포, 여포세포 사이에 형성된 난세포를 둘러싼 얇고 튼튼한 막이다. 난황막을 통해 계란은 수정란 형태를 유지하고 난황과 핵을 보호하며 난황과 난백 사이 물질교환을 할 수 있다.④난백 : 흰자를 의미한다. 이는 난각과 난황 사이에 존재한다. 난백은 배아가 외부로부터의 기계적 진동이나 온도 변화 같은 영향을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또한, 난백은 난황을 둘러싸고 있어 외부로부터 세균 침입을 방지하고 충격을 흡수해 난황과 배반을 보호한다. 수양난백과 농후난백이 존재하는데 이는 성분차이가 아닌 단백질 구조차로 구분된다. 전자는 단백질이 섬유조직으로 존재하고 후자는 단백질이 특수한 망조직을 형성한다.⑤난각막 : 계란 난각막의 바로 안쪽에 있는 하얀 막이다. 이는 2층의 막으로 되어 있고 그중 바깥막인 외난각막은 난각 내면에 밀착되어 있고 안쪽에 있는 내난각막은 난백을 감싸고 있다. 전자는 약 0.05mm의 두께이고 후자는 0.02mm의 두께이다. 이 두막은 거의 밀착되어 있지만 난둔반부에서 나누어져 산란 후에 온도 변화에 따라 기실이 생성된다. 이러한 난각막은 계란 1개에서 0.7%밖에 차지하지 않지만 막의 중량 7배에 달하는 이산화탄소 흡착능력을 가지고 있어 세포배양시 성장속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난각막은 단백질과 다당류 섬유로 구성되어 있고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내부에서 수분이 증발되는 것을 막는다.⑥난각 : 알껍질로 수정란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탄산칼슘, 인산마그네슘, 탄산마그네슘와 단백질 섬유로 이루어져 있다. 난각의 95% 정도가 탄산칼슘이고 난각은 달걀 전체의 12% 정도를 차지한다. 난각의 표면에는 많은 기공이 있다. 산란 직후에 난각 표면은 수란관에서 분비된 점액물로 ejavdu 있어 외부와 공기유통이 차단되어 있다. 그러나 수분 후에는 건조되어 큐티클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보호용 코팅제로 미세한 구멍을 막으며 신선함을 유지한다. 또한, 난각을 보호하고 세균의 침입을 방지한다.영양분수분단백질지방무기질구성비74.7%12.3%11.2%0.9%구성중량수분단백질지방회분포도당난황305016.731.61.10.15난백608811.60.20.70.38난각10
감각의 인지실험 날짜 :조교 :학과 :학번 :이름 :공동 실험자 :목차01. 실험목적--------------------------------------------3p02. 실험원리 (이론)-------------------------------3~11p03. 실험재료와 방법------------------------------11~14p04. 실험결과--------------------------------------15~19p05. 고찰-------------------------------------------19~22p06. 참고문헌------------------------------------------23p01. 실험목적: 시각, 청각, 평형감각, 몸감각, 미각, 후각 각각의 감각계의 수용기를 학습한다. 또한, 어떤 원리로 감각을 인지하는지에 대해 학습한다.02. 실험원리 (이론)- 감각수용① 감각의 인지 : 감각을 통해 얻어진 정보를 통해 아는 것을 인지라고 한다. 감각수용기에서 수용된 감각이 활동전위 형태로 바뀌어 신경계를 통해 중추신경에 전달된다.② 감각자극 지각의 4단계 : 감각자극 지각은 수용, 전환, 전달, 처리 과정을 거친다.(1) 수용 : 감각수용기를 통해 감각이 수용된다.(2) 전환 : 자극에너지를 수용기전위로 전환해 신경계를 통해 자극이 운반되게 한다.(3) 전달 : 뉴런의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활동전위가 뉴런에서 뉴런으로 전달된다.(4) 처리 : 전달된 자극은 최종적으로 중추신경계인 뇌와 척수로 전달되어 해석된다.③ 감각적응 : 우리는 옷을 입고 있어도 마치 알몸으로 있는 것처럼 옷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감각적응에 의한 결과이다. 옷이 신체에 계속 닿는 것처럼 감각수용기가 지속적으로 자극받을 때 일부 감각수용기는 자극에 대해 덜 민감해져 활동전위 발생 빈도가 감소한다. 버스를 타고 통학할 때 처음에는 버스의 덜컹거림 때문에 잠을 못자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 잠에 드는 것도 감각적응 현상이다.- 감각실무율의 법칙 : 영어로 원뿔세포가 기여한다.※ 막대세포 : 이는 빛에 극도로 민감해서 비록 검은색, 흰색, 회색으로만 보이지만 희미한 불빛에서도 볼 수 있게 한다. 막대세포는 망막의 주변에 분포하며 명암을 감지한다.※ 원뿔세포 : 이는 밝은 빛에 의해 자극되고 색을 구별할 수 있다. 원뿔세포는 망막의 중앙부분에 분포한다.- 기계적 감각수용기 (소리)① 청각 전달 경로 : 겉귀(귓바퀴->귓속 통로)->고막->가운데귀(청소골->난원창)->속귀(달팽이관 내부 코르티기관 털세포->감각뉴런)->청신경->뇌(측두엽 청각피질) 순서로 청각이 전달된다.② 청각장애감각신경성 난청 : 이는 달팽이관의 청각세포로부터 뇌의 청각을 담당하는 부위까지의 신경 부위에 이상이 생겨 청력이 저하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감각신경성 난청에는 노인성 난청과 소음성 난청이 있다. 노인성 난청은 나이가 들면서 눈이 침침해지듯이 귀가 노쇠해져 점차 청력을 잃는 것이다. 이는 털세포가 마모되면서 일어난다. 소음성 난청은 소음에 반복적을 노출된 경우에 발생한다. 이는 감각신경 손상에 의해 일어난다.전음성 난청 : 소리가 내부로 들어가지 못해 소리를 모으고 전달하는 것이 어려워 소리 자체가 작게 들리는 것을 말한다. 이는 외이와 중이에 문제가 있는 청각 장애이다. 외이에 문제가 있는 경우로 외이도폐쇄증, 소이증이 있고 중이에 문제가 있는 경우로 고막파열(천공), 이경화증, 이솔골기형이 있다.- 기계적 감각수용기 (접촉감각)① 촉각 : 접촉을 감지하는 감각이다. 촉각수용기는 피부를 포함한 표면조직 등에 존재한다. 이 수용기를 통해 열, 접촉과 압력, 움직임을 감지한다.② 2점 접촉 역치 : 서로 다른 두 작극을 다른 것으로 인지하는 최소 거리이다. 이는 피부에서 한 촉각수용기가 담당하는 범위가 좁을수록 값이 커진다. 예를 들어, 혀와 손가락에는 촉각 수용기가 많이 분포되어 한 수용기가 담당하는 범위가 좁아 2점 접촉 역치 값이 크고 상대적으로 촉각 수용기가 적은 목 뒤나 팔 안쪽은 한 수용기가 담당하는 범위가 넓어 2점 접촉 역치 만큼의 거리를 두고 피실험자와 떨어뜨린다.2) 한 쪽 눈을 감은 채로 검사지를 응시한다.3) 2)의 상태에서 글자들이 흐리게 보일 때까지 천천히 검사지를 얼굴에 갖다 댄다.4) 글자들이 흐리게 보이면 반대로 상이 뚜렷해질 때까지 검사지와 얼굴 사이 거리를 벌린다.5) 해당 시점의 눈과 검사지 사이 거리를 측정한다.6) 1)~5)의 과정을 다른 쪽 눈에 대해서 실행한다.색각1) PPT의 그림을 보고 어떤 동물이 보이는지 기록한다.2) PPT의 링크를 통해 Ishihara test를 진행한다.기계적감각수용기(소리)Weber 검사1) 피실험자가 의자에 앉게 한다.2) 소리굽쇠를 진동시킨 채로 피실험자의 머리 가장 위쪽에 놓는다.3) 좌/우 중 어느 쪽 소리가 더 잘 들리는지 피실험자에게 확인한다.Rimme 검사1) 피실험자가 의자에 앉게 한다.2) 소리굽쇠를 진동시킨 채로 피실험자의 유양돌기에 갖다 댄다. 그리고 BC로 표현하여 골도 청력을 확인한다.3) 피실험자가 더 이상 소리를 듣지 못할 때, 소리굽쇠를 귓속통으로부터 2cm 떨어진 곳에 둔다.4) 3)의 상태에서 피실험자가 음을 들을 수 있는지 기록한다. 이때, AC로 표현한다.※ 소리는 일반적으로 골전도보다 공기전도가 좋다.난청검사1) PPT의 링크에 접속한다.2) 청력테스트를 진행하고 결과지를 통해 청력 예측 값과 난청 정도를 확인한다.기계적감각수용기(접촉감각)촉각수용기의 분포1) 피실험자의 눈을 가린다.2) 1)의 상태에서 실험자는 피실험자의 피부를 컴퍼스의 1점 또는 2점으로 자극한다.3) 2)의 자극에 대해 피실험자는 1점이나 2점 중 몇 개의 점으로 피부를 자극 받았는지 대답한다.4) 컴퍼스를 완전히 모은 상태로 피부를 자극한다.5) 컴퍼스의 두 점 간격을 넓히면서 피실험자가 두 점을 자극했다고 인식하는 두 점 간격을 측정한다.※ 컴퍼스의 두 점 간격을 2점 접촉 역치로 측정하고 기록한다.6) 1)~5)의 과정을 팔 안쪽, 목 뒤, 손바닥, 손가락 끝에서 실시한다.화학수용기(화학, 맛)PTC 미맹검사이 모두 보인다는 것을 통해 사람은 시야가 겹치는 2개의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끊어짐이 없이 상을 지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근점의 실험에서는 검사지의 글씨가 흐릿하고 뚜렷해지는 경계 지점의 검사지와 눈 사이 거리를 측정했다. 그 결과, 왼쪽눈을 가렸을 때 경계거리가 9cm이고 오른쪽눈을 가렸을 때 경계거리가 11cm임을 알 수 있다. ppt 표를 통해 근점에 대해 피실험자의 왼쪽눈은 30세에 가깝고 오른쪽눈은 20세에 가깝다. 피실험자의 근점이 20대 평균보다 멀어진 것에 스마트폰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중앙대학교 안과 문남주 교수는 “1시간 정도의 비교적 짧은 사용에도 불구하고 눈 조절력 측정시 조절근점과 눈모음근점의 유의한 변화가 나타났으며, 작은 화면의 스마트폰을 보았을 때 화면이 큰 태블릿을 보았을 때보다 더 큰 변화가 나타났다.”라고 말했다. 피실험자에게 질문한 결과, 그는 과제와 더불어 여가생활도 핸드폰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특히, 유튜브를 핸드폰으로 보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근점 결과와 근점과 스마트폰 사용간의 관계를 나타낸 기사를 보여주며 피실험자에게 당장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여가생활을 하지 않는 것은 어렵겠지만 스마트폰보다 큰 태블릿을 사용하고 전자기기 사용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세 번째 광수용기에 대한 실험은 색각이다. ppt에 있는 링크를 통해 색각검사를 했다. 해당 실험에서는 색각이 빛의 파장 차이를 감지하여 색을 구별하는 눈의 능력이라는 고려해 단일한 색상의 배경에 다른 색상으로 숫자를 적어 놓고 피실험자가 해당 숫자를 작성하게 했다. 처음에는 대비되는 색상으로 글씨를 적어 놓았고 후반 문제에서는 비슷한 색상의 글씨를 적어 놓았다. 피실험자인 나는 25/25로 만점을 받았다. 이를 통해 나는 망막의 중앙 부분에 분포한 원뿔세포가 활성화 되어 있어 빛의 파장 차이를 이용해 색을 잘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두번째 실험은 기계적감각수용기(소리)에 대한 실험이다. Weber검사,이를 통해 신체 부위마다 촉각 수용기의 분포가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손바닥과 손가락 끝에는 팔 안쪽이나 목 뒤보다 수용기가 밀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한 촉각수용기가 담당하는 수용범위가 좁을수록 두 점을 구별하는 능력이 좋아진다. 따라서 두점 접촉 역치의 값은 신체 부위에 한 촉각수용기가 담당하는 수용범위에 따라 정해진다. 신체부위에 촉각수용기가 많다면 한 촉각수용기의 수용범위가 좁아지고 신체부위에 촉각수용기가 적다면 한 촉각수용기의 수용범위가 커진다. 이를 고려해 손바닥이나 손끝에서는 촉각수용기가 많이 분포해 미세한 자극에도 반응할 수 있고 목뒤나 팔 안쪽에는 상대적으로 촉각수용기가 적어 미세한 자극에 반응하기 어렵다. 신체 모든 부위에 촉각수용기가 많이 분포되어 있으면 좋겠지만 신체는 자극에 대한 인식이 자주 일어나고 중요한 부위일수록 촉각수용기를 많이 배치하고 상대적으로 자극의 빈도가 작고 자극인식이 중요하지 않은 부위일수록 촉각수용기를 적게 배치했다. 이를 통해 신체는 효율적으로 감각수용기를 배치하고 감각을 인식할 수 있다.네번째 실험은 화학수용기(화학, 맛)에 대한 실험이다. PTC 미맹검사를 통해 PTC 미맹 여부를 확인했다. 0.13% 농도의 PTC 용액에 대해 쓴 맛을 인지하지 못하면 PTC 미맹이다. PTC 용액의 농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순서대로 면봉에 묻혀 피실험자의 혀에 갖다 댔다. 그리고 용액을 변경할 때, 전에 혀에 묻은 PTC 용액이 피실험자가 쓴맛을 느끼는데 영향을 주지 않게 하기 위해 피실험자는 물로 입을 헹궜다. 이번 실험에서 피실험자는 0.008%, 0.016% 농도의 PTC에는 쓴맛을 못 느꼈고 0.032% 농도의 PTC부터 쓴맛을 느꼈다. 이를 통해 피실험자는 PTC 미맹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PTC 미맹이 상염색체 단순열성 유전임을 고려해, 피실험자의 부모 중 적어도 한 명은 우성인자를 가지고 있는 PTC 미맹에 대해 정상인 개체일 것이다. 그리고 해당 부모로부터 피실험자는 우성인자를 받아 표현형이 정상이 되참조.